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세가 절대무신-79화 (80/225)

79화 때가 곧 올 테니

79화 때가 곧 올 테니

명재희가 굳이 갈유월을 놔두고 무한으로 빨리 온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갈유월과 같이 가면 바로 무림맹에 들어가야 하는데, 명재희는 들를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한의 시내와는 떨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구석은 아닌 곳. 그곳에는 아직은 불을 키지 않은 집들이 많았다. 당연했다. 여기는 밤에만 장사를 하는 거리니까.

여기가 무한의 기루(妓樓)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명재희가 찾는 건 여기서 가장 화려한 건물이다.

붉은색에다가 끝이 곡선형으로 꺾여있는 지붕은 분위기를 만들어 줄 연등이 없음에도 뭇 사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무한 제일의 기루. 홍화루(紅花樓)였다.

정문은 당연히 잠겨있었지만, 명재희는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갔다. 아직 장사를 하는 시간은 아니라지만,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아저씨!”

명재희는 문고리를 잡고 뒷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바로 익숙한 수염의 사내가 나왔다. 홍화루를 관리하는 무인 중 한 명이었다.

“재희 왔구나.”

무인은 명재희를 반겼다. 명재희는 늘 홍화루의 뒷문에 있는 무인하고 친했다. 명재희가 기녀들한테 주워왔을 때도 봤다니, 자그마치 십삼년이 된 연인 것이다.

물론 명재희는 홍화루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친했다. 그래서 홍화루에 있는 사람들은 명재희를 보며 늘 웃으며 대해주고는 했다. 은혜를 갚으러 온다는 말도 기특하고 생긴 것도 귀여우니, 볼 때마다 위로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홍화루의 뒷문을 지키고 있던 남자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저씨, 뭔 일 있어요?”

그걸 눈치 챈 명재희가 물었다. 무인은 흠칫했다. 그러나 입을 오물거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명재희는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생각하고, 늘 그렇듯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언니들 있어요?”

자신을 거둬 키운 세 명의 언니들. 명재희는 이번에도 그녀들을 보러 온 것이었다. 무인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

“어, 오늘 나오는 날 아니에요?”

명재희가 골똘하게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생각하고 오늘 나오는 날이 맞았다. 무인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걔들 다 그만뒀어. 큰돈이 생겼다고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더군.”

“아, 그래요?”

명재희는 당황했다. 그렇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잘 됐네요. 그럼 어디로 가신데요?”

“말 안하고 갔어. 원래 기녀들은 떠날 때 말이 없는 법이야. 자신의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하니까.”

명재희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지금 남자가 하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한테 남긴 게 없나요?”

“···응. 내가 재희한테는 언질을 주고 떠나는 게 맞지 않냐고 물었는데, 그냥 여기 있던 시간을 다 날리고 싶다고 하고 갔어.”

무인은 명재희를 바라봤다. 명재희는 석상이라도 된 듯이 굳어서 말도 못하고 있었다.

“···재희야. 잘 들어봐라.”

무인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명재희는 불안함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명재희가 생각한 불안감을 뛰어넘는 충격이었다.

“그 애들이 널 데려온 건 맞지만, 키운 건 아니란다. 원래 걔들은 너를 키워서 다른 기루로 팔려고 했었어.”

무인은 명재희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옛날에 네가 장사하는 곳으로 얼마나 많이 기어갔는지 아느냐. 당연히 걔들을 찾았었던 거지. 당연히 손님들은 그런 너를 보면서 귀여워했고, 저 애한테 당과라도 사주라고 했었지.”

그런 것도 같았다. 너무 어려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왁자지껄함과 독한 술냄새가 어렴풋했다.

“근데 걔네들은 그걸 다 지들이 먹었어. 심지어 네가 돈이 된다는 걸 알고난 후로 장사를 하는 곳에 업고 나오기도 했었다. 죄책감도 없었어. 원래 이 바닥 애들은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거든. 너를 키워준 건 다른 사람이야.”

“···누군데요?”

명재희가 간신히 물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됐다.

“자주 오는 단골이셨지. 나야 삼류니까 무인들의 경지는 잘 모르지만, 그냥 딱 봐도 초절정고수분으로 보였지. 나이는 환갑이 좀 넘어보였고.”

무인은 말을 계속 이었다.

“그 무인이 계셨을 때 네가 걸어 나온 거야. 재희 네가 한 네 살 무렵이었던가. 넌 몰랐겠지만, 그 단골 분은 너를 슥 보더니 그 년한테 말하더군.”

“뭐라고요?”

“네가 잘 키워야하는 훌륭한 재능이라나. 그러면서 그 단골은 은자 열 냥을 주고 갔어. 다음에 다시 왔을 때 여전히 허름한 옷을 입고 있으면 단숨에 죽여 버린다는 말까지 하셨지. 실제로 몇 번 와서 확인도 하셨고 말이야. 그래서 걔들은 어쩔 수 없이 널 그 돈으로 돌봐준 거지.”

명재희가 침묵했다. 다섯 살 때 비연각으로 넘어갔으니, 고작해야 일 년, 그것도 정성으로 돌봐준 게 아니었던 셈이다.

뭐랄까. 그냥 허무했다. 배신감도 않았다. 마치 타인이 겪은 일을 바라보는 것처럼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그랬었군요.”

명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은 분해하면서 말을 이었다.

“네가 상처받을까봐 말을 못했는데, 이렇게 밝히게 되서 정말 미안하구나. 그년들이 네가 준 돈을 자랑할 때는 어찌나 죽이고 싶던지. 이번에 돈 생겼다는 것도 필시 네가 준 것이 아닐 테냐. 그 년들은 빠져나온다고 말만 하면서도 돈을 흥청망청 쓰는 년들이었으니까.”

명재희는 무인을 바라봤다. 그 아저씨는 자신의 마음이 풀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욕을 뱉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그 한 순간에 풀릴까. 십삼 년간 조여진 매듭이.

“괜찮아요. 아저씨. 어차피 그건 제 돈도 아니었어요.”

명재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무인은 슬프게 명재희를 바라보더니, 품에서 누런 종이에 싸인 동전 여덟 개를 주려고 했다.

“이거라도 받으려무나. 내가 줄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구나.”

무인은 강제로 명재희의 손에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명재희는 손사래를 치며 뒤로 크게 두 걸음을 나갔다.

“아니에요.”

어차피 돈이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는 건 확인했다.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아저씨.”

명재희는 인사를 하고 뒤를 돌려다가, 문득 자신을 키워줬다는 그 무인이 생각났다.

“혹시, 그 저보고 재능이 있다던 무인아저씨는 어떻게 생기셨나요?”

“···음. 일단 희고 꼬불꼬불한 머리였어. 그 머리는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로 흩어져 있었지. 전체적으로 험악한 인상이고, 피부도 거칠어 보였지.”

“감사합니다.”

명재희는 고개를 다시 꾸벅였다.

“그래도 종종 들를게요.”

명재희는 그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려 나아갔다. 무인은 멍하니 멀어지는 명재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내가 없는 동안에도 본원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본원을 맡은 기철이 깨끗하게 청소를 한 거다.

해남을 갔다 온 게 한 달도 안 됐으니, 생활감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냥 어제 있던 곳이라고 느낄 만큼 자연스러웠다.

물론 그 안에서도 가주 의자는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흑룡은 턱도 안 아픈지 입을 여전히 쩍 벌리고 있다.

본원 의자에 앉은 내 앞에는 오랜만에 보는 내 형제들이 있었다.

“나갔다 온 게 며칠이나 됐다고 많이 바뀌었겠어?”

금화청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것과 달리, 그가 건넨 세가의 업무기록은 많이 바뀌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황금세가는 내가 가주가 된 이후로 급변했다. 모든 원급 전각에 돈을 뿌렸고, 일흔 명의 호위무사들을 들여왔고, 많은 인력들을 갈아치웠다.

그렇게 새로 들어온 것들은 원래 있던 것과 융화되기 쉽지 않은데, 어느덧 융화가 된 거다.

그런 내정은 문서의 수치로 보이는 게 아니라, 문자 사이의 행간에 보이는 것이었다. 난 형제들을 둘러봤다.

“모두 정말 열심히 하고 계셨군요.”

“무슨 몇 년은 갔다 온 것처럼 얘기해?”

금수린이 배시시 웃었다. 그건 그렇다. 내가 왔다갔다 소요한 시간이 한 달이 안 됐으니까. 그래도 해남에서 일이 많았던 탓일까. 퍽 오랜만에 본 것 같았다.

“진법 공부는 잘되시고요?”

“쉽던데?”

“그런가요?”

난 문서를 보는 걸 잠깐 멈추고 금수린을 바라봤다. 금수린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진법 공부는 단순히 진법만이 아닌 온갖 학문을 공해야 되는데, 우리만큼 쓸데없이 학문과 잡학을 익힐 시간이 많았던 사람들도 없었다.

“나도 놀랐다. 수린이가 지금 훈련하고 있는 애들한테 진법을 깔아줬는데, 훈련 효과가 눈에 띄게 보일 정도야.”

“오라버니,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맞다니까.”

금월상은 그러면서 금수린의 진법을 자기자랑처럼 설명했다. 금수린은 하지 말라면서도 뿌듯한 기색을 전부 숨기지는 못했다.

금월상이 설명한 진법은 운무진(雲霧陳)의 일종이었다. 아이들이 비무를 할 때, 진법을 작동시키면 무작위로 안개가 형성되는 식의 진법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더 긴장하며 비무에 집중했고, 반응 속도도 빨라졌다는 거다.

“뭘. 월상 오라버니도 요즘 열심이야. 요즘 엄청 열심히 훈련하잖아.”

금수린은 상부상조라도 하는 듯 금월상에게 화살을 돌렸다. 갑자기 표적이 된 금월상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나야 뭐, 한 건 없다. 강 장로님이 알려주시는 강뢰도법을 익힐 뿐. 원래 검을 쓰다가 도를 써야 하니까 많이 훈련해야 되는 건 당연하지.”

금화청은 딱히 할 말이 없는 듯 차만 마셨지만, 불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세가는 빠르게 정상적인 궤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난 아무도 말을 안 했지만, 금화청 역시 대단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들을 조율하고 맞춰준 역할을 했을 테니까. 이건 보이지 않는 수훈(首勳)이었다.

내가 금화청을 슬쩍 쳐다보자, 이미 금화청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말했다.

“해남파 사람들은 당분간 화수각에서 지내라고 해. 남창에 안가를 구할 때까지만.”

“화수각은 형님이 머무시는 곳 아닙니까?”

내 기억이 제대로 되었다면 그랬다. 금화청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차피 대전의 집무실에 붙어사니, 대전 방 하나를 거처로 바꿨다.”

“화청이도 정말 고생하고 있지. 내원에 매일 쳐박혀 있고, 밖에서 보인다 싶으면 외원 순시(巡視)를 하고 있으니까. 정말 쉬는 시간이 없어 보이더구나. 그러다 몸이 빨리 상할 텐데.”

“됐습니다. 내가 뭐 늙은이도 아니고.”

금월상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지만, 금화청은 건강에 대한 별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무튼 형제들은 처음에 내가 해남파 무인들을 데려오니 경계를 했었다. 뜬금없이 구파일방에 속해있는 큰 문파가 세가 내부로 들어온다니. 아무리 곽진도가 해남파의 사람이고, 내가 곽진도의 제자라고 해도 형제들 입장에서는 암울한 옛날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제들은 내가 해남파 매듭들을 보여주고 적대적인 세력이 아닌 걸 설득하고 나서야 안심을 했다.

“근데 우리 너무 일만 하는 거 아닐까. 휴식이 필요해. 시종들도 교대로 근무하는데.”

금수린이 느닷없는 주제로 돌렸다. 우리 형제들의 회의에서 처음 나온 단어였다. 휴식.

“무슨 휴식을 말하는 거야? 자는 게 휴식 아니야?”

금화청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금월상과 금수린은 그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봤다.

“불쌍한 오라버니.”

“확실히 휴식이 필요한 것 같기는 하구나. 목환이 너는 어떠냐?”

나는 잠깐 생각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군요. 때가 곧 올 테니, 그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수린과 내가 고개를 젓자마자 시무룩한 표정이 됐다. 금화청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한 막내.”

금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금수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얘기를 돌렸다.

“그나저나 월상 형님. 그 애들은 훈련 잘 따라오고 있습니까?”

금월상은 흠칫했다. 그들은 행정적으로 금월상이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금월상은 잠깐 생각을 하고 답했다.

“훈련 하나는 열심히 하지. 나도 가끔 보는데, 정말 다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더구나. 힘들다고 눕는 애들도 없고. 정말 좋은 애들을 데려왔어.”

“다행이군요.”

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세가로 돌아오면서 제일 궁금했던 건 그 아이들이었다. 내가 직접 데려온 아이들이라 그런 걸까.

“월상 형님은 저랑 같이 옥묘각으로 가시죠. 이제 걔들은 완벽히 우리 세가 사람이니까 좀 외워둬야죠. 인명부를 보면서 하나씩 확인을 해놔야, 나중에 고급 훈련을 할 때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겁니다.”

난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금월상이 말을 받아줘야 옳았다. 허나 금월상은 아무 말도 못했다.

“···꼭 오늘 가야 하느냐?”

“네. 곧 바쁠 예정입니다.”

명재희가 우리 비각으로 들어오니 비각 규모 인력 구성을 생각해봐야 했고, 형산파와 주산파의 이상한 점도 파헤쳐봐야 했고, 구파일방의 동향, 아버지가 말했던 고독들은 어디로 갔는지 추적해봐야 한다는 점에서 할 일은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금월상은 또 입을 우물댔다. 내가 아무 말 없이 계속 쳐다보니, 결국 금월상은 말을 내뱉었다.

“···사실 인명부가 준비가 안 되어 있단다. 걔들 훈련하느라 바쁘고, 나 훈련하느라 바빠서···”

금월상이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래도 금월상은 정말 강뢰도법만 휘두른 듯했다. 그렇다고 그게 중한 실수도 아니었다. 지금 가서 하면 오히려 내게는 더 좋을 터였다.

“그럼 저랑 같이 가서 하시죠.”

“···인명부라. 그냥 이름만 따오면 되는 거면 나 혼자 해도 된다. 바로 내일 시종편에 갖다 주마.”

“아뇨. 인명부에는 이름, 특기, 이미 배워놓은 무공이 있다면 뭘 배웠는지가 들어가야 하고, 또 어디서 자랐는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얼굴도 외워야 되니 저도 가는 게 맞을 듯합니다.”

“크흠.”

금화청이 불편하다는 듯 금월상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했다. 행정적인 머리가 뛰어난 금화청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득 아이들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난 그 아이들이 절맥에 걸렸다는 것 외에 아는 게 없었다.

장차 황금세가의 핵심이 될 무인들이었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들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