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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29화 (130/225)

129화 내가 보증하지

129화 내가 보증하지

화종도는 금목환이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원래 폐회식이 끝나고 거의 곧바로 오룡삼봉에게 신물을 주는 절차가 있었지만, 그냥 화종도가 금목환을 빼왔다.

그나저나 금목환은 한 마디 물음도 없이 정말 순순히 따라왔다.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세상에 통달한 듯 침착한 표정이었다.

화종도는 기감을 펼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금목환을 바라보았다. 일단 제일 궁금한 건 당연히 이것이었다.

“뻔하지만, 한 번 더 확인해보마. 혹시 천혜침법을 익혔느냐?”

“네.”

금목환은 즉답했다. 신선한 반응이었다. 보통 자신이 삼선인 걸 알면 말을 더듬거나 당황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으니 말이다.

“하오문에 무공을 구했고, 그걸 팔아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난 돈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거든. 그렇다고 그 가격에 진짜 팔릴 줄은 몰랐지. 제일 중요한 건, 그걸 진짜 익히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거고.”

“비급을 파셨는데 익히는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니요.”

금목환은 막힘 없이 대답했다. 화종도가 금목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범부는 천혜침법의 묘리를 겉핥기로밖에 모를 터이고, 천혜침법의 묘리를 익힐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천혜침법이 필요 없거든.”

“제 잘못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화종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맞기는 했다. 하지만 화종도가 금목환을 데려온 이유는 단순히 천혜침법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화종도는 용봉지회의 시작 때부터 금목환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무공을 쓰는데 안 보면 그게 더 이상할 거였다. 그렇게 계속 보면서 느낀 건, 정말 수상하리만치 무공이 고강하다는 것이었다.

그 최고의 기재인 초유열을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남아있는 느낌.

심지어 금목환은 천혜침법의 묘리만을 빼와 처음 보는 무공에 접목을 시키고 있었다. 웬만한 깨달음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심지어 지원서를 찾아보니 약관도 채 되지 않았단다.

그때부터 화종도의 의심은 올라갔던 것 같다. 저 나이에 저 정도 깨달음과 무공 수위는 불가능하다. 무공을 끝까지 익혀본 화종도니 판단할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형산파 제자가 폭발시킨 검. 오히려 금목환의 자작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으로 황금세가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갔으니 말이다.

화종도는 용봉지회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궁금증을 내뱉었다.

“너, 마교도냐?”

중요한 질문이었지만, 금목환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에 고저가 없다.

“아뇨.”

화종도는 픽 웃었다. 당연히 대놓고 마교도냐고 물어보면 마교도라고 대답할 리가 없지 않은가.

“너, 명효숭성전 앞에 대고 마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화종도가 물었다. 금목환은 눈을 끔뻑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명효숭성전을 앞에 대고 마인이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금목환의 말에 화종도가 벙졌다. 이런 대답은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마인이라면 당연히 솔직하게 대답했을 것이고, 모르면 그게 뭐냐고 반문했으리라.

화종도의 머리가 잠깐 얼었을 때, 금목환은 역으로 물었다.

“약선께서는 명효숭성전 앞에 대고 마인이 아니십니까?”

화종도는 금목환을 바라봤다. 이 아이. 명효숭성전의 쓰임새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정녕 가능한 말인가. 당장 화종도 본인도 안 지 얼마 안됐으며, 중원에서도 아는 사람이 손 꼽힐 정도인데 말이다.

“···아니지.”

“다행이군요.”

금목환이 말했다. 명효숭성전을 알지 못하면 나오지 못하는 반응들이었다. 곧 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기감이 느껴졌다. 딱 봐도 진권이었다.

그때, 금목환은 조용히 말을 했다.

“나중에 따로 보시죠.”

그때 누군가가 하늘에서 발을 구르며 내려왔다. 그는 당연히 소림사의 방장, 진권이었다.

“뭔 짓을 하시는 겁니까? 당장 신물을 줘야 되는데.”

“···어, 음.”

“따라오거라.”

진권의 말에 금목환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순순하게 따라갔다. 화종도는 넋을 놓았다가, 바로 그들을 따라갔다.

“같이 가지. 나도 그 신물 수여라는 거 좀 보고 싶은데.”

화종도가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아이는 뭔가 특별한 아이였다. 저런 아이를 두고 가는 건 말도 안 됐다.

진권은 갑자기 뭔 소리냐는 눈빛으로 화종도를 바라봤고, 금목환도 화종도를 바라봤다. 지금껏 무표정했던 눈빛과는 달리, 살짝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

맨 앞에 진권이 서고, 그 다음 약선, 그 다음 나를 선두로 해 일렬로 걸었다. 소림사의 본 사찰로 가는 것이었다. 거기서 신물을 준다고 했다.

난 모든 사람 앞에서 신물을 주는 게 더욱 명예롭고 상징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옛날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어떤 군소문파의 후기지수가 오룡 중 한 명이 되어 신물을 받았는데, 그 신물을 탐내던 다른 문파가 군소문파를 멸문 시켰다는 이야기.

뒤의 금월상은 ‘어째서 그런일이···’라고 중얼거렸지만, 난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파는 의협으로만 이루어진 고상한 존재들이 아니라, 인간적인 욕심들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어쩌면 그들이 상계를 증오하다시피 경멸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들은 누구보다 우리의 돈을 부러워하면서도, 그것을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딱 그 괴리의 크기만큼 우리를 경멸할 거다.

“분명 우리는 즉흥적인 행동과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말이야.”

진권이 문득 앞에서 말했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고 사찰로 계속 걸어가는 채였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그냥 놔둬.”

화종도는 껄껄 웃었다. 진권은 약선에게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래도 진권은 뭐라 말을 더 붙이지는 않았다. 그 소림사 방장의 입도 닫게 할 정도면, 확실히 삼선은 삼선인 모양이다.

확실히 아까 만나고 난 후부터, 화종도의 태도는 달라졌다. 난 화종도가 나를 의심하는지도 몰랐고, 명효숭성전을 아는 지도 몰랐다. 그래도 방금 화종도와의 대면은 꽤 큰 이득이었다. 어쨌든 삼선 중 일인이 내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니 말이다.

침묵 속을 얼마나 걸었을까. 곧 우리는 사찰에 도착했고, 진권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오.”

뒤에서 누군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구파일방의 태두답게 멋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사찰 내부 전체를 감싸는 나무 향기와 소박함. 그것이 바로 소림사의 멋이었다. 황금세가가 꾸미는 방법과는 정반대에 서있었지만, 충분히 내가 보기에도 멋스러웠다.

진권은 우리를 사찰 내부 큰 방으로 안내했다. 여기가 사랑방인 모양이었다. 사랑방 한쪽 구석에는 상자 모양의 무언가가 고급스러운 붉은 융단에 덮여져 있었다.

“각자 자리에 앉게.”

이미 자리는 준비되어 있었다. 각자 자리 앞에 일룡, 이룡, 삼룡 이렇게 써져 있었으니까. 약선과 진권은 우리가 허리를 돌려야 볼 수 있는 왼편에 앉았다.

“자, 옥룡이라고 불러야 하나. 가주라고 불러야 하나.”

진권이 앉자마자 내게 물었다. 난 바로 대답했다.

“가주로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그게 낫겠지.”

진권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주. 내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네.”

“네.”

“그 발언은 무림맹이 시킨 건가?”

아까 내가 계단 위에서 한 말을 얘기하는 것이겠다. 간자 조사 협조 요청, 신단회 이야기.

당연히 갈유월이 흠칫했다. 나도 무림맹주의 제자 앞에서 그런 말을 물어도 되나 싶었다.

“아뇨. 제 생각입니다.”

진권이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난 그 전에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었다.

“간자 협조에 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림맹을 못 믿어서.”

난 뜻밖의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못 믿는다라. 나는 다시 물었다.

“명예 때문이 아니고요?”

꽤 직접적인 물음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긴장한 얼굴로 변했고, 화종도는 여전히 묘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고, 진권은 무표정했다.

“그것도 없다고 말할 수 없지. 당연하지만 우리도 마교에 관한 추적은 철저히 하고 있어. 근데 쥐뿔 아무 것도 없던 무림맹이 갑자기 마교의 간자를 찾았다니, 우리도 못 찾았는데 그 깡통이었던 무림맹이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지. 그걸 못 믿겠다는 거지.”

“그래도 마교의 간자라면 공통적인 조사를 할만하지 않습니까?”

“전혀. 자네의 생각보다 마교의 간자 신고는 많이 들어와. 다 조작되어 있거나 못 믿을 것뿐이지.”

나는 잠깐 눈을 오므렸다. 그 말뜻을 대충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는 건 구파일방뿐만 아니라, 모든 문파가 그렇다는 거야. 그들도 명예를 올리기 위해 온갖 수작질을 쓰지. 그러니까 우리는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안 움직이는 거야.”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단순히 체면 때문은 아닌 듯, 여러 가지가 얽혀있었다. 진권은 계속 말을 이었다.

“마교 간자의 이름들이 적힌 명단이라. 그럴듯하지. 근데 내가 보기에는 무림맹이 우리 지원이 끊기니까 발악하는 걸로 보인단 말이야.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듯 명단을 내놓는다니.”

“거기에는 증거로 고독, 간자의 일지가 들어가있었는데요.”

“그것들은 전부 정황 증거야. 중원에 고독을 쓰는 살문이 얼마나 많은데. 직접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는 데다가, 무림맹에게 증거의 출처를 물으니 한사코 못 말하겠다더군. 뭐, 정보는 훌륭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걸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화종도는 턱을 괴고 우리의 논쟁을 보고 있었다. 아마 진권의 말에는 거짓이 없으리라. 삼선 중 하나가 뻔히 보고 있으니 말이다.

꽤 복잡하게 꼬여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간단하기도 했다. 어쩌면 고작 이런 문제로 몇 년을 끌었다는 게 우스웠다. 그리고 그 문제를 풀 게 나밖에 없다는 것도.

“그 증거의 출처는 저입니다.”

“···응?”

“그 조사를 한 게 저라는 말입니다. 증거도 제가 찾은 것이고요. 정보를 정리한 것도 저입니다.”

진지한 표정의 진권이 갑자기 멍해졌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로 옮겨졌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였다. 무림맹은 내 정체를 숨겨주기 위해 출처를 숨겼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그걸 못 믿기도 하고, 근거도 없는 것에 조사를 하면 무림맹에 따라가는 꼴이 되니 안 하는 거였다.

결국 문제는 이거였다. 우리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못 믿었던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못 믿은 것이다.

“자네라고 해도 변하지 않아. 내가 보기에는 자네는 확실히 정파의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지 않아. 또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입수했는지 증명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았네.”

당황한 표정을 정리한 진권이 말했다. 딱히 그것에 대해 뭐라 할 생각은 없다. 나 역시 소림사와 구파일방을 믿지 못해 칼자루를 안 준 거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믿을 수 있는가. 그거야 확인해보면 될 일이었다. 화종도는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계속 지켜보는 것 같았다.

난 바로 허리춤에 있는 칼자루를 책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직접적인 증거를 보여드리죠.”

여기 있는 사람은 모를 리가 없는 붉은 검병이었다. 중앙은 반원형으로 패여있고, 폭발 흔적이 거뭇하게 남아있는 그것.

홍문원이 내게 쓴 폭발물이었다.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진권과 약선이 있는 쪽에 붉은 검병을 밀어서 보여줬다.

확실히 진권이 나를 보는 표정이 달라졌다. 단순히 오룡삼봉의 자리를 위해서, 황금세가의 명성을 위해서 온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챈 것 같았다.

“···음, 뭔가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사실 진권은 그 칼자루를 내게 줄 수밖에 없기는 했다. 당장 용봉지회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소림사는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근데 그런 와중에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며 칼자루를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칼자루가 그렇게나 중요해 보이면 억지로 가져가겠지만, 그들에게는 그냥 칼자루로 보였으니 넘긴 거다.

“근데 뭐가 직접적인 증거라는 거지? 이게 마교의 것이라는 건가?”

“네.”

진권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뭐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어차피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일 게 뻔했다. 나는 바로 말을 가로챘다.

“다들 아시겠지만, 같은 모래라도 지역에 따라 다르기 마련입니다. 어느 곳은 노랗고, 어느 곳은 검고, 어느 곳은 하얗죠.”

“그거야 당연한 이치지. 남귤북지(南橘北枳) 아닌가. 근데 중원에서 나오는 만년한철은 전부 비슷해서 구분이 불가능해.”

“중원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서역에서 건너왔을 테니까요. 천산로가 교역 육로의 중심이 아닙니까.”

나는 말을 이었다.

“해로로 받는 서역의 만년한철은 극도로 소수이고, 그렇기에 저희 상로를 통해 어디서 매입했는지 전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게 서역의 만년한철이라 나오고, 서역 만년한철의 취급이 투명하게 이루어져 있다면 직접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진권은 말을 잃었다. 그들도 서역에서 건너온 철들은 중원의 철들보다 강한 건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만년한철도 다를 리는 없었다.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진권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진권이 입을 열었다.

“···모르겠군. 자네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지. 서역에서 넘어온 만년한철이라고 해도, 자네들의 상로에서 나온 정보를 우리가 어찌 다 믿을 수 있겠는···”

“내가 보증하지.”

누군가 진권의 말을 잘랐다. 그 누군가는 지금까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약선 화종도였다. 진권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다른 사람들이 화종도와 나를 번갈아 봤다.

“나 약선, 화종도가 말이야.”

화종도는 날 바라봤다. 난 그에게만 보이게끔 작게 미소를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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