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안휘대회전(安徽大會戰) (1)
145화 안휘대회전(安徽大會戰) (1)
화종도는 날 계속 설득하려고 했다. 무의식이라는 건 그렇게나 강하고 신비로운 힘이라고. 모든 사람들의 가능성은 무의식에 있다고 말이다.
물론 나도 깨달음의 순간에 무의식이었던 적은 있지만, 깨달음에 다가갈 때 무의식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 내가 보기엔 그저 변명처럼 들릴 수밖에.
“···그래. 이런 방법이 너한테는 안 맞는 거지.”
그제야 화종도는 인정했다. 나도 한 번 그 무의식이라는 걸 해보려고 했다. 허나 의미가 없는 걸 뻔히 아는데 무의식 상태로 빠질 수는 없었다. 그저 무의식을 거닐고 싶은 의식만 부유할 뿐.
금월상, 한유림, 팽차월에게는 저 학습법이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모른다. 그들은 무의식이라는 암막 뒤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했다.
“됐다. 넌 알아서 하거라. 그게 더 나을 거고. 이제 네가 가지고 있는 건 천혜침법도 아니야. 천혜침법에서 영감을 얻은 무언가지.”
“그런가요?”
“그래.”
그랬나. 하긴 천혜침법도 만천조종검에 들어간 이상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천혜침법 전부를 안다는 건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제 나도 봉공이니까 세가 일에 대해서 좀 물어봐도 되지 않느냐?”
“회전 끝나면 나가실 거 아닙니까?”
“그렇지.”
난 내심 혀를 찼다. 삼선이 세가에 붙어있는 것만큼 상징적인 일도 없다. 그것도 원래 세가나 문파에 속해있지도 않은 사람이 약선이다.
물론 화종도가 내 제의를 받은 건 돈도 있지만, 우리가 뿌리 깊은 명문이 아니라서도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래도 내가 화종도를 붙잡아 놓을 수는 없었다. 알고 보니 화종도는 옛날부터 번위(反胃), 두창(痘瘡), 급살(急煞) 등 여러 가지 정복되지 못한 질병의 약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돈이 없던 것이었다.
세상에 없는 약을 만들어낸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니, 수천, 수만 번의 실험이 필요했고 그리하여 화종도는 돈이 없던 것이었다.
그걸 알았다면 은자 삼백만 냥을 달라고 했을 때 감정이 그렇게까지 요동치지도 않았을 텐데. 그 순간에는 황금세가의 모든 일원이 노력해서 쌓아온 금자탑을 한 번에 뺏으려는 파렴치한으로 보였다. 그래도 들키지는 않았으리라 자부한다.
“뭐, 그래도 지금은 봉공이시니 제가 거부하기는 힘들죠.”
“어른을 아주 들었다놨다 하는구나.”
화종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남궁세가에서 회첩(會帖)을 돌렸다는 걸 들었다.”
역시 그게 궁금한 것이었다. 사실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다. 화종도도 이 회전에 참가하는 인물 중 하나였으니. 회첩 내용은 아직은 내 형제들과 곽진도만 알고 있었다. 그래도 굳이 감출 이유는 없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한 달 뒤입니다.”
“빠르게도 잡았군.”
보기엔 늦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회전은 절차가 필요하다. 중간에 감독할 중립적인 세력도 구해야 하고, 장소도 정해야 하고, 규칙도 정하고, 몇 명이 나가는지 정해야 하고 등등 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남궁세가가 한 달 뒤로 회전을 잡았다는 건 굉장히 분노했다는 방증이었다.
“남궁세가와 황금세가 정도면 대회전(大會戰)으로 취급되겠군. 애초에 남궁세가가 회전을 한 적이 없을 텐데.”
“그렇겠죠. 오대세가의 수위인데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너가 건드리고 있잖냐.”
“그렇죠.”
나도 회전에 대해서 많이 알아봤다. 대회전은 다른 회전과 달리, 여러 부분이 많았다. 단체, 개인, 최고수전, 사실상 전력으로 부딪치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회전을 준비하는 건 전적으로 가주인 네 몫이다.”
“네.”
“그리고 무의식에 대해서는 생각 좀 바꿔보고. 분명 너한테 도움이 될 거다.”
“···네.”
화종도는 그렇게 나갔다. 발을 살짝 들어 본원의 안뜰을 봤더니, 어느새 화종도가 나와있었고 다른 세 사람은 여전히 칼을 내리치는 중이었다.
그들 셋은 엄청난 집중을 하고 있었다. 눈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머리를 쓰는 게 보였다.
난 무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었다. 불이 난 집에서 자신의 아기를 구하려고 기둥을 미는 힘을 발휘한 어머니,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착각. 모두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걸 의식적으로 끌어낼 수는 있다. 전형적으로 진법이 그렇지 않은가. 그건 오행을 바꿔 감각을 교란하는 눈속임이다. 진법은 기관이 아니다. 진법만으로는 죽일 수 없다.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서 세상에 실제하는 걸 불러낼 수 있다라. 그건 거의 신의 영역이 아닌가. 아니, 엄밀히 말하면 신의 영역이 아닌 환각과 환시였다.
‘아.’
난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마교가 쓰는 술법이 그러했다.
처음에 장소열이 이상한 환각을 보여줬을 때를 생각해보면 명백했다. 그건 진법과는 전혀 달랐고, 또한 금월상과 곽진도, 나를 섬 각기로 흩어지게끔 했다.
그게 만약 진법이라면 주산을 전부 감싸고 있었어야 하는데, 그런게 있었다면 나와 곽진도가 못 알아챘을리 없었다.
진법은 감각의 교란, 마교의 술법은 정신의 교란이었다.
“···음.”
만약 그것이 무의식을 자극해서 이뤄낸 결과라면 어떤가. 내가 그 환각에 걸렸을 때 의식이 없었던 건 아니므로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한 상태였다는 얘기이다.
나는 이번 음양쌍려와 싸우면서 마교의 고수들이 진기를 어떻게 돌리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기를 살살 돌려봤다. 난 기감에 대해는 예민하다. 주화입마가 올 것 같으면 바로 기를 후퇴시키면 됐다.
그리고 나는 내 기가 끝까지 다가간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했다.
‘···마기?’
깊게 대주천을 하고 있기에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지만, 그건 마기의 형질과 비슷해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건 마기가 아니었다. 마기와 비슷할 뿐.
가만히, 그저 가만히 있던 그 기덩어리는 갑자기 내 기가 있는 곳으로 머리를 홱 돌렸다. 기에 머리라는 건 없지만, 그렇게 느꼈다.
순간 그리고 그 기운이 내 기운에게 달려왔다.
쾅!
난 번쩍 눈을 떴다. 바깥을 바라보니 이미 삼경이었다. 몸에 담을 수 없는 커다란 기운이 맴돌았다. 난 곧장 연공부로 달려갔다.
- 심득(心得)이 있어 한 달 동안 폐관하고 오겠습니다.
급하게 써낸 서한을 한 통 남긴 채로.
*
황금세가와 남궁세가. 남궁세가와 황금세가. 떠오르는 신진과 전통있는 강자의 대결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황산(黃山). 남궁세가와 황금세가가 회전을 벌일 장소였다. 황금세가는 남창에 있고, 남궁세가는 합비에 있으니 그 중앙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흠. 무슨 생각인지 도통 모르겠어.”
“원래 생각을 알기 힘든 아이지.”
진권과 종리운은 마주 앉아있었다. 세간 사람들이 알면 신기한 만남일 것이 분명했다. 구파일방, 오대세가와 무림맹은 견원지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없으니.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무림맹 사람이든, 구파일방 사람이든 개인적인 인연은 있는 법. 비슷한 기간 강호를 유랑한 진권과 종리운은 겉으로는 서로 비판을 했지만, 안으로는 꽤 내외를 하는 사이였다.
“자네는 그래도 지학도 되기 전에 안 아이가 아닌가. 좀 뭐라도 말해보게.”
“나도 정말 모르네. 심계가 깊은 아이라서 속내를 잘 밝히지 않지. 아니, 생각해보니까 속내를 아예 밝힌 적이 없는 걸.”
평소였다면 종리운이 내뱉는 말을 전부 의심하는 진권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맞는 것 같았다. 실제로 진권이 본 금목환이 속내를 드러낸다는 게 예상이 가지 않았다.
“그 친구에 대해서 정말 말해줄 건 없어. 다만, 장차 중원을 책임질 수 있는 인재인 건 분명하지.”
“알지 않나. 우리는 그런 사람이 필요 없어. 지금 세상은 호걸을 원하는 시대가 아니야.”
“지금 당장 마교가 계속 모습을 보이는데도 말인가?”
“우리끼리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야. 그러니 내 제안도 다시 한 번 생각해줬으면 좋겠군.”
진권의 말에 종리운은 얼굴을 확 찌푸렸다. 그 제안이라는 건 무림맹이 황금세가의 지원을 받아서 모습을 갖춰갈 때부터 꾸준하게 받아왔던 것이었다.
무림맹을 맹(盟)의 형태가 아닌 문파의 형태로 바꿔서 적대하자는 것이다.
“애초에 자네들이 필요해서 만든 집단인데, 이제 와서 다시 없애겠다니. 좀 궁색하지 않은가.”
“그 역할을 하지 않고 반목만 하니까 문제지.”
진권이 말했다. 실제로 무림맹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감시하고 벌하는 집단이었다. 물론 무림맹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너무 일을 잘해서 변질된 건 진권도 인정했다. 허나 그건 다수결에 의해서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우리는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그래. 괜한 말을 꺼냈군.”
진권이 말을 돌렸다. 종리운도 눈을 감고 차를 마셨다.
“그래서 이번 심판은 나와 자네, 제갈 가주인가.”
종리운은 진권의 말을 받아들여 주제를 바꿨다. 이제 황산의 회전이 이주야도 채 남지 않은 거다. 원래 이정도 시간이 남으면 모든 게 준비되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 심판인 제갈 가주도 아직 못 온 상태였다.
그만큼 급하게 결정된 회전이었다. 황산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지금 황산 주변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무림맹의 무인들이 둘러싸 입산을 아예 통제하고 있을 터였다. 혹시나 빗나간 경파(勁波)가 사람을 덮칠 수 있기에 통제하는 것이다.
그만큼 회전은 용봉지회와 색깔이 달랐다. 용봉지회가 흥겨운 축제라면, 회전은 비장한 대결이다. 당연히 공개되지도 않고, 관중도 없다. 허락된 참관인 몇몇이 있을 뿐.
사실상 비무의 절차를 따르고 있을 뿐 생사결이다. 대개 한 사람이 죽어야 끝나며, 최소 팔다리가 잘린 상태에서야 심판은 시합을 종료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황산의 분위기가 엄숙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늘 황금세가와 남궁세가가 오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 둘 중 하나는 성치 않게 돌아가리라. 어쩌면 둘 다.
“젠장. 그냥 말로 좀 풀지. 굳이 회전까지···”
“남궁세가가 마교라잖나.”
“아무리 그래도 남궁세가의 지휘부가 간자겠는가. 이렇게까지 하면 정파끼리 제 살 깎아먹기지.”
진권이 말했다. 종리운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긴 누가 남궁세가의 가주가 마교의 간자라고 상상이나 할 것인가.
그때 바깥에서 누가 문을 두드렸다. 그 사람은 별말도 없이 바로 들어왔다. 공휴였다.
“남궁세가는 지금 출발했답니다.”
“그래. 두 시진 정도 걸리겠군.”
“네.”
“그리고 약선께서 황금세가의 도착이 좀 늦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약선님이 아직도 황금세가에 계시던가?”
진권이 물었다. 종리운도 그건 몰랐다. 왜냐하면 금목환이 화종도가 계속 세가에 있는 건 엄중하게 비밀로 해놓았기 때문이다.
“원래 황금 가주가 사람을 좀 끌고 다니는 매력이 있지.”
“그런가. 딱히 정은 없어보이던데.”
“뭔가 있네. 그 뭔가가 뭔지는 나도 설명할 수 없어.”
“참나.”
공휴는 바로 품에서 서한을 꺼내어 진권에게 건넸다. 서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 가주가 폐관에서 나오지 않아 도착이 미뤄질 수 있음. 황금세가 봉공(奉公) 화종도.
“···봉공?”
“···폐관?”
종리운과 진권이 동시에 멍청한 목소리를 냈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심상치 않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