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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58화 (59/225)

58화 사치를 할 수가 없는 사람이야

58화 사치를 할 수가 없는 사람이야

내 말에 아이들이 동요했다. 희망을 확인받았기 때문일까, 무반응에 가까웠던 아이들에게 가장 극적인 변화였다. 그나마 여기 앞의 여자아이는 눈빛이 빛나는 만큼 반응이 살아있었다.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

“왜?”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뒤를 돌아봤다.

“당장 절맥을 고치려는 영약을 구한다고 해도, 그렇게 한 번에 많이 구할 수는 없어! 그렇게 구하려면 원보를 낳는 오리의 배라도 갈라야 해!”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내가 내는 건데.”

난 여자아이를 지나쳤다. 여자아이의 차가운 어깨가 스쳤다. 여전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아이들을 봤다.

앞의 여자아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지만 대개는 어렸다. 두 다리로 못 서 부모 품에 안겨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하긴 절맥은 열다섯 전에 유명을 달리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런 점에서 나와 비슷한 열둘, 열셋 아이들은 다들 피부가 창백하고 눈이 깊숙하게 패여 있었다.

“난 아까 말했다시피 너희들을 구하러 왔어. 영약도 줄 거고, 좋은 밥도 먹이고, 좋은 집에 살게도 할 거지.”

사람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실 그들도 앞에 나선 여자아이의 말에 공감하고 있을 거였다. 아무리 무지렁이라도 절맥을 고치는 데 많은 돈이 든다는 건 아니까.

난 그것 역시 이해했다. 오랫동안 절망에 있던 사람들은 희망을 쉽사리 믿을 리 없다.

“물론 알아. 무섭겠지. 모르는 사람이 황당한 제안을 하는데 같이 가자는 거. 근데 난 너희를 설득하는 게 아니야. 너희는 내가 샀고, 너희는 날 따라와야 해.”

난 뒤를 힐끗 바라봤다. 여자아이도 내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거야. 밤을 타 도망가려면 도망가도 좋아. 어차피 너희는 은자 다섯 냥 정도를 주고 데려온 거야. 난 그 정도는 아쉽지 않아.”

난 그렇게 말을 마쳤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그중에서 여덟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 역시 가족이 없는 아이로,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를 그렇게 고치는 이유가 뭐죠?”

“그건 너희도 알잖아. 절맥을 고치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어.”

내 말에 사람들이 흠칫했다. 절맥의 유일한 장점은 모두 알고 있었다. 구음절맥은 음공에 엄청난 소질을 보이며, 극양절맥은 양공에 엄청난 소질을 보인다는 것. 물론 예외는 있었다.

“절맥을 고친다고 모두 초절정 고수가 되는 건 아니야. 고작해야 절정에 멈추는 사람도 있지. 그래서 웬만큼 돈 있는 사람들도 절맥 치료를 잘 안 하려고 하는 거야.”

여자아이가 그 점을 지적했다. 아까보다는 훨씬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사람들이 경청하고 있으니 진정한 듯했다.

“상관없어. 너희들은 절맥을 치료받고, 우리 가문의 무인이 되면 돼. 절정이 돼도 상관없고, 일류가 돼도 상관없어.”

“그 비싼 영약을 때려 부어서 고칠 건데, 일류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너무 사치스러운 거 아니야?”

여자아이는 여전히 내 말을 못 믿는 느낌이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기는 했다. 반신반의는 여전했다. 그러나 그건 내일 보면 알 것이다.

“사치는 주제넘게 감당하지 못하는 돈을 쓰는 거잖아.”

난 그녀를 바라봤다. 적어도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난 살면서 사치를 할 수가 없는 사람이야.”

*

숙소도 만들어놨고, 시종도 준비해놓고, 식사도 준비해놨지만 성가장은 고작 며칠 묵을 곳이었다.

내가 일차적으로 성가장에 아이들을 모이게 한 이유는 있다.

첫째는 황금세가에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했고, 둘째는 그들 중 도망칠 사람을 걸러내야 했다.

은자 다섯 냥 정도는 손해 볼 수 있었다. 그 정도까지 나를 믿지 않으면 나를 위해 검을 들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일흔하나, 일흔둘. 다 모였네.”

나는 아이들을 하나씩 세어가며,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게 쭉 둘러보다가, 뒤쪽에서 쭈그려 앉아 당과를 빨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안 갔네?”

“난 구음절맥이야. 요즘 같은 날씨에 함부로 밤에 나가면 죽어.”

“그래. 그런 것 같더라.”

그 한기는 내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었다. 구음절맥으로 혈맥이 얼어붙어야 낼 수 있는 공력이니 말이다.

“너 이름 뭐야?”

“···왜. 반했어?”

“아니.”

“한유림.”

“그래. 난 금목환이야.”

내가 그렇게 통성명을 마칠 때, 슬슬 성가장으로 마차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커다란 마차들이 들어오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저 마차에는 구음절맥의 아이들에게 줄 따뜻한 담요가 있을 거고, 극양절맥의 아이들이 발작할 때 쓸 얼음들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극양절맥은 앞으로, 구음절맥은 뒤로.”

나는 아이들을 분류했다. 담요가 있는 마차와 얼음이 있는 마차들을 갈라놨으니. 가족들까지 합쳐 근 이백 명이 되는 사람들이 우루루 분리됐다.

“···와, 얼음이다.”

마차 문을 열어본 사람들 중 한 명이 멍하니 읊조렸다. 하긴 얼음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긴 하다. 그것도 빙고(氷庫)가 아닌 마차에 있으니 신기할 터였다.

“다들 타.”

사람들은 머뭇거렸다. 막상 간다고 생각하니 두려운 모양이었다. 제일 먼저 탄 건 내게 질문을 했던 남자아이였다. 남자아이가 타자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탔다.

다 탄 것을 확인한 나는 맨 앞의 마차에 탔다. 맨 앞의 마차에는 곽진도와 금월상이 타있었다.

“···나 몰래 이상한 짓을 했더구나.”

금월상과 내가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곽진도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가주인데 몰래하는 게 어디 있나요.”

“그렇긴 그렇지. 그래도 좀 알려는 주려무나. 갑자기 만년빙정, 만년지극혈보, 인형설삼(人形雪蔘), 태양화리(太陽火鯉) 같은 영약들이 수레로 채워서 들어오는데 안 놀랄 수가 있겠느냐.”

“아, 그건 죄송합니다.”

“참도 죄송해 보이는구나.”

오해였다. 난 그래도 곽진도에게는 말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빠서 까먹었을 뿐이다.

영약이 마차로 들어오는 꼴을 보며 곽진도가 경악하자 그때 금월상이 내가 절맥을 가진 아이들을 모은다고 알려준 거다.

그때는 뭔 말도 안 되는 돈질이냐며 방방 뛰었지만, 이미 영약도, 아이들도 다 들여온 마당에 곽진도가 할 건 없었을 거다.

그래도 곽진도는 여전히 궁금한 게 있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목환아. 궁금한 게 있다. 당장 즉전에 쓸 수 있는 전력을 뽑는 게 낫지 않겠느냐? 당장 황금세가가 빈집인데 말이다.”

“일단 대비는 해놨습니다.”

난 금수린과 진법가들을 대동하여 외곽을 한 번 순찰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금수린에게 진법을 만드는 기초를 알려주면서, 진법가들과 함께 많은 진을 쌓았다.

진법은 기관보다 고가의 방범 장치다. 싸면 은자 열 냥에서 천 냥까지 가는 것도 있었다. 물론 우리는 다 최고급으로 도배를 해버렸다. 웬만한 구파일방 일대제자들이 와도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맬 규모와 정밀함이었다.

“그리고 당장 침입을 당할 일은 없을 겁니다. 군소문파들은 무림맹과 동맹이니 못 쳐들어올 거고, 구파일방들은 의견을 모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니까요.”

이건 나와 금월상 둘이서 한 이야기였다. 차라리 아이들을 모아서 우리가 양성을 하는 게 낫지, 검증도 안 된 무인들을 돈으로 뽑아봤자 전과 똑같은 꼴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이 여유 있을 때 하루라도 빨리 양성을 시키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빨리 세가의 기본 틀을 잡아놔야 했다. 나 하나 세가에 없어도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당장 지금 나도 세가 내부의 일을 하느라 개인적인 훈련을 할 여유가 거의 없었다. 태을헌원신공은 삼성에서 지지부진하게 머물고 있고, 남해십이검도 칠 초식까지 수련하고 더 배우지 못했다.

내 조급한 마음이 말들에게 닿았는지, 생각보다 빨리 세가가 있는 남창에 도착했다.

물론 조급한 마음이 아니라, 다른 원인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 세가에 있는 말들도 다 바꿨단다. 돈이 워낙 썩어나야지.”

“아.”

원체 황금세가의 말과 마차들이 화려해서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 곽진도가 마차와 말들을 모두 최고급으로 다시 갈아치운 거였다. 애초에 원래 남아있던 것이 별로였냐, 그것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최고급이었다. 그런데 그냥 갈아치운 거다.

이렇게 돈을 물 쓰듯이 써도 남는다는 게 바로 황금세가였다.

“이렇게 보니 화려하긴 하네요.”

말들과 마차들의 장식들이 화려하니 주변 사람들의 이목도 쉽게 끌렸다. 그야말로 우리 돈 많다고 자랑하는 꼴이었다.

우리가 마차를 끌고 올 때 남창의 사람들은 좌우로 서서 우리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황금세가가 다시 뭔가 하려나보군.”

“가주가 실종된 뒤로 죽은 듯이 있더니만. 난 혹시 돈이 없어진 줄 알았지 뭔가.”

“황금세가의 돈이 없어지는 것보다 우리가 백골이 되는 게 빠를 걸세.”

주변 남창 사람들도 이제는 적잖이 황금세가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물론 외원 일부와 내원은 완벽히 외부와 차단되어 있어 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마차의 문을 살짝 열고 몸을 빼어 뒤를 바라봤다. 모두 창문이 검은 천으로 덮여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말은 잘 들었다. 천을 들추고 바깥을 보지 말라고 명을 내려놨는데, 그걸 잘 지켜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남창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내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성가장에서 아이들을 점검하는 동안, 금월상은 내원에서 아이들을 받을 준비를 했다.

난 금월상에게 물었다.

“형님. 준비는 다 된 겁니까? 좀 미숙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여기 계속 있을 애들이니까.”

“후후. 보고 놀라지나 말려무나.”

금월상은 자신 있게 말했다. 난 금월상이 무슨 준비를 했는지 몰랐다.

백 명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일단 임시적으로 내 전 숙소인 옥묘각으로 정했다. 그 외 영약들과 이부자리, 훈련할 검, 건물 내부 개조, 옥묘각 근처에 두를 진법 같이 잡다한 건 모두 금월상이 맡았다.

우리 마차는 옥묘각으로 다가갔다. 곽진도도 궁금하다는 듯 마차 문을 열고 옥묘각을 바라보고, 나도 반대쪽 문을 열어 옥묘각을 바라봤다.

“오.”

“···허.”

나와 곽진도의 감탄사가 함께 터졌다. 어떻게 한 노릇인지, 그 며칠 사이에 옥묘각의 구조 자체가 바뀌어 있었다. 넓게 둘러친 목책과 연무장, 무기들. 그리고 옆에 가설(假設)해놓은 창고는 영약 창고임이 분명했다.

그것만 했으면 놀라지 않았을 거다. 그 바뀐 것들이 모두 백금색으로 도배가 되어있다는 게 놀라웠다.

“돈지랄을 해놨구나.”

“잘 해놓으셨네요.”

곽진도와 내 평이 엇갈렸다. 어차피 아이들이 쓸 거니까 빛나는 게 차라리 좋을 거였다.

곧 우리의 마차가 창고 앞에 멈췄다. 곽진도가 육합전성을 이용해 크게 외쳤다.

“모두 나오거라!”

그 말에 바로 문이 벌컥 열렸다. 아무리 빨리 왔다고 해도 아이들에겐 답답했던 시간일 거다.

어망에서 풀어져 나오는 물고기들처럼, 사람들이 마차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먼저 바깥에 발을 내딛은 사람들은 뒤에 나올 사람를 위해 비켜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커다란 옥묘각과 주변의 화려한 장식들 때문이었다.

“···와아.”

여기 끌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빈곤한 생활을 했을 거다. 절맥이란 중병을 앓으면 가세가 기울기 마련이기도 했고, 또 은자 다섯 냥에 넘어왔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나오면서 눈을 어디다 둬야할 지 모르는 것 같았다. 보는 곳마다 신기하고 화려하니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었다.

“자, 이제 너희들은 여기서 살게 될 거야.”

내가 큰 소리로 그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사람들의 눈이 둥그레졌다. 설마하고 기대는 했지만 아예 믿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역시 그들은 희망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한유림. 나와.”

난 말했다. 이들 중에서 이름을 아는 게 한유림이 전부였다. 한유림은 주저하며 내 앞으로 나왔다. 사나웠던 그녀도 여기까지 온 이상 내 말을 고분고분 듣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은 반항스러운 눈빛이었다. 난 예감했다. 이 아이는 내가 조직한 황금세가의 무인들 중에서 대장을 맡게 될 아이였다.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서있는 한유림 앞에서, 창고의 문을 확 열었다.

한기와 열기가 뒤섞인 희한한 기운과 향기로운 냄새가 바깥으로 훅 퍼졌다.

“이게 너희들을 치료할 영약이야.”

한유림을 포함한 아이들은 고개를 위로 꺾었다. 영약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이 일 장이 쌓여있으니 압도 될 만도 했다.

나는 그 창고로 가서 맨 위에 올려진 영약 하나를 꺼냈다. 비단에 감싸진 영약을 만져보니 뜨거운 기운이 흉포하게 맴돌고 있었다. 만년지극혈보였다.

그걸 들고, 난 한유림 앞에 다가갔다. 멍하니 서있는 한유림에게 난 만년지극혈보를 건넸다.

“먹어. 네 거야.”

세상 중원 어디에 절맥을 고친 무인들로만 이루어진 부대가 있던가. 그렇게 사치스러운 부대는 우리밖에 없었다.

이들은 중원에 황금세가라는 곳이 단순한 상가(商家)가 아닌, 무가(武家)로 인식되게끔 할 시금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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