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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36화 (137/225)

136화 때가 됐구나

136화 때가 됐구나

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본원에 있었다. 이 정도면 감금 수준이 아닌가 싶다.

정말 금화청과 명재희는 나를 아예 배제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작은 쪽지. 일 각 전에 중명각의 매로 전해진 것으로, 개회사 때 내가 할 말들이 적혀있었다.

“열심히도 썼네.”

옅게 흐르는 듯 하면서도 방점은 확실한 글씨체. 명재희의 글씨체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으니 안 읽을 수도 없다.

“슬슬 나가도 되겠지.”

“아뇨. 반 각만···”

난 일어나려 했지만 한유림의 저지에 다시 앉고 말았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이겠다. 그런데도 바깥의 소리는 이제 내 귀에 대고 지르는 듯 크다.

“올 사람들은 이제 다 온 거 아니야?”

“뜸을 들이는 거죠.”

“그렇구나.”

됐다. 내 사람들이 준비한 것에 대해서 따르는 것도 가주의 할 일이었다.

그리고 금화청과 명재희의 배려가 헛된 일도 아니었다. 확실히 나 혼자 있는 시간은 유익했다.

내가 처음 기철이의 뺨을 때린 이후부터, 이청명의 뒤를 잡았을 때, 형산파에게 환격을 먹인 때, 무림맹과 동맹을 할 때, 해남파를 갈 때, 폐관수련을 할 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모두 복기했다.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같은 일도 있었고, 내가 잊었던 일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유림이 내게 말했다.

“이제 나가시죠.”

“때가 됐구나.”

난 일어났다. 목에서 가슴 위쪽까지 무언가가 구른다. 신옥주에서 나오는 따뜻한 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내가 본원을 나가니, 많은 사람들이 반원형으로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한유림은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섞였다.

맨 앞에는 숭화당주인 기철이 있었고, 한유림이 들어간 곳은 일흔 두명이 있는 금원대 무리. 금원대를 겉으로 감싼 건 숭화당의 시종들이었다.

얼핏 봐도 백 명은 한참 넘고, 이백 명에 가까운 무리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옛날 같았으면 집요하게 생각했겠지만, 이들이 내게 해를 끼치는 방법을 구상하지는 않았으리라. 연회에 관련한 생각을 일부러 차단하자 여유가 생긴 머릿속에 싱그러운 바람 한 줄기가 깃드는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걸었다. 기철은 허리를 숙이며 자리를 비켜주었고, 빽빽한 수풀 같았던 금원대, 숭화당의 사람들이 내가 가는 걸음마다 좌우로 갈라졌다.

기철이가 바로 뒤로 돌아갔다. 그곳이 개회를 알리는 대전 방향이었다. 다들 자리가 정해진 모양이었다.

나 뒤에는 기철이, 금원대, 숭화당 순인 듯했다.

내가 반대편으로 감으로써 거꾸로 방향을 서게 된 금원대와 숭화당 사람들도 순식간에 자리들을 바꿨다.

“가지.”

“네.”

내가 왼발을 딛으면, 이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왼발을 딛고, 내가 오른발을 딛으면 이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오른발을 딛는다. 많은 사람들이 떼 지어 움직임에도 일어나는 황진(黃塵) 하나 없다.

점점 저기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황금세가 연회에 참석한 외부인들이었다.

“우와아···”

저 멀리서 사람들이 숨죽여 내는 탄성들이 모여 내게 들릴 만큼 커졌다. 이백 명을 뒤에 거느리며 오는 내 모습에, 연회장은 서서히 조용해졌다. 내가 보이지도 않는 뒤의 사람들은 나를 보지도 못했음에도 앞사람들의 침묵에 눌린 것이었다.

연단 위에는 금화청이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고, 금월상과 금수린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금화청은 내게 골백번은 경어를 써본 듯 자연스럽게 호칭을 발음했다.

“잠시만 정숙해주시지요. 황금세가의 가주님이 올라오십니다.”

그 말에 어수선한 침묵에서 정숙한 침묵으로 바뀌었다. 둘은 미묘하지만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연단과 연단의 뒤편에는 휑하리만큼 빈 공간이 컸는데,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를 따라온 사람들을 위한 공간일 터다.

내가 연단으로 올라가자, 팽차월과 한유림을 제외한 금원대, 숭화당은 연단 뒤에서 섰다.

내 아래를 보니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용봉지회 본선과 비견될 수였다. 다른 점은 용봉지회 때는 내가 내려다보였다면, 이번에는 내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난 태을헌원진기를 얕게 끌어올렸다. 육합전성을 위한 준비였다.

“먼저, 우리를 여기 모이게끔 하시고 정파를 수호해주시는 전대의 고인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내방(來訪)해주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전 황금세가 가주 금목환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눈이 내 입만을 바라보고 있다. 난 숨을 쉬면서 명재희가 써준 서한을 기억해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입 하나 뻥끗하지 않았다.

*

청진은 이 와중에도 트집 잡을 거리를 샅샅이 보고 있었다. 본인도 본인의 위치를 알고 있다. 제일 먼저 소비되는 파수병이다.

물론 지금은 분위기에 눌려 옴짝달싹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금목환은 지금껏 본인이 겪은 일들을 말하고 있었다. 목소리의 어조, 호흡이 전부 일정하여 누가 써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집중해서 듣는 듯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황금세가는 상가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세가입니다. 중원의 한 일부로서 정파의 뿌리, 의협을 지키는 소명을 외면치 않을 것입니다. 여기 많은 분들과 저희를 지켜보고 계시는 선대 고인들이 공증을 서주실 거라 믿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금목환의 말에 꽤 많은 사람들이 감명 받은 것으로 보였다. 어이가 없었다. 이들이 정파의 소명을 운운할 정도라는 말인가. 청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곧 연사가 끝나고 많은 이들이 축사를 했다. 황금세가가 단순한 상가가 아닌, 중원의 세가로서 거듭나는 것을 축하하는 말들이었다.

연사(演士)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먼저 남해삼객 중 한 명이자 황금세가의 수석장로라고 하는 곽진도. 무림맹주이자 검존이라 불리는 종리운. 해남파의 장문인 적유엽. 하북팽가의 태상가주이자 도존이라 불리는 팽의석. 마지막 용의 눈에 점을 찍은 건 약선 화종도의 연사였다.

“···그저 무림맹의 돈줄인 줄 알았더니, 오히려 무림맹보다 더 거대하지 않은가.”

“돈으로 구할 수도 없는 분들을 연사로 내세웠으니, 이제 황금세가는 못 건드리겠는걸.”

“형산파가 밀릴 건 자명해 보이는군.”

황금세가가 격문을 날리고, 용봉지회에서 커다란 성과를 얻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허나 이렇게나 대단한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었다.

청진은 이제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사사건건 트집 잡을 거리들을 봤다. 당연히 그렇게 색안경을 끼는 건 개인적인 은원일 터였다. 아직도 청진의 생각 속의 황금세가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와, 근데 이거 죽엽청 진짜야? 이걸 공짜로 준다고?”

“아무리 황금세가라고 해도 이건···”

“대협이시군! 황금세가 가주님을 위하여 한 잔 마시지!”

상에 올라와있는 수많은 술들. 평생 사람이라면 한 번 맛보기도 어렵다는 술이 깔려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호걸들의 눈은 바로 휘둥그레졌다.

또 술만이 상등품인가. 음식들도 간단히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성의 없는 음식들이 아니다. 하나하나 재료에 공을 들이고 요리에 집중해야 하는 고급 요리들이었다.

“이거, 오대세가에 들어가겠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걸?”

“이 사람아. 아무리 음식과 술들이 융숭하다지만 그것가지고 오대세가를 운운하는가.”

“자네야말로 옥묘각이라는 곳을 안 가본 모양이군. 거기서 황금세가의 무인들이 비무를 하고 있으니 보고 오게나.”

청진은 귀가 팍 뜨였다. 자신도 음식을 집어먹으며 감탄하기는 했지만, 계속 생각을 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물론 세가에서 가지고 있는 돈이라는 건 중요한 요소지만, 그게 무력에 앞서진 않았다.

곧장 청진은 옥묘각이라는 곳을 찾았다. 짜증나게도 중간에 시종들이 적당히 배치되어 있어서,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채채채챙!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청량하게 느껴졌다. 귀를 즐겁게 하는 타격감들이었다.

이미 옥묘각 앞에 있는 사람들은 수두룩 빽빽이라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전이라면 무당파라고 외치고 들어가려 했겠지만, 여기는 수많은 고수들이 있는 곳이다. 잘못 시비를 걸면 경을 치게 될 터.

“우와!”

“허, 저 나이에 강기라니!”

청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물론 용봉지회에 나온 사람들은 안다. 차가운 아름다움을 풀풀 풍기는 한유림과 키가 작지만 매서운 분위기를 풍기는 팽차월.

그러나 그 이외에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자신과 나이가 비슷했는데, 강기를 물처럼 쓰고 있었다.

청진도 강기를 쓸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쉽게 뽑아내는 건 어려웠다. 강기를 처음 뽑아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던가. 그런데 여기는 어떤 곳이기에 저런 무명소졸들도 강기를 휘두르고 있다는 말인가. 인피면구를 쓴 중년의 고수가 아니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까 들었나? 저 사람들 다 절맥이라고 했지.”

“···뭐? 세상에 절맥이 저렇게 많아?”

“황금세가가 중원에 있는 절맥 환자들을 모두 끌어 모은 거지. 그리고 그들에게 영약을 쏟아 부어서 살렸다는 거 아닌가.”

“확실히 절맥에서 나으면 무공을 익히기 쉽지. 저 소협들이 고수인 것도 그러면 이해가 되지.”

“이런 전력을 숨겨놓고 있다니···, 이 정도면 오대세가의 타격대와도 버금갈, 아니 그 이상의 수준이야.”

청진은 그 말들을 귀로 흘려들으면서도 자신 나이 또래 아이들을 바라봤다. 절맥으로 이루어진 타격대라.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다.

“그나저나 황금세가가 굉장히 좋은 일을 하고 있었군. 절맥에 걸리면 사실상 일반인들은 죽은 몸이 아닌가.”

“그렇다면 정말 대협이 아닌가. 자신과 관련도 없는 사람을 살리다니.”

“그냥 고쳐서 무력대로 쓰려고 구한 것 아닌가? 돈은 많으니까.”

“에라이, 돈이 아무리 썩어나도 그게 말이 되나. 세상 사람들이 다 자네 같지는 않아.”

청진은 멍하니 서있었다. 안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황금세가는 완벽했다. 완벽하면 완벽할수록 자신은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우면 부끄러울수록 후회된다.

달려라, 달려. 달리지 않으면 뒤쳐진다···

그런 소리가 들린 듯하다. 자신의 스승, 목송이 연무장에서 늘 한 말이었다. 달려라, 달려.

귀에 벌이 들어온 듯 윙윙거리고 열사병에 걸린 듯 정신은 빛나는 도중 혼미하다.

청진은 더 보지도 않고 황금세가 밖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치고, 누군가는 불쾌함을 표시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부끄러움에서 오는 심장 두근거림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도 못하게 했다.

*

암실. 어두운 곳에서 두 사람은 답답하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완벽한 연회였군. 그렇지 않나? 기획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황금세가가 만만치 않다는 걸 전 중원에 알렸군. 실제로 만만치 않지. 이제 아무도 황금세가 사람을 무시 못 할 거야. 소식이 느린 머저리거나, 아집 하나로 사는 멍청이들이 아니라면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암실에서 남자가 껄껄 웃었다. 이지러진 달이 방을 비췄다. 웃고 있는 사람은 남궁선우였고, 미동도 없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은 이호였다.

“때가 됐구나.”

남궁선우가 말했다.

“형산파를 무너뜨릴 때가.”

그 말이 지나고 반 시진 이후, 형산파가 마교라는 방이 전 중원에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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