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안휘대회전(安徽大會戰) (2)
146화 안휘대회전(安徽大會戰) (2)
황금세가는 미뤄질 수 있다는 서신을 보낸 것과 달리, 당일 도착했다. 물론 커다란 결함이 있었지만 말이다.
“···약선님. 금 가주는 어디 갔습니까?”
“아직 세가에 있네.”
종리운의 물음에 화종도는 뻔뻔하게 대답했다. 참관인으로 온 사람들을 포함하여 회전에 동원된 사람들은 황금세가 무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당연히 화종도는 그 시선의 중심에 있었다.
“약선님이 황금세가의 봉공이라고?”
“삼선을 봉공으로 모셨단 말인가? 그게 말이 되는가.”
“저 분이야 돈도 명예도 필요 없는 어르신이 아닌가.”
사람들은 각자 화종도가 황금세가의 봉공이 된 이유를 추리하기 시작했지만, 가장 쉬운 돈 때문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봉공이 된 것이 어제오늘 일 같지도 않았다. 황금세가 사람들을 거느리는 게 자연스러웠고, 따르는 사람들도 어색하지 않았다.
봉공이 된 거야 얼마 안 되지 않았지만, 황금세가에 있던 시간을 합치면 꽤 길기 때문이었다.
“그럼 언제 온답니까? 고작해야 이틀 후, 아니, 하루 반 남았군요.”
“왜 자네가 걱정하나? 걱정해도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을.”
화종도는 당당하게 말했다.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투였다.
그 말에 종리운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종리운도 당연히 황금세가를 응원하는 쪽.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당장 맞은편에서는 푸른 깃발에 창천남궁(蒼天南宮)이라는 글자가 웅장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황산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 남궁세가와 황금세가의 진영. 그 중에서 남궁세가의 진영은 엄숙했고 황금세가의 진영은 부산했다.
그건 화종도의 영향도 있지만, 구성원들의 차이였다.
“근데 저희 세가에 들어오신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싸움에 나오셔도 되는 겁니까?”
“대공자는 도룡이라는 별호를 얻고도 강호를 모르는군. 중원에서 칼날 끝에 목숨 걸고 살아야 그나마 살 수 있다고. 도망치면 오히려 죽어.”
“그리고 가끔 죽을 위기도 넘겨봐야, 아, 이제 술 먹지 말고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둘러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안 그러면 무뎌져서 매일 술만 들입다 먹을 걸.”
금월상의 물음에 무인들이 껄껄거리며 대답했다. 그들은 황금세가의 무인 모집 때 들어온 낭인들이었다. 단순히 모집을 해서 뽑았다기에는 꽤 이름을 날린 이들이 많았다.
흑저부터 해서, 사백괴(砂白怪), 석경(石莖). 중원에서 별호를 얻기란 쉬운 게 아니다. 심지어 낭인인데도 별호가 붙은 거면, 그 실력만큼은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낭인들. 화종도라는 인물이 너무 거대해서 가려져 있었지만, 자세히 면면을 살펴보면 황금세가의 인원도 화려해졌다. 남궁세가의 승리를 확신하던 사람들도 갸웃해질 만큼 말이다.
“그나저나 회전은 처음 해보는 걸! 살다 살다 내가 세가 딱지 달고 칼춤을 추네.”
“인생사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지.”
낭인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좌장인 화종도는 딱히 건드리지 않았다. 황금세가와 남궁세가의 분위기는 그렇게나 극과 극이었다.
“아무튼 금 가주는 오는 걸로 알겠습니다. 가주가 회전에 불참하면 온 강호의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걱정 말라니까. 무조건 와.”
화종도의 여유로운 말에 종리운은 물론, 진권, 공휴도 입을 다물었다. 어느 정도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왜, 어째서, 어디에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알 수는 없었다.
*
별 일 없이 이틀이 지났다. 아니, 별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했다. 용봉지회처럼 물밑 싸움이 벌어질 틈새도 없다.
용봉지회에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몰려들었지만, 회전이 아무리 크다고 해봐야 삼백 명 남짓 규모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남궁세가도, 황금세가도 그것은 아는 듯 잔수작은 별 부리지 않았다.
“이제 각 세가의 대표들은 중간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진권의 말에 남궁선우가 동쪽에서 나왔다. 서쪽에서 나온 건 굳은 표정의 금월상이었다. 남궁선우는 흠칫 놀랐다. 금목환이 안 온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안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궁선우의 당황한 표정에서 곧 짙은 미소로 바뀌었다.
“꼬리를 말고 도망쳤나?”
“난 지금 황금세가의 가주요. 무례를 범하지 말기 바라오.”
“허허.”
금월상의 말에 남궁선우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이제 황금세가의 직계 성격까지도 어느 정도는 익혀놨다. 아니, 익혀놨다고 생각했다.
남궁선우가 알기로 금월상은 온순한 성격이라고 되어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오늘부로 황금세가는 다시 상계로 돌아갈 거야.”
“남궁세가는 멸망할 거요. 당신 때문에.”
금월상의 말에 남궁세가 진영이 들썩였다. 그들끼리의 작은 신경전이라고 해도, 고수들이 모인 곳이다. 아무리 작게 말해도 그들에게는 귀에 대고 소리지르는 것처럼 들린다는 이야기였다.
“저런 싹퉁머리 없는 새끼를 봤나!”
“넌 나오면 내가 죽여 버릴 거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분개했지만 진권이 동쪽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남궁세가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말을 더 하지는 못했다. 대표인들끼리의 신경전은 허용됐지만, 장외에서의 소란은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내로라하는 중원의 문파들이 모두 모인 이곳. 도발에 말려들면 안 됐다.
- 너, 어떻게 나오지? 단체? 개인?
남궁선우가 조용히 전음으로 물었다. 금월상 역시 전음으로 답했다.
- 개인.
- 말이 짧군. 싸가지 없는 새끼.
남궁세가에 대한 모욕이 아니다. 금월상의 태도는 남궁선우, 개인에게도 충분히 모멸감을 주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금월상은 단 한 마디도 밀리지 않았다.
- 당신이 선배들에게 싸가지 없게 한다는 건 전 중원이 아는 이야기지.
문득 생각이 난다. 옹진수가 남궁선우에게 했던 말. 선배 대접을 안 하면 나중에 그대로 돌아온다고.
그러나 옹진수의 말은 틀렸다. 싸가지가 없어도, 앞의 사람보다 강하면 그만이다. 금월상은 자신보다 강하지 않았고, 그것이 그의 죄였다.
- 입만큼 칼날도 살아있음을 기대하지.
진권은 그들이 전음을 쓰는 것을 알고 사회를 잠깐 멈추고 있었다. 이제 끝났으니 다시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곧 진권의 엄숙한 말이 이어졌다. 회전의 결과에 승복할 것이며, 이를 후에 은원으로 삼지 않을 것을 보증하라는 말들. 그건 단순히 말뿐인 약속이 아니었다.
만약 황금세가가 회전에서 패배했다고 앙심을 품고 남궁세가를 공격하면, 모든 중원이 나서서 황금세가를 공격한다는 이야기였다.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총, 소림사 방장 진권, 검존의 자격으로 온 종리운의 수결과 함께 남궁선우와 금월상의 수결도 찍혔다.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수결이 찍힌 다음 금월상과 남궁선우는 바로 뒤쪽으로 도약했다. 진권과 종리운, 제갈가주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중앙에 공터가 만들어졌다.
“먼저, 진전(陣戰)이 있겠소.”
진권이 첫째 순서를 읊었다. 세가원들끼리의 긴장이 황산의 고고한 대기를 팽팽하게 당겼다.
곧 창궁검대 열두 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도약할 때부터 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사람들 사이의 인력과 장력이 작용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 전통의 창궁검대가 자랑하는 창궁검진 십도(蒼穹劍陣 十道) 중 일도였다.
중앙에는 남궁홍혜와 남궁홍학이 있었다. 원래는 다른 검수가 들어가야 하지만, 일부러 넣은 것 같았다. 물론 중앙은 다칠 일이 거의 없는 방위기는 하지만 굳이 넣은 건 남궁선우의 뜻이었다.
반면 황금세가는 열을 맞춰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한유림, 팽차월이 있는 금원대 열 명이었다.
“두 명이 부족한데 괜찮나?”
진권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맨 앞에 서있던 한유림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열 명 단위 진법을 가지고 있어 그 이상은 사족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진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각자 문파, 세가에 따라 훈련하는 진법이 다르다. 소림의 유명한 칠십이나한진은 칠십이 명이 펼치는 대 진법인 거다. 그것을 팔십 명으로 펼치면 오히려 진법의 힘은 크게 감소한다.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황금세가들을 바라봤다. 제갈총은 입을 가리고 종리운에게 말했다.
“무가를 선언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검진이 있는 겁니까?”
“얼마 되지는 않았소. 몇 달 됐나.”
“아무리 많은 돈으로 샀어도 창궁검진을 뛰어넘기에는 한참 역부족일 터인데.”
제갈총이 말했다. 현재 지금 여기 있는 대다수의 의견을 반영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종리운은 이들이 급조된 사람들이 아닌 걸 알았다.
금목환이 폐관하기 전에 황금세가에 갔을 때도, 금원대 아이들은 봤기 때문이다. 구음절맥과 태양절맥으로 이루어진 전무후무한 무인대.
“글쎄. 봐야 알겠지.”
“큼. 뭐, 괜히 말했군요. 검존께서는 황금세가를 응원하는 게 분명할 텐데.”
“내가 공정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형님은 잘 계십니까.”
“내 옆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인물이지.”
제갈총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헌은 오대세가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비리와 협잡질 때문에 나간 사람이었다. 신산이라 불리는 형님. 어릴 때 많이 따랐지만 이제 제갈헌은 무림맹의 군사가 됐다.
“그나저나 저 한유림이라는 친구는 참으로 이목을 끄는군요.”
“오룡삼봉이 아닌가.”
“남궁홍혜도 삼봉 중 하나지만, 저 친구의 외모에 빛을 가려져 있는군요.”
제갈총의 말대로 한유림은 모든 이에게 주목받고 있었다. 실제로 한유림의 외모는 가면 갈수록 더 피어나고 있었다. 누구보다 음기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 완숙한 여성의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었다.
제갈총 역시 흔하지 않은 미모에 감탄하다가, 남궁세가 쪽을 바라보고 살짝 찌푸렸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음심이 번들거리게 한유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한유림은 그런 것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눈빛으로 자기네들을 둘러보며 진법을 확인하고 있었다.
“준비 됐나?”
진권이 물었다. 남궁홍학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고, 한유림은 바로 자세를 갖추며 대답했다.
“네.”
“···네.”
곧 이어 남궁홍학의 대답도 들려왔다. 남궁홍혜는 그런 오빠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럼 시작하지. 건투를 비네.”
용봉지회와는 달리 어떠한 경고와 실격의 사유도 없었다.
순식간에 남궁세가에 푸른 기운이 불꽃 튀기듯 튀었다. 황산 전체를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푸른 화마(火魔)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오오.”
참관인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만큼 웅장한 광경이었다.
황금세가 쪽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끝에서부터 하얀 빛이 피어오르더니, 그 빛들이 극점 하나로 모여 삼각형으로 만든 것이다. 그곳의 끝에는 한유림이 있었다.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검진과, 모든 이의 실력을 향상시켜주는 검진. 그들의 색깔은 아예 달랐다.
“핫!”
남궁세가 쪽에서 그런 짧은 기합이 들렸다. 기합은 확실히 열두 겹이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의 기가 한유림에게 부딪치기 직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가녀리고 아름다운 소녀가 받아내기에는 너무 거대한 기세였기 때문이다.
“후.”
반면 한유림의 기합은 숨을 내뱉는 것에서 그쳤다.
한유림은 그제야 위를 올려다봤다. 중앙에 있는 남궁홍예의 눈과 마주쳤다. 남궁홍예는 순간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한유림의 봉목(鳳目)에 하얀 살기로 이루어진 안광이 넘쳐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