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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75화 (76/225)

75화 갈무리

75화 갈무리

그 이후 우리는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나는 세가로 들어오는 해남파 사람들에게 집과 부족하지 않은 은자를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우리 세가 내부에 해남파 지부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었다.

해남파는 늘 중원과 떨어져 있어서 소식에도 늦고, 구파일방 내부에서 정치력도 제일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의식을 열어 검술에 대한 것을 증명하는 거였다.

만약 황금세가로 들어오는 해남파의 인력들이 많아진다면, 해남파는 중원에 나올 교두보를 만들어두고, 황금세가는 외부의 습격에 더욱 강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정오까지 흘렀다. 나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장문인실에서 빠져나왔다.

“나오셨군요.”

장문인실의 문 옆에는 누군가가 꼿꼿하게 서있었다. 난 옆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제가 찾아가려고 했는데요.”

“어차피 장문인 보좌가 제 일이니까요.”

정오는 바로 양초원과 비무를 약속 잡은 시간이었다. 양초원은 설레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저희가 중원에 부러운 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아무래도 땅이 이어져 있다 보니, 문파와 문파끼리 협약을 맺어 정기적으로 비무를 시킨다나요. 해남에는 그런 게 없죠.”

“그렇군요. 확실히 다양한 무공과 사람을 겪어봐야 강호에 출도할 때 도움이 되겠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외인이 들어오면 많은 분들이 비무를 청하죠. 그런 면에서 전 운이 좋은 셈입니다. 사숙과 처음 비무를 하는 사람이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장문인과 한 판 했지만, 그건 사실상 가르침이었으니까 비무는 아니었다.

“그렇군요.”

양초원은 해남 외원에 있는 커다란 비무장으로 간다고 했다. 양초원은 내원의 샛길을 통해 나를 인도했다.

“군자대로행이기는 하지만, 대로로 나가시면 사숙께서 귀찮으실 게 분명합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난 별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숨기려고 비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들의 호감을 사는 게 주목적도 아니었다.

바로 해남에서 얻은 깨달음을 내 것으로 갈무리해야 했고, 그 중에서 비무만큼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곧 비무장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해남의 제자들이 비무를 하고 있었다.

모두 양초원과 똑같이 매듭 하나를 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삼대제자들이 쓸 수 있는 시간인 모양이었다.

양초원과 내가 오자 모두의 검이 느려지다가 이내 멈췄다.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모두가 사숙의 검이 궁금하신가 보군요. 사실 해남에서 사숙의 얘기를 안 하는 사람을 드물 겁니다.”

“나쁜 얘기는 아니겠죠.”

“하하, 당연합니다.”

근처에 사형이나 사제, 동기들이 많아서 그런가 양초원의 얼굴이 좀 편안해진 것 같았다. 장문인을 보좌할 때는 거의 굳은 표정이었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에는 여러 가지 면이 있었다.

양초원의 말대로 비무장은 넓어서 우리가 비무를 할 곳은 충분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비무하던 사람들도 모두 검을 멈춘 듯, 모든 눈빛이 여기로 쏠려 있었다.

비무장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들을 둘러쌓았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 있었지만, 우리가 있는 곳에서 삼십 장은 떨어져 있었다.

양초원은 자신의 검과 내 검을 옆에 놓고, 비무장 구석에서 목검 두 개를 들고 왔다. 난 양초원이 주는 목검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 나와 양초원은 열 장의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숙.”

어쩌다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비무였지만, 양초원은 그런 관심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과 감각은 오롯이 나를 향해 집중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검병에 손을 대기 전에 내게 포권을 했다. 나도 따라서 포권을 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질.”

인사를 하고 나서부터는, 우리는 물론이고 둘러싼 사람들에게도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정숙한 분위기였다.

여모봉 중턱에서 갈유월과 청진이 험한 소리를 나누며 시작했던 비무가 문득 생각났다. 내가 갈유월과 했던 비무도 생각이 났다. 서로가 존중하지 않는 비무와 서로가 존중하는 비무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이게 제대로 된 정파의 비무였다. 우리뿐 아니라 관객들도 모두가 예의를 갖추고 있어 공기마저 예의를 갖춰 침착하게 흐르는 듯했다.

“제가 배분이 낮으니, 선수를 가져가겠습니다.”

양초원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

그렇게 대답한 순간, 양초원이 발검을 하며 빠르게 다가왔다. 그의 모습은 청새치가 수면을 가르는 것 같았다.

익숙하지 않은 궤적은 그대로 내 왼쪽 가슴을 노리고 들어왔다. 반수검이었다. 난 남해십이검을 똑같이 펼쳤다. 그러나 남해십이검에 실리는 힘이 달랐다. 나는 초식들을 합치고, 변화해서 썼다. 바다가 넘실거리는 듯했다.

“흐읍!”

위력을 감당하지 못한 양초원의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게 칼을 질렀다.

난 그걸 가볍게 튕겨냈다. 양초원은 찌르는 게 막히자마자 정면에서 내게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서늘한 기운이 나온다. 푸른 기는 내 요혈들을 향해 질주했다.

검로들은 신법으로 피했다. 동시에 오는 듯했지만 찰나의 격차는 있었다. 양초원의 눈이 커졌다. 막지 않고 피했다는 건, 내게 반격의 기회가 왔다는 것이었다.

내 깨달음은, 남해십이검의 초식들은 자신의 바다를 찾는 과정에 불과했다는 거다. 진정한 남해십이검의 초식은 단 하나였다. 하나부터 열두 개까지를 관통하는 초식. 자신의 바다를 완성하면 열두 개의 초식들이 내 안에서 살아서 움직인다.

“엇!”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난 남해십이검들의 묘리를 관통한 초식을 펼쳤다. 아직 일직선으로 내지른 검과 어깨를 돌리지 못한 양초원은 그 바다를 올려다봤다. 찰나의 순간, 양초원의 표정이 공포 대신 미소로 물들어갔다.

쿠구궁!

검풍이 동시에 내려앉자 땅에 진동이 울렸다. 바다는 양초원을 삼키기 직전에 흩어진 거다. 애초에 그러려고 펼친 초식이었다.

양초원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납검을 하고 포권했다.

“사숙. 감사드립니다. 벽 너머를 잠시 구경시켜주셨군요.”

“그랬으면 다행이네요.”

난 뒤로 물러났다. 비무를 하기 전 떨어져있던 거리였다. 나도 같이 포권을 하며 비무는 끝났다.

우리가 서로 포권을 하며 정식으로 끝내자, 둘러보고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터지듯 올라왔다. 마치 지금까지 꾹 참고 있었다는 식이었다.

“허, 어린 나이에 저 정도 재능이라니.”

“저 정도면 부럽지도 않군. 사숙조님의 제자가 된 이유가 있어.”

“남해십이검을 벌써 체득하신 건가?”

이렇게 감탄을 하는 사람도 있고, 비무에 대한 경탄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자신들끼리 비무를 복기하여 분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건, 내 쪽으로 오는 사람들이었다.

“사숙. 저에게도 가르침을 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숙, 다음에 저도···”

“혹시···”

그들은 모두 내게 비무를 청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비무를 하고 싶은 분이 몇 명 정도 되시죠?”

내가 주변을 둘러봤다. 막상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앞으로 왔다.

“총 열세 명입니다.”

양초원의 말로는 거의 삼대제자 전부라고 했다. 삼대제자들은 내게 비무를 청했던 양초원의 모습과 똑같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럼 다 할 수 있겠군요.”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대제자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양초원이 은근슬쩍 물었다.

“피로하실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한테도 경험인데요.”

그들보다 내가 나이는 적지만, 삼대제자들 중에서 내가 질 상대는 없었다. 솔직히 피로할 것 같지도 않았다.

이건 단순한 선의가 아니었다. 나 역시 계속 깨달음을 보완하고 갈무리해야 하니까.

방금도 남해십이검을 꿰뚫은 초식이었지만, 유려한 보법이 아니라서 어설프게 펼쳐진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여기서 많은 경험을 하면 갈무리가 확실히 될 것 같았다.

*

많은 비무를 끝내니 역시 만족스러운 성과가 있었다. 확실히 깨달음을 갈무리할 필요가 있던 것이다.

가면 갈수록 내 남해십이검은 깔끔해졌고, 이제 더 이상 연습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내 남해십이검은 완성됐다.

비무가 끝나자 삼대제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사함을 표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열망이 담겨있었다. 정말 그들은 나이 어린 나를 사숙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난 그렇게 비무장을 빠져나왔다. 양초원은 내가 비무장을 빠져나갈 때 해남파의 자세한 지리를 알려줬다. 어디가 샛길이고, 어디에 사람들이 안 다니는 통로가 있는지를 말이다.

나도 지금은 혼자서 걸으며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기에, 양초원의 정보는 큰 도움이 됐었다.

그렇게 나는 산중턱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양초원이 알려준 샛길은 그의 장담대로 사람이 없었다.

해남의 풍경도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없는데서 보니 다시 신선해졌다. 어디를 돌아봐도 바다가 보였다. 문득 내가 뭘 하고 있지 않았던 때가 언제였지 생각했다.

회귀를 하고 난 다음에는 한 번도 없었다. 물론 회귀 전에도 휴식은 없었다. 집 안에 갇혀있는 동안 난 언제나 불안에 떨고 있었으니까.

“쉬는 시간이라.”

처음 갖는 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조급하지는 않았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깊어진 상념 사이로 무언가가 휙휙 휘둘러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봤다. 샛길도 아닌, 아예 길이 없는 쪽이었다.

외곽을 걷고 있다고는 해도, 이 역시 해남파 내부이니 위험한 사람일리는 없었다.

그래도 난 딛는 부분을 최대한 기로 감싸고,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나아갔다. 정말 사람들이 안 오는 곳인지 수풀과 나뭇가지들이 울창했다.

그렇게 풀과 나무 사이들을 젖혀대니, 어느 순간 틈이 보였다. 난 그 틈사이로 허리만 살짝 숙여 바라보았다.

“···이걸로는 안 되는데.”

갈라져 터진 손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사람은 뜻밖에도 갈유월이었다.

나는 기척을 죽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복과 머리는 이미 땀에 절어있고, 숨에서는 쌕쌕 소리가 났다.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뜻이었다.

내 예민한 코는 갈유월이 풍기는 체취가 아침에 맡았던 그 냄새가 같다는 걸 확인했다.

대충 계산이 선 다음 나는 가라앉힌 기척을 풀었다. 나뭇가지가 밟히는 소리와 함께 풀잎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전히 손바닥을 바라보던 갈유월의 머리가 번쩍 올라왔다.

“여기서 뭐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갈유월의 앞에 서면서 몸에 묻은 흙들을 털었다. 갈유월의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갈유월은 부끄러운 약점이라도 들킨 양 고개를 푹 숙였다. 난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는 부러져 있고 조각난 풀잎들과 패인 땅들.

“훈련을 하고 있었구나.”

“···그래. 이제 가줘.”

“왜?”

갈유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그 위축된 모습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봤다. 그리고 가시를 세우는 모습보다 이쪽이 본 모습이라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됐다.

“객잔의 아침에서도, 여기서도 늘 이렇게 훈련하고 있었어?”

내가 허리를 숙여 갈유월의 숙인 얼굴을 바라봤다. 갈유월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노을 때문인지, 당황함 때문인지 갈유월의 얼굴이 발개졌다.

무림맹주가 갈유월을 내게 보낸 이유가 이런 건가 생각했다.

내 과거와 똑같이, 어딘가에 숨으려고만 하는 그녀를 꺼내려고 한 모양이었다.

- 눈앞에 있는 사람을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로 판단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가 했던 말이 기억에 떠올랐다.

갈유월이 내게 과거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상관없었다. 지금 현재 그녀가 그런 상황이라는 게 중요했다.

“넌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갈유월은 흠칫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녀의 머리칼이 바닷바람에 날렸다.

“지금 대답 안 해도 돼. 대신 무림맹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대답을 준비해둬.”

“뭐?”

그제야 아무 말 없던 갈유월이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갈유월은 뭔가 더 말하려는 듯 했지만,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금목환 사숙님! 금목환 사숙님!”

이 외곽까지 들릴 정도면 내공까지 힘껏 넣어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렇게 급히 부를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개방에서 정보가 왔다는 뜻이었다. 한나절이 좀 지나서 온 셈이다.

난 그쪽으로 발걸음을 띄기 전에 먼저 갈유월을 바라보았다.

“잘 생각해봐.”

난 그렇게 말하고 나를 부르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 중요한 건 개방에서 온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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