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처절하게 응징할 테니
159화 처절하게 응징할테니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와 목단화를 번갈아 바라봤다. 천주성의 인물과 개인적으로 아는 관계라는 것이 그들이 놀란 이유인 것 같았다.
“그때는 어려서 말을 놓았다고 쳐도, 이렇게 만났는데도 경어를 쓰지 않나?”
“날 죽이려던 사람한테 경어를 써줄 수는 없지.”
목단화가 크게 웃었다. 뒤에서 다른 사람들이 놀라는 게 느껴졌다. 곧 이어 경계하는 기세가 뒤쪽에서 퍼졌다. 좋은 인연이 아닌 것을 파악한 거다.
우리가 기세를 올리자 목단화의 뒤쪽에서도 기세를 피워올렸다. 만약 이 사이에 일반인이 있다면 질식해서 죽었을 정도로 강렬한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다.
난 뒤를 살짝 바라보고 손을 저었다. 지금은 싸우려고 온 게 아니었다. 거의 동시에 목단화도 뒤를 돌아보며 사람들의 기운을 해소시켰다.
“왜들 그러나. 강호에서 적이었다가 친구가 되는 경우는 썩어나도록 많거늘. 지금은 성주님이 보고 싶어하는 귀빈이니, 내가 손을 댈 수도 없다네.”
목단화는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까 질문에 대답하자면, 천주성 내에서 지켜야할 게 많아서 지금부터 안내를 해줘야 되기 때문이지.”
“지켜야할 것?”
그 이후 목단화에게서 어이없는 소리들이 줄줄 나왔다.
천주성 본성 안에서 걸을 때는 어떤 박자로 걸어야 하며, 어떤 보폭으로 걸어야 하며, 어떤 자세를 하고 있어야 하며, 사람을 대할 때는 손을 어디 대고 있어야 하며, 앉을 때는 다리를 어떻게 구부리는지···
나는 그것들을 계속 듣고 있었다. 천주성 안에서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한다는 뜻이었다.
“그만하지. 우리를 모욕하는 것도 유분수지.”
목단화의 계속되는 말을 끊은 건 종리운이었다. 우리쪽 사람들은 어이없음을 떠나서 화난 눈빛이었다.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움직이라니. 어디 꼬마들도 아니고, 강호의 명숙들이다.
“당연한 겁니다. 집으로 들어오는데 집주인의 뜻을 따라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목단화는 생각보다 예의있게 받아쳤다. 물론 내용은 비정상적이었지만 말이다.
“집주인이 정신병자라면 따를 이유가 있나.”
종리운의 말에 목단화의 표정이 굳고 모든 이가 기세를 피어올렸다. 난 눈을 감았다. 성주에 대한 모욕. 그들의 역린이었다. 당장이라도 싸울 것만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야말로 깨끗한, 순결한 기들이었다. 허나 태원의 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부하들은 태원의 기를 익히지 않고, 고위층들만 익히는 걸까. 실제로 목단화에게서는 태원의 기가 느껴졌다.
상황이 격화되려고 하자, 내가 소리쳤다.
“그만!”
바람 부는 소리가 강하게 나고, 나무들과 풀잎들이 내가 있는 반대방향으로 꺾여나갔다.
뒤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동안, 목단화의 눈은 크게 떠져 있었다. 목단화의 뒤에 있는 천주성의 무인들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침착함을 되찾은 목단화는 조용히 말했다.
“그 나이에 그 정도 공력이라. 확실히 성주님이 뵈고 싶어하시는 이유를 알겠군.”
“우리는 초대를 받고 온 거야. 무례를 저지르지 마.”
“허허. 그랬지. 자네는 성주님의 손님이었지. 내가 그걸 깜빡했군.”
“그리고 우리는 그 규칙을 지킬 생각이 없어. 성주에게도 그렇게 전해줬으면 좋겠군.”
지금 나는 정파를 대표하고 있다. 여기서 천주성의 하라는 대로 할 거면 온 이유가 없다.
전생에는 정파와 천주성은 동맹 관계가 아니었다. 아마 천주성은 저런 방법을 강요했을 거고, 주류 정파는 거부했을 거다. 그들의 대화가 통했을리 없지.
그러니 주류 문파를 제외한 정파를 흡수한 천주성, 정파, 마교가 뒤엉켜서 싸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양식을 거부하더라도 나를 데려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천주성주의 관심을 받았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목단화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 수는 없군. 다만, 성 내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당주들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불쾌해할 거야.”
실제로 목단화 뒤에서 나를 적대하는 기운들이 올라왔다. 그건 눈빛에서 느낄 수 있다. 아마 저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겠다.
확실히 종리운의 말대로, 미친 집단이기는 했다. 그런 정신나간 절차를 강요하면서도 어떠한 생각도 없다니. 그들은 이 절차를 우리에게 모욕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너무 당연한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저들 입장에서는 그 당연한 것도 하지 않는 불청객이라고 보일 거고.
그러나 상관없었다. 난 천주성과 갑을 관계가 되고자 가는 게 아니었다.
그 이후 목단화를 비롯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요녕에 도착했다.
“···저건, 대체 뭐냐.”
명재희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우리가 요녕에서 처음 본 건 거의 하늘 끝까지 뻗어있는 성벽이었다.
*
흰색 방. 중앙 변에는 커다란 침대와 엷은 막이 있었다. 그 막 뒤에는 벽에 기대어 힘없이 앉아있는 것만 같은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성주님. 황금세가 가주가 요녕으로 들어왔습니다.”
늙은 남자 하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으아, 아···”
그 말에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뼈가 없는 물체가 춤을 추는 것처럼 괴이했으며, 음성 또한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알 수 없었다.
“데, 려와아···”
“네. 성주님. 데려오고 있습니다.”
“불쌍한 아이. 사지가 잘려있어. 사지가 잘려있어.”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침대 좌우에는 늙은 남자를 포함하여 열한 명의 사람이 쭉 서있었다.
“으, 아···직. 있어. 있어. 중원에 버마가 있고 그들은 말굽 다친 말처럼 투다닥, 투다닥 달리고 쾌활, 광폭하지? 하지만 버마는 오고 있어. 어린 짐승이 이빨이 크다.”
막 뒤에서 계속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주의 말은 언제나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반복되는 학습 속에서 그들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생기고는 했다.
저 발음도 이상한 버마라는 단어는 버러지 마교라는 뜻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보여줘야돼. 중원한테 우리를 보여줘야돼.”
천주성주라고 불린 그림자는 중얼거리더니 진짜 혼자만 알 수 있는 문장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천주성의 당주들도 저 중얼거림까지 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큼.”
천주성주의 목소리가 작아지자, 누군가가 목을 가다듬었다. 흰색 머리를 말아올린 늙은 여인이었다.
아마 남궁세가 사람이 여기 있으면 깜짝 놀랄 게 분명했다.
남궁세가의 원로원주, 가장 큰 어른인 남궁연화가 여기 있으니 말이다.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들어온 인원수가 예상보다 오분지 일도 되지 않습니다.”
“본성에 가지 말라는 금목환의 방문 때문에 그런가?”
“그것말고는 생각할 게 없습니다.”
남궁연화는 미소를 지었다. 성주님이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인 건 정말 다 이유가 있었다. 성주님의 예언을 받은지 십 년 남짓. 그들에게 지침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알려줬을뿐. 누군가를 지명해 찾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온 사람들도 멸문한 가문의 생존자거나 도망자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벌써 그렇게 영향이 있다라.”
어차피 모두 천주성 발 밑에 들어오거나, 쳐내질 사람들이다. 잠깐 늦춰질 뿐이다. 남궁연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달리 의견 개진할 사람 있는가.”
남궁연화가 말하자, 많은 사람들이 한 발자국씩 나왔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발을 빼거나 해서 순서를 만들었다. 먼저 발언권을 얻은 건 늙은 남자였다.
“이번에 오는 사람들, 금목환을 제외하고 전부 죽여야 합니다.”
“이유는?”
“성주님의 계율 중 가장 중요한 건 구태 정파의 정화입니다. 그리고 오는 사람들은 구태 정파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금목환이 오지 않으면?”
남궁연화는 많은 고수들이 오고 있음을 앎에도 그들을 어떻게 이길 거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모든 건 금목환을 만나고 싶어하는 천주성주에 맞춰져 있었다.
“팔, 다리를 잘라서라도 데려와야죠. 어쩌면 성주님의 말씀 중, 사지가 잘려져있다는 말은 사지를 잘라서 데리고 오라는 말이 아닐까요?”
“팔 당주. 우리는 성주님의 신언(神言)을 확대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아. 우리는 서기(書記)지 사제가 아니야.”
그때 젊은 청년이 앞으로 나왔다.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던 그의 얼굴이 나왔다. 용봉지회를 구경했다면 모두 알 수 있는 얼굴이었다. 바로 중원에서 역룡이라는 별호를 받은 선우진이었다.
“계획했던 것처럼 저희의 무공이 우월하다는 것만 보여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만약 여기서 모두를 죽인다면 추후 저희가 정파를 흡수할 때 반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진아. 지금 네가 의견 개진할 때는 아닌 것 같구나.”
“삼 당주님 대리로 왔으니, 삼 당주로 대우해주시죠. 그게 맞지 않습니까?”
팔 당주라고 불린 노인은 선우진의 대답에 굉장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막 안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천주성주는 기운에 굉장히 민감했다. 조금의 노기(怒氣)나 기운이 흐트러지면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 여기서는 소란을 피울 수 없었다.
“그러지.”
팔 당주가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런 반항이 뭐가 중요한가? 성주님이 우리의 길을 밝혀주고 있네.”
“결국 우리의 적은 마교입니다. 정파 또한 정화의 대상이지만, 그 뒤에 진짜 적이 있다는 걸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교를 상대할 때 머릿수는 크게 필요없어. 심지 굳은 사람 소수면 충분해.”
당주들끼리의 대화가 길어지자, 막 안에서 입을 다물고 내는 소리가 울렸다. 그 진동음에 방 전체가 공명했다. 바로 당주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나가지.”
남궁연화는 당주들을 몰아 바깥으로 나갔다. 중간에 사람 두 명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두꺼운 문이 닫혔다.
촥!
그와 동시에 선우진의 머리가 돌아갔다. 팔 당주가 선우진의 뺨을 쳐버린 것이었다. 내공을 담아 때렸는지 선우진의 볼은 퍼렇게 물들었다.
“성주님의 총애를 받는다고 너무 자만하지마라.”
“자만한적 없습니다.”
팔 당주는 소매를 다시 걷어붙이려했지만, 남궁연화가 중간에 슥 들어왔다.
“그만들하지. 현극. 그리고 진이도.”
남궁연화가 끼어들었다. 현극이라 불린 팔 당주는 남궁연화 어깨 너머의 선우진을 계속 노려봤다. 선우진 역시 같이 노려보다가, 남궁연화와 눈이 한 번 마주치자 눈을 내리깔았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정파야. 죽이는 게 능사는 아닐세. 팔 당주.”
“죽이는 게 아니야. 정화(淨化)지.”
안에서는 예의를 갖췄던 팔 당주가 이빨을 드러냈다. 성주 앞에서 예의를 차렸을 뿐, 문이 닫힌 이상 여기서까지 예의를 차릴 이유는 없었다. 허나 남궁연화는 그 흥분에 휘말리지 않고 침착했다.
“성에 들어오기 전까지 건드리지마라. 금목환을 방해하는 건 지금 성주님을 방해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런 팔 당주도 성주라는 단어가 나오자 바로 움찔했다. 곧 팔 당주는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뭐, 그러지. 대신 본성 안에서 불쾌한 행동을 하면 난 바로 움직일 거야. 그 정도는 괜찮겠지?”
“그건 알아서 하도록. 적어도 금목환은 건드리지 말고.”
“만약 금목환이라는 놈이 내 칼에 목을 들이댄다면?”
“그럴 일은 없어.”
남궁연화는 싸늘하게 말했다. 팔 당주, 조현극은 큭큭 웃었다.
“그럼 가보겠소. 일 당주.”
팔 당주가 떠나자 몇 사람이 그를 같이 따라갔다. 남은 당주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건 남궁연화와 선우진뿐이었다.
“···팔 당주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군요.”
“넘어가도 상관없어.”
선우진이 남궁연화를 바라봤다. 남궁연화까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좀 실망이었다. 결국 중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도였다. 그러나 죽여도 상관없다니.
허나 남궁연화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선우진의 예상에서 벗어났다.
“황금세가 가주가 처절하게 응징할 테니.”
“···금목환이 말입니까?”
“그래.”
무슨 소리일까. 선우진은 갸웃했지만, 남궁연화는 미소만 지을뿐 더 말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