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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63화 (64/225)

63화 황금공(黃金功)

63화 황금공(黃金功)

난 비급을 살펴보며 정확히 숫자를 세어봤다. 모든 무공을 합치면 백 개하고도 세 개가 더 있었다.

그러나 무공은 다다익선이 아니었다. 한 무공이라도 제대로 배우면 초고수가 된다. 잡다한 무공을 많이 배운다고 고수는 아니었다.

그래도 각 무공마다 장점이 있고, 특별히 위협적인 초식이 있는데다가, 그 무공에 맞는 깨달음도 있었다. 나름 절정의 무인까지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무공이다.

다른 것에 비해서는 난 무공은 잘 모르는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무공 비급들을 탐독하면서 꽤 많이 알 수 있었다. 그러는 도중 깨달은 게 있었다.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나, 학문에 대한 깨달음이나 결국 만류귀종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태을신공을 수정할 수 있었던 것도 그와 일맥상통했다.

“···근데 어떤 무공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연무장으로 도착할 때쯤, 강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래 무공에 대해 묻는 건 실례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들은 그걸 배우는 아이들을 이끄는 사람들. 알면 당연히 좋았다.

“그냥, 뭐. 이거저거 섞은 무공입니다.”

애초에 의아해하던 강운의 표정이 더 알쏭달쏭하게 변했다. 감이 잘 안 잡히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뭐라 설명하기는 애매했다.

그저 이 무공은 내가 아는 깨달음과 무공서들의 묘리를 조합한 것이었다. 결과는 심법 두 개, 검법 두 개. 사실 도법과 부법, 암기술도 만들고 싶었지만 배운 게 검인지라 검법을 만드는 게 더 쉬웠다.

그 무공들은 뭉뚱그려 황금공(黃金功)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참으로 기대되는군.”

“그러게 말이야.”

목현학과 강운은 목소리와 달리 기대감이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곧 연무장에 도착했다. 강운과 목현학이 연무장을 구경할 때, 난 연무장 구석으로 가서 훈련용 인형을 연무장 중앙에 꽂아 놨다.

내가 돌아오자 강운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연무장 시설이 참 좋군. 무림맹은 돌도 안 골라져 있는데 말이야.”

“감사합니다.”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그건 우리가 좋은 게 아니라 무림맹이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훈련을 하는데 돌이 있으면 쓰겠는가. 하지만 곽진도가 끄덕이는 걸 보면 생각보다 열악하게 움직이는 문파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 무공을 봐볼까.”

목현학이 건조하게 말했다. 나는 허리춤에 있는 송로를 꺼냈다.

“잠깐만, 시연을 진검으로 한다는 말인가?”

강운이 물었다. 그건 나 대신 곽진도가 대답했다.

“저 인형, 만년한철(萬年寒鐵)로 만든 걸세.”

“뭐? 저 훈련용 인형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강운과 목현학이 즉각 반발했다. 곽진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큭큭, 하고 웃었다.

“무림맹에 있는 낡은 목인(木人)들하고는 다르지? 조금만 기를 담아도 부러지는 게 무슨 훈련용 인형인가. 그냥 목제 폐품이지.”

“무슨 개소리인가! 훈련용 인형을 만년한철로 만든다는 말은 진짜 너무 낭비 아닌가!”

“맞아. 과유불급도 정도가 있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분개를 하던 강운의 화살이 내 쪽으로 돌려졌다.

“만년한철 인형이라니. 저기에 쓰인 만년한철이면 명검을 이십 자루는 만들었지 않겠는가? 저 만년한철로 차라리 검을 만들어서 훈련하는 아이들에게 주는 게 훨씬 나았을 걸세! 훨씬!”

나는 눈을 잠깐 깜빡거렸다. 솔직히 이들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병장기들도 모두 만년한철로 새로 제작했습니다.”

이건 내가 변명할 일도 아니다. 차라리 다음에 나올 말이 핵심적이었다.

“그리고 저희 돈인데요.”

“···아.”

내가 말을 하자 강운과 목현학이 동시에 머쓱해 했다. 내 말이 암기라도 된 양 몸이 관통된 것 같았다.

“그건, 맞지.”

그나마 빨리 침착해진 목현학이 인정했다.

왜 남의 돈인데도 뭐라 하는 건지. 그건 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곽진도가 답을 알려줬다.

“원래 돈이라는 게 신기한 것이, 자기가 쓰면 더 잘 쓸 거라는 확신들이 있거든. 그러니까 남의 돈인데도 배 아파하고 훈수를 두는 거야. 막상 그 돈을 벌 능력을 먼저 갖춰야하는데, 돈을 쓸 생각만 하니 아주 질 나쁜 심보라고 할 수 있지.”

곽진도의 말에 목현학과 강운의 입이 닫혔다. 아주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나 보다. 그러니까 돈이 많은 걸 질투를 낸다는 말이었구나. 그제야 살짝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됐네.”

“일단 무공이나 보자고.”

강운과 목현학은 인정하기는 해도, 여전히 심술이 난 듯 불퉁한 느낌이었다. 왠지 무공에 대해 더 까다로운 평가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검을 중단세로 세웠다. 아무리 그래도 무인들이다. 내가 검을 들자 진중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천천히 검이 반원을 그리며 밑으로 내려갔다. 내 칼끝에 사람들의 시선이 매달리는 게 느껴졌다.

보여줄 것은 극양절맥에 걸렸던 아이들을 위한 검법이었다. 이름은 대충 금양검법(金陽劍法)으로 지었다.

칼끝은 이제 땅을 향해있었다. 양기가 쌓이면 열기(熱氣)로 변한다. 열기가 쌓이면 불로 변한다. 화기는 확산된다. 밑에 있는 모래가 파여지며 모래먼지가 피어올랐다. 아마 자세히 보면 흙이 계속 여러 개의 원을 만들며 흩어지는 게 보일 거였다.

그 검은 하늘로 향했다가 바로 철인형에게 내리쳐졌다. 부딪친 곳에서 강한 반발과 불꽃이 일었다.

철인형이 반발하는 소리가 연무장 바깥으로 강하게 터져 나왔다. 베고, 찌르고, 올려치고 하지만 모두 안에서 바깥쪽으로 빠져나온다. 발출(發出)은 곧 양기에 어울리는 묘리였다.

발출과 확산이라는 동(動)의 묘리에 천, 주(天, 晝)의 형상을 빼닮은 검술이었다. 어떤 하늘은 격노하여 바람처럼 내려치기도 하며, 우레와 같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콰콰쾅!

마지막 초식은 발출과 확산의 극점인 폭(爆)으로 이어졌다. 잔뜩 당겨진 검이 앞으로 질러가며 수많은 찌르기가 터져 나오는 식이었다.

나는 그것으로 금양검법을 마치고 조용히 납검했다. 화려한 금양검법답게 주변의 땅이 많이 긁혀져 있고,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는 아직도 하늘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했다.

문득 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봤다. 검에 집중을 하다 보니 내가 시연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까먹었다.

곧 흙먼지 속에서 곽진도와 두 무림맹 장로가 서있는 걸 발견했다. 자욱한 흙먼지여도 내 검술을 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을 터였다.

난 칼을 한 번 휘둘러 주변의 흙먼지들을 바깥쪽으로 살짝 걷어냈다. 그제야 그들의 표정이 좀 더 자세히 보였다.

목현학과 강운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말이다.

*

“···미친놈이 아닌가?”

강운은 검을 휘두르는 금목환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목현학도 그것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느리게 주억거렸다.

곽진도는 그들의 심정이 어떤지 절절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 정도의 초절정 무인이라도 무공을 만드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곽진도도 남해십이검을 변형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는가.

그래도 수석 장로라는 직에 있는데 가주를 욕하는데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애매했다. 솔직히 곽진도가 보기에도 미친놈이었기 때문이다.

“깨달음 여하에 따라 초절정까지 이를 수 있는 무공이군. 완성도만 보면 명문의 검법이라고 해도 믿겠네.”

목현학이 담백하게 말했다. 물론 말하면서도 이게 정상인가를 몇 번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양기를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무공이라고 해야 되나.”

“···이렇게 극단적인 검법이라니. 다른 사람은 아예 배우지도 말라는 거군.”

강운이 말했다. 강운은 뇌기에 해당하는 강뢰도법을 익히고 있고, 이것 역시 양공에 해당하는 절학이었다. 그렇기에 저 무공의 성질을 누구보다 빨리 파악한 것이었다.

물론 열셋의 아이가 저런 무공을 만들 수 있냐는 근본적인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검로 하나하나에 있는 깨달음이 심후했다. 양기에서 화기, 움직임에서 폭발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전개는 무공을 처음 익히는 자들에 대한 배려까지 들어가 있었다.

“저 대단한 아이의 스승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군.”

강운이 물었다. 곽진도는 할 말이 없었다. 알려준 건 남해십이검의 움직임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훈련은 모두가 자신이 습득을 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잘하네.”

곽진도는 그 한 마디를 했다. 그게 끝이었다. 목현학은 조용히 금목환이 펼친 무공의 초식을 복기했다.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분신처럼 흩어지는 검술은 분명 자신이 보여줬던 탈명표풍이라는 초식과 닮아있었다.

그걸 정확히 하는 걸로 모자라 변형까지 가할 수 있단 말인가. 탈명표풍은 단검술이고, 또 암수(暗數)에 가까운 절초기 때문에 은밀한 성격의 음공(陰功)이었다. 근데 그걸 양공으로 변환을 시켜 만든 거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묘리가 양기에 치중되어 있어 극양절맥에 걸렸던 아이가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검법이었고, 금목환의 경지가 아직 내공이 깊지 않아서 위력이 약했다는 점이다.

물론 애초에 극양절맥에 걸려있던 아이들만을 위한 무공이라면 그건 도리어 장점이 됐고, 금목환의 나이가 열셋이라는 걸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성취였다.

애초에 이건 자기 세가 무인들을 위한 무공이고, 자신의 진신 절기도 아니었다. 어쨌든 자신들이 절맥에 걸린 아이들을 맡고, 절맥에 걸린 아이들이 이런 좋은 무공을 배우고, 황금세가의 금력으로 영약까지 잘 공급받는다면 대체 어떻게 결과가 나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소림의 정예라는 칠십이나한도 이렇게는 안 길러졌을 거다.

“···정말 중원에 이름이 알려지면 폭풍이 일겠군.”

“지금은 최대한 안 알려지는 게 좋은데 말이야.”

강운의 말에 곽진도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재능은 곧 보물이다. 너무 귀한 보물을 갖고 있으면 위협을 당하는 법. 금목환은 딱 그쪽이었다.

“저 재능은 감출 수 있는 게 아닐세. 주머니 속에 바늘이 있는 게 아니라 대검이 있는 수준이군.”

목현학이 딱 잘라서 말했다. 강운과 곽진도도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비범하면 어떻게든 널리 퍼지기 마련이었다.

*

목현학의 우려대로, 사실상 종리운의 함구령은 지켜지지 않았다. 금목환과 갈유월이 비무할 때는 무림맹 무사와 장로들만 참관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원인이라면 당연히 무림맹주 제자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무림맹에 방문차 온 사람들도 많이 보고 있었다. 그들의 입을 전부 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애초에 종리운도 미봉책이라 생각한 것이었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나아서 한 것이다.

물론 다행히 그들 중 절정의 무인은 없어서 금목환이 이화접목 같은 수단을 썼다는 건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각보다도 비무 결과는 중원에 빨리 퍼지고 있었다.

“무림맹주 제자가 황금세가 공자와의 비무에서 졌다며?”

“황금세가? 상가잖아?”

“아무튼 난 그렇게 들었는데?”

“흰 소리하기는.”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받아들였다. 무림맹주 제자의 재능과 무위는 정확히 몰라도, 고작 상계의 아이에게 졌다는 건 중원의 상식선에서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도 많았다. 단순히 이겼다는 정보를 뛰어넘은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그랬다.

“그 애가 곽진도의 제자일 수가 있다고?”

“남창이나 강서 쪽에서는 이미 기정사실로 알고 있는 듯합니다.”

잠시 말이 멈췄다.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났다. 여기는 해남도의 북쪽, 해구(海口)였다.

보고를 하는 사람은 뒷짐을 지고 서있었고, 보고를 받는 사람은 바다가 보이는 평상에 앉아 화주를 먹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해남파의 상징인 푸른 옷과 두건을 하고 있었다.

또한 앉아있는 사람의 허리춤에는 다섯 개의 매듭이 있는 금실이 있었다. 오결. 장문인을 뜻하는 매듭의 개수였다.

해남의 장문인, 적유엽(赤柳葉)은 화주를 따랐다.

“옛날에 곽진도가 제자를 받았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을 때,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저희도 그래서 넘겼죠. 원래 제자를 안 받으시려는 분 아니었습니까.”

“근데 본파에 입적을 안 시켰나보지?”

“그런 것 같습니다.”

“미친놈. 해모환도 그것 때문에 가져갔군. 장로회에서 쓸 데가 있다고 지랄했다고 들었는데.”

적유엽은 욕을 뱉었다. 곽진도는 적유엽에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해남에서 편히 후학이나 가르치면 될 것을 괜히 상계에 끼어들어서 고생만 하는 놈.

그런데 궁금하기는 했다. 적유엽이 곽진도의 재능을 아까워해 그렇게 제자라도 두라고 했을 때 무시했던 곽진도가 왜 제자로 들였는지.

무림맹주의 제자가 진 게 진짜라면, 곽진도를 스승으로 받아들였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진짜가 된다. 그래도 무림맹주의 제자를 이길 수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나마 가능성을 따져보면 그렇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본인이 알지 못하는 게 많을 것이었다. 무림맹주의 제자라면 무림맹 장로들에게 들어서 대충 어떤 실력인지 알았다. 황금세가의 막내공자, 이제는 가주가 됐다는 녀석이 처음부터 무공을 단련하지 않았다면 무림맹주의 제자를 이길 수가 없었다.

단순히 곽진도의 가르침과 해모환 하나로 했다기에는 불가능한 성과니 말이다. 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알려지지 않은 일들은 적유엽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걔네 불러와.”

탁.

빈 술병이 책상에 얹히는 소리가 청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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