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제일 유명한 사람들
83화 제일 유명한 사람들
순식간에 곽진도가 검파를 날려 징을 친 혈랑파 무인의 심장을 뚫었다. 징소리가 선하령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이었다. 무인은 징을 들고 땅바닥으로 푹 쓰러졌다. 동시에 선하령의 땅이 진동했다. 기마병이 떼로 달려오는 듯한 소리였다.
아까 상인의 말대로 혈랑파 녀석들은 선하령 전체를 쥐 잡듯이 뒤지는 모양이었다. 대충 그들의 생각이 보였다. 절강을 확실히 잡아놓겠다는 뜻이었다.
상인들이 순식간에 우리에서 멀어졌다. 중원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등이 터지는 건 아무래도 평민들이니까. 이미 내려가기도 늦었다고 판단한 듯, 모두 짐을 열고 갑옷을 허겁지겁 입었다.
“젠장! 하도 안 썼더니 갑옷이 줄어든 것 같군!”
“갑옷이 줄어든 게 아니라 자네 몸이 부풀은 게지.”
“오랜만에 무인들의 싸움을 보겠군.”
상인들은 생각보다 혼란스러워 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중원 전 대륙을 돌아다니니 별의 별 꼴을 다 봤을 거고, 간담은 어느 무인보다도 튼튼한 것이었다.
“거 대협들! 혈랑파놈들을 다 죽이면 보화상단에서 섭섭지 않은 보상을 하지!”
아까 우리를 말렸던 상인이 줄밖으로 나와 소리를 쳤다. 좌중의 상인들이 모두 웃었다.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도 그들은 호탕했다. 난 짐을 풀어 자신을 막을 보호구를 찾는 상인들을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찾을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까 우리를 말렸던 상인의 짐이 멀리서 보였다. 난 그에게 순간 날아갔다. 날 바라보던 상인들은 내가 일으킨 바람을 맞고 난 다음에야 내가 움직인 줄 알았다.
“억! 깜짝이야!”
중년의 사내는 쭈그려 앉아 짐을 다시 싸다가 내가 앞에 나타나자 엉덩방아를 찧었다.
“소협. 내가 아무리 강호에 잔뼈가 굵었어도 그렇게 막 나타나면 쓰나.”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나는 손을 내어 상인을 일으키고, 짐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안에는 화려한 연극용 가면들이 있었다.
“저거 세 개만 주시겠어요?”
“···음, 동전 열다섯 푼일세.”
“네.”
저번 광주에서 은자를 줬다가 괜히 시선을 받아, 이번에는 동전들을 가지고 나왔다. 어차피 우리는 절강에 돈을 쓰러 가는 게 아니었다.
난 가면 세 개를 챙기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접시를 날리듯 가면 세 개를 세 사람에게 던졌다.
“이렇게 절강에 다 퍼져있는 거면, 얼굴을 숨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반쯤은 즉흥적인 판단이었다. 명재희에게 듣기론 혈랑파가 팔백 명 정도 된다고 들었다. 물론 그들 중 태반은 삼류 무뢰배들이겠지만, 그래도 그들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이제 혈랑파의 무인들은 지척까지 다가왔다. 곽진도와 한유림, 금월상은 곧장 가면을 썼다. 연극용이라서 좀 우스꽝스러웠다.
사실 나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명재희가 골라준 그 금색 호랑이 가면이었다. 너무 화려하다보니 오히려 싸구려처럼 보였는데, 그게 참 마음 에 들었다.
그렇게 나도 가면을 꼈다.
“온다.”
곽진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수풀에서 박도(朴刀)를 든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난 그들을 찬찬히 바라봤다.
생각보다 일렀지만, 혈랑파와 대면이 이루어졌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색색이 섞인 무복은 그들의 무공 수준에 비하여 질이 좋았다. 문파에 돈이 많다는 뜻이리라.
그들은 곧바로 우리를 원으로 둘러쌌다.
붉은 복면으로 입을 가린 남자가 하나가 나와서 짧게 포권했다.
“어떤 고인이신지 모르나, 절강은 혈랑파의 영역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별 볼일 없는 사파의 무인이라고 해도, 근처에 널려있는 시체를 보면 어떤 반항도 없이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복면의 남자는 퍽 예의 있는 말투로 말했다. 물론 곽진도는 그 예의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예의를 좀 지켜달라는··· 흡!”
복면의 남자가 말을 중간에 끊었다. 곽진도가 기를 뿜어낸 것이다. 그가 뿜어내는 살기는 상인들과 우리를 피해 혈랑파 사람들에게만 정확히 꽂히고 있었다.
“으윽!”
오기조원에 들어선 초고수가 뿜어내는 기파는 그들이 감당할 바가 아니었다. 몸이 얇고 약해보이는 무인들은 다리를 후들거리다가 땅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그래도 붉은 복면을 쓴 남자는 어깨만 좀 움찔했을 뿐이었다.
“굳이 혈랑파와 척을 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복면을 쓴 사람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참으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통행료를 내시면, 저희가 관리하는 항주, 서호의 특혜를 받게 해드리겠습니다. 놀러 오셨든, 다른 목적으로 오셨든 묵을 곳과 먹을 곳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곽진도도 피식 웃었다. 그들은 절강을 드나드는 고수들을 이렇게 섭외하고 있었다.
“만약 그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저희가 관리하는 사업장에는 못 들어오시겠죠. 정파의 고수분이시니 힘없는 상인들을 겁박하시지는 않으시겠죠?”
복면의 사내는 꽤 강하게 나왔다. 아까 상인이 하던 말 그대로였다. 확실히 저렇게 양민을 방패로 삼으면 정파의 고수들은 별 수가 없다.
그들이 절강에 오래 머무르며 혈랑파를 격퇴시킬 게 아니라면 소란을 내봤자다.
그야말로 자신한테 돌아오는 것 없이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인들의 그런 심리를 노린, 나름 머리를 잘 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오판한 게 있었다. 바로 우리의 목적이다.
“우리는 놀러온 것도 아니고, 절강을 통해 어디로 가려는 것도 아니야.”
내가 앞에 나서서 말했다. 혈랑파 사람들이 모두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가면을 쓴 걸 보면 대충 눈치 채야지.”
내 말에 복면의 사람이 복면을 벗었다. 그의 입은 한쪽이 비틀려 올라가있었다.
“그래,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다.”
휘익!
말이 끝난 남자가 휘파람을 불었다.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나무 사이로 독침과 암기들이 내게로 날아왔다. 앞에 있는 남자들도 세 명이 내게로 박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굳이 내게로 오는 건 내가 제일 약해보였기 때문일까.
암기가 지척에 왔을 때도 나는 검병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미 왼쪽에서는 연기를 내뿜는 한기가 나왔고, 오른쪽에서는 선후령 전체를 울리는 뇌성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반응 괜찮구먼.”
뒤에 있던 곽진도가 웃었다.
한유림과 금월상은 도끼눈을 뜨고 각자 방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나도 곽진도와 같은 생각이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유림이도.”
“형 노릇 한 번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이게 제 일인데요.”
내 말에 금월상과 한유림이 대답했다. 복면을 쓰고 있던 남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 호랑이 가면 쓴 놈을 죽여라! 저 놈이 무공을 못하는 놈이다!”
아주 비장하게 명령을 내렸지만, 그 내용은 참으로 사파다웠다. 사파답게 각자 다른 무기들이 내게 날아왔다.
사모, 박도, 철편, 쇠뇌, 유성추, 낭아봉 등등 많기도 했다.
허나 내 좌우에는 여전히 한유림과 금월상이 있었다. 한유림의 검에 푸르고 차가운 검기가 맺혔다. 그건 분명 그녀가 원래 가졌던 경지일 것이었다. 무공을 안 배웠던 사람이 한 달 만에 검기를 배울 리 만무하니까.
한유림은 날아온 무기들을 다 막은 다음에, 내게로 붙은 무인을 베었다.
금월상게은 이상하게 넓적한 도를 들고 있었다. 아마 강뢰도법에 맞는 도를 따로 구한 모양이었다. 커다란데다가 도의 날이 서있으니, 물을 베는 듯 사람을 자르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왼쪽, 오른쪽에서 각자 허리를 벤 두 개의 기가 부딪쳐 가운데 사람에서 폭발했다.
콰쾅!
폭발에는 으레 흙먼지가 올라온다. 저 복면의 남자는 계속 호랑이를 공격하라고 날뛰고 있었다.
이래서 무지가 문제였다.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 우리가 가면을 쓴 것과 별개로 그들은 첫 시체들에 있던 완벽한 남해십이검의 흔적을 알아채지 못했다.
“으아악!”
먼저 소리가 들린 쪽은 금월상이 달려든 오른쪽이었다. 금월상의 검에선 나무뿌리 같은 뇌기가 뻗쳐 나왔다.
난 감탄했다. 금월상이 싸우는 건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 금월상은 역시 무재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무공을 믿고 싸우는 게 아닌, 기를 공격할 때 발출하고, 수비할 때 회수하는 완급조절이 확실했다.
“상대는 뇌기를 쓴다! 최대한 떨어져라!”
누군가가 명령을 내렸지만 그런 명령이 제대로 통하면 사파일리가 없다. 결국 동선이 겹친 사람들은 금월상의 일검에 휩쓸렸다.
금월상은 강뢰도법이 가진 패도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 이놈들은 뭐냐!”
사내는 꽤 당황한 듯했다. 조심할 건 곽진도 하나라고만 생각했을 터이니.
특히 나보다 몸집이 작은 한유림이 혈랑파 사람들을 쓸어내는 건 그에게 충격인 것 같았다.
“이 쥐새끼 같은 년이!”
혈랑파의 거구가 분노를 하며 철퇴를 한유림 쪽으로 내려쳤다. 한유림의 움직임은 전혀 끊어지지 않았다. 선이 아름다운 움직임이었다. 아마, 보타암의 무공이 아닐까.
그녀는 작은 몸집으로 동작이 큰 공격들을 모두 흘려내고, 검무를 추듯 칼을 휘둘렀다.
광채가 섞인 푸른 한기가 나왔다. 저것이 구음절맥의 음기였다.
“커억!”
한유림의 검에 베인 사람들은 피가 나오지 않았다. 베는 순간 한유림의 검에 담긴 한기에 피가 얼었기 때문이다.
콰콰쾅!
그들의 싸움에 난 그냥 주변에 있는 상인들을 막아줬다. 진각을 썼을 때 그 밑에 작은돌이라도 튕겨나가면, 일반인들에겐 거의 탄지신공(彈指神功)급의 위력이니 말이었다. 물론 그들이 갑옷을 입었어도 안 맞는 게 나았다.
“오오오!”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들이었군!”
“혈랑파 녀석들, 그렇게 날뛰더니 결국 제 적수를 만나는군!”
구경을 하던 상인들은 한유림과 금월상의 검무를 홀린 듯이 쳐다봤다. 그들의 검술은 이미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사파 무뢰배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일검에 피가 솟고, 일검에 목이 떨어진다.
난 검집을 휘둘러대며 흙먼지들과 자갈들을 걷어낼 뿐이었다. 그때 뒤에서 한 상인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소협, 정말 아까 한 말이 맞소?”
“무슨 말이요?”
“여기 관광을 하러 온 것도 아니고, 통과하기 위해서도 아니라니. 그럼···”
난 뒤를 돌아봤다. 상인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 상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상인이 나를 바라보며 초롱초롱 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맞습니다. 혈랑파를 찾아 왔습니다.”
모든 상인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그 답을 기대했지만, 내가 그렇게 대답하는 건 반신반의한 모양이었다. 그만큼 혈랑파의 횡포가 심했다는 것일 테다.
“후, 난 절강의 거래처들을 싹 끊을 생각도 했다니까. 정말 다행이지.”
“정말 성인 같은 분들이었군. 어찌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 하나 없이 남을 위해 일한다는 말인가."
상인들은 바로 침을 튀길 정도로 입을 빠르게 놀려 우리들을 칭찬했다. 물론 우리들은 주산파의 기록이라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지만, 그들이 알 필요는 없었다.
그새 상인들은 천하의 대협이네, 신선의 재림이네하는 허무맹랑한 칭찬까지 넘어갔다. 누가 부풀리기 좋아하는 상인들 아니랄까봐 벌써부터 풍문을 만들고 있었다.
“젠장!”
상인들이 우리들의 칭찬에 열을 올릴 무렵, 전장은 이미 정리되고 있었다.
그들은 후퇴하라는 말도 없이 각자 도망갔다. 아예 절강 바깥으로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안 돌아올 거였다.
일방적인 격전이 한바탕 휩쓸고 가자, 상인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정말 대단하군! 내 옛날에 하북팽가 후기지수의 비무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강하더군!”
“어디서 온 고인들인지는 몰라도, 대단한 협객들이야!”
상인들이 우리를 지지하는 건 당연했다. 혈랑파가 없어도 다른 세력들이 들어오겠지만, 그래도 대놓고 횡포를 부리는 혈랑파보다는 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혈랑파를 꼭 부숴주길 바라네! 지역 상인들도 힘들어하더군. 관리비가 좀만 늦어도 영업하는 곳을 개판으로 만들더만.”
“네.”
나는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은 흥분으로 가득 차있었다. 상인들이 우리를 이렇게 좋아해주면 나쁠 건 없었다. 그들에게 맡길 역할도 적절한 것이 있었으니까.
“여러분께 부탁드릴 게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상인들에게 물었다.
“뭐, 얼마든지! 비단, 서역 물건, 말만 하게!”
“그 가면들은 너무 유치하군! 내 고급 재질 가면이 있네!”
상인들은 열렬했다. 하지만 내가 부탁할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말했다.
“필요한 건 여러분들의 입이거든요.”
상인들이 뭔 소리를 하는지 자신들끼리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몇몇 똑똑한 이들은 알아들은 듯했다.
“대협들에 대해서 퍼뜨려달라는 거요?”
누군가 손을 들어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대신, 아까 하던 것처럼 그냥 자유롭게 풍문을 퍼뜨리시면 됩니다. 거한이 네 명 있었다는 둥, 눈이 하나씩 달린 사람들이라는 둥, 아무 거나 좋습니다.”
내 말에 상인들이 웃었다. 상인들은 그런 이야기에는 또 전문이 아닌가. 세상을 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무 비용 없이 의뢰한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앞으로 할 건 그들에게 더 큰 이익이 되겠지만 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가면 안으로 웃었다. 상인들은 다시 열렬한 환호로 보답해줬다.
*
우리는 선후령을 넘어 상산으로 가는 관도를 걷고 있었다. 이제 절강에 완전히 들어온 것이다.
“···근데, 목환아.”
“네.”
“가면은 계속 껴야 되는 거냐?”
곽진도는 주저하며 물었다. 내가 즉흥으로 사온 가면 중, 곽진도는 우희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몸은 거구지만 우희의 얼굴이라. 좀 민망할 법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 그게 더 시선을 끌기 좋았다.
금월상과 한유림도 내쪽으로 얼굴을 돌려보았다. 가면은 꽤 답답한 듯했다. 하긴 가면을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안에 땀도 차고, 숨도 쉬기 힘든데 말이다.
하지만 가면을 산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렇게 다니면 아무래도 시선이 끌리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런 것도 있고.”
“우리는 절강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신원은 감출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면만한 것이 없죠.”
나는 잠깐 말을 멈춘 다음 이었다.
“또, 혹시 절강에 마교의 간자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말에 곽진도가 입을 다물었다. 검후가 고독에 걸렸었다는 건 거의 확정이었다. 검후를 가까이서 본 곽진도도 머리가 이상하게 움푹 들어가 있고, 핏자국이 많았다고 했으니. 그 당시에는 싸워서 생긴 상처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자해의 흔적이었던 거다.
“그래, 그럼 우리는 그냥 절강으로 들어간 상인들이 우리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기만을 기다리면 되겠구나.”
금월상이 말했다. 역시 금월상은 강호초출이라 아직 무딘 생각을 가진 듯했다.
“아뇨. 불씨를 넣어놨으니 우리는 바람을 넣어야죠.”
“···어떻게?”
나는 언덕을 하나 넘었다. 역시 커다란 관도라 그런가, 사람들도 꽤 있었고 그에 따라 통행세를 받는 혈랑파 사람들도 있었다.
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사람들에게 갔다. 동전주머니 같은 걸 흔들면서 말이다. 누가 봐도 나는 통행세를 내기 위해 준비한 아이처럼 보일 터였다.
혈랑파 사람들은 우리가 가면을 쓴 걸 확인하고 미심쩍게 바라봤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말이다.
나는 그제야 뒤를 돌아서 혈랑파 사람들을 등진 다음 금월상을 바라봤다.
“이렇게요.”
내 검이 꽂힌 방향과 반대로 해운무봉이 나왔다. 혈랑파 사람들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목이 베여 죽고 말았다.
통행세를 걷던 무인 품에서 꽉 찬 주머니가 땅에 떨어졌고, 동전들이 엎질러진 물처럼 흘렀다.
사람들은 느닷없이 벌어진 상황에 놀라지도 못했다. 중원에서 사람이 죽는 건 대수도 아니지만 말이다. 난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장담컨대, 우리는 이틀 안에 절강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들이 되어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