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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07화 (108/225)

107화 한 번 보여주시죠

107화 한 번 보여주시죠

당연하지만 현재 낙양은 구경하기 좋은 상황은 아니다. 명가들을 노리는 도둑들도 있고, 잡초를 영약으로 속여서 파는 사기꾼들도 있고, 성질이 더러운 고수도 있다.

금월상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금수린은 그걸 알면서도 가고 싶어하는 거고. 날 믿으니까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금월상도 있고, 무인들 두 명도 있다. 바로 한유림과 팽차월이었다.

“자, 다들 죽립들 쓰거라. 괜히 사고 치지 말고.”

금월상이 그렇게 말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눈빛만으로도 시비가 걸리는 곳이 허다한 게 중원이 아닌가.

적어도 그 말은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지 모두 죽립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나가려는 건 단순히 금수린의 구경을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굳이 금월상을 대동하고, 무인들을 데려온 이유는 다 있었다.

“죽립은 쓰지 말죠.”

“응?”

내 말에 모두가 손을 멈췄다. 제일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본 건 금월상이었다.

“왜?”

“오랜만에 바깥 바람인데 답답하게 가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좋아, 좋아. 사실 맞지. 면사 되게 답답하거든.”

금수린이 바로 반응을 해줬다. 여전히 금월상은 날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난 그에게 말을 덧붙여줬다.

“원래 명가들은 이런 곳에서 죽립을 쓰지 않습니다. 자신이 있기 때문이죠.”

금월상의 눈이 수심으로 물들었다. 그는 이제야 내가 낙양을 어떤 마음으로 돌아보려는지 알아챈 것 같았다.

사실 난 낙양을 구경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낙양에게 황금세가를 구경시켜주러 가는 것이었다.

*

하북팽가가 투숙하고 있는 객잔. 침중한 노인 앞에 한 명의 남자가 절을 하고 있었다. 굽어진 몸이 얕게 떨리고 있었다.

“할아버님, 죄송합니다.”

절을 하는 건 팽상문이고, 절을 받는 건 도존 팽의석이었다.

“네가 상대하기엔 버거운 아이었느니라.”

“···죄송합니다.”

팽상문도 바보는 아니었다. 수많은 또래, 수많은 가문의 고수들과 비무를 해봤다. 한 합만 겨뤄봐도, 쉬운 상대인지 어려운 상대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황금세가의 가주라는 녀석은 현재 자신으로서는 죽어도 못 이기는 경지까지 다가가 있었다.

여전히 팽상문은 바닥에 있고, 팽의석은 그런 손자를 바라봤다.

“네 잘못이 무어라 생각하느냐?”

팽상문이 바로 답했다.

“고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덤빈 것. 본가의 명예를 깎아먹은 것입니다.”

“그래. 비무가 아니고 생사결이었으면 넌 죽었을 게다.”

팽의석이 침중하게 말했다. 팽상문은 팽의석의 말에 더욱 움찔했다.

“그러나 네 잘못은 아니다. 우리가 운이 없었던 거지.”

“운이요?”

팽상문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실력으로 진 건데 운은 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팽의석은 설명을 했다.

“거기서 마주치는 순간, 이미 황금세가의 가주는 한 판 붙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게야. 애초에 피할 생각도 없었고, 자신감만큼의 실력도 있었지.”

팽의석은 팽상문의 어깨를 잡아 올렸다. 팽상문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팽상문의 표정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할아버님이 이렇게 칭찬 일색인 사람이 얼마나 있었던가. 당장 팽가의 가주인 자신의 아버지에게도 부족한 점을 알려주시는 분이 할아버님이었다.

“···그래도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건 변함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지.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으니 소문이 퍼지는 걸 막을 수도 없겠지.”

팽의석의 말에 팽상문이 고개를 푹 숙였다. 팽의석은 그런 손자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곧 사라질 풍문이거든.”

“하북팽가가 상계에 졌다는 게 어찌 금방 사라질 풍문이란 말입니까.”

“왜냐하면 많이들 깨질 거거든. 황금세가의 마차가 기억나느냐?”

“···쓸데없이 화려했었죠.”

“이목을 끌려는 거다. 우리와 부딪친 것도 그런 계산을 깐 거고.”

강호에서는 물적으로 화려한 걸 오히려 꺼렸다. 돈보다는 명예, 실력이 중요하다고 늘 가르침 받아왔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걸 역이용해서 이목을 끄는 거다.

“팽가를 물리쳤다는 소문을 듣고, 더 달려들면 달려들었지 피하지는 않을 거다. 강호의 사람들이란 그런 족속들이니까. 당장 하북팽가를 이기는 것보다, 황금세가를 이기는 게 더 쉬워 보이지 않느냐. 하북팽가를 이긴, 황금세가를 이긴 세가가 될 수 있는 기회지.”

할아버님의 말은, 하북팽가 말고도 다른 세가들이 왕창 깨질 테니 묻힐 거라는 거다.

사실 지금 낙양만큼 무인들이 밀집된 곳이 어디있던가. 서로 색깔이 다른 무인들이 있으면 싸우기 마련이고, 여기서 다친 무인들은 용봉지회 예선에 참석해보지도 못할 거다. 그러니 예선 전의 예선이 지금 낙양에서 펼쳐지고 있는 거다.

물론 그런 길거리 싸움은 명가 입장에서는 할 필요도 없고, 덤벼들지도 않으니 하북팽가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넌 형제들을 이끌고 황금세가 사람들을 찾거라. 그 아이의 비무를 보는 건 네 나이 또래에서는 기연에 가깝다. 또래한테 자극받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지.”

갑작스런 팽의석의 말에 팽상문은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하북팽가가 시종처럼 졸졸 쫓아다니라니.

“이 넓은 낙양에서 찾는 게···”

팽상문은 말끝을 흐렸다. 가기 싫기도 했지만, 황금세가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당장 그들이 안 나오고 객잔에서만 쉬면 어떡하라는 말인가.

“그런 걱정은 하지 말 거라. 그 아이는 무조건 나올 터이니. 세가를 알리고 싶다면 이만한 방법도···”

그때 갑자기 저 멀리서 무언가 기파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꽤 강맹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팽의석이 싱긋 웃었다. 중원에서 제일 커다란 비무장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

“사람 구경은 원없이 하는구나.”

금월상이 말했다. 워낙 주변에 사람들이 많고, 이미 부딪쳐서 싸우는 소리도 났기에 우리끼리 말하는데도 목소리를 꽤 키워야 했다.

“싸움이 되게 많이 벌어지는구나. 이게 강호야?”

“위험하다 하지 않았느냐.”

“오라버니랑 목환이도 있고, 금원대 애들도 있는데 뭐가 위험해요.”

금수린의 말이 맞았다. 나랑 금월상뿐 아니라, 금원대에서 가장 강한 팽차월과 한유림도 데리고 나왔다. 금월상의 걱정은 살짝 과도한 편이었다. 그게 가족 걱정이니까 뭐라는 할 수 없는 노릇.

“···저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지? 뭐 저렇게 화려하게 다니나. 돈 뜯기고 싶다고 발악을 하는 건가?”

“저거 팔찌가 백금으로 되어있는 것 같은데.”

“여기가 낙양인지 항주인지 모르겠군.”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더 우리는 시선을 많이 받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언제 싸울지 모르니 편하고 질 낮은 무복을 입었다. 우리처럼 비단옷을 빼입고 나들이처럼 나온 사람들은 아예 없었다.

물론 우리의 옷차림도 화제였지만, 사실 제일 시선을 받는 건 금수린과 한유림이었다. 돈 얘기를 하다가도 그녀들에게 시선이 가면 한 번에 멈추고 말았으니까.

“허, 정말 미색이 대단하구나.”

“뒤에 있는 소저는 정말 서시와 비견할만 하지 않은가. 활달하면서도 기품이 있으니.”

“꾸미지 않고 수수한 소저도 절색이라네. 저 침착하면서 냉정한 표정이지만, 나한테만 부끄러워 할 생각을 하면 벌써 설레지 않는가.”

“저 중앙에 있는 녀석은 양손의 꽃을 든 거군. 생긴 것도 기생오래비처럼 생겨가지고.”

금수린은 그 말들을 듣고 실실 웃었고, 한유림은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그녀들은 절색들이 맞았다. 금수린이 좀 더 화려하고, 무인인 한유림이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또 금월상의 걱정대로 우리에게 달려드는 사람들은 없었다. 두 시진도 안 된 얘기지만, 황금세가가 하북팽가의 장남을 꺾었다는 이야기가 벌써 나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쟤들이 황금세가군. 감색 복장에 금테두리라.”

“저 소협인가? 해남파 매듭이 네 개나 있는데?”

“매듭이 네 개면 장로급이 아닌가?”

사실 해남파의 매듭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었지만, 어떻게든 이목을 끄는 게 내 목적이었다.

난 황금세가의 가주였지만, 무인들이 그걸 인정해주지 않았으니. 차라리 그들이 인정해주는 건 해남파의 사결 매듭이었다. 물론 곧 황금세가를 인정하게 되겠지만, 임시로 쓰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괜찮구나.”

결국 금월상이 인정했다. 우리는 낙양 시내를 둘러보며 단 한 번의 시비도 걸리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

“일단 예선 등록부터 먼저 하시죠.”

“그래. 근데 그게 신청하면 다 되는 거냐?”

“네. 그래서 허수가 많습니다.”

예선 등록은 낙양 시내에서 삼십 리(里)나 떨어진 백마사(白馬寺)에서 했다. 시내에서 하면 복잡할 게 뻔하니 떨어뜨려 놓은 거다.

그러나 그렇게 거리를 많이 떨어뜨려놓아도 사람은 많았다. 우리가 낙양 동쪽으로 나갈 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나갔다.

그래도 길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무인들은 경공을 써서 빠르게 지나갔으니. 우리만 여유있게 걸어갈 뿐이었다.

“···좋다.”

금수린이 낙양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평화로운 흙냄새와 열기를 띤 낙양의 거리. 금수린에게는 모두 생경한 경험이었다.

“나도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구나. 미안하구나. 수린아.”

“아니에요.”

그들은 길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지금까지 그들은 행복을 느낄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세가가 이제 정상화 된 이상, 그들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이자까지 쳐서 받아낼 터였다.

“하긴, 목환이가 생각 없이 나오자고 한 건 아니겠지. 안전하니까 나오라고 한 것 아니겠느냐.”

금월상이 마음이 풀린 듯 웃었다. 음. 난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안전하니까 나오라고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 내가 볼 때는 이제 시작이었다.

“어이! 거기도 용봉지회 등록하러 가는 건가?”

저 멀리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멀게 느껴졌던 인기척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경공을 쓰면서 달려오는 거였다. 팽차월과 한유림이 뒤쪽으로 가서 검병에 손을 댔다.

곧 그들은 우리와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정도까지 왔다.

“···어어?”

그들의 분위기는 갑자기 오자마자 바뀌었다. 남자 다섯으로 구성된 무리였는데, 그들의 시선은 모두 금수린과 한유림에게 가있었다.

“뭐냐?”

팽차월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물었다. 팽가치고는 왜소한 몸이었지만, 하북팽가의 훈련법보다 황금세가의 훈련법을 따랐으니 그렇게 된 것일 테다.

“···소저들, 우리와 같이 가지 않겠소? 우리는 산서에서 온 무인들이라오. 나를 비롯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명가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금수린과 한유림은 어이가 없는 듯 말문이 막혔다. 애초에 지금 이들이 우리를 부른 이유는 뻔했다.

용봉지회의 예선 전에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이름을 좀 알리겠다는 뜻이다. 그래야 예선에서도 기세를 잡고 더 유명해지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화려하게 차려 입은 우리들이 만만하게 보여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진 거고.

근데 그 와중에 금수린과 한유림이 예쁘니 수작질까지 부리는 거다.

“어디 명가요?”

“난 산서진가의 진하철이고, 여기는 수뢰문의 강 공자, 철질파의 도 소협···”

쭉 말했지만 난 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날 바라보는 걸 보니 모두가 처음 들은 듯했다.

대충 파악은 됐다. 산서의 중소문파들끼리 모여서 다니는 거겠지. 근데 명가라고 소개하는 걸 보면 가히 뻔뻔한 듯하다.

“난 황금세가의 금목환인데.”

“···황금세가? 돈 많은 곳이군. 상계가 지금 낙양에 나들이는 왜 온 거지?”

그리고 견식도 짧은 게 내가 황금세가의 가주인 것도 모르며, 내가 하북팽가의 장남을 이겼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아무리 소문이 빨리 퍼져도 안 닿는 사람은 분명 있기 마련이니까.

금월상도 어처구니 없는 듯 말을 꺼냈다.

“···지금 내 동생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매듭이 보이지 않느냐?”

“뭔 매듭?”

진하철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금월상이 내 허리춤을 바라봤다. 매듭은 깔끔하게 없어져있었다. 낙양 시내는 번잡하니 달고 다닌 거고, 여기서는 떼어낼 생각이었다.

“···목환이, 너···”

그제야 금월상은 내 목적을 눈치챈 것 같았다. 난 금수린만 데리고 뒷걸음질로 두 걸음 물러났다.

“자, 형님 먼저 한 번 보여주시죠. 그간 익힌 강뢰도법을 말입니다.”

나는 금월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딱 상대도 몸풀기를 하기 괜찮았다.

금월상이 어처구니 없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지만, 난 그걸 피했다.

“네놈들이 말장난을 하는구나. 상계가 용봉지회라니. 무가인 우리가 혼내주리라.”

진하청이 말했다. 금월상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등에 멘 도를 꺼냈다. 도집도 없는 넓적한 도였다.

난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이게 내가 객잔에서 나온 목적이었다.

우리는 용봉지회의 예선 전에 우리들의 힘을 과시하고, 이름을 좀 알려야 했다. 그래야 예선에서도 기세를 잡고 더 유명해지니 말이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문파들에게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을 말이다.

“간다!”

그때 진하청이 금월상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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