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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28화 (129/225)

128화 우리는 항상 준비돼 있습니다

128화 우리는 항상 준비돼 있습니다

소림사의 석불계단(石佛戒壇)은 중원의 대표적인 명소다. 앞에는 항시 문이 열려있는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벅찰 정도로 웅장한 부처가 있고, 그 앞에는 승려가 계를 받는 계단이 넓고 커다랗게 펼쳐져 있다.

승려가 계를 받는 중요한 곳인 만큼,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본디 개방도 잘 안하는 곳인데, 오늘 용봉지회의 폐회를 이 계단에서 하는 것이다.

계단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사람들이 많이 서있었다. 모두 구경꾼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단 아래 뒤편에 기대어 서있었다.

단 위에는 진권이 있었다. 그는 용봉지회 개회와 비슷한 말을 하며 폐회사를 끝냈다. 원래 더 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구경꾼들이 워낙 하품을 하고 지루해 하기에 일찍 끝낸 듯했다.

하긴, 그들은 폐회사를 들으려 온 게 아니니까. 이번 기수의 용과 봉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럼, 이번 오룡삼봉을 단으로 올리겠소.”

진권의 말과 함께 단 아래로 내려왔다. 바로 거대한 소리가 숭산에 울려 퍼졌다.

난 오룡 중에서도 첫 번째라서 선두에 서서 나갔다. 내가 단 위에 얼굴을 보이자, 귀를 찡하게 만들 정도의 함성소리가 단 위로 몰렸다. 내 뒤를 차례서 모두 따라 올라왔고, 우리는 자리를 잡아 일렬횡대로 섰다.

자리는 이미 공휴가 말해준 대형이 있었다. 중앙의 왼쪽에는 나, 오른쪽에는 갈유월이 서있고, 나머지 용과 봉은 좌우로 쫙 펼쳐져 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새가 날개를 편 모양이지만, 내 바로 옆의 자리는 띄워져 있었다. 금월상과 나 사이에는 한 사람이 설 정도의 빈 공간이 남아있는 거였다.

그래서 금월상하고 옆을 보고 대화하기는 편했다.

“···후, 긴장되는구나.”

금월상이 말했다. 어쩌면 이번 용봉지회에서 가장 놀란 건 금월상이 아닐까.

나나 한유림, 갈유월과 다른 참가자들은 강호에 발을 담근 무인들이지만 금월상은 아니었으니까. 금월상은 자신이 후기지수 중 이렇게 강한지 처음 알았을 거다.

“형님의 실력입니다. 당당하게 받으시지요.”

“그래야지. 지금은 황금세가를 대표해 서있는 거니까.”

우리가 이렇게 작게 잡담을 해도, 우리를 향한 환호와 함성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원래 소란이 가라앉으면 다음 절차로 가는 것인데, 못 넘어가고 있는 거다.

“와, 이번 봉황들은 다 아름다운데.”

“저 중앙에 있는 소저는 누구라고 했지?”

“황금세가의 한유림 소저라네. 이번 용봉지회 때 명가의 소협들이 그렇게 들이댔다던데.”

그런 일이 있었나. 한유림을 슬쩍 보니 그냥 정면을 또렷하게 보고 있었다. 딱 봐도 황금세가의 일원으로 받는 거니, 어깨와 얼굴이 굳어있는 거다.

“그러고 보니 황금세가 사람들은 옷부터 화려하군.”

“저 옷만 원보 두 개는 되겠군. 비단부터 수실까지 딱 봐도 비싸보이는데.”

금수린이 만든 옷도 호평이었다. 반각에 가까운 함성 소리도 슬슬 그쳤다.

그제야 우리 뒤에서 진권과 함께 선풍도골의 노인이 올라왔다. 흰 수염과 머리를 바람 방향에 따라 흩날리는 사람이었다.

“누구야?”

“멀어서 안 보이는데.”

우리는 이미 공휴에게 그 사람의 정체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공정함을 위해 감춰놨던 심판장. 단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슬슬 눈치를 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약선님 아니신가?”

“허, 약선님이시라고?”

바로 노인의 정체는, 삼선 중 일인. 약선 화종도였다. 심판장이 약선이었을 줄은 나도 몰랐다. 약선과 나는 인연이 있었으니까. 그 인연을 약선이 알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판 천혜침법을 내가 샀었다.

약선 화종도.

무가의 사람도 아니고, 의술 가문에서 나온 무공의 천재. 그의 연단술, 용독술, 침으로 쓰는 암기법은 한때 중원의 공포였다고 한다.

허나 어느 때부터 그는 싸우지 않고 사람들을 자신이 만든 약으로 살리고 다녔으며, 그래서 약선이라는 별호를 받은 거다.

여담으로는 원래 쓰던 무공에 맞게 독선(毒仙)이라는 별호를 붙이려 했지만, 사천당문의 극구 반대로 약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고도 한다.

“자, 조용.”

시끌시끌하던 단 주변을 화종도가 한 마디로 눌러버렸다. 바로 단 주변이 조용해졌다.

“금번 용봉지회 심판장을 맡은 약선 화종도다.”

화종도가 말을 이었다. 하긴 그가 말을 올릴 사람은 여기 없으니 당연한 말투였다.

당대 무림에서 가장 강한 세 명 중 하나. 그가 하대를 한다는 데 아무도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존경하는 눈빛, 경외하는 표정들이 많았다.

“이번 용봉지회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여기의 아이들이니 아이들에 집중하길 바라오.”

화종도는 왼쪽 끝으로 간 다음 그쪽에서부터 별호를 수여했다. 마치 하늘에서 아래로 내리는 것만 같은 엄숙함이었다.

원래 오룡삼봉은 상징성이기 때문에, 무난한 별호들이 많이 붙여졌다. 초유열은 검룡이라는 별호가 붙여졌고, 양초원에는 해룡이라는 별호가, 금월상에게는 뇌룡이라는 별호가 붙여졌다.

그 이후 화종도는 내 왼편에 섰다. 그곳에는 아무 사람도 없었다. 모두의 이목이 그쪽으로 집중됐다. 그곳은 선우진의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에게는 역룡(逆龍)이라는 별호를 붙이겠다. 소림사 방장과 상의한 결과, 결국 용봉지회에서 용의 자격을 부여받은 건 맞으니 별호를 수여하는 게 마땅하다 생각. 다만 조금의 반항기가 있는 것 같으니 역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종도의 말에 사람들 사이에서 잔잔한 웃음이 일었다. 천주성의 선전포고를 반항기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소림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방어였을 터다.

그 다음. 화종도는 내 앞으로 섰다. 한참 나이가 많은 노인인데도 풍채가 나보다 압도적으로 컸다.

화종도의 시선과 함께, 단 아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도 느껴졌다. 위에 올려다보니 정말 모든 게 한 눈에 보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들은 다수가 경계하는 모습이었고, 그 외 문파들은 질시와 부러움으로 나뉘었다.

화종도 역시 그 시선을 눈치챈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올해의 수룡. 강호초출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무공을 선보인 금목환 소협에게는 딱 어울리는 별호를 찾았다.”

강호초출. 어떻게 보면 공식적으로는 초출이었다.

그나저나 별호라. 옥면소룡이라는 별호도, 금산군이라는 별호도 붙여져 봤지만 그건 그저 사람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한 풍문에 가까웠다.

이번에 붙여진 별호가, 내가 강호에서 얻은 제대로 된 별호일 거였다.

“모두 다 반박하지 못할 거요. 금목환 소협의 별호는 옥룡(玉龍)이라 붙였소.”

사람들 사이에서 와,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 딱 어울린다는 반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옥룡이라는 별호를 외쳤다. 난 무공에 관련된 별호가 생길 줄 알았는데, 좀 김이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화종도는 내 표정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옛날에 옥면소룡으로 불렸다지?”

“그걸 알고 계셨나요?”

“그래서 붙인 게야. 이제는 소(小)가 아니지 않느냐.”

화종도와 나는 우리만 들리는 대화를 했다. 화종도가 펼친 기막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고수인 진권도 듣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제 너는 강서 무한의 상계 사람이 아니다. 중원에서 최고로 주목받는 신진 무인이지. 당연히 네 과거나 출신성분, 어느 하나 중원에서 화제가 아닌 게 없을 거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네 행적을 캐고 있을 거야. 적어도 이번 용봉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정보가 빠른 명가들은 네 존재를 뇌리에 각인시켰을 걸.”

“그렇군요.”

“아무튼, 이 폐회식이 끝나면 따로 보자꾸나.”

화종도가 슬며시 웃었다.

“제자야.”

내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화종도는 기막을 걷어냈다. 내 무공에 천혜침법의 묘리가 담긴 걸 눈치 챈 것이었다. 하긴 약선 정도 되는 사람이 자신의 무공을 눈치 채지 못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봉황들의 별호도 따로 붙여졌다. 갈유월은 비봉(飛鳳), 한유림은 설봉(雪鳳), 남궁홍예는 창봉(蒼鳳)이라는 별호를 받았다. 각자 무공의 형태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제 별호 수여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지지하는 이들의 별호를 불렀다. 단상 위에 오른 아이들은 모두 벅찬 표정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순서가 있었다. 미래 강호를 대표하는 후기지수로서, 중원 사람들에게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건 내가 가장 기다려온 시간이자, 용봉지회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이었다. 이 이후에 폐회사가 끝나고 신물을 받는 것이나, 소림사 방장과 약선과 함께하는 식사도 이 시간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 오룡삼봉이 된 후기지수들의 한 마디씩 듣고, 폐회사를 진행하겠소.”

우리의 발언은 별호를 받는 것과 역순이었기에, 초유열부터 시작됐다.

그 이후로 남궁홍예, 양초원, 한유림, 금월상 순으로 쭉쭉 나아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할 말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영광스럽다, 이 영광은 오롯이 문파의 것이다···. 당장 금월상도 내가 황금세가가 아니었다면 오룡 중 하나가 되지 못했으리라 말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벅찬 개인의 감상을 말하는 곳이었다.

“마지막, 옥룡 금목환은 중앙에 서라.”

모든 이들의 말이 끝났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난 최대한 걸음걸이를 반듯하게 하며 중앙으로 나아갔다. 단 위의 중앙은 볼록하게 올라온 계단 같은 게 있었다. 고작해야 두 걸음 정도 높이의 계단이었지만, 그 위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니 아예 달랐다.

“황금세가 가주 금목환입니다.”

난 먼저 한 마디를 했다. 좌중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렸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이 귀중한 시간을 체면치레하는데 조금도 쓸 생각이 없었다.

“일단 먼저, 여기 있는 모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분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무림맹이 올린 마교의 간자들을 조사하는데 협력해주시는 걸 부탁드립니다. 다른 건 몰라도, 중원을 위해서는 그래야 합니다. 그게 정의 아니겠습니까.”

그 말은 내 첫 번째 목적이 성과를 이뤘다는 방증이었다. 당장 여러 곳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보다, 여러 문파에게 압박을 가해 도와주지 않고는 못 배기게끔 해야 했다.

내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정파인들에게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게 마교였다. 마교의 간자도 아니고 마교의 간자들이다.

난 그들이 놀라든 말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저희 황금세가는 다음 신단회에 참가할 것을 천명합니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항상 준비돼 있습니다.”

모두가 침묵했다. 그들에게는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말일 테다. 그 말은 신단회를 열어달라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들에게 말하는 것임과 동시에 오대세가 중 하나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한 셈이니까.

난 다시 계단을 내려와서 제 자리에 섰다. 생각해보면 오룡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한 셈이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대놓고 오대세가에 선전포고를 한 점에 대해 경악을 한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를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있었다.

그리고 내 말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명가들의 엇갈리는 분노, 경계, 고뇌의 눈빛들이 떠다녔다.

그 이후 약선의 폐회사가 있었다. 공식적으로 용봉지회가 끝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시선이 몰려있었다.

나, 우리 황금세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는 건 모를 일이었다. 다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생각할 터였다.

오랫동안 굳어져온 중원의 세력이 변동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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