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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10화 (111/225)

110화 파란이 모여 파도가 되니

110화 파란이 모여 파도가 되니

시끄러웠던 연무장은 조용해져 있었다. 말을 해도 모두가 동행에게 속삭이는 수준으로 말했다. 그들도 느낀 것이다. 지금 여기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잘하고 왔어.”

“아닙니다. 가주님이 만들어주신 무공 덕분입니다.”

팽차월은 깍듯하게도 내게 공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낙양에서 한두 번 주목을 끌어본 건 아니다.

우리는 그대로였지만, 그들이 우리를 보는 눈빛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지금까지 주목은 그저 흥밋거리나 풍문을 논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황금세가 무인들의 실력에 집중되어 있는 거다.

“···황금세가에 저렇게 훌륭한 무인이 많았었나?”

“지금까지 나온 사람들 중 제일 고수들인데.”

“돈을 주고 무인들을 산 건가? 그러지 않으면 이게 어찌 가능한가?”

“상대가 너무 약했던 거 아니야?”

황금세가 소속의 금월상, 한유림, 팽차월이 차례대로 승리를 거뒀다. 그것도 그냥 승리가 아닌,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준 승리였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해했다.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면 도리어 쉬워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다음 황금세가의 금목환 소협, 진주언가(晉州彦家)의 언선창 소협.”

그 말에 사람들이 고조됐다. 진주언가는 말할 필요도 없이 명문 세가고, 나는 지금 주목받는 세가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잘하고 오거라.”

“다녀오세요.”

“다녀오십시오.”

금월상과 한유림, 팽차월의 인사와 함께 난 일어나 나갔다. 언선창은 빠르게 경공을 써서 연무장에 착지했고, 난 걸음으로 갔다.

진주언가라. 오대세가 바로 아랫급의 세가였다. 오십 년 전까지만 해도 오대세가의 일원이었다지. 황보세가에 뺏긴 이후로는 오대세가로 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곳이었다.

“저 사람이 황금세가의 가주라고? 너무 어려보이는데?”

“맞아. 전에 남창에 들렀을 때 황금세가 가주 이름이 금목환이라는 걸 들었다니까.”

“허, 아까 나온 금월상이라는 친구가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그러나 사람들은 진주언가의 언선창보다 날 바라보기 바빴다. 황금세가가 수면 위에 올라오니, 옛날에 들었지만 잊고 있던 황금세가의 정보들이 술술 나오는 모양이었다.

“···어머, 저 소협. 내 취향이다.”

“나도 취향인데.”

사이사이 여자 무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답지 못하게 생겼구먼. 저 비실한 몸이 어디가 좋다는 건지.”

“잘생겼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재주가 있군.”

“솔직히 잘생기긴 하네. 내가 저 얼굴로 태어났으면 기루에 그렇게 큰 돈 쓸 필요는 없었을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황금세가의 가주라는 거에 놀랐지만, 그보다는 외모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하긴 사실 여기는 외모 평가의 장이기는 했다. 조금만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나오면 웅성이기 마련이었으니까. 특히 한유림이 나왔을 때는 나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아마도 남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일 거다.

“···근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내 얼굴로 기가 모이는 게 느껴진다. 안력도 기의 일종이었다. 글쎄. 나는 그 얘기들을 들으면서 속으로 갸웃했다. 난 지금까지 오 년 동안 폐관해있었고, 어릴 때도 나가본 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 옛날 해남파에서 봤던 소협 아닌가?”

“옥면소룡?”

그걸 듣고 나는 얼떨떨했다. 내 기억에도 희미한 별호였다. 옛날 해남파에서 영해검법을 보여줬을 때 나온 별호였지. 광주에서 잠깐 들은 이후로 들은 적도 없고, 알아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여기서 다시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옥면소룡? 아, 엄청 옛날에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난 처음 듣는다네.”

“있었어. 오 년 전에 해남 간 사람은 다 알지.”

“그러면 황금세가 가주가 그 옥면소룡이라는 건가?”

사람들은 옥면소룡이라는 별호로 설왕설래를 하기 시작했다. 나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옥면소룡이라는 별호를 처음 들었다는 소리가 많으니까.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여기는 별의 별 무인들이 있는 곳. 오 년 전에 해남파의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꽤 섞여있는 거였다. 그 와중에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있었던 거고.

소림사의 심판도 날 유심히 바라봤다. 난 그냥 언선창에게 집중했다. 언선창은 나보다 키가 살짝 작고, 손에 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언가의 무공이라면 언가권이 제일 유명한 만큼, 권법가일 터였다.

언선창은 꽤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자신에게 몰릴 시선들이 나한테 쏠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시작!”

심판의 말과 함께 언선창의 신형이 내 앞으로 날아왔다. 권법을 쓰는 사람인만큼, 거리가 가까이 좁혀졌다.

수많은 권기가 날아왔다. 아직 강기의 수준까지는 못 온 모양이었다. 사실 이게 정상이었다. 그나마 며칠 전에 마주쳤던 팽상문은 성취가 있는 편이었다.

“오오오!”

하지만 강하게 휘둘러지는 권기들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강기를 못 쓴다고 무공의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팔의 색은 푸르뎅뎅하게 변했는데, 기의 흐름이 팔에 완전히 몰려있었다.

난 몸을 좌우로 움직여 권기의 방향을 바깥쪽으로 흩어지게 유도한 다음 장심을 날렸다.

“허!”

우리에게만 들릴 정도로 심판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는 내가 한 걸음도 안 움직이고, 몸짓만으로 무공을 파해한 걸 알아챈 듯했다. 언선창의 눈도 크게 떠졌다.

쾅!

묵직한 타격감. 언선창이 뒤로 크게 밀렸다.

“큭!”

언선창은 주먹으로 연무장 바닥을 긁어서 멈추려고 했지만,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연무장이 한 치만 넓었어도 멈출 수 있었으리라.

당연히 살초를 쓸 생각은 없었으니 나갈 정도로만 조절한 거였다.

“···승자, 금목환.”

심판이 말했다. 어떤 공방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멍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어떤 공방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난 별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금월상과 한유림, 팽차월은 놀라지도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제 가자.”

내가 말했다. 나를 끝으로 오늘치 비무는 끝난 거다. 금월상과 한유림, 팽차월이 바로 움직였다. 우리가 비무장을 빠져나갈 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제 그들의 머릿속에는 황금세가가 강한 인상으로 남았을 거다. 그 인상이 경탄인지, 경계인지, 두려움인지는 두고 봐야 할 노릇이었지만 말이다.

*

소림사의 숭양서원(嵩陽書院). 이곳이 바로 소림사의 사랑채였다. 그곳에는 진중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방현(方峴) 대사. 이번 용봉지회는 좀 파란이 많군.”

“늘 있는 일이었습니다.”

방현이 고요히 차를 마셨다. 파란은 늘 있는 일이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절전된 무공의 의발전인이 나타나지 않나, 영약을 먹은 약초꾼 출신 무인이 나타나지 않나.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명가들은 어릴 때부터 관리를 받고, 훌륭한 무공을 익힌다. 명가의 사람과 보통 사람의 격차는 기연 하나, 두 개로 메워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전과 다르다는 걸 대사도 알지 않은가.”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선우가 말했다. 지금 숭양서원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최소 장로급들의 회동이었다.

“그렇긴 하죠.”

방현이 차를 내려놓았다.

지금의 파란은 전과는 많이 다르기는 했다. 먼저 초유열이 화산파 몰래 예선에 신청한 점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우선권이 있는 사람이 굳이 예선을 신청하다니 말이다.

원래는 그 정도만해도 꽤 큰 사건이라고 할 만한데, 다른 커다란 파란에 묻힌 경향이 있었다.

“황금세가와 천주성이라. 천주성은 참가할 줄 알았는데, 황금세가가 저렇게 갑자기 튀어나올 줄은 몰랐죠.”

다른 사람들이 방현의 말에 침음을 내뱉었다. 그들의 머리를 골치아프게 하는 건 역시 그 둘이었다.

“저희 쪽에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천주성이 각인되는 것보다는 황금세가가 각인되는 게 나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공식적으로 발족한지 얼마 안 된 천주성. 당연히 용봉지회에 사람을 보낼 걸 모두가 예상했고, 그만큼 훌륭한 무인을 보냈다. 자신있게 딱 한 명이었다. 이름은 선우진이라고 했던가.

천주성의 선우진은 훌륭한 무공을 보여줬지만, 사실 사람들의 뇌리에 남은 건 황금세가일 터다. 천주성은 명가들만 알고 있었고 평범한 대중들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에 황금세가는 적어도 이름은 모두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상계라는 틀도 깨부쉈으니 각인될 수밖에 없다.

“근데 용봉지회 예선에서 주목 받으면, 거쳐야 할 일이 있지.”

남궁선우가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 작업과 사적 비무가 암묵적으로 가능한 용봉지회의 예선 특성상, 처음에 두각을 나타내면 집중포화를 맞기 마련이었다.

굳이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간섭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변수를 제거하는 거다.

“뭐, 어떻게 될지는 봐야 알겠지.”

가만히 있던 도존 팽의석이 발언했다.

구파일방, 오대세가라고 해도 마음이 같은 건 아니었다. 서로 동상이몽을 하는 관계였다.

이 파란이 무탈히 지나길 바라는 사람도 있을 거다. 침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세가의 가주가 그럴 거였다. 굳이 말은 안 꺼냈지만, 남궁세가의 자제들이 무림맹에서 황금세가에게 엄청난 창피를 당했다는 건 모두 알고 있었다.

허나 파란이 모여 파도가 되니. 파도 앞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파도를 타는 이지, 파도를 피하는 이가 아니다.

“일단 황금세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으니, 우리는 천주성에 대한 걸 더 고민해봅시다.”

방현이 말했다. 남궁선우는 황금세가에 대해 더 얘기를 하고 싶어했으나, 다른 문파들은 그렇게까지 큰 관심이 없어서 유야무야 넘어가게 됐다.

팽의석은 속으로 웃었다. 남궁선우가 전전긍긍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황금세가는 계속 용봉지회의 핵이 될 거고, 황금세가의 이름값이 커지면 남궁세가는 부담스러울 거다. 이미 그들에게는 은원 관계가 있으니까.

남궁 남매들이야 남궁세가로 가는 건 당연했지만, 남궁선우의 동생인 남궁선용과 같이 동행한 무사들은 음독의 책임을 덮어쓰고 참수당하고 말았다. 참수는 남궁선우가 주관했다고 하는데, 동생의 목이 날아갈 때도 눈 한 번 깜빡이지도 않았다고 한다.

오대세가의 균형을 바꿀 기회가 온 걸까. 어쩌면 황금세가에게 창피를 당한 건 오히려 기회인 것 같았다.

팽의석은 남궁선우를 바라보며 웃었다. 남궁선우는 예의도 없이 불편한 표정으로 얼굴을 돌렸다.

*

용봉지회 사흘 차. 수많은 무인들 중 절반 이상은 탈락했다. 우리 세가에서 나간 네 명은 당연히 순조롭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용봉지회에 마차를 타고 갈 필요도 없었다. 그냥 걸어가도 알아서 경계하고 주목하니 말이다.

그렇게 늘 그랬던 것처럼 이기고 거처로 돌아오니, 뜻밖의 손님들이 와 있었다.

“···황금세가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그들의 안내를 맡은 용소화가 말하기로는, 두 시진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바로 하북팽가의 팽씨 형제들이었다. 나도 내공을 많이 쓴 건 아니어서, 팽상문의 몸은 내상도 없이 깔끔해 보였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물었다. 팽상문은 즉답했다.

“저번에 있던 일을 사과드리고, 말씀드릴 것도 있습니다.”

나머지 두 형제는 가만히 있고, 팽상문만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들은 도존의 명으로 온 것일 테다. 발언권은 직접 나와 싸운 팽상문에게 전부 위임한 듯했다.

팽상문 옆에 있는 사람이 내게 약들을 건넸다. 냄새를 맡아보니 영약이었다. 지금 내가 먹어봤자 도움도 안 되고, 다른 이들에게 딱히 줄 이유도 없었다. 왜냐하면 세가 내에 더 좋은 영약이 훨씬 많았으니까. 그냥 나름의 성의표시인 듯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때는 결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약재들을 받았다. 하수오 재질인 것 같은데, 나중에 닭을 삶을 때 넣으면 맛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실 말씀이라는 건 뭐죠?”

내가 물었다. 팽상문은 당당하게 말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황금세가와 좋은 연을 맺고 싶다 하셔서요.”

나는 팽상문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들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용봉지회에서 사흘 동안 드리웠던 낚싯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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