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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15화 (116/225)

115화 제안을 하러 온 겁니다

115화 제안을 하러 온 겁니다

우리가 빌린 곳은 낙양에서 가장 넓은 곳이었다. 당연하다. 어떤 세가든 이렇게 많은 사람을 끌고 오지 않으니 말이다.

“자, 자! 빠르게 움직이자!”

“에헤이, 의자 방향 그거 아니라니까.”

“각자 맡을 지역 다 숙지했어?”

커다란 마당에서는 시종들의 외침들이 오갔다. 갑자기 내가 돌아와서 백 명 규모의 연회를 준비하라고 한 결과였다. 다행히 황금세가의 시종들은 이런 것에 익숙했다.

서른 명 남짓의 시종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음식들과 의자와 식탁들이 하나씩 빠르게 갖춰지고 있었다.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데도 한 번 안 부딪치는 게 신기하네.”

갈유월이 말했다. 무림맹 무인들은 돌아갔지만, 갈유월은 황금세가 거처가 궁금하다고 따라온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층 마루에서 시종들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었다. 우리 근처에는 발을 둘러놨다. 내가 뻔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들이 부담을 가질 터였다.

“천 명급 연회도 많이 준비해봤는데, 백 명은 쉽겠지.”

“그렇겠네.”

우리가 멍하니 시종들의 준비를 보고 있을 때, 뒤에서 문에서 작게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한유림이었다.

“가주님. 무림맹, 하북팽가, 해남파 모두 오신답니다.”

“그래.”

“그리고 여기 가주님이 말씀하신 정보들입니다.”

한유림은 내게 공손히 건넸다. 난 그걸 건네받아 바로 보려고 했지만, 어쩐지 갈유월이 한유림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한유림도 그 눈빛을 눈치 챘다. 그녀는 민망해서인지 눈을 살짝 내리깔고 있었다.

어째 계속 볼 것 같기에 난 갈유월의 소매를 흔들었다. 그러자 갈유월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왜 그렇게 봐?”

내가 물었다. 갈유월은 바로 얼굴이 붉어졌다.

“뭐, 뭘?”

“유림이 보고 있었잖아.”

“아, 아, 아닌데?”

갈유월은 이제는 등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흔들면서까지 격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본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면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당사자는 또 다른 모양이었다.

“아뇨. 저도 궁금합니다.”

느닷없이 한유림이 말을 뱉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보신 건지.”

“···으, 음.”

한유림의 눈에는 경계심까지 있었다. 하긴 한유림은 갈유월과 처음 보는 것일 터였다. 그녀 입장에서는 내가 호위할 대상이고,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붙어있는 게 기껍지 않을 터다.

이제 역으로 한유림과 내가 갈유월을 바라보고, 갈유림은 눈을 푹 깔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우물거리다가 결국 말을 뱉었다.

“그, 그냥 예뻐서 본 거야.”

“···네?”

한유림은 그 말에 즉시 당황했다. 난 둘을 슬쩍 쳐다봤다. 내가 딱히 중재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제는 한유림도 당황해서 머리를 숙이고, 갈유월은 본 걸 들킨 게 민망해 머리를 숙였다.

“근데 넌 황금세가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거야?”

갈유월이 물었다. 내가 볼 때는 이게 제일 궁금했던 것 같다.

“···가주님과 세가의 호위를 맡고 있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그, 가주를 직접 전담하는 무인인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 그렇구나. 그냥 호위 무인이라는 거지? 개인적인 관계는 아닌 거고?”

한유림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이상하다는 눈빛도 그 대답의 일부였다. 나도 그 질문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한유림이 되물었다.

“그럼 소저께서는 가주님과 어떤 사이이십니까?”

갈유월은 얼어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한유림이 더 똑 부러지고 말을 잘했다. 하긴 갈유월은 화날 때나 입이 험해지지, 원래는 말을 잘 못했다.

난 한유림이 가져온 종이를 펼치며 말했다.

“친구야. 꽤 오래 됐어.”

“···응?”

그 말엔 한유림보다 갈유월이 놀랐다. 내가 친구라는 말을 할 줄 꿈에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한유림은 깔끔하게 갈유월에게 고개를 숙였다.

“친구분이셨군요. 사실 어떤 관계신지 궁금했습니다. 가주님을 호위하는 입장에서 말이죠.”

“음, 어··· 그럴 수 있겠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한유림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림은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

난 펼친 종이를 봤다. 그곳에는 용봉지회에 출전한 참가자의 이름, 문파, 무공, 경지들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당연히 눈앞에 있는 갈유월도 어떤 무공을 쓰는지, 다 나와 있었다.

“···야.”

앞에서 갈유월이 불렀다. 난 머리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손에는 손수건 같은 게 들려있었다.

“뭐?”

내가 물었지만, 갈유월은 되려 성을 냈다.

“내가 저번에 손수건 다시 만들어준 댔잖아!”

“그러네.”

난 바로 납득하고 손수건을 받았다. 손수건에는 제비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번엔 난이 아니네.”

“···치, 친구라서 신경 좀 썼지.”

갈유월은 그 말을 하면서 본인이 더 부끄러워했다. 난 웬만하면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데, 갈유월은 그 범주에서 벗어난 인물 중 하나였다.

“아, 오늘 저녁 맛있는 거 나오겠지? 기대된다. 기대돼.”

갈유월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다시 밖을 바라봤다. 밖을 바라보는데 눈의 초점은 어째 하늘에 가있었다.

*

“···호오. 이렇게까지 환영해 줄지는 몰랐는데요.”

“이런 건 오대세가 회동에서도 못 봤습니다.”

“딱 적절하게 화려하군. 과하게 화려한 건 아무나 할 수 있지만, 화려함을 조절하는 건 뿌리 있는 가문들만 할 수 있지.”

내가 지정한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슬슬 오기 시작했다.

먼저 온 건 하북팽가의 사람들이었다. 하북팽가의 도존, 팽가의 삼형제는 정문을 걸어오면서도 주변을 계속 휘휘 둘러봤다.

황금세가 본가도 아닌 멀리 떨어진 외지에서 이렇게까지 준비할 줄은 모른 것 같았다. 팽의석은 우리의 연회장을 구경하다가 비로소 날 발견했다.

“가주. 잘 꾸며놨군. 상인 가문이라 그런가 별의 별 장식들이 다 있구먼.”

“급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렇겠지. 나도 오늘 정오 즈음에야 초대를 받았으니까. 그런데 하루 만에 이렇게 차리는 게 가능한가?”

“황금세가는 가능합니다.”

팽의석은 껄껄 웃었다. 팽씨 삼형제들도 주변에 있는 꽃들과 나무들, 돌로 구분 지은 길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표했다.

“방금 꾸민 게 아닌, 옛날부터 가꿔와진 집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다른 무리들도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들은 무림맹이었다. 오랜만에 본 종리운은 날 보면서 얼굴을 활짝 폈지만, 옆에 있는 팽의석을 보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팽의석도 마찬가지로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팽 선배님이 있었군요. 인사드립니다.”

“그래. 오랜만에 보는군. 맹주.”

나이로 봤을 때는 종리운과 팽의석은 십 년에서 이십 년은 차이나는 것 같았다. 같은 칠존이라도 배분은 차이가 나는 거였다.

“저번에 녹천야객(綠天夜客) 잡을 때 협조 부탁드린다고 했었는데 거절하셨었죠. 덕분에 못 잡았습니다.”

“그거 내가 거절한 거 아니라니까. 아들이 거절했지.”

“선배님이 관심이 있었으면 팽 가주가 그러진 않았겠죠.”

“이 사람아. 지금 돌아가는 거 뻔히 알면서 그래?”

종리운과 팽의석은 인사를 나누는 듯 하더니 바로 언쟁으로 들어갔다. 하긴 무림맹은 기득권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와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쫌생이 같이 사니까 검 같이 남자답지 못한 무기를 쓰는 게야.”

“역대 천하제일인 중 검수가 팔 할 이상이었습니다만?”

“그거야 쪽수 차이지. 검이 입문하기 쉬우니까.”

음. 그냥 이들은 굳이 외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잘 안 맞는 사람들 같았다. 그렇게 싸우고 있을 때 푸른 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내가 맨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바로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장문인.”

“오랜만이구나. 목환아.”

온 사람들은 해남파 장문인 적유엽을 비롯한 해남의 무인들이었다. 적유엽은 여기서 나이가 제일 많았음에도 여전히 정정했다. 정말 오 년 전에 비해서 바뀐 게 하나 없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장문인.”

“적 선배님 오셨습니까.”

큰 어른의 등장에 말싸움을 하던 종리운과 팽의석도 말을 끊고 인사를 하러 왔다. 적유엽은 날 보면서 웃다가 종리운과 팽의석을 보자 표정이 흉악해졌다.

“바깥에까지 네놈들 추잡하게 싸우는 게 들린다. 대체 언제 철이 들거냐?”

“선배님. 팽 선배가 또 도가 검보다 우월하다고 하지 뭡니까.”

종리운은 슬쩍 웃음을 지으며 적유엽에게 슬슬 다가갔지만 적유엽은 고개를 옆으로 까딱였다. 까딱이는 표정은 심히 심사가 꼬여있어 종리운은 다가가기를 포기했다.

“여기는 네놈들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초대를 받은 몸 아니더냐. 초대한 목환이를 앞에 두고 어찌 경망스럽게 행동하느냐.”

종리운과 팽의석은 아무 말도 못했다. 이제 백 세가 넘은 적유엽의 배분은 강력했다.

“목환이를 좀 보고 배워라. 이런 상황에서도 자세나 눈빛이 바르니. 여기를 꾸민 것만 봐도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 썼는지 알겠구나. 근데 네놈들은 노고를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정신 나간 개들마냥 싸우고 있는 거냐.”

“···아니, 선배님. 저는 여기 잘 꾸몄다고 가주한테···”

적유엽이 팽의석을 바라봤다. 팽의석의 입은 다시 얼어붙었다.

“의석아. 많이 컸다. 내 말 끊을 줄도 알고.”

“그게 아니라···”

“또 변명하려고 하네. 옛날 성격 나오게.”

“죄송합니다.”

그들의 싸움은 적유엽의 등장으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난 그들을 안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이미 화려한 음식들과 음악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허어. 화려하기가 황실에 미치는구나.”

“아닙니다.”

난 감탄하는 적유엽의 자리를 안내하고, 팽의석과 종리운의 자리도 안내했다. 그 외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시종들이 붙어 자리를 안내했다.

“대단하구먼. 중원에서 가장 돈이 많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되는 건가.”

“우리 시종들을 황금세가로 연수 보내고 싶을 정도군.”

사람들은 연신 우리 시종들과 연회장을 보며 감탄하다가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는 이미 음식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이 동시에 크게 떠졌다. 다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했으니 당연했다.

“크흠, 크흠. 제비집은 하남에서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팽의석이 헛기침을 했다. 사람들의 눈은 이미 요리에 홀려있었다. 음악이 바뀌었다. 잔잔한 분위기에서 흥이 나는 분위기로. 본격적인 연회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뭘 대화하기도 전에 젓가락을 드느라 바빴다. 그들은 음식을 먹으며 감탄했다. 황금세가의 요리사는 웬만한 고급 재료는 다 다뤄봤고, 일반적인 객잔 수준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나름 맛에 까다로운 나도 인정하는 바이니, 이들이 음식을 인정하지 않을 리 없었다.

난 그들이 즐기게 놔두었다. 원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게 좋은 법이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잘 즐기는 모양이었다. 근처의 상에 팽씨 삼형제와 갈유월, 한유림과 팽차월이 한 자리에서 먹고 있었다. 공교롭게 저렇게 배치된 건지, 시종들의 판단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래, 슬슬 얘기할 때가 됐군.”

적유엽이 입을 열었다. 팽의석과 종리운은 음식을 이미 물고 적유엽을 바라봤다. 적유엽은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어째서 부른 건지 말이야.”

“별 거 없습니다. 이렇게 전선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이제야 팽의석과 종리운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하긴 그들도 대강 예상은 하고 있었을 거다. 종리운과 팽의석이 서로 바라봤다.

“큼, 그건 좀 애매한 부분이 있어. 그걸 말하려고 온 거긴 하지. 하북팽가는 그냥 황금세가와의 동맹만 유지하고 다른 곳과 엮일 생각은 없다네.”

팽의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종리운도 질세라 바로 즉답했다.

“해남파는 몰라도, 하북팽가는 반대야. 하북팽가도 마교 간자 색출에 비협조적이었다고.”

“말했지 않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무림맹에게 협력하면 제재를 받는다고.”

“해남파는 잘 도와줬습니다.”

“그리고 나는 가주도 아니고,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일세. 당연히 아들하고 상의해야지.”

종리운과 팽의석이 다시 입씨름을 했다. 그나저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무림맹에 저렇게 대놓고 견제할 줄은 몰랐다. 그만큼 무림맹이 컸다는 거겠지.

나는 정문에서와 달리 바로 중재했다.

“그만하시지요.”

내 말에 팽의석과 종리운이 입을 다물었다. 나름 나에 대한 존중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애초에 그들은 이 자리에 대해서 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는 여기를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친밀해지고 전선을 만든다는 이상적인 생각도 없습니다. 저는 제안을 하러 온 겁니다. 그 제안에 상응하는 조건들도 다 있습니다.”

내가 말을 이었다.

“해남파에는 실전 절학들을 복구하면서 만든 새로운 무공을 드릴 겁니다. 이건 사실 언젠간 드리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뭐 조건 받으려고 온 게 아니네, 제자를 도와주는 데 조건이 어디 있는가···”

적유엽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만든 무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는 듯했다.

“무림맹도 요즘 다시 자금이 좀 부족하시다면서요. 돈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아, 아니. 안 그래도 되는데. 우리가 이미 받은 게 있는데···”

종리운 역시 말은 그렇게 해도 눈빛은 솔직하게 초롱댔다. 역시 돈이라면 쓰고자 하면 어떻게든 써지는 것. 내가 오 년 전에 준 십 만 냥도 게 눈 감추듯 사라진 거다. 그러면 뭐, 다시 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하북팽가에는···”

팽의석의 눈빛이 의문으로 가득 차있었다. 아마도 내가 하북팽가에 줄 게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게 단 하나가 있었다.

“소림사에서 오룡에게 주는 신물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 말에는 팽의석은 물론이고 적유엽과 종리운도 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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