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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11화 (112/225)

111화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해서요

111화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해서요

우리 세가 사람들에게는 도존을 만나러 간다 말하고 나왔다. 곽진도는 살짝 걱정하는 모양새였지만, 도존이라면 별 일은 없을 거라며 보내줬다.

팽씨 삼형제는 날 바깥으로 안내했다. 그들이 온 이유는 알았다. 먼저 사과를 시키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강호에 얼굴이 알려진 도존이 직접 움직이면 시선이 쏠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건 자존심이겠지만 말이다.

세 명은 나를 마치 호위하듯이 중앙에 끼워넣고 갔다. 낙양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고, 나와 팽씨 삼형제는 죽립을 쓰고 있어서 딱히 주목 받지는 않았다.

“예선 잘 봤습니다. 가주님.”

왼쪽에 있는 팽씨 형제 중 둘째가 말했다. 이미 우리는 통성명을 다 한 상황이었다.

첫째가 팽상문, 둘째가 팽상원, 셋째가 팽상직이라고 했다. 그러니 나한테 말을 건 것은 팽상원이었다.

“예선을 보셨습니까?”

“네.”

“성실하군요. 팽가는 굳이 안 봐도 될 텐데.”

팽상문과 팽상원은 우선권으로 바로 본선 직행이었고, 팽상직은 이번에 그냥 구경만 하기로 했다고 한다. 생긴 건 약관이었는데, 알고 보니 지학의 나이였던 거다.

“할아버님이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런가요? 피곤하셨겠군요.”

“아뇨. 가주님까지만 봤습니다. 사실, 할아버님이 가주님을 좀 쫓아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런가요?”

난 눈치 채지 못했다. 낙양에 워낙 사람이 많아서, 기감을 펼치고 있으면 머리만 아팠다. 물론 살기같은 걸 풍겼으면 바로 알아챘겠지만, 정말 그들은 내 뒤를 쫓아다니기만 한 것 같았다.

“용봉지회 예선이 끝나시면 바로 나가시고, 거처에 들렀다가 낙양 구경을 하러 나오셨죠.”

“그랬죠.”

“불쾌하셨으면 죄송합니다.”

“강호에서 흔히 있는 일인데요.”

딱히 불쾌하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그들에게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명령을 받았다고 해도 그걸 보고 있던 팽가의 삼형제도 대단하다 싶었다.

“···근데, 혹시 가주님께 하나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지금껏 조용히 있던 팽상원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진지하고 낮기까지 해서 중요한 질문 같았다.

“네.”

내가 예상한대로 중요한 질문이 맞는 듯 팽상원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혹시, 매일 같이 나오시는 아리따운 소저와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네?”

아.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그에겐 중요한 질문이었지만 나한테는 안 중요할 경우. 그의 눈에는 열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심지어 다른 형제들의 눈빛도 반짝였다.

비무가 끝나면 사람들하고 낙양 구경을 나가기도 했다. 나가고 싶은 사람들만 말이다. 그 중에서도 금수린은 유일하게 매일 나갔다. 아마 그럼 금수린을 얘기하는 것일 테다.

“제 누님입니다.”

“···아, 누님입니까?”

팽상원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나는 갸웃했다. 내 누나라는 게 뭐가 기분이 좋은 걸까.

“확실히, 가주님도 굉장한 미남이시니 그 소저가 그렇게나 아름다운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

“그런가요.”

“네, 네.”

난 하북팽가 삼형제랑 같이 가면서 진지한 얘기들을 할 줄 알았다. 도존은 무슨 얘기를 준비하고 있는가, 황금세가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도존을 대할 때는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 등.

그러나 내가 금수린이 누나라는 걸 밝히면서 모든 질문은 금수린과 연관됐다. 나한테 맞은 팽상문도, 금수린보다 다섯은 어린 팽상직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저 이름이 물 수에 옥빛 린을 쓰는 군요.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수린 낭자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요?”

“혹시 언제 태어나셨는지···”

나는 대충 대답해줬다. 뭔지는 몰라도 자세히 대답해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예상한 이야기와는 달리 금수린의 이야기만 가득 채운 뒤 삼형제의 발이 멈췄다. 간판도 없는 안가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대답을 하고 있자니 어느덧 낙양 외곽이었고, 다 쓰러져가는 폐가가 눈앞이었다.

“여기 태상가주님이 계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칠존 중 하나가 있기에는 너무 허름한 곳이 아닐까, 했지만 반대로 칠존 씩이나 되니 이런 허름한 곳에 있어야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안은 굉장히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하긴 하북팽가가 태상가주를 폐가에 모실 리가 없었다. 그저 바깥은 기만술의 일종이었다.

팽가의 삼형제는 내게 방을 안내했고, 방문은 없어서 딱히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됐다.

“다시 보는군.”

팽의석은 맞은편에 앉아서 웃고 있었다. 나도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은 나가 있어라.”

팽씨 삼형제는 방에 들어오려 했지만, 팽의석이 축객령을 내렸다. 그들은 바로 물러나서 문을 닫았다.

“어른들끼리 얘기하는데 아이들이 끼면 안 되겠지.”

“셋째 빼고 다 저보다 나이가 많던데요.”

“나잇값을 못하면 제 나이로 대접해주지 말아야지.”

팽의석은 껄껄 웃었다. 글쎄. 팽상문이 스물 셋에 강기를 쓰는 것도 나름 대단한 것이다. 몇몇 비무들을 구경하고 싸워보니 알았다. 허나 당연히 팽의석의 눈은 그보다는 훨씬 높은 거다.

“내 자네한테 손주들을 붙이고, 따로 조사도 해봤지.”

그렇게 당당하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팽의석은 당당히 밝혔다. 아니면 뒤 구린 짓을 안 하니까 저리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를 일이다.

“오 년 전에 해남파에서 검술 시범 한 번 하고 옥면소룡이라는 별호를 얻고, 최근에는 무림맹에서 남궁세가 여섯의 목을 베었지.”

나는 대답하지 않고 팽의석을 바라봤다. 남궁선용과 다섯 무인이 남궁세가에서 처형되었다는 얘기는 들었다. 남궁세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일이니까. 그런 식으로 꼬리를 자르는 것일 테다.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가족을 버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리라.

“어떻게 아셨죠?”

내가 물었다.

남궁세가 사람들의 목을 베었다는 건 비유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남궁세가 사람들을 포함해, 심판을 맡았던 무림맹 무사 하나, 나와 갈유월뿐이었다.

“오대세가끼리는 집안 수저 개수도 알고 있네.”

“정보를 공유하는 건가요?”

“아니. 방계 몇 명 섭외하는 거지. 남궁세가도 우리 세가에 방계 몇 명을 섭외했을 거고, 그렇게 정보를 캐고 있을 거야.”

그러면 명재희도 내게 정보를 줬을 때 그런 식으로 정보를 얻은 건가. 나중에 중명각으로 가서 정확한 보고를 받아봐야 알 것 같았다.

어쨌든 암묵적으로 서로 간자들을 보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남궁세가에서 사정 청취를 들은 사람이 하북팽가에 그 정보를 준 거겠지.

“아마 그래서 오대세가는 다 알고 있을 거야. 자네가 남궁세가에게 한 방 날렸다는 걸.”

“구파일방은 어떻습니까?”

구파일방에게 알려져도 상관없긴 했다. 어차피 용봉지회에서 드러낼 거니까. 팽의석은 친절히 대답해줬다.

“그들은 우리 경쟁 대상이 아니니까 딱히 간자를 쓸 이유는 없지. 구파일방은 구파일방 내 서열이 중요하고, 오대세가는 오대세가 내부의 서열이 중요한 거니까.”

“그렇군요.”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물론 그 중에서도 이득을 위해 동맹을 맺고 이합집산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였다.

“그럼 이제 어른들끼리 할 얘기를 해보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팽의석은 클클, 웃었다.

“귀엽게 생겼는데 강단은 있고. 참 특이하구.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알거든. 외모의 미추를 떠나서 자네는 자기 평가가 박하고 소심해야 될 것 같은데, 그건 아닌 것 같구만.”

생각보다 팽의석은 관상을 잘 봤다. 전생의 내가 딱 그랬으니까.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손금보다 중요한 게 굳은살이듯이, 관상보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팽의석은 헛기침을 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현재 오대세가 중의 수위가 남궁세가라는 건 알고 있지? 아니, 현재가 아니라 옛날부터 그랬지.”

“네.”

팽의석이 말했다. 난 바로 그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챘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모르는 게 바보였다.

“저희가 남궁세가를 견제하라는 뜻입니까?”

“큼, 우리 팽가보다 직설적인 화법을 지닌 사람은 처음 보는군.”

아무리 하북팽가라고 해도 이런 걸 얘기할 때는 좀 돌려서 얘기하나보다. 하지만 나한테 그런 건 없었다. 팽의석은 말을 덧붙였다.

“정확히 말하면 남궁세가를 견제하라는 게 아니라, 남궁세가에게 견제를 받을 때 도움을 준다는 것이지.”

난 속으로 픽 웃었다. 얼핏 보면 그게 그거인 말 같았지만, 의미가 완전히 바뀐다.

우리한테 남궁세가를 견제하라고 말을 하면 도와달라는 꼴이 되니까. 견제를 받을 때 도와준다면 하북팽가가 돕는 게 됐다. 기묘한 화법이었다.

“제가 상계 출신이라 손해 보는 장사는 안해서요.”

내가 말했다. 팽의석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매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사이에서 가면만 쓰다가 이런 화법을 들으니 신선한데.”

“상계는 효율적인 게 명예로운 거라서요.”

“그래. 그래. 내가 너무 구식 대화법을 쓰고 있었군.”

팽의석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황금세가가 하북팽가한테 바라는 게 있나?”

“동의를 바랍니다.”

“음. 이건 효율적이지 않은 걸. 어떤 안건에 대해서, 어떨 때 동의를 바라는 얘기를 내가 물어야 하지 않은가.”

“무조건적인 동의입니다. 그 동의를 할 때는 제가 굳이 언질을 안 드려도 알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내가 이 용봉지회를 참석한 이유는 가문을 드높이기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중원을 위해서, 하북팽가에 해가 되지 않을 일, 이런 수사들은 구차하다. 아직 내가 하북팽가를 다 못 믿으니 숨기는 것이다. 내가 믿지 않는데 팽가보고 날 믿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된다고 생각하고 말한 거면 좀 실망인걸. 자네가 뭘 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무리한 요구지.”

팽의석이 검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쓸었다. 역시 용봉지회 예선에서 좀 이겼다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건 힘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일대일이라면 능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었다.

“무리한 요구라기보다는, 가치가 안 맞는 거 아닐까요.”

“가치?”

“저희가 몸집을 키워서 남궁세가를 견제하는 것과 하북팽가의 무조건 동의가 동등하지 않은 가치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팽의석은 잠깐 생각하다가 답했다.

“그렇게 말하면 그렇군.”

“그러면 가치를 맞추기 위해서 이건 어떻습니까?”

난 팽의석을 바라봤다.

“이번 용봉지회가 끝나기 전에, 남궁세가를 하북팽가 밑에 깔아놓죠.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팽의석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팽의석이 광소하기 시작했다.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건물이 흔들린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눈물까지 맺힌 팽의석은 눈물을 다 닦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왠지, 자네랑은 좀 더 깊이 엮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팽의석이 날 바라봤다. 어째 나를 보는 시선이 종리운하고 비슷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해볼까.”

팽의석이 말했다. 큰 틀을 논했으니, 이제 세부적인 사항을 논의할 때였다.

*

역시 허름한 폐가. 물론 겉으로만 그렇고 속은 호화로운 안가였다. 여기는 바로 남궁세가가 낙양에 가지고 있는 안가였다. 오대세가 정도 되면 거의 모든 지역에 안가가 있었다.

“옥면소룡이라. 황금세가의 가주가 해남파의 사람인 거군.”

현재 남궁선우 앞에는 종이 몇 장이 있었다. 이 정도면 한 인물에 대한 정보 치고는 상당히 적은 양이었다. 당장 알게 된 건 오 년 동안 사라져있었다는 것과, 해남파에서 별호를 얻었을 정도로 인상적인 검로를 보여줬다는 것뿐.

남궁선우는 일정을 확인했다. 아직 용봉지회 예선은 끝나려면 스무 날은 남았다. 슬슬 본선만 참가하는 사람들과 문파들도 올 때였다.

그들이 시간을 남아서, 낙양을 구경하러 오는 건 아니었다. 모든 건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본선은 예선과 달리 상대를 미리 고지하기 때문에, 상대가 어떤 무공을 쓰는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최소 본선 칠주야 전에 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이번에 형산파도 참석하겠지?”

“딱히 유망한 후기지수는 없지만 올 겁니다. 봉문이 풀린 이후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으니까요.”

“옹진수 그 노인네는 아직도 구대문파에 눈이 멀어있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바뀌더군요.”

남궁선우가 웃었다. 그렇다. 세상에 바뀌는 사람은 없었다.

해남파면 구대문파의 말석. 형산파가 손을 안 잡을 이유가 없었다. 가뜩이나 해남파를 끌어내려야 하는 입장이고, 형산파 봉문의 이유가 황금세가의 침범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형산파에 연통을 넣어보게.”

“네, 알겠습니다.”

장로는 대답하고 바로 방을 빠져나왔다. 남궁선우는 방에 홀로 남았다. 그는 붓을 들어 손잡이를 머리에 툭, 툭 쳤다.

사실 당장 황금세가보다는 금목환을 잡는 게 더 중요했다. 오 년 전에 마교의 간자 명단을 뿌린 장본인이었으니까. 오 년 동안 교에서 그렇게 찾았는데, 이제야 나타나다니.

“기회가 온 건가.”

형산의 유동해가 실패했던 황금세가 삼키기 전략. 어쩌면 다시 황금세가를 먹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남궁선우는 손을 내리고 서한을 조심스럽게 작성해 나갔다.

- 천마천세(天魔千歲), 만마앙복(萬魔仰伏).

서한의 첫 줄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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