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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43화 (144/225)

143화 용병 쓰면 되죠

143화 용병 쓰면 되죠

중원은 오랜만에 커다란 변혁을 맞고 있었다. 구파일방에 준하는 명문, 형산파가 패배를 선언한 것이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중원과 하등 관계없는 상계, 황금세가에게 말이다.

황금세가가 오룡삼봉을 배출하면서 중원에서 갑작스레 떠오른 신흥 문파인 건 맞았지만, 그렇다고 형산파를 압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예외를 두자면 황금세가의 저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더 놀라운 건 어떻게 싸웠는지 황금세가의 사상자가 아예 없었다는 거다.

남창에 있던 사람들은 무인들의 싸움이 벌어진다는 소문을 듣고 다들 집안에 숨어있었는데, 막상 오는 사람 하나 없었던 거다.

“그러니까 왜 이긴지도 모르겠다니까?”

“그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겼다는 거군.”

“형산파를 그렇게 잡았으면 오대세가가 마냥 헛말은 아니었네.”

모든 객잔이나 음식점을 둘러봐도 형산파와 황금세가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내가 태화에서 남창으로 오면서 다 확인했다. 이 정도면 중원에서도 엄청나게 떠들고 있다는 거겠다.

그러나 만약 황금세가가 형산파를 이겼다는 것만으로는 이런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으리라.

“그나저나 남궁세가가 마교라는 건 무슨 말인가?”

“형산파가 남궁세가의 함정에 걸려서 황금세가와 싸우게 됐다고 하더군.”

그건 당연히, 전 중원에 형산파의 고발 격문이 붙었기 때문이다.

형산파 정도의 이름을 가진 문파가,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남궁세가를 마교로 찍었다는 건 보통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연히 전 중원은 뒤집혔다. 약선과 천류유성검, 해남파 장문인이 시체를 거둬 소림사에게 보냈고, 소림사의 진권은 그 시체들이 마교도임을 확인해줬다. 심지어 그 시체들 사이에는 악독하기로 이름이 높았던 음양쌍려도 있었다.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됐다.

그러나 나는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아.”

등에 격통이 밀려왔다. 금수린이 손으로 내 등짝을 쳐버린 거다.

“아프네요.”

“당연하지! 아프라고 때린 건데!”

주변에는 금수린을 포함한 내 형제들, 곽진도와 화종도, 적유엽도 있었지만 아무도 금수린을 말리지 않았다. 금수린의 매운 손이 계속 내 등짝을 때렸다.

“넌 더 맞아야 돼!”

금수린이 악을 쓰며 달려오자 금월상과 금화청이 금수린의 두 팔을 당겨 제지했다. 금수린의 두 다리가 붕붕 떠서 공중을 걸었다.

난 돌아오면서 애초에 이럴 줄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지 않는다. 형제들이 내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금화청도, 금수린도, 금월상도 준비해놓은 것들이 있었는데 나 때문에 못 보여준 거다. 또 다시, 내게 의지하게 된 것이다.

“맞다. 목환아. 넌 가주다. 몸을 더 아껴야지.”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적유엽과 곽진도는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말릴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넌 가주이기 이전에, 우리 막내야. 네가 우리보다 대단한 건 알지만, 네가 위험에 뛰어들 때마다 난 덜컹한다고···”

금수린은 급기야 울먹이기 시작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금수린한테로 가서 달래줬다. 물론 화종도는 금수린한테 가지 않고 내 옆에 남아있었다.

“그래도 네가 직접 봤어야 했다. 목환이는 쉽게 죽을 애가 아니야. 그렇게 멍청한 아이는 아니야. 또 퍽 멋있는 무공이었다.”

집안에서만 이렇지, 중원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대단하다고 칭하고 내 수준이 정확히 어떤지 전부 궁금해 했다.

내가 형산파를 일기(一己)로 맞섰다는 게 강서나 호남 주변에서는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형산파의 생존자에서부터 나온 말인 것 같았다.

아무튼 화종도의 방어 때문에 난 살짝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눈이 붉어져 있는 금수린을 포함한 가족들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듯했다.

그들에게 지금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렇게나 걱정 받는 느낌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내가 원하던 상황의 환기였다. 난 즉각 답했다.

“누구?”

“접니다.”

목소리는 기철이었다. 난 바로 들어오라고 했다. 기철이는 방문을 조심히 열었다. 금수린이 울고 있고, 금월상과 금화청이 달래고 있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기철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 무슨 일이야?”

“남궁세가가 격문을 붙였습니다.”

기철은 뜯어낸 흔적이 명확한 방을 내게 건넸다. 금수린도 훌쩍이는 걸 멈췄고, 다른 사람들도 방문 주변으로 슬슬 몰려들었다.

난 방문의 내용을 보자마자 픽 웃었다.

- 더 이상 남궁세가의 명예를 모욕하는 사람들은 본가와 회전(會戰)을 하게 될 것이다. 창궁검제 남궁선우.

회전(會戰). 만약 문파와 세가끼리 싸운다면 서로의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전은 모두의 참관을 허용한 채로 펼치는 비무를 펼친다. 물론 그 비무 만큼은 살상이 허용된다. 중요한 건 규칙적인 절차가 존재하는 싸움. 격식이 있는 싸움이라는 얘기였다.

보통 중소 문파들끼리 싸우면 회전을 한다고 해도 아무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냥 개싸움을 벌이지만 명가들끼리 은원을 풀 때는 회전을 하고는 했다.

뿌리 깊은 명문이라는 것을 여기서도 드러내고 있었다. 마교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다. 단순한 협박이다. 저렇게 남궁세가가 협박하는 데 입을 열 곳이 마땅치 않으리라.

또한 회전은 격식 있는 비무로 진행되기 때문에, 머릿수보다는 몇몇 초고수들이 중요한 싸움이다. 당연하지만 남궁세가의 정예는 우리보다 많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할 거냐? 굳이 우리가 저 도발에 엮일 필요는 없다.”

곽진도가 초조하게 물었다.

“남궁세가가 전부 마교의 소굴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강자들이 많다는 건 분명하다. 나보다 강한 무인도 꽤 있을 거다. 가주가 전부가 아니야. 그 전대 사람들도 아직 살아있어. 남궁세가가 괜히 오대세가가 아니란다.”

곽진도의 말에 다른 가족들도 지레 겁을 먹고 표정이 굳었지만, 난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글쎄. 난 왜 걱정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들은 절벽에 매달려있으니 이렇게 발악하는 거였다. 저 도발에 안 말려줄 이유가 없다. 또 남궁세가가 다른 중소문파도 아니고, 오대세가인 이상 회전은 적절한 방식이었다.

“괜찮을 것 같은데요.”

“괜찮다고? 아니 전력을 따져보···”

“용병(傭兵) 쓰면 되죠.”

난 웃으며 화종도를 바라봤다. 말이 끊긴 곽진도도, 화종도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

길쭉하니 네모난 모양의 제단. 그 검은색 제단 좌우에는 촛불이 작게 켜져 있다. 제단과 촛불 뒤에는 발이 쳐져 있는데, 구슬로 엮인 중원의 발과 달리 천으로 된 발이었다.

“쌍려가 죽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제단에서 세 개의 계단 밑에는 의자가 있었는데, 그 의자에는 남자가 오만한 자세로 있었다. 그 앞에는 덜덜 떨며 부복한 사람이 있었다.

“누가 죽였다고?”

“황금세가의 가주, 금목환입니다.”

“금목환. 또 그 이름을 듣게 되는군. 저번에 신교 사람들의 명단을 밝힌 것도 그였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에는 악의가 없어 유쾌하게만 들렸으나, 부복한 사람의 떨림은 심해지기만 했다.

“내가 아는 중원인이 하나 늘어나버렸어.”

“죄송합니다! 천마님이 신경 쓰실 일을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남자는 바로 부복을 한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약한 촛불에 비친 붉은 피가 반짝거렸다.

천마라 불린 남자는 앞의 남자가 재롱을 부리는 동물이라도 되듯 재미있게 바라봤다.

“그 아이가 유현이랑 나이가 비슷하다지?”

“네, 맞습니다.”

“그러면 유현이보고 중원에 좀 나가보라고 해라.”

부복한 남자는 몸을 움찔했다. 천유현. 천마의 아들이자 다음 천마 자리를 계승할 유일한 소천마였다.

“···지, 진실로 말씀이십니까?”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들었지만, 그가 마주친 건 천마의 무기질적인 눈이었다. 남자는 순간 본인이 거대한 늪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고개를 숙이자 그 느낌은 사라졌다.

천마는 그런 남자가 계속 재밌는지 웃음을 얼굴에서 떠나보내지 않았다.

“가거라. 난 죄를 묻는 자가 아니니.”

“가, 감사합니다!”

남자는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고, 뒷걸음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것마저도 천마 천하진에게는 재미있었다.

“그것 참, 재미있는 친구로군.”

남자가 문을 닫으면서, 그 바람에 미약하게 흩날리던 촛불 하나가 훅 꺼지고 말았다. 천하진은 심지에 대고 주먹을 그러쥐었다. 주먹이 펼쳤을 때는 다시 초에 불이 붙어 있었다.

*

“나보고 봉공(奉公)을 맡아달라고?”

“네.”

화종도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렇게 되어야 됐다. 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금목환을 봐라. 냉정해 보였던 저 눈도 이제야 귀엽게 보였다. 하긴 삼선을 앞에 두고 탐나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화종도는 껄껄 웃었다. 이 발칙한 녀석큼은 삼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봉공을 맡아달라는 어린 수작이었던 거다.

“맨입으로 맡아달라는 건 아닙니다.”

“네가 내게 줄 게 뭐가 있겠느냐?”

이 질문에 대답한 강호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감히 누가 약선에게 무언가를 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지존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금목환의 답은 간단했다.

“돈 드릴게요.”

“···하.”

화종도는 허가 찔렸다. 돈으로 사람을 사는 건 제일 하급의 방법이다. 그건 사람에 따라서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기에, 약선에게 감히 그런 제안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금목환의 돈 제안은 조금 달랐다.

“천혜침법을 파셨던 걸 보면, 꽤 돈이 부족하시지 않습니까.”

금목환의 말은 화종도의 뼈를 강하게 때렸다. 의외지만, 정말 화종도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선은 명예의 극에 있는 사람들. 누구도 그에게 돈을 제시하지 않고, 화종도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약선은 계속 신약과 독을 연구해야 했고, 그 재료들은 많이 비쌌다. 천혜침법을 판 것도 그 배경이었던 거다.

“···어이가 없구나. 나를 돈으로 사려 해?”

“서로가 필요한 걸 거래하는 것뿐입니다. 돈이 무슨 상관이죠.”

정말 이 금목환이란 놈은 삼선의 대우를 아예 안 해줄 작정인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사람에게 숙이거나 존경의 표시를 보는 걸 본 적은 없으니 간악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사람이 이런 건가.

금목환은 가만히 화종도를 바라봤다. 화종도는 그 눈빛에 마음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본인도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에 인정을 받는 것에 집착하는 게 말이다. 그러나 화종도도 처음에 그렇지는 않았다. 인정을 너무 많이 받다보니 변해버린 거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한 법. 명예와 인정으로만 살 수는 없었다.

“···얼마를 줄 테냐?”

“원하시는 대로요.”

화종도는 그 말에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황금세가의 재산 전부를 가져가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막, 삼백만 냥! 이러면 어떻게 하려고?”

나름 농담이었지만, 금목환은 야속하게도 웃어주지 않았다. 정말 이 밉살스러운 녀석 같으니라고. 허나 금목환에게는 다른 사정이 있었다.

“삼선을 봉공으로 모시려면 그 정도 돈은 필요한 건가요. 없는 건 아니지만···”

“···뭐?”

황금세가가 그렇게나 돈이 많단 말인가. 삼백만 냥이라는 건, 막 뱉은 말이지만 화종도의 마음 안에서 가장 큰 부였다. 근데 그것보다 더 가지고 있다니.

그것만으로 화종도는 경악을 했지만, 반면 금목환도 꽤 큰 돈 때문에 당황한 것 같았다. 화종도가 진짜 그렇게 부른 줄 착각한 것 같았다.

“···제 예상으로는, 약선께서 명예가 있으시기에 어느 정도 적절한 가격을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요.”

금목환은 화종도를 바라봤다. 요즘 들어, 금목환은 어느 정도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뿜어내는 감정은 옅은 분노였다. 그만큼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나. 화종도는 그걸 확인하고 대소(大笑)했다. 금목환은 갑작스런 큰 웃음에 당황했다.

화종도의 생각과 달리, 이미 금목환은 화종도의 명예를 인정하고 있었던 거다. 그걸 단지 뱉지 않고, 표현을 하기 힘든 애인 거다. 그걸 알았으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 봉공을 맡아보지. 궁금하구나. 삼백만 냥까지는 필요 없다.”

화종도의 말에 금목환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미미한 변화였지만, 그건 극적인 변화였다. 분노에서 기쁨으로 바뀐 거다. 중간에 의심은 없었다. 세상사에 통달한 것만 같은 금목환은 그런 순수한 면이 있었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봉공의 값어치는 받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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