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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67화 (68/225)

67화 네가 각주야

67화 네가 각주야

당장 지금 상황에서 가장 당황한 건 목송이었다. 가장 당황해야 할 청진이 기절해있기 때문이었다.

“···계집이 강호의 법도를 모르는구나! 비무를 할 때 그런 위협적인 초식을 쓰다니!”

목송은 그제야 청진 앞으로 가서 혈을 누르며 조치했다. 사실 목송은 억지를 쓰는 게 아니었다. 나도 비무를 해봤지만, 갈유월은 비무치고는 꽤 위험한 초식을 쓰기는 한다.

조치를 끝낸 목송이 갈유월에게 살기를 뿜어냈지만, 중간에 끼어든 곽진도가 기를 차단했다.

“살기는 왜 뿜는가? 뻔뻔하기도 하군. 저 녀석도 살초를 쓰지 않았는가?”

그러나 문제점은 저 청진이라는 녀석도 위협적인 초식을 썼다는 게 문제였다. 목송은 애초에 잡아뗄 생각이었는지 계속 갈유월을 노려보았다.

“난 못 봤다네. 아이야, 네 문파가 어떻게 되느냐?”

분명 위협적인 말투였다. 군소문파의 문도가 들었으면 공포심에 덜덜 떨었을 내용이기도 했다. 여차하면 무당파를 움직이겠다는 암시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갈유월은 그런 눈빛의 위협을 코웃음 치며 받아냈다.

“난 문파가 없어. 사부님만 있지.”

“사부님은 누구냐? 어떤 놈인지 몰라도 아주 제자를 개판으로 키워놨구나!”

“종 리자, 운자 되시지.”

갈유월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면 나와 처음 만날 때의 갈유월은 종리운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때에 비해 얼마 지나지도 않았으니 지금도 별 다를 건 없을 터였다.

“···허, 허어.”

당장 열불을 내려던 목송의 목구멍이 잠깐 막혔다. 아무리 무당의 장로라도 무림맹주이자 검존인 종리운을 누를 수는 없었다.

“이건 무림맹에게 정식으로 항의하겠네. 제자에게 강호의 예법을 제대로 가르치라고 말이야.”

결국 나온 말은 고작 그 정도뿐이었다. 바로 목송은 청진을 어깨에 업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갈유월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악랄한 아이였다.

“그리고 말코. 한 번만 더 우리 사부님 욕하면 어깨에 있는 돼지 도축해버린다.”

“···미친 아이로군.”

목운의 입장에서는 사실 갈유월 같은 어린 아이와 말싸움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명예롭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마땅한 수가 없으니 그저 떠날 뿐이었다.

그들이 떠난 후, 어느 정도 성격을 알고 있던 나는 그렇다 쳐도 곽진도와 명재희는 입을 벌리고 갈유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유월은 그게 좀 민망한지 머리카락들로 입을 가리고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일면식이 있는 건 나였으니까.

“말 잘하네. 무공도 늘었고.”

내 칭찬에도 그녀는 여전히 머리카락을 가리고 묵언수행을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아이였다.

나는 머리를 돌려 목송이 간 객잔 방향을 바라봤다. 흙에는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 역시 무당파의 장로답게 경지가 있는 고수일 터였다.

황금세가에 황금세가인 사람만 오는 건 아니듯이, 해남파에도 해남파 사람만 있는 건 아닐 터다. 우리와 다르게 해남파는 구파일방 중 하나고, 많은 사람들이 오갈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해남파가 있다는 여모봉을 바라보았다. 고수들이 강렬한 비무를 하고 있는 듯 검기가 안개 위에서 천둥처럼 번쩍거렸다.

저기에는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있을지. 기대가 됐다.

*

객잔에서 목송 일행을 두 번 마주치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침 일찍 나간 것 같았다. 아니, 그 사람들뿐 아니라 객잔 안에 있는 모든 손님들이 진시에 나갔다. 우리들을 빼고 말이다. 나는 묘시부터 태을헌원신공의 소주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거의 비슷한 시간에 우루루 몰려나갔고, 모두 여모봉 쪽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해남파에 저렇게 일찍 가야 할 일이 있는 것일까. 무슨 축제 같은 걸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건 우리와는 상관없었다. 곽진도와 나는 입적만 하고 가면 되니 말이다.

난 객잔 안에 주인밖에 없다는 걸 기감으로 느끼고 그제야 문을 열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옆의 문이 열렸다.

“일어나셨군요.”

“진작 일어났지. 너도 일어나 있지 않았느냐?”

“그렇긴 하죠.”

나온 건 내 스승님, 곽진도였다. 곧 이어 곽진도의 옆방이 열리고 명재희가 나왔다. 머리에는 물기가 묻어있고, 옷도 주름진 곳 없이 깔끔하니 그녀도 먼저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좋은 아침이네.”

“그러게.”

명재희의 인사에 짧게 답하고, 난 명재희의 옆방을 바라봤다. 갈유월이 자는 방이었다. 무림맹주가 갈유월과 명재희를 보내면서 같이 붙여온 서한이 기억났다.

어떤 명분으로 이들을 우리에게 붙이는지 설명하는 서한이었다. 그 후에는 동행하는 아이들의 특성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명재희는 영특하다는 한 단어로 짧게 설명했지만, 갈유월에 대한 건 별의 별 얘기가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살짝 까칠하고 말도 별로 없지만, 마음을 연 상대에게는 애교도 많은 아이이고, 견식이 좀 넓어지면 한다는 스승의 바람도 있다며, 사설이 구구절절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 사설에는 그녀의 온갖 생활 특성까지 적혀 있었다. 아침잠이 많고, 식탐이 많고, 훈련은 딱 아침 먹고 한 시진, 점심 먹고 두 시진, 저녁 먹고 한 시진으로 정해져 있다나. 네 시진이면 적게하는 건 아니니까.

어차피 서한 앞에 대명분으로 적은 건 핑계일 테니 그게 본 내용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직 안 일어난 것 같지?”

“우리는 빨리 올라갈 필요가 없으니 천천히 가면 된다.”

명재희의 혼잣말에 곽진도가 대답했다. 깨우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침 식사는 갈유월이 일어나면 다 같이 하자고도 했다. 곽진도는 객잔 주인과 대화를 한다 했고, 나는 명재희를 이끌고 뒷마당으로 갔다. 뒷마당에도 마루가 있기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명재희는 하늘을 보면서 물었다.

“뭐하게?”

“너랑 얘기.”

명재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난 진지하게 그녀와 상담하고 싶은 게 있었다.

“무슨 얘기?”

“신법 얘기.”

“오.”

명재희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돌변했다. 성취가 잘 오르지 않는 방축귀매신법의 이야기였다.

지금 난 아버지를 보러 무한에서 적벽으로 달릴 때, 삼 성의 성취 이후로 별 달리 변화가 없었다. 이 성까지는 다섯 달 정도 걸렸는데, 삼 성은 세 달째 진전이 없는 거였다.

가주가 되고 나서 연습할 시간도 부족했고, 경공 연습보다는 검법 연습에 더 비중을 두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지금 몇 성인데?”

명재희는 싱글거리며 물었다. 난 즉각 대답했다.

“삼 성.”

“···응?”

명재희는 눈이 둥그레져서 되물었다.

“몇 성이라고?”

“삼 성.”

“아니, 얘가 미쳤나?”

명재희가 갑자기 내게 분노를 터뜨렸다. 벌떡 일어나기에 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 정도면 엄청 빠른 거잖아? 지금 나랑 장난해?”

“네가 나보다 더 경공의 수준이 높아서 물어보는 거야.”

확실히 명재희의 경공은 내가 아직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바로 옆에 있는데도 가끔 있는지 착각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분통을 터뜨렸다.

“그거야 내가 오 성이라서 그런 거고!”

역시 나보다 높은 성취였다. 내가 말을 하려고 하자 명재희는 내 말을 가로채서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비연각에서도 은영조는 잠입이나 정보 캐오는 것만 하는 특수집단이라서 거의 경공만 훈련하거든? 그리고 난 일곱 살 때부터 한 거야. 내가 삼 성으로 오를 때까지 일 년 반이 걸렸는데, 그게 은영조에서 제일 빠른 기록이었어.”

명재희는 목소리를 크게 높이다가 눈치를 보고 줄였다.

“근데 넌 내가 알려준 지 반 년이 조금 넘었는데 삼 성인 거잖아. 거기서 얼마나 더 빠르게 무공을 진전시키려는···”

명재희가 눈을 이글이글 태우다 찬물이라도 끼얹혀진 것처럼 푹 식어 자리에 털썩 다시 앉았다.

“아니다. 됐다. 들었어. 너 천재라고. 저 무림맹주 제자님하고도 비무해서 이겼다며. 하긴 그렇지. 한 번 보고 따라하면 그게 천재지. 그걸 왜 몰랐을까.”

풀 죽은 명재희의 모습에 나는 괜히 말을 꺼냈나 생각했다. 명재희는 갑자기 쭈그려 앉고 투정을 했다.

“이러니까 내가 무인이 하기 싫어. 세상에는 천재들이 많아. 무인은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내가 돈 많이 줬잖아?”

“···아. 그렇지?”

명재희는 잠시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곧 다시 풀죽은 눈빛으로 돌아갔다.

“사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 것 같아. 돈은 그냥 입버릇이지. 내가 배운 게 무공이니까 이거 하는 거야. 임무 맡는 것도 익숙하고, 그런 게 너무 당연해졌어.”

“그렇구나.”

“그게 싫다는 건 아니야. 언니들은 이제 돈도 많은데 그걸로 장사나 하라지 뭐야. 근데 그러기는 싫더라고. 정보일도 나름 하면 재미있어. 단지 난 옛날에는 돈 때문에 재미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은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어.”

명재희는 아직 자신이 진정으로 뭘 원하는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그 나이 때 가름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은 가름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저 알려줄 걸 알려줄 뿐이다.

“그래도 넌 무공에 재능이 있어.”

“와아. 천재가 조롱한다.”

“정말이야.”

명재희는 혀를 빼물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난 진지했다. 내가 볼 때 그녀 또래에서 그녀보다 경공을 잘 쓰는 아이는 없었으니까. 갈유월도 경공으로 따지자면 명재희에게 상대가 안 될 정도다.

생각해보면 그녀가 오 성인 것도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 앞에서 경공을 사력을 다해 펼친 적이 없었다.

나는 잠깐 생각을 하고 해결책을 떠올렸다. 사실 가주가 되고 나서 늘 생각하던 말이었다. 명재희와 둘이 있을 기회가 없어서 그녀에게 못 말했을 뿐이다. 그녀에게도 이득이 되고, 내게도 이득이 되는 방법.

“내가 가주가 된 거 알아?”

“알지.”

“난 지금 우리 세가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 무인대도 양성하고 있고, 여러 사업도 확장시킬 예정이야.”

“그런데?”

명재희가 흥미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녀가 듣기에는 뜬금없는 말이었을 터다. 그녀가 관련 있는 얘기는 내가 다음 말부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비각(秘閣)을 만들려고 해.”

역시 눈치가 빠른 명재희인만큼, 그녀는 바로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안 것 같았다. 난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말을 이었다.

“네가 거기 와서 일을 해줬으면 해.”

명재희는 입을 살짝 벌렸다. 난처함과 당황함이 동시에 담긴 그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렀다.

“···뭔 소리야?”

“말 그대로야. 네가 우리 세가의 비각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오냐고. 지금 맥락에서.”

나는 진심인지 아닌지 보려고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애초에 그녀가 거부하면 굳이 데려올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 얘기는 방금의 얘기와 아주 밀접했다. 그녀는 그것까지 눈치 채진 못한 것 같았다.

“넌 지금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며. 돈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정보일이 재밌는데 그 이유를 모르는 거잖아.”

“그래서?”

“그런 너한테 지금 필요한 건 사색할 시간과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자유야. 우리 비각에서 일하면, 무림맹의 비연각보다 자유로울 거고, 시간도 충분할 거야.”

“뭐가 다른 거야?임무 받아서 일하는 건 똑같은데.”

“네가 각주야.”

내 말에 명재희는 굳어버렸다.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답변인 모양이었다.

명재희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난 알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일한 무림맹에서 나온다는 건 어려운 결정이었다.

“생각해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마당을 빠져나왔다. 명재희는 가는 나를 보지도 않고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마당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

내가 객잔으로 돌아가자, 곽진도와 피곤해 보이는 표정의 갈유월은 이미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곽진도를 바라봤다.

“···음, 유월이가 와서 빨리 밥부터 먹자고 해서 말이야. 시킨 다음에 부르려 가려고 했다. 음식이 막 나와서 나가려고 했는데···”

“네. 괜찮습니다.”

난 추궁하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확실히 음식은 갓 나온 듯 김이 펄펄 났고, 객잔 주인은 이제 뒤를 돌아 주방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곽진도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

그때 난 서한이 문득 떠올랐다. 식탐이 많다는 이야기. 갈유월의 흉포한 성격을 본 곽진도가 그녀의 청을 들어줘서 밥을 시킨 걸 테다.

곧 뒷마당에서 명재희가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생각을 정리한 것 같네.”

“아니, 음식 냄새 나서 온 건데?”

“아. 그래.”

난 명재희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갈유월은 정말 식탐이 많은 듯 그릇에 얼굴을 쑤셔박는 수준이었고,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소면과 만두로 된 소소한 식사를 마치고 해남파로 올라갔다.

그런데 해남파 정문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있었다. 그 빽빽하게 들이찬 사람들을 보니, 방금 객잔에 묵으면서 봤던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사람들 틈바구니 사이로 목송과 청진도 보였다. 그들은 우리가 온 걸 눈치 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 오늘 그 날인가보군. 하긴 그럴 때 되기는 했지.”

곽진도가 서서히 다가가면서 짜증스런 목소리를 냈다. 내가 물었다.

“뭔데요?”

“있어. 해남파 삼대제자들이 남해십이검을 보여주는 의식. 얼마 안 되게 문파를 개방하는 날이기도 해. 연초에 해서 때가 된 줄은 알았는데, 하필이면 오늘이군.”

우리가 그런 말을 하면서 가까이 가자, 앞의 무리에서 말하는 게 들리기 시작했다.

“구파일방이라고 너무 검사 까다롭게 하는 건 아닌 가 몰라.”

“그래도 다른 명가들도 철저히 검사하더군. 해남파가 그래도 구파일방 중에서는 깔끔하지. 더러운 중원하고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젠장, 그러니까 반 시진 먼저 일어나자고 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해남파에 들어가려면 검사할 부분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긴 마교도일 수도 있고, 도둑일 수도 있기는 하니까.

“그래도 우리는 곽 대협께서 계시니 좀 빨리 들어갈 수 있겠죠?”

명재희가 물었다. 갈유월도 나도 곽진도를 바라보았다. 하긴 같은 해남파인데다가, 장로급 사람을 기다리게 놔둘까. 허나 곽진도는 좀 난처한 듯했다.

“···음, 내가 본파를 오랜만에 와서.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제치고 들어가는 건 좀 그런데.”

나는 사실 아직 정파의 명예, 도리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곽진도는 그런 점에서 좀 고려하는 것 같았다. 문파에 대한 예의라고 해야 하는 걸까.

뭐 그러면 충분히 기다릴 의사는 있다. 다만 두 시진 전부터 온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으니까 최소 저녁까지는 기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미안하구···”

곽진도가 우리에게 미안함을 표하려 할 때, 누군가가 사람들의 인파를 뚫고 해남파 정문쪽에서 나왔다. 그는 푸른 옷과 두건을 하고 있었다. 해남파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사숙조님을 뵙습니다.”

나보다 좀 많아 보이는 나이대의 남자는 곽진도 앞에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곽진도는 처음 본다는 투였다.

“···그래. 반갑구나. 삼대제자더냐.”

“네, 맞습니다. 양초원(梁草原)이라고 합니다.”

“네 스승이 누구냐?”

“조순휴(曺順休) 장로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 사질은 재능이 뛰어나지. 좋은 사람을 스승으로 두었구나.”

“감사합니다.”

그들의 대화는 형체가 보일 정도로 아주 각졌다. 정파 사람들끼리의 대화 방식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양초원과 곽진도와 얘기를 하고 있으니 기다리던 무인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렸다. 곽진도를 알아본 몇몇 무인들이 수군거렸다.

그 바람에 문송과 청진도 우리 쪽을 바라보게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니꼽다는 표정이었다.

곽진도도 그 시선은 눈치 챈 것 같았지만, 무시하면서 양초원에게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여기는 왜 왔느냐? 오늘 같은 날 하산이라도 하는 게냐?”

“사숙조님과 그 일행 분들을 모시러 왔습니다.”

“우리를?”

곽진도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 말에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이없지만 질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해남의 장로급 인사가 해남파를 먼저 들어간다는 것도 특혜고, 정파의 도리인 걸까. 난 여전히 모르겠다.

웃긴 건 곽진도는 그런 질시하는 눈빛에도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는 거다. 해남파에 나쁜 소리가 나올 걸 최대한 차단하겠다는 의지 같았다.

“우리는 그냥 기다려도 되네.”

“안 됩니다.”

양초원이 곽진도의 말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 단호한 태도의 이유는 다음에 나올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장문인께서 내리신 지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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