160화 당신들만의 규율이니까
160화 당신들만의 규율이니까
아마 천주성에 발을 들인 정파 사람은 내가 처음이 아닐까. 천주성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처음일 것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천장은 좁아지는 어둠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리장성을 방불케하는 요녕의 성벽을 넘어 성도인 심양(沈陽), 그곳에 천주성이 있었다.
나는 아직 성과 성 바깥의 경계선을 밟고 있었다.
“안 들어가나?”
“잠시만.”
이미 들어간 목단화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천주성에는 꽤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 모두가 동일한 팔의 각도, 보폭의 너비, 눈의 방향, 일자로 닫은 입술을 하고 있었다.
팔 각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팔이 없는 사람이고, 보폭의 너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다리가 없는 사람들뿐. 그 외에는 모두 정말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뒤에 있는 사람들에서 질리는 소리가 났다. 당연했다. 사람들이 똑같이 움직이는 광경은 그렇게나 불쾌했다.
“왜 이런 규칙이 생긴 겁니까?”
“성주님이 규칙적인걸 좋아하시거든.”
“규칙적이라.”
나는 바로 들어갔다. 내 신발이 하얀 천주성 바닥에 딛혔다.
탁.
탁.
원래는 동일한 박자로 울렸던 걸음소리에 불순물이 끼어들었다. 모두가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바라봤다. 눈에는 커다란 공포가 담겨있었다.
나는 그들을 무기질적으로 바라봤다. 공포라. 그들은 뭘 두려워하는 걸까. 적어도 나, 우리를 향한 공포는 아니었다.
난 순간 일 층 전체를 뒤엎는 살기를 느꼈다. 그건 무형의 기운이었다. 대기를 흩뜨려뜨리지 않고, 사람만을 향하는 정밀한 기운. 그만큼 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고수라는 것이었다.
“···으.”
그 살기는 너무 짙어 팽상원, 명재희의 침음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래도 갈유월은 입술을 씹으면서 버티는 것 같았지만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물론 근처에 있는 어른들이 그 기파를 쏟아내 살기를 걷어내주었다.
난 살기가 쏟아져나온 곳을 바라봤다. 중앙에 있는 계단에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릎까지 늘어질 정도로 긴 팔을 가진 왜소한 늙은이였다.
“삼 당주. 성내 규칙을 설명하지 않았나?”
“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지.”
순간 나를 주변으로 반원이 그려졌다. 흰색 무복의 무인들이 날 검으로 겨누고 있었다. 스무 명, 서른 명 정도. 그들의 팔뚝에는 팔(八)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천주성은 열두 개의 당이 있다고 했다. 그 중 팔 당에 속해있는 무인들일 것이다. 그들의 기도는 하나같이 초절정 수준은 되는 정도였다. 물론 초절정이라도 같은 초절정은 아니다. 이들은 대개 초입 수준이었으니.
“성의 규칙을 안 따르면 죽는다.”
노인이 유령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노인을 바라봤다. 목젖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다. 칼은 내 목에 닿아있으니까.
그러나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긴장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성에 들어오기 전, 그들에게 해준 말이 있었으니까.
- 제가 무슨 일을 당해도 지켜만 보고 계십시오. 아무 말도 하지 말고요.
왜, 냐는 질문은 많이 들었지만 설명하지는 않았다. 계속 전음을 하면 목단화에게 들킬 게 분명했으니까.
목단화는 그 오 년 전에 오기조원의 고수인 곽진도와 비등했던 무인이다. 물론 오기조원 안에서도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오기조원은 입신의 경지라 불리는 등봉조극에 다다르기 위해 마지막 깨달음만 남겨둔 경지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기조원에서 멈추고는 하지만 말이다.
내 검병에서 반짝거리는 빛이 났다. 순간 옆에 있던 목단화, 나를 겁박하고 있던 무인들, 노인의 눈이 크게 커졌다.
솨악!
대기를 저미는 예리한 일획이었다. 내게 검을 들이대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뒤로 떨어졌다. 목단화와 삼당의 무인들, 노인과 팔당의 무인들은 당황하더니, 곧 분노에 떨었다.
“난 소란을 일으켜도 되지 않습니까? 소란을 피지말라는건 당신들만의 규율이니까.”
“···이, 어린 놈의 새끼가···”
팔 당주라는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나보다 체격이 왜소하여 내가 내려다볼 수 있었다. 코는 오똑하고 눈은 부리부리했다. 늙었지만 꽤 미남의 상이었다.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이미 목단화 당주한테 얘기했습니다. 난 손님이니까 무례하게 대하지 말라고.”
“남해의 부랑아 출신과 이 몸을 비교하는 거냐?”
팔 당주가 웃었다. 목단화는 자신을 비하하는 말에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이미 이런 일이 많았거나, 둔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너, 이 몸이 누군지 아느냐?”
노인은 얼굴을 비틀며 내 턱끝까지 왔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를 처음 보자마자 몸의 특징이 명확하여 쉽사리 떠올릴 수 있었다. 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암왕(暗王) 조현극이 아닌가.”
그 말에 종리운과 진권이 대경실색을 했다. 앞에 있는 노인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종리운과 진권이 놀라며 물었다.
“암왕 조현극이라고?”
“가주. 그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내가 조용히 있으라고 했던 것도 까먹을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나보다.
이해한다. 왜냐하면 암왕 조현극은 이름만 유명한 사람이니까. 그가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고, 어떤 몸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내 전생에서는 몇몇 천주성 당주들이 중원에서 활개를 치고 유명해졌는데, 조현극은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내가 목단화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천주성의 당주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거다. 조현극은 십왕 중 하나여서 더욱 유명해졌었지.
“···네, 네놈이 어찌···”
“가면이나 벗어라. 외객(外客) 앞에서 얼굴을 속이려고 하다니. 천주성이 그리 비겁한 곳인가.”
내 이어진 말에 노인의 작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천주성의 사람들은 내 이어지는 말에 강한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가 중원에서 유명했던 십왕 중 하나였다는 것도, 인피면구를 쓰고 있다는 것도 아직까지는 특급 비밀이었으니까.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건 그들이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거였다.
“허, 허허, 허···”
노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천주성은 그야말로 순결한 정의를 표방하는 집단. 조금의 사술과 속임수는 용서되지 않았다. 물론 조현극이 인피면구를 쓰고 있는 건 내가 속임수라고 말하니까 속임수가 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를 속이려고 인피면구를 쓰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 알았네. 특히 성주님이 거하는 곳에서 그러면 안 되지.”
조현극은 인피면구를 벗었다. 오른쪽 아래턱에 있는 커다란 혹 때문에 눈, 코, 입이 일그러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의 표정이 찡그려지는 게 보여졌다. 천주성 사람들도 조현극의 얼굴을 보는 게 처음인 사람도 많을 거였다.
“정파는 이런 모욕을 받으면 뒤에서 구린 짓을 하지. 살수를 쓴다거나, 여론을 조성한다거나, 하는 일들. 추잡하지 않나?”
뒤에서 누군가 움찔하는 느낌이 났다. 아마 진권과 공휴일 것이다.
“그럼 천주성은 어떻게 하지?”
“무인으로서의 생명을 걸고 싸우지. 다만 우리는 죽이지는 않아. 단전을 파괴할뿐.”
“확실히 내가 아는 정파와 많이 다르군.”
천주성이 개인적으로 은원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알게 무엇인가. 여기는 내가 아는 정파라고 생각하면 안 됐다. 제 삼의 무언가라고 생각해야지. 물론 지금 정파도 정(正)의 이름을 쓸 수 있는지도 애매하지만, 그건 바꿔가면 될 거다.
“그래서, 난 지금 너에게···”
조현극의 말이 마쳐지기도 전이었다.
ㅡ 아아아···!
건물 전체가 비명소리로 가득찼다. 소리에도 예기(銳氣)가 있다면, 저 비명은 감히 날붙이라 표현할 수 있었다.
“···윽.”
난 살짝 현기증을 느꼈다. 내가 휘청거리자 뒤에 있던 갈유월이 날 받쳐줬다. 등과 어깨에 부드러운 감각과 난초 향기가 났다.
“왜, 왜 그래? 괜찮아?”
“···응.”
나는 갈유월의 어깨를 짚으며 다시 몸의 균형을 찾았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귀곡성(鬼哭聲)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었다. 내 상단전이 감응하고 있었다. 장침이 백회에 내리꽂히는 듯하다.
목단화와 조현극은 날 거들떠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은 일그러져있을지언정 놀라지는 않은 듯 했다. 그렇다면 이 소리는 그들에게는 익숙한 소리라는 걸까.
난 상단전의 기감을 최대한 차단했지만, 그래도 어지럼증이 남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허나 내 상단전은 명확히 소리의 파동을 읽어냈다.
소리에는 사람의 감정이 담긴다. 같은 말, 같은 의성어라도 다르게 들리는 건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보통 여러개였다. 분노에도 슬픔, 억울함 내지는 해방감이 담길 수 있고 그 비율은 각기 상황마다 다르다. 그렇게 감정이 섞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삶 자체가 애증이기 때문에.
그러나 저 귀곡성은 괴이하게도 하나의 감정만 담겨 있었다. 바로 절망이었다. 그 절망이 너무 강하여, 내게 잠깐 전이된 모양이었다. 다행히 뒤에 있는 사람들은 귀가 좀 시끄러울뿐 나 정도의 영향은 안 받은 듯했다.
“운이 좋군.”
조현극이 그제야 내쪽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너희들은 나가라.”
아마 무슨 일이 생긴 건 분명해보였다. 사람들이 우리를 몰아내려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난 납검해놓았던 검을 다시 출수했다.
“엇!”
내 출수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사람들이 놀랐다.
“뭐하는 짓이지?”
늘 유들유들하던 목단화도 이번만큼은 정색하며 물었다. 내쪽에 있는 사람들도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난 들어가야겠어.”
“왜?”
왜냐고 물어보면, 드물게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못했다. 내가 들어가려는 이유는 전이된 절망스러운 감정이 전생에 내가 느꼈던 감정과 그야말로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또 여기 있는 사람들은 상단전이 열려있지 않아 저 절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저 괴성으로만 취급하고 있다. 내가 지하에 묶여서 고통에 소리를 질렀을 때, 웃음거리로 취급하던 옥관(獄官)들하고 본질적으로 다른 바가 없었다.
겪고 있을 고통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걸 알기에 가는 거다. 내 과거 때문에 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절망을 동정하기 때문에 가는 걸까.
난 앞으로 걸어갔다. 검을 휘적였다. 여기서 날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소란을 부릴 수 없었다. 그리고 난 내 길만 비켜준다면 소란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이, 이 미친놈이!”
“다른 사람은 안 간다. 나만 갈 거야. 내가 손님이니까. 막을 명분이 있나.”
조현극은 낮게 이빨을 갈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멍하니 지켜보던 와중, 내 뒤에 누군가가 붙었다.
“같이 가자.”
뒤에서 내 허리춤의 옷깃을 잡은 건 갈유월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얼굴이 안 보이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너 지금 정상 아니잖아.”
아까 휘청였던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난 목단화를 바라봤다. 목단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삐쭉 내밀고 어깨를 으쓱였다.
“들어가시죠. 소란을 피우거나 성주님께 해를 가하면 손님 대접은 없을 겁니다.”
“삼 당주···!”
“어쩔 수 없습니다.”
갈유월은 여전히 내 뒤, 등의 옷깃을 잡은 채로 걸어갔고 나 역시 걸어갔다. 비명소리는 계속 되고 있다. 규칙적으로 걷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걸음을 멈췄다. 아마 이 비명소리가 나오면 모두 멈추는 게 규칙인 모양이었다. 물론 내 뒤에 목단화와 조현극은 따라오고 있었다.
난 소리가 들리는 쪽을 따라가 문 앞에 섰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와있었다. 개 중에는 남궁연화의 얼굴도 보였다.
“···네가 어찌 여기?”
남궁연화는 목단화를 바라봤지만 목단화는 고개를 저었다. 사정 청취를 할 때는 아니었다.
남궁연화는 문을 열었고, 나는 정육면체 모양으로 둘러쳐져 있는 막을 봤다.
그와 동시에, 내의로 입었던 현법단의가 온 몸에 달라붙듯 꽉 조였다. 현법단의를 걸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시 현기증이 일었다. 난 갈유월이 받쳐주기도 전에 갈유월 쪽으로 기댔다.
“···하아.”
난 숨을 내뱉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현법단의가 꽉 조여질 정도로, 눈이 매울 정도로,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퍼져있는 저 자욱한 독이 보이지 않는지.
그 독은 놀랍게도, 성주의 몸에서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