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그저 시험을 하러 온 거란다
151화 그저 시험을 하러 온 거란다
얼마나 침묵이 지났을까. 침묵을 깬 건 어떤 기침 소리였다.
“컥!”
그때 어떤 남자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허나 그 기침을 가볍게 넘어가는 기침이라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듣기만 해도 피가 끓는 기침이었다.
곧 다른 여자의 기침 소리도 들렸다. 같이 콜록거리는 것이, 무슨 역병이라도 도는 것 같았다. 그들은 바로 남궁홍학, 남궁홍예였다.
남궁홍학과 남궁홍예는 그때부터 동시에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바닥에 철퍼덕 누웠다.
“어, 어···”
남궁 남매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들은 바닥에 철퍼덕 눕더니, 곧 엉덩이를 바닥에서 띄웠다. 그들의 허리는 활처럼 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끊기는 신음성을 내다가 눈물을 흘렸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게 분명했다.
“···공자님?”
“아가씨!”
남궁세가 사람들이 이상함을 눈치 채고 달려들려고 할 때, 뒤에서 벼락같은 노성이 들렸다.
“비켜! 고독이다!”
화종도였다. 난 이미 그가 노성을 지르기 전에 달려들고 있었다.
“으, 아···”
엉덩이를 들었다, 철퍼덕 떨어졌다가. 마치 땅바닥으로 올라온 물고기 같이 그들은 펄떡거렸다. 입에서는 이제 비명 대신 거품만 끓어올랐다.
“침 어떤 순서로 놔야 되는지 알지?”
“네.”
화종도는 내게 침통 하나를 건네줬고, 우린 동시에 침을 놨다. 나 역시 천혜침법을 익혔고, 화종도는 원래 이게 본업이었다.
선천지기를 북돋아주는 곳에 침을 계속 놓고, 진기도인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남궁 남매는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곧 칠공에서 피를 뿜고 바닥에 스러지고 말았다. 맥을 살펴봤다. 이미 맥은 끊어져 있었다.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떠난 게 분명한 듯, 기혈이 전부 뒤틀려 있었다.
“뭐야? 뭐야!”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이 고독. 남궁선우와 연결되어 있던 모양이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자식들도 같이 죽을 수 있도록 연결된 것 같았다. 아마 남궁선우는 몸에 고독의 모체(母體)를 가지고 있었을 거고, 자식들에게는 자체(子體)를 먹였을 거다. 그것도 그들 모르게 먹였을 거다. 밥이나 물 같은 곳에. 아버지니까 그건 무엇보다 쉬웠으리라.
처참한 광경이었다. 준수했던 남궁 남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그 눈 깜짝할 사이에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무복이 절어 안이 비쳐보일 정도였다.
곧 화종도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흰 천을 남매에게 덮어줬다.
회전은 끝났다. 여기서 더 회전이 진행될 수 있을 리가 없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마교의 간자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 걸 떠나서, 고독에 두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이다.
“···이, 이게 사실인가?”
“창천검제가 마기를 썼어. 내 눈으로 봤네.”
“나도 봤네.”
“말세군, 말세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황산을 뒤덮었다. 그때였다. 남궁세가 쪽에서 몇몇 사람들이 내게로 날았다.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뒤로 젖혔다.
챙!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내게 달려든 사람들은 남궁세가의 노인들이었다. 아마 원로원 고수들일 거였다.
“무슨 짓이십니까.”
한기가 풀풀 풍기는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바로 내 앞에서 검을 막고 있는 한유림의 것이었다.
한유림 이외에도 앞에 있던 금원대 전체가 나와서 내 앞을 막아준 거다. 난 그걸 알았기에 움직이지 않아도 됐었다. 아무리 그들이 고강한 고수라고 해도, 최소 일곱 명이 한 명을 담당해 막으니 어쩔 수 없게 됐다.
남궁세가의 원로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넌 지금, 남궁세가의 가주를 죽였다.”
“마교의 간자였습니다. 남궁 남매는 고독 때문에 죽은 걸 보셨을 터입니다.”
“가주가 마교의 간자인 건 더 조사를 해봤어야 됐다. 혹시 다른 마교놈의 간악한 술수였을 수도···”
“명백했습니다. 그의 단전에서 마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남궁세가의 노인들이 부르르 떨었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눈빛을 통해서 생각이 보인다.
여기서 남궁세가의 가주가 마교의 간자라는 걸 인정하면, 남궁세가는 그야말로 끝이었다. 지금껏 쌓아온 명예가 사상누각처럼 무너진다는 것이다.
허나 엉터리뿐인 그들의 항변에 우호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보는 사람들이 남았다. 가주가 간자이니 구성원 전부가 마교라는 의심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너 때문에, 아가씨, 공자님도···”
“남궁 남매는 마교도, 남궁선우가 죽인 겁니다.”
내 말에 남궁세가 원로들이 기를 더 끌어올렸다. 금원대도 마찬가지로 끌어올리려 했지만, 내가 손으로 제지했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게 이런 말일 것이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간자라는 것이 뭇 사람들에게도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남궁세가라는 이름에 자긍심을 걸고 살아가는 이들이야 말해서 무엇 할까.
“다들 그만.”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궁세가 노인들 어깨 너머로 보니, 금월상과 싸웠던 할머니였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걸 들었을 때, 그녀의 이름은 남궁연화. 남궁세가의 원로원주인 것 같았다.
지금 남궁세가에서 가장 큰 어른이라는 얘기였다.
“금목환 가주. 나와 잠깐 얘기할 수 있나. 단 둘이서 말이야.”
남궁연화가 말했다. 그 말에 남궁세가 사람들은 기겁을 했다.
“가주를 죽인 사람입니다! 얘기할 게 무어 있단 말입니까?”
“아직 회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남궁세가 사람들은 광분했다. 아직 현실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석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렇게 난장판을 부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남궁세가 사람들은 까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회전의 의의와 여기 있는 사람들의 존재. 그리고 이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 중, 중원에서 가장 강하다는 세 명 중 한 명이 있다는 것도.
순식간에 내 목에 두 손이 드리워진 것 같은 서늘함이 느껴졌다.
“조용히 해라! 네놈들의 행동이 지금 얼마나 남궁세가에 먹칠을 하고 있는 줄 모르느냐?”
일갈을 한 건 화종도였다. 아무리 남궁세가의 원로들이라고 해도 화종도보다 배분이 높을 리 없었다.
“약선께 죄송하지만, 이건 본 세가의···”
“그만하라고 했다. 지금 내 마음이 심히 불편하구나.”
화종도는 반항을 시도한 남궁세가 원로의 노인을 노려봤다. 바로 노인의 피부색이 창백해졌다. 화종도가 기운을 흘린 것이다.
“···허억, 허억!”
화종도가 기세를 풀자 노인이 숨을 크게 헐떡거렸다. 아마 저 정도면 목에 손이 드리워진 정도가 아니라, 목을 강하게 조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터다.
삼선은 삼선이었다. 조금의 내공만 발출했음에도 이런 오싹함이라니. 내 피부에도 닭살이 돋아있었다.
“화 가가(哥哥). 저희의 실례를 용서해주세요. 전 그저 금 가주와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뿐이에요.”
조용히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 서있던 남궁연화였다. 화종도는 남궁연화를 바라봤다.
가가라. 남궁연화보다 화종도가 나이가 많은 모양이었다. 비슷한 나이대로 개인적인 친분도 있는 모양이었고.
화종도는 환갑 남짓으로 보이는 반면, 남궁연화는 팔순은 되어보였다. 무공 경지의 차이였다. 물론 남궁연화도 백 세가 넘은 나이일 텐데, 저 정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연화야. 난 지금 황금세가의 봉공이다. 여기서 대체 무슨 말이 필요하며, 굳이 둘이서 할 이유가 무엇이냐?”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다만 전 부탁드리는 거예요.”
남궁연화는 당당했다. 화종도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굳이 화종도가 곤란할 필요는 없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원로원주, 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래. 금목환 가주.”
내 말에 오히려 호들갑을 떤 건 주변에 있는 금원대 아이들이었다. 특히 한유림과 팽차월은 소리를 높였다.
“마교의 흉수(兇手)가 있었던 곳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가겠습니까?”
“괜찮아.”
나는 팽차월과 한유림을 바라봤다. 날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은 늘 그랬다. 내가 그들보다 강한 걸 알고 있음에도, 내가 혼자 어디로 간다고 하면 걱정을 했다. 그건 단순히 강약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난 남궁연화와 둘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나도 그녀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어째서 금월상과 비무를 할 때 시간을 벌었는지.
···그리고 이 미지의 내공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 것인지.
*
남궁연화는 조용히 황산의 봉우리에서 벗어났다. 나는 그 뒤를 따라서 산등성이를 내려갔다. 봉우리 위에서 있었던 일들이 마치 거짓말이라는 듯 산바람은 상쾌했다.
얼마간 내려가니, 물줄기가 굽이치는 소리가 났다. 물은 빠른 유속으로 어디론가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물은 너무나 깨끗해서 땅바닥에 기어 다니는 가재까지 보일 정도였다.
남궁연화가 도착한 곳은 그 물가 근처에 있는 산장이었다. 나는 산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깨달았다. 여기는 진법이었고, 남궁연화의 발걸음을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곳이라는 걸 말이다.
난 무사히 산장 앞으로 도착했다. 산장은 옛스러운 느낌이 났지만 그다지 낡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지금도 자주 사용하는 곳 같았다.
“눈치가 빠른 아이로구나. 아니, 눈치가 빠르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너를 좁게 표현하는 거겠지. 여러모로 대단한 아이다. 너는.”
“오늘 처음 보셨는데도 그런 평가가 가능하군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근데 너는 적어도 나한테 백 개는 보여준 것 같구나. 그것도 다 꺼낸 것도 아닐 테지?”
남궁연화는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서 서서히 내밀었다. 그곳으로 회색 내공이 남궁연화의 팔을 휘감으며 연기처럼 올라왔다.
나도 손을 똑같이 펼쳐서 연기를 피어올렸다.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연화만큼 자연스럽게 되지는 않았다. 남궁연화의 눈이 크게 떠졌다.
“또 하나를 보여줬구나. 벌써 태원(泰元)의 기를 그만큼 다룰 수 있다니 말이야.”
“이걸 태원의 기라고 하나 보죠?”
“그래.”
남궁연화는 기를 거두어들였다. 신기한 건 엄청난 거력이었는데도 거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화종도가 방금 내공을 발출했을 때, 거력이면 숨이 막혀야 정상이다. 그러나 태원의 기에는 그러한 압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넌 이걸 알고 싶을 거야. 그래서 날 찾아온 거고. 그렇지?”
“그것보다 먼저 알고 싶은 게 있죠.”
“그래? 난 네가 무인이니까 이 힘에 제일 관심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남궁연화가 말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연고 없이 찾아온 이상한 힘이다. 계속 운기조식을 하다보면 나는 해석할 수 있을 터였다. 굳이 남궁연화한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궁금한 건 다름 아니었다.
“남궁선우가 마교도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난 물었다. 지금 내가 제일 궁금한 건 그것이었다. 아니, 궁금하지 않다. 확신에 가깝다. 이 내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남궁선우가 마교도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알고 있었지. 조카가 내 오라버니를 죽였다는 것도 말이야.”
그런 일이 있었나. 여하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교도라는 걸 알고도 묵인하고 있었다니 말이다.
“당신은 마교도인가요?”
내가 물었다. 남궁연화는 은은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네가 알고 있을 거라.”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 남궁연화는 마인이 아니었다. 마기가 느껴지지 않다. 그 비슷한 이상한 기운만 있을 뿐.
“그러면 왜 알리지 않으셨나요.”
“글쎄.”
남궁연화는 중요한 부분에서 말을 흐렸다. 마치 날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그때, 남궁연화가 쐑, 하는 소리와 함께 발검했다. 나도 반사적으로 검을 꺼내들었다.
“남궁세가의 명예가 무너지는 게 두려워서···라고 하면 어쩔 테냐?”
“그럼 여기는 은원을 푸는 장소인가요?”
“근거는 충분하지.”
나는 미간을 좁혔다. 이러면 좀 실망스러웠다. 다행히 남궁연화는 발검하지도 않고, 기세를 끌어올리지도 않았다.
남궁연화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건 너무 뻔하지. 난 그저 시험을 하러 온 거란다.”
“무슨 시험이요?”
“네가 천주성주를 뵐 수 있을지 자격을 말이야.”
남궁연화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그건 갑작스러운 말이라 나도 잠깐 반응하지 못했다. 곧 내 앞에 안개가 자욱해졌다.
“이 진법을 벗어나면, 네게 그 자격을 주마. 네가 궁금해하는 것도 답해주고.”
이제는 남궁연화의 목소리가 다른 산의 봉우리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작다.
나는 익숙한 느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웃었다. 폼을 잡은 것치고는 힘빠지는 시험 내용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난 발 한 걸음을 조심히 움직여, 그곳에 진각을 밟았다. 정확히 그 곳이 아니면 안 됐고, 정확히 힘을 조절해야 했다.
쿵ㅡ!
그 소리와 함께 진법의 하늘에 구멍이 났다. 점점 진법이 만들었던 안개가 땅으로 가라앉고 깨끗한 구름이 찬다. 남궁연화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난 이미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