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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17화 (118/225)

117화 다시 해

117화 다시 해

매가 울었다. 새의 목청에서 나오는 내공에 머리가 찌릿했다. 중명각에서 영약이 섞인 밥을 먹여 기르는 모양이다. 어떤 비각에서도 짐승에게 영약을 먹이는 곳은 없을 거다.

“음.”

나는 창틀을 열고 볏짚으로 묶어놓은 고기 토막을 던졌다. 매는 그걸 순식간에 낚아채고 창문 밖에서 허겁지겁 먹었다. 여전히 다리에는 편지가 달려있다.

건강하게 키우는 건 좋은데, 앞뒤는 알게 지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금수에게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

매는 어느덧 고기를 깔끔하게 다 먹고, 창틀로 날아와 자신의 발을 창틀에 위아래로 비볐다. 편지가 창틀에 그대로 꽂혔다.

“별의 별 재주를 배워왔네.”

난 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매는 머리를 도리도리 치고 다시 남창 쪽으로 날아갔다.

매가 남기고 간 종이들은 꽤 두꺼웠다. 거의 한약재 보따리 정도의 크기였다. 남창에서 낙양까지 이걸 가져올 힘 정도면, 좀 예의가 없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이번에 출전하는 형산파 무인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 이름 : 홍문원

- 스승 : 운봉검(雲峯劍)

- 무공 : 구향검법(九向劍法), 악록검법(岳綠劍法), 상담보(上潭步) 등···

운봉검이라. 형산삼절 중 하나. 그러나 형산삼절은 이제는 중원에서 잊혀진 이름이 됐다. 왜냐하면 세 명 모두 강호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근데 여기서 운봉검의 제자가 나온다니. 운봉검이 제자 양성은 따로 하고 있던 모양이다.

남궁세가와 형산파, 이들이 규합했다면 무언가를 꾸몄을 게 분명하다. 이제 그들의 수법도 어느 정도 보이는 듯했다.

정의라는 체면을 고집처럼 부리고는 있지만, 정작 자신들이 가진 것을 놓지 않기 위해 별의 별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전에 남궁 남매가 갈유월에게 그랬던 것처럼, 독수를 쓸 확률이 있었다. 남궁 남매에게 다시 독을 쥐어주기는 부담스러울 거다. 형산파의 무인을 미리 알아놓은 것이었다. 아니면 용봉지회 이후에 움직이거나.

일단 홍문원은 스승이 운봉검이라는 것 이외에 특이점은 없지만, 그래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난 부가적인 자료로 달려온 현재 황금세가 상태에 대해서 봤다. 역시 금화청이 잘하고 있어서 세가는 이상이 없었다.

여러 정보를 확인하고 있자니 내 방문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주님. 기침하셨습니까.”

“그래.”

곧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들어온 건 내 앉은키와 비슷한 아이. 용소화였다. 확실히 그때 활발했던 모습은 당연히 없었다. 아직도 나를 부담스러워 하는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용소화 뒤에는 피곤해 보이는 남녀의 무리가 있었다. 바로 오늘 용봉지회 본선에 참가하는 금월상, 팽상문, 팽상원, 팽차월, 양초원, 갈유월, 한유림 순이었다.

“···넌 전혀 피곤해보이지 않는구나.”

“운기조식 한 번 했습니다.”

“긴장되어 보이지도 않고.”

금월상이 부럽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용봉지회 본선에 나가는 참가자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일곱을 열흘 동안 지도하다보니 같은 참가자라는 걸 가끔 까먹고는 했다.

나는 중앙의 상석에서 내려와 옆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따라 내 옆에 앉거나, 마주 앉았다.

“누구부터 시작할까요?”

내가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가 내 눈을 피했다. 난 바로 지체 없이 사람을 선정했다.

“월상 형님부터 하시죠. 여기서 제일 연장자시니까요.”

“연장자 대우면 맨 마지막에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금월상은 툴툴거리며 일어나 상석으로 나왔다. 그의 손에는 간이로 만든 책 한 권이 있었다.

우리가 여기 왜 모였는가. 이미 우리는 대진할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본선 사흘 전에 대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연구를 해오라고 시켰다. 물론 용봉지회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근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드문 일일 테다.

“···큼, 큼. 내 상대는 화산파의 초유열이다. 화산파는 검법을 중시로 하며, 초유열은 옛날부터 기재 취급을 받았다. 중, 변, 강, 유, 패 등 검에 들어가는 모든 기교가 상당하며 암향표를 비롯한 경신법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용봉지회 시작은 정오. 세 시진이 남았다. 그때까지 이 발표가 끝날 수 있을까. 그건 이들이 하기에 따라 달린 것이었다.

*

팽의석은 못내 아쉬웠다. 팽씨 삼형제 중 한 명만 딸이었어도 어떻게 금목환과 엮어보는 건데 말이다.

당장 금목환과 안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알면 알수록 대단한 아이였다.

단순히 무공만이 아니었다. 일처리도 똑똑하게 했다. 역시 한 세가의 가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금목환은 오늘 팽가의 형제들이 어떤 훈련을 받게 될 것이며, 어떤 일정을 거칠 것이라며 전달해왔다.

팽의석이 금목환에게 맡긴 이유는 또래에게 열등감을 느껴보라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기에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팽의석은 황금세가의 장원으로 들어갔다.

“오셨소. 선배.”

“그래, 잘 지냈나.”

장원으로 들어가자마자 종리운이 먼저 인사를 건넸고, 팽의석도 받았다. 여전히 서먹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암묵적으로 황금세가 앞에서는 싸우지 않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남파의 사람들도 왔다. 종리운과 팽의석은 바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래.”

적유엽은 대충 인사를 받았다. 어차피 중요한 건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애들을 보러 온 거니까 말이다.

사실 적유엽이나 종리운은 팽의석처럼 맡길 생각은 없었다. 굳이 말하면 적유엽은 방치하는 파였고, 종리운은 갈유월에게 더 가르침을 주려고 했다.

근데 양초원도, 갈유월도 금목환에게 배우는 걸 선호했고 마지막 날까지 그들은 황금세가에 남아있게 된 거다.

그래도 마지막 날. 격려도 해주고, 응원도 할겸 황금세가에 와야 했다.

“근데 비무하는 소리는 안 들리는군. 자고 있지는 않을 테고.”

“선배님. 오늘 본선인데 비무로 괜히 힘 빼면 뭐합니까.”

“적당히 근육을 긴장시켜줘야지.”

“몸만 풀어도 충분합니다.”

적유엽과 종리운은 서로 교육 방향에 대해서 차이를 드러냈다. 그래도 그들의 목적은 같았다. 아이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였다.

그들은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시종을 잡아서 물어보기로 했다. 어린 꼬마 여자아이였다.

“아이야. 혹시 가주랑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아이는 그들을 둘러봤다. 하지만 당황해서 둘러보는 건 아니었다. 아이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지금 대전에 계십니다. 공자님들, 아가씨들도 같이 있습니다.”

“그래? 대전이 어디지?”

“절 따라오십시오.”

아이는 바로 앞으로 나섰다. 어른인 척을 하는 것 같지 않은데 어른스러웠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신기한 아이였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조예란이라고 합니다. 맹주님.”

종리운의 물음에 조예란은 이름을 밝혔다. 종리운은 살짝 놀랐다.

“내가 맹주인 건 어찌 알았느냐?”

“저번에 오셨을 때 기억해놓았습니다.”

“대단하구나.”

“황금세가의 시종이라면 다들 맹주님을 기억하실 겁니다. 해남파의 장문인님도, 팽가의 태상가주님도요.”

조예란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대전으로 안내하고,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대전 안으로 들어가니 말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누군가 질문하고 누가 답하는 것 같았다. 대전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어떤 문파의 장로회의라도 하는 듯 좌우로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있고, 한 명은 서있으며 무언가를 발언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금목환은 일어나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다른 아이들도 일어나 인사를 했다. 다른 아이들은 피곤하고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금목환은 여전히 깔끔하고 빛났다. 언제 봐도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래.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마지막 점검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니까요.”

“하하. 기본이긴 하지. 좀 흥미가 도는 걸. 구경해도 되겠나?”

적유엽이 웃으며 앉았다. 팽의석과 종리운도 얼떨결에 같이 따라 앉았다. 대신 앉아있는 그들과는 자리를 띄워서 상의 끝 쪽에 앉았다.

“다시 해.”

금목환은 앞으로 머리를 돌리고 말했다. 앞에 서있는 사람은 갈유월이었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면서 종리운을 바라봤지만, 종리운은 외면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여기는 금목환이 통제하는 시간이었다. 자신들은 그저 구경꾼일 뿐이었다.

“첫 상대는 여주양이라고 하는 아이인데, 예선에서 올라왔어. 출신은 감숙에 있는 여가장이라는 곳이고, 무기는 특이한 연검. 무공 역시 연검에 맞춰진 유곡검법(流曲劍法).”

“그 무공의 특성과 상대법은?”

“정신 사납게 낭창대는 게 특징이고. 상대법은 그냥 명치를 내지를 예정.”

“다시 해.”

“아.”

종리운은 바로 알았다. 금목환이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검사해주는 자리였던 거다.

사실 갈유월은 여가장의 아이에게 이길 자신이 있으니 그렇게 많이 공부를 안 한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금목환은 유곡검법이 무슨 묘리를 주로 띄고 있는지, 원형인 무공이 있는지, 상대가 어떤 전략으로 나올 것 같은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캐묻고, 갈유월이 답하고, 금목환은 만족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내고, 갈유월은 또 다시 금목환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굴레가 형성됐다.

“···지독한데.”

적유엽이 중얼거렸다. 팽의석과 종리운도 동감했다. 금목환이 저리 집요한 면이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맞는 지도방법이기는 했다. 용봉지회에서 끝난다고 무인의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무공을 알아두고, 설명할 수 있어야 무리(武理)도 확장하게 되는 거다. 금목환은 정말 완벽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다시 해.”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간신히 한유림까지 마쳤을 때, 출발해야 될 시간이 됐다.

금목환을 제외한 아이들은 검 하나 안 휘둘렀는데도 진이 빠진 모습이었다. 그들은 곧 낙양의 외곽으로 나가 숭산의 입구로 들어섰다. 숭산의 입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려고 인산인해였다.

당연히 본선은 예선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집중을 받는다. 해남파가 매년 초에 문파를 개방한다면, 소림사는 이럴 때 전면적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슬슬 들어오는 문파들을 보며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소림사, 화산파, 무당파, 남궁세가, 사천당문 등 쟁쟁한 문파들이 있음에도 제일 이목을 끄는 건 역시 하북팽가, 무림맹, 황금세가 조합이었다. 조합 자체가 특이했기 때문이다.

“하북팽가랑 해남파, 황금세가는 도대체 뭔 조합이야?”

“진짜 황금세가가 중원에 들어오기는 했나본데. 자신이 있는 건가?”

“자네 못 봤나? 이번 용봉지회 본선에 가장 많이 사람을 올린 게 황금세가라네.”

“그렇게 강한 후기지수들이 많았다고? 상가인데 그게 가능한가?”

웅성이는 소리가 하나의 파도처럼 울린다. 낙양도 인산인해였지만, 길이 잡혀있는 시내와 커다랗고 널찍한 숭산하고 비교할 수는 없었다.

예선들은 중소문파들끼리의 각축전이고, 본선이야말로 정말 이름만 들어봤던 고수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원래 있던 인파에 무공에 관련이 없는 평민이나, 용봉지회에 참가하지 않고 무공의 견식만을 위해서 오는 문파까지 겹쳤으니 필연적인 결과였다.

숭산은 그야말로 사람의 산이 되어버렸다. 만약 위에서 조감하여 보면 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게 느껴질 거였다.

“밀지 좀 마! 이 자식들아!”

“사람 깔렸다고!”

그래도 참가자들과 명문 세가를 위한 길은 확보가 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다른 길로 빠지고, 다른 사람들은 객석으로 먼저 착석하러 들어갔다.

“올해는 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아마 화산파 초유열 때문이겠지. 그 아이가 대중들에게 제일 알려진 기재 아닌가.”

팽의석과 적유엽, 종리운은 연무장 앞좌석에서 뒤를 바라봤다. 사람들은 입장할 때가 됐고 시끄럽게 몸을 부비며 들어왔다.

그 사람들이 전부 입장하는 시간만 반 시진은 넘게 걸렸다.

사람들은 착석하고 나서도 흥분되는 감정을 주고받았다. 서로가 조용히 말해도 시끄러운 마당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목소리 큰 사람은 있는 법. 결국 많은 사람들은 목소리를 더 크게 올리는 방법을 택했고, 결국 모든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지르면서 대화했다. 현재 숭산의 시끌벅적함은 관음보살도 깰 정도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소리는 신기하게도 점점 줄어들더니 정적이 됐다.

바로 회색 승복을 입은 중년의 중이 연무장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발걸음이었지만 그의 몸에는 영기가 피어나오고 있었다. 최소 몇 만 명은 있는 숭산의 대회장을 압도할 수 있는 영기였다.

그 사람은 삼선에 대응하는 일불(一佛)이라고도 불렸고, 나찰불(羅刹佛)이라는 별호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소림사의 방장, 진권이었다.

그가 나타났다는 건, 진짜 용봉지회가 열렸다는 걸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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