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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96화 (97/225)

96화 나도 보여줄테니

96화 나도 보여줄테니

다음날. 우리는 같이 황금세가 전체를 둘러보기로 했다. 각자 맡은 구역이 있다지만, 어차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구조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같이 보면 좋을 터였다.

시간은 점심을 먹고 난 이후, 오시. 난 아침을 먹고 바로 해도 된다고 했지만 형제들이 말렸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시간을 달라고들 했다.

“근데 목환아.”

“네.”

“꼭 해야 되는 거냐?”

“원래 하려고 했어요.”

금월상은 내 말에 다시 젓가락질을 했다.

오랜만에 옛 전통대로 점심을 같이 먹는 자리였다. 우리를 옭아매던 규칙은 우리가 원할 때 하자 비로소 전통처럼 느껴졌다.

“목환아. 우리 그런 재미없는 거 하지 말고 포양호 구경이나 갈까? 요즘 포양호에 반딧불이들이 그렇게 장관이래.”

“나중에 보러가죠.”

“아니면 네 옷 좀 살까? 아무리 가주라도 가문의 옷만 입을 필요는 없잖아. 넌 뭘 입어도 어울릴 걸.”

“괜찮아요.”

내가 말하자 금수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숟가락으로 깨작거렸다. 한 숟갈 당 밥풀 세 개 정도 먹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점심을 먹는 게 끝나고 시간이 됐다. 내 형제들은 소화가 안 된 듯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럼 외곽부터 둘러볼까요.”

내가 말했다. 금수린이 살짝 움찔했다.

이제는 내당주가 된 구조흠과 부당주들을 맡고있는 구(舊) 형산 제자 넷이 우리를 호위하고, 숭화당주가 된 기철이가 우리를 안내했다. 특이하게도 기철이 좌우에는 용소화와 조예란이 있었다.

“당과들은 맛있게 먹었어?”

난 그녀들에게 말했다. 조그마한 두 머리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내게 곧바로 배꼽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죄송합니다. 가주님.”

딱 봐도 기철이가 시킨 것 같았다. 잡무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게 주목적이었던 것 같다.

난 그녀들의 폭신해보이는 뒷머리를 한 번씩 만져줬다. 딱히 말은 하지 않았다. 용소화한테는 딱히 할 말도 없고, 조예란은 알아서 느끼는 바가 있을 터다. 당주인 기철이가 잘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이제 살짝 형제들이 불안해 했던 이유를 알겠다. 난 지금부터 폐관 수련을 했던 오 년 전까지 명목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가주였다. 하지만 난 그냥 잘하고 있나 둘러보기만 하는 거지, 뭘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

“형님들, 누님. 사열(査閱)이 아니니까 편하게 있으세요.”

“···아, 하하. 동생한테 무슨 그런 걸 걱정하겠어. 너도 참.”

금수린은 어색하게 웃었지만 세 명 모두 들통난 표정이었다. 내가 말했다.

“그럼 외곽부터 가시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꼬투리를 잡으러 가는 게 아니었다.

*

기철은 오랜만에 가주님을 모시면서 두근거림을 느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을 윗사람을 두고 있지만,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상관은 가주님, 금목환 하나 뿐이었다.

누구한테 머리를 조아릴 일이 없는 금월상, 금화청 공자, 금수린 아가씨의 긴장한 표정이라니. 인사하면서 지나치는 다른 시종들과 사람들도 진풍경이라는 듯 황금세가 사람들을 바라봤다.

“흠. 여기는 무곤진(霧困陣)보다는 환진(幻陣)이 더 어울렸겠네요. 만약 침입을 한다치면, 대략 여기서부터 전투가 시작될 건데, 안개와 기감을 혼란케해서 경계를 끌어올리기보다 아예 시각을 통제해서 진에 온지도 모르게 하는 거죠.”

“···음, 아. 그렇네···”

“여기 담당자는 누구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금수린 뒤에서 수염의 끝이 하늘로 올라간 중년인이 재빨리 나왔다. 기철도 저 자를 알고 있었다.

“접니다!”

현재 방진대(防陣隊)의 대주로, 진법에 있어서는 운남에서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금수린 아가씨가 그렇게 돈을 부어서 데려왔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하긴 운남의 진법가들은 어쩔 때는 제갈세가보다 높게 평가받기도 했다. 운남 특성상 안개가 많고, 독물이 많으니 진법을 쓸 일이 많은 거다.

근데 그런 아저씨가 금목환 앞에서 긴장을 하고 있었다.

“방진대의 대주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가주 금목환입니다.”

“아이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가주님.”

“그럴까.”

금목환은 목제로 되고 끝이 뭉툭한 지시봉을 들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바닥에 선을 그어서 무언가를 그려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이 완성됐다. 기철은 봐도 모르겠는 어지러운 그림이었다.

“이게 이 진법의 구조인가?”

“···네, 맞습니다.”

“그럼 여기에 이 소품은 왜 들어가는 거지?”

“아, 그건 여기 흐르는 기운을 역리(易理)하여 괘를 흩뜨리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써···”

구구절절 방진대주의 말이 이어졌다. 금목환은 그 말을 다 듣더니, 오랜 침묵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맞는 이치네. 그래도 사문을 순리로 하고, 생문을 역리로 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 네. 알겠습니다!”

“책임을 묻는 게 아니야. 잘했는데 그냥 의견을 개진하는 거지.”

“아, 네. 네!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방진대주는 땀을 뻘뻘 흘렸다. 금목환은 그 이후로도 온갖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다녔다. 가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이끌어주는 게 가주의 일이니까.

실제로 금목환은 말하면서 어떠한 질책성 발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듣는 사람들이 질책받는 표정으로 들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행정 쪽을 둘러볼까요.”

“그러자!”

풀 죽어 있던 금수린이 머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활기참이 묻어났다. 반면 금화청의 얼굴이 구겨졌다.

“가자꾸나. 다른 이들한테 설명을 구하지 말거라. 내가 다 해줄 테니.”

“아니에요. 담당자들한테 듣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금화청이 체념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외곽의 진법을 맡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이제 움직이실까요.”

“그래.”

기철의 말에 금목환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금목환은 살짝 목을 뒤쪽으로 꺾어서 돌렸는데, 그 행동이 기철의 눈으로는 비무를 하기 전 몸을 푸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가주님은 오랜만에 돌아와도 가주님이었다.

*

난 최대한 할 말만 해주고 있었다. 살짝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건 따로 전달하려고 최대한 참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은 녹초가 돼있었다. 용소화와 조예란도 꽤 힘들어 했다. 애들이니 오래 걷는 걸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하긴 이제 세 시진째다. 물론 딱히 한 것도 없고, 중간중간 내가 둘러볼 때는 앉아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꽤 긴 시간이었다.

“슬슬 애들은 돌려보내. 이제 남은 곳도 거의 없고.”

“아, 네. 알겠습니다.”

기철은 바로 대답하고 용소화와 조예란을 돌려보냈다.

“아, 참고로 중명각(重明閣)에는 지금 각주가 없다. 안휘에 가있거든.”

금화청이 말했다. 난 기억을 떠올려봤다. 중명각이라니. 내가 떠올리기로는 그런 곳은 없었다.

“중명각이요?”

“아, 네가 폐관한 이후에 지어진 이름이지. 비각 말이다. 비각.”

“아, 그렇군요.”

나는 말했다.

“비각은 좀 잘 컸습니까?”

“기본 틀은 갖춰놓은 것 같더라. 내가 보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더 기다려줘야죠.”

내가 말했다. 금화청은 마뜩찮은 눈빛을 했다. 적어도 행정적인 부분에서 금화청의 마음에 들려면 명재희는 꽤 많은 노력을 해야 할 터다.

그러면 비각, 중명각은 갈 필요가 없었다. 넓게 보면 중명각은 금화청의 관할 아래에 있지만 정보기관은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명재희가 차라리 있을 때 가는 게 나을 터였다.

“그럼 남은 곳은 금원대(金員隊)밖에 없군.”

금월상이 침울하게 말했다. 난 이제는 눈치껏 알아들었다.

“아이들이 금원대라는 이름을 받았군요.”

“그래.”

“가시죠.”

우리는 얼마 되지 않아 옥묘각에 도착했다. 금화청이 옥묘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건물 이름 자체가 바뀌었다. 이제는 옥묘각이 아니라 금원대야.”

“그렇군요. 그렇게 바꿔야죠.”

내가 옛 주인이었다지만, 이제 내 자리는 본원이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술냄새가 훅 끼쳤다. 냄새가 나는 방에는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 장로님, 목 장로님.”

두 사람은 등받이가 올라간 침대에 누워있고, 판관들이나 쓸 법한 검은색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아. 드디어 왔군. 너무 안 오기에 심심해서 한 병 하고 있었네.”

“가주가 왔다기에 오늘 무한에서 바로 왔구먼. 너무 늙은이들을 기다리게 하는군.”

강운과 목현학이 말했다. 금월상은 이러고 있을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됐군요. 오랜만입니다.”

“그래, 가주도 참 멋있어졌군.”

“잘생길 건 알고 있었지만, 더 짜증나게 잘생겨졌구먼.”

강운과 목현학이 한 마디씩 건넸다. 나는 그들을 보자마자 물었다.

“근데 장로님들은 왜 아직 세가에 계십니까?”

“응?”

강운과 목현학이 침묵을 이었다. 그 대답은 뒤에서 금월상이 했다.

“황금세가가 장로님들을 위해 지어준 집있잖아. 거기가 상당히 마음에 드신 것 같더라고. 가족분들도 무한에서 아예 짐을 싸서 오셨더라고.”

“아, 그래요?”

강운과 목현학은 그제야 검은 안경을 내리고 등을 일으켰다.

“크, 정말 가주. 대박이야. 난 그렇게 호화로운 집은 처음 봤네. 무슨 궁궐이야. 궁궐.”

“크흠. 솔직히 너무 잘 만들어줘서 민망할 정도지. 그만큼 애들은 좀 더 신경 썼으니 후회하지는 않아도 되네.”

그들은 살짝 민망한 모양새였다. 할 일이 없는데 그냥 놀러온 거라는 말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러라고 지어준 집이다. 이 둘은 남창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치안 유지가 되는 존재들이었다.

“후회 안합니다.”

그 이후로도 강운과 목현학은 황금세가와 남창의 좋은 점에 대해서 구구절절 시를 읊었다. 말만 들으면 이백이 말한 도원경이 황금세가였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림맹은 그럼 언제쯤 다시 가십니까?”

강운과 목현학은 움찔했다. 눈동자가 한 쪽으로 쏠리는 걸 봐서 선호하는 대화 주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무림맹에 가기 싫은 걸까.

“뭐, 저희야 있어주시면 감사하죠.”

“큼, 그래. 그래. 우리가 아예 놀러온 건 아니니 말이야. 애들도 좀 볼 겸.”

강운이 말했다. 그건 진심인 것 같았다. 하긴 그들에게도 오 년이란 시간이 있었다. 친밀함이라는 게 안 들었을리 없다.

“그럼 애들 보러 가겠습니다.”

“그래, 그래. 깜짝 놀랄걸세. 다들 너무 많이 컸거든. 징그러울 정도로.”

“애들은 다 그렇죠.”

“지금 난 가주도 좀 징그러운데?”

강운이 웃었다. 그런가. 하긴 그 아이들과 나의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으니까. 한유림은 나보다도 나이가 한 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는 곧 옥묘각 뒤뜰로 갔다. 뒤뜰은 연무장으로 개조된 곳이었다. 뒤뜰에는 이미 일흔두 명의 아이들이 전부 각지게 서있었다. 그 맨앞에는 한유림과 팽차월이 있었다.

여자치고는 큰 키로 자라있었다. 머리 반 개 차이 정도. 팽차월은 하북 팽가답게 몸집이 우직하니 중심이 아래쪽에 단단하게 잡혀있었다.

“오랜만이네.”

한유림과 팽차월은 내 말에 잠깐 대답하지 못했다. 곧 그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다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가주님.”

“그래.”

그들은 꽤 벅찬 목소리였다. 당장 한유림과 팽차월뿐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모두 초롱초롱한 눈빛이었다.

“너희 둘이 대주야?”

“아뇨. 제가 대주고 얘가 부대주입니다.”

한유림이 말했다. 팽차월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지만, 맞는 듯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래? 어떤 기준으로 뽑은 거야?”

“당연히 일대일 비무입니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여기서 한유림이 제일 강하다는 건가. 하긴 검후의 직계혈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건 설명됐다.

“그래. 대주. 지금까지 너희들이 보낸 오 년을 설명해봐.”

금월상을 힐끗 보니 꽤 긴장한 표정이었다. 한유림은 목을 큼, 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들은 어떤 공부를 했고, 어떤 가르침을 받았으며, 어떤 훈련을 했고, 어떤 진법을 배우고, 어떤 진법을 만들었다는 걸 설명했다.

그걸 다 듣는데만 이 각이 걸릴 정도였다. 결국 한 마디로 정리하면 훈련만 하고 살아왔다는 의미였다. 나와 같았다.

“잘했네.”

“···감사합니다.”

한유림은 그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는 듯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팽차월도 마찬가지였다.

“너희들 내가 준 황금공은 몇 성까지 익혔지?”

“전 육 성이고, 아이들은 오 성과 사 성 사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구나.”

벌써 반 이상을 익혔다. 아닌가. 아직 반 밖에 안 익힌 걸까. 나는 머리를 살짝 긁었다.

“높은 건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만든 무공인데도 감이 안 잡히네.”

왜냐하면 병법이 결국 전쟁에서 증명하는 것처럼, 무공은 싸움에서 증명해야 했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너희들이 보낸 오 년을 보여줘.”

한유림과 팽차월, 뒤에 사열한 일흔 명의 눈빛이 달라졌다. 내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들은 거다. 더운 저녁 공기가 불어왔다.

나도 오 년의 훈련을 했고, 이들도 오 년의 훈련을 했다.

“나도 보여줄 테니.”

순식간에 금원대의 투기가 건물을 통째로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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