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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77화 (78/225)

77화 마지막 할 일

77화 마지막 할 일

우리는 예정대로 진시에 배를 타고 광동으로 넘어갔다. 삼대제자들은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렸다.

“촌스러워도 이해해. 대륙으로 처음 나왔거든. 해남에서 나고 자란 애들이라.”

“넌 안 그랬던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권동운의 으스댐은 곽진도의 말에 바로 진압됐다. 해구에서 광주는 정말로 가까웠다. 바다 구경하고, 거의 바로 대륙에 다다른 것 같았다.

광주에 있는 항에 들어서자마자 시끄러운 소리들이 울려왔다. 생선들을 가득 담고 오는 어선에서 외치는 고함소리, 장사꾼들, 차력사들···.

우리는 이미 해남도에 들어오면서 한 번 본 광경이었지만, 해남의 제자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구경했다.

그 모습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권동운은 짐짓 엄격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정말 사제한테 감사해야 돼. 원래 삼대제자들은 안 보내는데, 특별히 황금세가 안으로 들어가는 거니 예외를 둔 거야.”

“감사합니다! 사숙!”

그 말에 바로 해남의 제자들이 내게 허리를 푹 숙였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몰렸다. 광주 사람들이니 해남파의 복장 정도는 알 것이다.

구파일방 해남파의 제자들이 한 번에 나한테 소리를 치며 인사를 하니 당연히 내게로 관심이 쏠렸다.

“저 아이가 옥면소룡(玉面小龍)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확실히 옥면이란 이름이 붙을만 하군.”

“오 년만 지나면 엄청난 미남이 되겠군.”

광주의 사람들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꽤 크게 웅성여서 우리에게도 그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제일 많이 들리는 단어는 옥면소룡이라는 단어였다. 아무래도 날 지칭하는 말인 것 같았다.

“원래 중원의 소문은 이렇게나 빨라. 적어도 지금 호북까지는 퍼지지 않을까 싶은데.”

곽진도가 내게 귀띔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시현을 했으니, 당연히 화제가 되지 않겠냐.”

옥면소룡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있는 듯 사람들이 어느새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해남에서 시범을 보인 게 당장 닷새도 안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다니. 중원에서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이렇게 무서웠다.

“일단 가면이나 좀 사야겠는데.”

곽진도가 말했다.

우리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군중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래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몇 명을 떨어뜨려 놓으면 앞에서 새로운 몇 명이 붙는 식이었으니까.

대개 들리는 말은 내가 해남에서 갑자기 나타나 멋진 검술을 시현하고, 무당파의 기세를 눌렀다는 말이었다. 그건 사실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도 왕왕 섞여있었다.

“저 뒤에 애들이 약혼자인가보군.”

“하긴, 저 정도 나이면 지학 좀 안돼 보이는데, 약혼할 나이기는 해.”

“해남도에서 숨겨놓은 천재라더군. 이제 강호행을 허락받은 모양이야.”

“그 청진이라는 도사를 일수에 박살냈다며?”

“절벽에서 떨어져 해신의 비급을 얻은 아이라던데.”

“또 절벽이야? 중원의 절벽 밑에는 도무지 없는 게 없군.”

“근데 그러면 광랑검보다 배분이 높은데.”

괜히 언급된 갈유월과 명재희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고, 나도 살짝 황당했다. 어디서 저런 소문이 나와서 퍼지고 있는지. 가끔 고수들이 일수에 산을 가르고, 하늘의 구름을 걷고, 하는 말들을 이렇게 퍼진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심하게 겹치는 것 같자, 곽진도가 기를 살짝 내풍겼다. 따뜻했던 광주의 시내에 냉기가 얹혔다. 딱 평민들이 느낄 정도의 기파였다. 그렇게 많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저 멀리서 바라봤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미안하네.”

권동운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괜히 시선을 집중시킨 권동운의 잘못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이들이 해남의 복장을 입고 있으니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것 같았다.

“아닙니다.”

우리는 골목의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먼저 가면을 사야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어디까지 소문이 퍼져있을지는 모르겠기도 했고, 지금 하나 장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가면의 수는 많았다. 연극에 쓰일 것 같은 흰색 가면, 여인의 눈물 흐르는 얼굴 같은 가면, 흉신악살 같이 험악해 보이는 산적의 가면 등. 재질도 나무, 철, 가죽 등으로 다양했다.

내가 그런 걸 보고 있자, 명재희는 진열된 걸 보자마자 하나를 지목했다.

“이거 괜찮네.”

내가 명재희의 손가락을 따라가서 보자, 금색 호랑이 가면이 있었다. 난 사실 뭘 해도 상관없었기에, 명재희가 괜찮다는 걸로 샀다.

가면은 황금이 아니라 도금이라서 쌌고, 동전이 있는 권동운이 샀다.

나는 임시로 한 번 껴봤다. 명재희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린다. 잘 어울려.”

“···시선을 끄는 가면 아니냐?”

“누구인지 모르면 됐죠.”

곽진도의 반박이 있었지만, 나도 명재희의 말에는 동감했다. 애초에 가면을 많이 끼고 다닐 일도 없을 거였다.

소문이라는 건 바람과도 같아서, 또 다른 흥미로운 소문이 돌면 또 사라질 터였으니까.

“자, 자. 내가 아는 기가 막힌 음식점이 있어. 가자고.”

권동운은 아직도 부채감을 느끼는 듯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음식이 맛있는 곳이라면 나도 궁금하기는 했다. 처음 내가 회귀를 했을 때, 삶을 깨우쳐준 건 음식의 맛이었다. 맛있는 음식은 삶의 이유 중 하나기는 했다.

“그럼 가시죠.”

우리는 권동운이 이끄는 곳으로 갔다. 내가 황금 호랑이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시선이 쏠리기는 했지만, 전보다는 아니었다.

내가 가면을 써서 그런가, 생각보다 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내 모습이 그렇게 강호에선 이상한 게 아닌 모양이다. 또 하나 배웠다.

“여기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권동운이 말했다. 확실히 특이한 건물이기는 했다.

건물은 일 층으로 낮고, 크지도 않았다. 건물 앞에는 사람도 없고, 음식점을 뜻하는 깃발도 없었다. 강호에는 모든 걸 사고판다는 흑점(黑店)이 있다던데, 만약 있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했다.

“···여기 맞아?”

곽진도도 되물었지만 권동운은 웃었다.

“절 믿으세요. 저번에 장문인이랑 같이 대륙온 적 있었는데, 그때 알아놓은 음식점입니다.”

“허. 그래?”

곽진도가 그제야 좀 믿는 듯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이 가면 신뢰가 가는 걸까. 혼자서 납득한 곽진도를 제외하고 우리는 권동운을 따라 들어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음식 냄새가 강하게 훅 끼쳤다. 확실히 맛있는 냄새였지만, 냄새를 안으로 가두는 진법 때문에 훨씬 풍미 있게 느껴졌다.

건물 구조는 특이했다. 안내하는 사람 아무도 없이,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만 있는 것이었다. 그 외에 방은 빈 공간이었다. 건물이 크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계단을 끝까지 내려갔다. 계단 밑에는 단정한 차림을 한 점소이가 기다리고 있었고, 커다란 원형 식탁이 넓은 공간에 적절하게 흩어져 있었다.

매일 부산하게 뛰어다니는 점소이를 보다가 침착한 점소이를 보자니 참 낯설었다.

또한 방 끝에 또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걸 보니, 더 층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잘 찾아보면 돈으로 참 할 게 많아. 세상에는 소면과 만두만 파는 허름한 객잔만 있는 건 아니야.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곳도 이렇게 마련되어 있지.”

“그걸 황금세가 가주 앞에서 얘기하는 거냐?”

“사제도 이런 곳 처음인 것 같은데 뭘.”

권동운의 말대로 난 이런 곳은 처음 보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흥미가 들어 주변을 쭉 둘러봤다.

“이런 곳은 정말 아는 사람만 올 수 있겠군요.”

“그렇지. 대개 명문 세가 사람들이나, 상계의 부자들, 구파일방의 무인들은 이런 데서 밥을 먹어.”

나는 약간 새로운 세계를 본 것 같았다. 난 그때 눈치 챘는데, 우리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점소이는 기다리고 있었다.

“몇 층으로 가시겠습니까?”

그 점소이는 우리의 말이 끊어질 때야 말했다. 몇 층이라.

“여기는 내려갈수록 좋아. 내가 장문인이랑 같이 갔을 때 지하 이 층에서 먹었거든. 거기만 해도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나와. 은자 다섯 냥 정도. 다행히 장문인이 주신 돈이 많으니 삼 층까지는 갈 수 있지.”

“얼마나 주셨는데?”

“원보 두 개요.”

“아하.”

곽진도는 그렇게 대답하며 슬쩍 나를 봤다.

내가 차고 있는 주머니에는 그 정도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있었으니까.

점소이는 우리가 층수로 고민을 하자, 층수마다 나오는 음식들과 가격을 알려줬다.

첫째 층에서는 오리로 육수를 낸 소면, 콩잎과 함께 지진 돼지앞발이 핵심이었고, 둘째 층에는 참새 통구이, 한 번 삶은 다음 파기름과 같이 볶아낸 닭고기가 핵심이라고 했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있을 때, 누군가 계단 위로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점소이의 설명에 몰입돼 그곳을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지만, 나만 그곳을 뚫어지게 봤다. 익숙한 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곧 그 사람들의 얼굴이 수평선의 태양마냥 떠올랐다.

“어?”

그 소리에 그들도 우리 얼굴을 보고, 우리도 그들 얼굴을 봤다. 모두의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특히 갈유월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그들은 바로, 해남에서 만났던 목송, 청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리들도 목송과 청진을 보고 당황했지만, 목송과 청진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 당황 속에서 빠르게 빠져나온 건 권동운이었다.

“허허, 진인. 육식이라도 하신 모양입니다.”

권동운 장로가 허리춤에 매달린 자신의 매듭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간단했다. 목송이 적유엽에게 무례하게 대했기 때문이었다.

“···생식과 두부 요리를 좀 먹었을 뿐이오.”

“입가에 기름이 번들한데 어찌 그런 거짓말을 친단 말이오. 원시천존이 대노하시겠소.”

목송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들의 몸에서는 달달한 고기 냄새가 났다.

해남에서 나온 다음 광주에서 좀 놀다가려 했던 모양이다. 그걸 우리한테 걸린 거고.

“크흠, 이상한 음해를 하는군···”

목송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청진의 소매를 잡아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우리가 사람도 더 많고, 고수도 많은데다가, 명분상으로도 우리가 앞서있었다. 모든 것에서 꺾인 목송은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리고 해남파도 구파일방이다. 이런 곳에서 소란을 부리는 건 명예롭지 못했다.

난 그들이 도망치자 바로 점소이를 바라봤다. 저들보다는 여기 음식이 어떻게 나오는지가 더 흥미로웠다.

“최저층으로 안내해주시죠.”

무당파 사람들의 등 뒤를 바라보고 있던 권동운과 해남의 제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무표정으로 있던 점소이도 움찔했다.

“아니, 사제. 내가 그 정도 돈은 없는데···”

“제가 돈을 많이 갖고 나와서요.”

“···아, 맞다. 사제가 원래 누구인지 깜빡 잊고 있었군.”

권동운은 바로 돈주머니를 안으로 넣었다. 그들은 아직 내가 황금세가 사람인 게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

“사제. 오해하지 말게. 내가 자네 돈을 쓰러 이리로 온 게 아니라, 정말 맛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주면 고맙고.”

권동운의 말에 뒤에 따라 내려오던 곽진도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그렇게 최저층으로 내려왔다. 마치 궁궐 같이 꾸며놓은 방에는 커다란 원형 식탁이 있었는데, 방 중앙에 딱 하나 있었다.

“곧 음식을 내오겠습니다.”

우리에게 꾸벅인 점소이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원형의 식탁을 쭉 둘러서 앉았다. 삼십 명이 앉아도 남을 의자 수여서, 띄엄띄엄 앉게 됐다.

“내 이렇게 송옥도(宋玉道)의 최저층에 올 줄이야. 사제에게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쩌나.”

“아닙니다.”

사질들은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니 영혼이 없는 감사 인사를 보냈지만, 여기를 아는 권동운은 말을 해서라도 갚고 싶은 듯했다. 그만큼 송옥도라는 음식점이 비싸고 좋은 곳인 것 같았다.

“옥면소룡이라는 별호도 참 어울리지. 내 오룡삼봉이라는 것들 중 몇몇 봤는데, 사제만큼 잘생긴 사람은 없었지.”

“감사합니다.”

“검법은 또 어떠한가. 난 이런 기재는 살면서 처음 본다네. 사실 장문인은 사제를 본산에 두고 싶어 했어.”

“감사한 일이군요.”

“심계 또한 대단하더군. 그 나이에 걸맞지 않는 냉정함과 결단력, 침착함을 가지고 있더군. 그 말코놈한테 쏘아붙였을 때도 딱 깔끔하게 할 말만 했고.”

“···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권동운은 이런 말을 좋아하는 듯했다. 내 칭찬만 구구절절 듣다가 음식들이 나왔다. 무표정인 점소이들이 음식을 하나씩 들고 줄줄이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동선까지 정해져 있는 듯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각자 자리에 음식을 두고, 덮개를 연 다음 일자로 서서 허리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점소이들은 그리고 일렬로 맞춰 올라갔다. 신기한 곳이었다. 난 그들이 다 가고 나서야 차려진 음식들을 봤다.

권동운이 장담한대로 음식은 화려했다.

먼저 노화정탕(老火靓汤)이 중앙에 올라왔다. 커다랗고 얕은 냄비의 중앙에는 거북이의 등껍질이 있었다. 저것을 뒤집어보면 살이 있을 터였다. 거북이 등껍질을 두른 재료들은 잣, 죽순, 대추, 은행, 동과(冬瓜), 양고기 등, 두 손으로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다음은 갈색 껍질에 기름이 윤택하게 빛나는 향우구육(香芋扣肉)이었다. 원형으로 썰려서 쌓아놓은 돼지고기들을 보니 마치 정자(亭子)의 지붕 같이 보였다.

그 외에도 광동의 요리로 유명한 백절계(白切鷄), 염수압(盐水鸭), 피단죽(皮蛋粥), 서녕계(西檸鷄) 등이 나왔고, 나는 이름도 모르는 콩잎과 곰 발바닥을 같이 지진 요리, 어린 죽순을 쪄낸 요리, 오리 껍질에 소를 넣고 튀겨낸 만두 등 많이도 나왔다.

“대단하군요.”

난 가감 없이 감상을 표했다. 내가 모르는 음식도 나올 정도라는 건, 이곳의 특별함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먹어보면 더 대단하다고 느낄 거야.”

우리는 젓가락을 들어 각자 원하는 음식들을 하나씩 먹었다.

“···와.”

명재희가 바로 경탄을 낼 정도였다. 내가 느끼기에도 맛이 대단했다. 세가에서 아무리 싱싱한 재료를 쓴다고 해도, 갓 잡은 것에 비할 수는 없었던 걸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해남파 여정의 마무리로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니 분위기가 풀어지면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눠졌다. 곽진도는 해남의 제자들에게 요즘 추세를 물어보기도 했고, 해남의 제자들은 명재희에게 예쁘다고 칭찬을 하고, 권동운은 갈유월에게 농담을 건네는 식이었다.

물론 갈유월은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권동운은 애초에 갈유월을 소심한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던 듯, 별로 개의치는 않아했다.

“사숙. 술 한 잔 합시다. 우리끼리.”

“···거 참. 애들도 있는데···”

권동운의 말에 곽진도는 사양하는 척했지만, 역시 먹고 싶은 듯했다. 허나 곽진도는 내 눈치를 슬쩍 봤다. 하긴, 여기는 내가 돈을 내야 하니까.

“드시고 싶으시면 드세요.”

“하하! 역시 사제가 통이 크단 말이야!”

권동운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바로 큰 소리로 점소이를 부르고 죽엽청(竹葉靑)을 시켰다.

술은 곧바로 나왔고, 그들은 술을 따라 자신들끼리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많은 음식들을 맛보고 있었다.

음식들이 워낙 많았고, 모두 조금씩 아껴서 먹어 식사 시간이 좀 길어지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지금은 여유로우니까.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곽진도와 권동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특이사항이 있었다.

“크, 사숙은 복도 좋소. 사실 나도 사숙께서 왜 황금세가에 들어갔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저런 아이가 있으면 당연히 제자로 삼아야하지 않겠소.”

권동운은 날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이번에는 권동운의 옆에 있던 왕진현도 거들었다.

“사숙 같이 완벽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달랐을 겁니다.”

“그렇지, 그렇지.”

그때 느닷없이 끼어든 건 술 취한 곽진도였다. 내공을 운기하면 취기를 뺄 수 있다는데, 굳이 빼기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다르지는 않았어. 내가 저 아이를 발견한 게 아니라, 저 아이가 날 발견한 셈이지···”

“오오. 사제의 옛날 얘기가 나오는 건가?”

권동운이 부추겼다.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 넘치는 눈빛이 곽진도의 입으로 갔다. 심지어 갈유월조차도.

곽진도는 부추기는 대로 바로 나와 버렸다.

“너희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완벽한 삶은 아니었을 거야. 목환이가 태어났을 때 세가는 암울했고, 주변에 믿을 사람 하나 없이 어린 생활을 보냈지. 참 불쌍한 아이였어.”

곽진도는 이제 혼자 자작을 하며 마셨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괄괄함을 잃고 흐물거렸다.

“시종들한테도 무시 받고, 틈만 나면 협박당하고, 징계를 받고. 그러니 제대로 살았겠는가. 나한테도 책임이 있네. 난 그때 세가 밖에 있었으니까. 진작 돌아올걸 그랬어.”

명재희는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시큰둥했지만 갈유월을 포함해 해남의 사람들은 완전히 이야기에 빠진 듯했다.

해남파의 사람들은 황금세가가 다른 문파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건 알았겠지만, 가문 내부의 일은 잘 몰랐을 거다. 중원에 애초에 관심 있는 곳이 아니니까. 갈유월은 아예 처음 듣는다는 듯 젓가락도 쉬면서 듣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곽진도의 한탄은 이어졌다. 내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서 자랐는지, 그 와중에서도 노력한 게 얼마나 기특한지, 뭐 그런 얘기들이었다. 들어보니 곽진도는 내게 꽤 부채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결국 그렇게 식사시간 마지막까지 난 내 과거 얘기를 들어야 했다. 이미 권동운과 사질들은 동정한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곽진도도 헛발을 짚은 셈이다. 그는 당연히 모르겠지만, 나는 회귀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감흥을 주기에는 너무 오래전이었다.

“오늘은 광주에서 묵고 가야겠군.”

권동운이 곽진도의 팔을 자신의 목 뒤로 두르며 말했다. 권동운은 곽진도가 취해가니 중간에 내공으로 취기를 뺀 듯했다.

우리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지하 일층의 점소이에게 원보 세 개를 내며 계산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점소이의 인사를 받고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오랜 시간 있었는지 밤은 꽤 깊어있었다. 그래도 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내가 아는 객잔이 있는데, 일단 거기로 가자.”

“네.”

권동운이 우리를 다시 이끌었다. 맨 앞에 권동운이 서고, 그 뒤에는 사질들이, 그 뒤에는 밤의 광주를 구경하는 명재희가 있었고, 그 뒤에는 고개를 숙이며 걷고 있는 갈유월이 있었다. 나는 맨 뒤에 있었다.

나도 경치를 감상하며 걷는 도중, 갈유월이 슬슬 속도를 늦췄다. 곧 우리의 어깨가 나란히 되었다.

“···저기.”

갈유월이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조그맣게 목소리를 냈다. 내가 알기로 해남파에서 그녀가 내게 말을 건 것은 처음이었다.

“부탁할 게 있어.”

나는 옆을 돌아봤다. 갈유월의 작은 어깨 너머로 밤하늘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어둠에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긴장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비무, 한 번 하자.”

난 갈유월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봤다. 몸은 긴장되었지만, 눈만큼은 비장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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