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사마외도(邪魔外道)
86화 사마외도(邪魔外道)
상인의 여유 있던 입꼬리가 내려갔다. 곽진도와 금월상, 한유림은 숨을 급하게 들이켰다.
내가 말한 대로라면, 마교가 공식적으로 중원에서 발견된 게 장장 이십 년만이니까. 곽진도야 남해습격 때 마교와 직접 상대를 해본 사람이지만, 아직 스물이 채 되지 않은 금월상과 한유림에게는 충격이었을 게 분명했다.
“황금세가의 가주. 일개 상인에게 무슨 모함이란 말이오? 유림이에게 물어보시오. 난 이십 년 동안 절강에서 상인을 한 사람이오. 저기 뒤의 대협 분도 아시지 않소. 보타암에 출입할 수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남자는 이제는 정말 상인처럼 어깨를 좁히고 비굴한 웃음을 보였다. 이미 오만한 태도를 보여 놓고 바로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지만 그게 너무 당당하여 한유림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스승님. 한유림. 저 상인의 말이 어떻습니까?”
“확실히 보타암으로 출입하는 외부 인원은 엄청난 검증을 받아야 하지. 예를 들면 조경(造景)을 하는 사람들을 들여보내려고 해도 과거에 무슨 행적을 했는지 다 알아보니까. 보타암에 있었던 일은 당연히 발설하면 안 되고. 검후님과 친한 몇몇 무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랬지.”
곽진도가 말했다. 하지만 곽진도의 말투는 날이 서있었다.
“···저 아저씨는 확실히 절강에서 오래 장사를 하신 분이에요. 제가 언니들이랑 항주에 외출을 했을 때도,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걸 봤는걸요.”
한유림의 말에 상인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한유림은 곽진도와 다르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옛날에 보타암에서 봤던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지금 당장 피 냄새로 가득한 혈랑파의 건물과 검게 불탄 시체들을 보고 있지 않은가.
“갈!”
곽진도가 소리를 쳤다. 대기에서 작은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상인은 눈을 찌푸렸다.
“뻔뻔히 내 앞에서 혹설공(惑說功)을 사용하다니. 본인을 마교 사람이라 알아달라고 울부짖는 셈이구나.”
그제야 멍하니 있던 금월상과 한유림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난 몰랐다. 무슨 음공(音功) 같은 기전이었나. 난 감지를 하지도 못했고, 걸리지도 않았다.
하긴 금월상과 한유림과 같게 나도 마교는 처음 보는 상대였다. 사마외도(邪魔外道)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상궤와 맞지 않고 사특한 술법을 쓰니 마교인 거다. 난 그 수법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다시 차렸다.
“한유림. 넌 거짓말을 한 게 아니지?”
“···네?”
문득 내가 물었다. 난 무공으로서의 환술은 모르지만 진법으로서의 환술은 알고 있다. 내가 전혀 모르는 환술이라. 한유림은 내가 예상한 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째선지 저 아저씨가 결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어도 그건 정말 거짓말이 아니에요.”
“그렇구나.”
그렇다면 실제로 그는 절강에서 오래 있던 상인이었고, 보타암으로 출입할 만큼 신뢰를 쌓은 사람인 거다. 다만, 그렇게 인식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는 모른다.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잠식되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한 사람에게 엄청난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기에 불공정하기도 한 방법.
지금 저 마교의 사람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마교는 진짜 미친놈들의 집합소구나.”
“계속 무슨 말을 하는 거요? 혹설공은 또 무슨 말이고?”
상인은 그 와중에서도 발뺌을 했다. 금월상은 몸을 잠깐 움찔했는데, 도를 넘은 어이없음에 소름까지 돋은 듯했다.
“명효숭성전(明曉崇聖殿) 앞에서도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는가?”
내가 물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를 하냐는 눈빛이었다. 명효숭성전을 모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상인은 그 뜻을 알기에, 저렇게 떨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말은 어디서 주워들었느냐?”
상인이 물었다. 통통한 주먹을 꽉 쥐었는데, 푸른 핏줄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왔다.
“다시 말하마. 명효숭성전 앞에 대고 마인이 아니라는 걸 말할 수 있는가?”
여전히 내 주위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고, 상인만 부들부들 떨었다. 상인의 피부가 점점 부풀었다.
곧 터질 듯 불어난 상인의 몸에서 곧 물큰해 보이는 보라색 물이 흘러나왔다. 물은 계속 빠져나왔다. 보라색 물의 냄새는 고약했다. 물이 빠져나오면서 뚱뚱한 체형 속에 있는 건장한 체격이 서서히 드러났다.
“···처음 보는 술법이군.”
곽진도도 멍하니 그 변태 과정을 바라보았다. 물을 다 뺀 남자의 옷은 헐렁해졌다.
그러나 아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푸근하고 통통한 얼굴 대신 날렵한 턱선을 가진 얼굴, 하얀색 피부 대신 갈색 피부. 아예 다른 사람이 됐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남자는 나를 노려보았다. 아까 비굴함과 뻔뻔한 눈빛과 다르게 살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명효숭성전을 어찌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먼저 질문했지 않나. 먼저 대답해. 그러면 나도 대답할 것을 명효숭성전 앞에 맹세할 테니.”
남자는 여전히 내게 살기 어린 시선을 고정하고 입을 움직였다.
“천마신교의 장소열이다. 이제 네가 대답할 차례다. 명효숭성전을 어찌 알았지?”
그 말에는 다른 사람들도 궁금한 듯 나를 쳐다봤다. 어찌 알았냐. 간단했다. 전생의 감옥에서 마교도들이 이 말을 쓰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실을 강조할 때 명효숭성전 앞에 대고 맹세한다는 말을 주로 했다. 유치하지만, 모든 마교도는 그걸 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다.
정확히 명효숭성전이 어떤 곳이고, 뭘 하는 곳인지는 난 몰랐다. 그냥 그 말만 들었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내 대답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외진 곳에서 타고 있던 전각의 불이 본채까지 붙었다. 장소열의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물들었다. 나는 추가 설명을 해줬다.
“내가 마교도가 아닌데 명효숭성전에 대해 맹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 말을 믿은 당신이 멍청한 거야. 난 명효숭성전 앞에 내가 여자라고 맹세할 수도 있어.”
남자의 눈빛에는 더욱 살기가 짙어졌다. 이빨을 꽉 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명효숭성전이라는 말을 내게서 들었더니 정신이 잠깐 혼란해진 것 같았다. 그가 저렇게 살기를 태우는 것도 내 말이 옳다고 증명하는 것이었다.
“본교를 모욕하는구나.”
장소열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더 품이 커진 소매에 손을 갑작스레 넣더니, 작은 쇠공 하나를 들었다.
“···벽력탄이라.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곽진도가 한숨을 쉬었다. 나도 대충 눈치는 챘지만 실물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반경 이 장은 초토화시킬 수 있는 힘이 저 작은 공에 담긴 거다. 물론 정파에서는 금기로 취급되어 안 쓰는 물건이었다.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있구나. 천류유성검.”
장소열이 곽진도를 보며 비웃었다. 하긴 곽진도를 알 수밖에 없었다. 상인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집했겠는가. 절강 근처의 초절정고수들에 대해서는 전문가일 터다.
“과거?”
“일반적인 벽력탄이 아니거든.”
장소열은 그 말을 하면서 바로 벽력탄을 우리 쪽으로 던졌다. 바로 곽진도의 반달형 검강이 사출되고, 벽력탄을 반으로 갈랐다. 뇌관을 노린 검격이었다.
허나 그 쇠공이 반으로 갈릴 때, 분홍색 연무가 뭉게뭉게 피어났다. 나도 그 안개가 당최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연무가 퍼지는 속도는 너무도 빨라서 순식간에 혈랑파 본채를 완전히 뒤덮을 정도였다.
그 연기가 자욱해지면서 희미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당황하는 금월상, 한유림, 곽진도의 목소리와 함께, 신경질적인 장유열의 목소리가.
“환마(幻魔)께서 한마디 하시겠군.”
그리고 눈을 깜빡였을 때, 어느새 안개는 걷혀있었다. 아까 내가 서있던 혈랑파 본채 외곽의 장원이었다.
그러나 앞에 장소열은 없고, 옆에는 금월상, 한유림이 없고, 뒤에는 곽진도가 없었다.
“사마외도는 기감으로 못 잡는 건가.”
확실히 신기했다. 진법과는 다른 이상한 구조였다. 그렇지만 신기해하면서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기감은 상단전이 열린 효과다. 그러나 내게 수단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바로 사기, 마기와 정반대되는 태을헌원신공의 진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난 바로 진기를 끌어올렸다.
흰 빛이 내 단전을 타고 흘러나와 주변을 비췄다. 허나 빛이 닿는 주변은 오히려 어두워졌다. 난 그곳에서 밝은 길 하나를 발견했다.
내 앞에 환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지도가 펼쳐졌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또 모를 일이었다.
난 땅을 박차고 뛰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
한유림이 눈을 떴을 때는, 애초에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 그저 장원에 그녀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대체 무슨 기전으로 이런 환술이 가능한 걸까. 이것이 바로 사술(邪術)이었다. 그녀는 푸르게 날선 칼을 들고 천천히 걸었다. 여기가 환상의 공간인 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을 곤두세웠다. 진짜 자연에 있는 것처럼 바람도 풀고, 풀도 부스럭거리니 그녀의 심장은 덜컥이다 뛰다가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하아.”
한유림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녀는 충격이었다. 옛날부터 보타암에 왔던 그 상인 아저씨가 마교도였다니. 도무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까는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혼자 있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보타암을 출입했던 상인 아저씨가 사실은 마교도였다. 그리고 그 사실에서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도출됐다. 아까는 왜 미처 이 생각을 못했을까. 본인이 바보 같다고 여길 정도로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고독(蠱毒).”
분명 금목환, 아니, 가주님이 말하지 않았는가. 칠색고의 냄새가 풍긴다고.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봇짐 안에 있는 물건을 어떻게 맞추는지. 분명 고약한 냄새가 풍기기는 했지만, 그걸 어떻게 정확히 얘기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마교의 물건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허장성세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가주님은 말도 안 되는 일을 당연하게 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럼 저 상인은 고독을 팔았다는 거다. 고독의 증상은 정확히 모른다. 애초에 정파에서 금기인데 효과를 알아서 뭐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리 강했던 어머니가 그렇게 머리를 긁고 벽에 부딪쳤던 건, 고독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었다. 배불뚝이 상인이 보타암에 고독을 퍼뜨린 거다.
근데 대체 어째서, 다른 언니들은 그런 증상을 보이지 않았을까?
“악!”
갑자기 한유림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검이 땅바닥에 철그렁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너무 시답지도 않아서, 망각에 호수에 묻어두었던 기억이었다. 분명 시답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물음과 답변이었다. 이런 기억을 어떻게 추억하고 산다는 말인가. 그 생각이 떠오른 것도 그녀의 간절함이 만든 것이었다.
‘유림아. 여기 당과다.’
‘어, 저 돈 없는데요.’
‘그냥 아저씨가 주는 거야.’
기억들은 두루마리가 펼쳐지듯 서서히 드러냈다. 처음에는 목소리만,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얼굴, 그 다음에는 그 상황, 마지막에는 색이 입혀졌다.
‘감사합니다.’
‘유림아, 너희 어머니가 검후시지?’
‘네, 앗.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허허. 괜찮다. 대충 눈치 채고 있었으니까. 너랑 나만의 비밀로 하자꾸나.’
그리고 또 건네지는 당과 하나. 어린 한유림은 바로 당과에 정신이 팔려 어떤 말을 했는지도 까먹었다.
‘이렇게 당과를 좋아하다니. 너희 어머니도 당과를 좋아하더냐?’
‘에이. 저희 어머니는 동과만 먹어요.’
‘동과? 아, 보타암은 확실히 그걸 많이 달라고 하긴 했어.’
‘진짜 맛없어요. 언니들도 먹었는데 맛없댔어요. 그래서 동과는 저희들 중에서도 어머니밖에 안 먹는다니까요.’
‘아하.’
그것을 들음과 동시에 장소열은 바로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귀여운 걸 바라보는 듯한 미소는, 사실은 회심의 미소였던 거다.
한유림은 입술을 씹었다. 그녀의 연한 입술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머니가 꼭 동과를 먹어서 고독에 걸렸는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아직 말이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놀러온 것도 아니고. 가주님의 호위로 온 게 아닌가. 늘 어머니는 자기 본분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다.
“흐윽.”
허나 그 의지는 순식간에 꺾였다. 한유림은 전신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한유림이 받아들이기에는 심한 충격이었다. 정말, 정말 자신은 당과 두 개에 어머니를 팔았다는 말일까. 그녀는 멍하니 자신처럼 무력하게 널브러진 검을 바라봤다.
“유림아. 뭐 힘든 일이라도 있는 게냐?”
한유림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목을 홱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다시 상인의 모습으로 돌아간 장소열이 있었다.
“여기, 당과 하나 더 주랴?”
장소열은 봇짐에서 당과를 꺼내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한유림은 멍하니 장소열이 내민 당과를 바라봤다.
곧 그녀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주변에 한기가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