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세가 절대무신-43화 (44/225)

43화 서서는 만리를 본다

43화 서서는 만리를 본다

앞에서 교룡편을 휘두르던 등용극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뒤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곧바로 뇌성과 함께 작은 비도 같은 것이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거리는 서른 장에 가까웠지만, 등용극 같은 고수에게는 쉽게 보일 정도였다.

“저게 무슨···”

등용극은 교룡편의 끝을 잡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저 멀리서부터 굉음과 폭발, 비명이 가득했다.

부하들 역시 이상함을 느꼈다. 부대가 동요했다. 그와 동시에 중앙과 좌우에서 함성소리가 울렸다. 아까까지 밀리기만 하던 황금세가 무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돌진하는 것이었다.

황금세가의 넓게 퍼져있던 좌우 진영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려 중앙으로 짓쳐들어왔는데, 중앙 한가운데에 있는 등용극의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제련된 살기와 일사불란함이라니.

사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이들의 수비 합격진은 황금세가의 수준이 아니었다.

‘대체 어디서 지원을 하는 거지?’

아무리 둔한 등용극이라도 이게 황금세가의 무사들이 아닌 건 눈치챘다. 직접 칼을 대보면 무인으로서 알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일단 행동이 먼저였다. 등용극이 동서남북을 빠르게 둘러봤다. 정면, 좌우에서는 짓쳐들어오고 있다.

가뜩이나 뒤의 소란 때문에 동요했던 주산파 무사들은 갑작스런 반격에 더욱 흐트러졌다.

지금 주산파의 주 병력들은 사방에서 공격받고 있다는 심리적인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주산파가 지금 칼날을 앞으로 세우고 아까처럼 싸운다면 더 효율적이겠지만, 이미 뒤에 신경이 쏠린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퇴각! 다 뒤로 빠져!”

등용극은 빠르게 결정했다. 결정하자마자 그는 뒤로 돌린 다음 달렸다. 주산파의 부하들은 최대한 문주를 위한 길을 비켜줬으나, 좌우로 압박해오는 상황에서 공간은 한계가 있었다.

등용극의 몸뚱이에 부딪쳐 넘어진 사람들은 다시는 일어날 수 없었다. 진영이 급속도로 계속 좁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라, 이 사파 놈들아!”

“우리가 무림맹 청무대다! 개자식들아!”

짓쳐들어오는 병력들은 그렇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주산파의 무인들은 순간 혼란에 빠졌다.

황금세가에 무인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무림맹의 무인이었다니.

하지만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각자의 칼에 담긴 푸른 검기들이 전장을 요란히 물들였다.

콰콰콰쾅!

아까와는 전혀 다른 치열함이었다. 이번에는 공격 대 공격. 무림맹 청무대는 계속 수비를 했다는 것에 악이 받쳐있었고, 주산파는 죽음을 직감하고 칼을 휘둘렀다.

등용극은 그걸 보면서 입술을 씹었다. 그때, 문득 등용극은 북서쪽을 바라보았다.

‘형산파는 뭐하고 있지?’

생각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황금세가의 정원이 넓어서 북서쪽 담장이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전투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 검과 검이 부딪치고, 기가 폭발하는 소리는 들렸어야 마땅했다. 왜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건가.

“옹 공자!”

등용극은 불안감에 가득 차서 뒤를 돌아봤다. 황금세가에 진입하기 전까지 자신의 뒤에서 붙어있던 옹소후였다.

대체 어디로 갔을까. 등용극이 홀리듯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마주 오는 부하들은 숲길에서 나뭇가지와 거미줄을 걷어내듯 좌우로 밀쳤다.

“옹 공자, 옹 공자는 어디 있나!”

옹소후를 애타게 찾던 등용극의 눈에 띈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옹소후에게 붙여놓은 부하였다.

“옹 공자는 어디 있지?”

“억!”

등용극은 바람같이 날아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갑자기 멱살을 잡힌 부하는 대경실색했다.

문도는 등용극의 눈을 피했다. 등용극의 눈빛에서 점점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럼에도 문도는 입에 밀랍이 붙어있는 것 마냥 쩍쩍거리기만 하고 눈동자는 갈 곳을 잃어 흔들렸다. 더욱 더 불안감을 느낀 등용극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옹소후는 어디 갔냐고, 이 씨벌놈아!”

그제야 문도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

문도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분기탱천한 등용극이 수도(手刀)로 문도의 목을 날려버린 것이다.

등용극이 눈을 시뻘겋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모두 눈을 피했다.

설상가상이다. 후방진영으로 가면 갈수록 신발 안쪽으로 들어오는 피는 찰박거리고, 시체의 단면에서 올라오는 김은 코 끝에 자욱해지고, 비명은 더욱 선명해진다.

등용극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크게 고함을 질렀다.

“내가 주산파 문주 전당교룡(錢塘蛟龍) 등용극이다!”

그리고 그 비명의 중심으로 도약하여 교룡편으로 바닥을 쓸었다.

두 개의 인영이 그 교룡편에 물러났다.

한 사람은 흰 머리를 뒤로 하여 말총처럼 묶은 사내였고, 하나는 검은 머리를 더벅머리로 덮은 사내였다. 모두 나이는 지천명 정도 되어 보였다.

그 둘은 등용극은 신경도 안 쓴 채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라고?”

“전당교룡이래.”

“전당? 아, 전당강을 얘기하는 건가?”

“수적 놈인가 보지. 대개 강 이름 들어가면 수적이잖아.”

등용극은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에 분노했다. 자신은 절강의 패자. 주산파의 문주였다.

“너희의 이름을 밝혀라! 절강성의 패자로서 그 정도 들을 자격은 있다!”

“아, 우리를 몰라서 그랬던 거군.”

흰색 말총머리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무주공산인 절강성의 패자인 건 별로 궁금하지 않구나. 다만 내 무공을 보고도 못 알아보다니 자존심이 좀 상하는구나.”

말총머리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검이 사선 위로 휙 펼쳐졌다. 곧 기의 흐름이 실처럼 나왔는데, 서로 부딪쳐 타는 소리가 났다. 기가 부딪칠 때는 하얀 빛이 났다.

“이건 강뢰도법이라 하고, 나는 강운이라고 한다.”

강운은 사선으로 올린 칼을 본인의 앞에서 느리게 그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목현학이라고 하고.”

등용극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말도 안 된다. 비동형 목현학, 일명만뢰 강운은 전 중원에 알려진 무인이었다.

그런 초절정의 고수들은 어디 섬서나 하북 쪽에나 모여있는 것 아니던가. 왜 이런 강서, 절강 같은 한적한 곳에 와서 난장판을 피는 것인가.

이 초절정 고수 두 명을 부를 정도로, 황금세가는 힘이 있었던 건가. 누가, 대체 누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냐···

그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날아온 강운의 전격(電擊)에 등용극은 심장이 꿰뚫리고 말았다.

“절강성의 패자가 죽어버렸군.”

가만히 지켜보던 목현학은 등용극이 풀썩 쓰러지자 클클 웃었다.

청무대 무인들은 그것을 보고 바로 외쳤다.

“등용극이 죽었다! 해치운 건 일명만뢰 강운 대협이시다!”

주산파의 무인들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앞과 뒤를 살폈다. 좌우, 중앙에는 진영이 좁혀오고 있고, 뒤는 공간은 넓었으나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

전투는 사실상 끝났다. 전투 의지를 상실한 주산파 무인들은 힘없이 대항하다 죽거나, 칼을 떨어뜨리고 투항을 요청하기도 했다.

여상우는 그것을 지켜보며 곽진도에게 말했다.

“대단하지 않소?”

“저들의 무위가? 나도 내려가면 저 정도는 했지. 앞에서 다 시선 끌어주고, 뒤에서 습격하면 저 정도 못할까.”

“아니, 이 판을 짠 게 어린 아이라는 것이. 앉아서 천 리를 보는데, 선다면 어떻겠소. 만 리까지 보지 않겠소?”

곽진도는 무안한 듯 턱을 치켜들어 목을 긁었다. 여상우는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최대한 주산파를 깊숙하게 끌었소. 우리가 최선이라고 생각한 그 지점까지 주산파 사람들이 왔단 말이오.”

“에이, 그건 그래도 우연의 일치겠지.”

곽진도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제자놈이 신묘한 녀석이라지만 보이지도 않는 전장을 꿰뚫어 조종한다니. 금목환이 무슨 부처님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오. 장로들 둘이 무림맹, 무한에서 출발했다는 소식과 무공 수위를 듣더니 지금쯤 도착한다고 했거든. 진영의 속도도 그것에 따라 맞춘 거지 않소.”

“···아니, 그게 말이 되오? 애당초 그걸 믿는 건 또 뭐요?”

곽진도가 어이없다는 듯 여상우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곽진도는 진영을 짜고 난 후의 결과만 들었을 뿐, 정작 전략에 대해 논의한 건 여상우였다.

아무리 그래도 곽진도는 그건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한에서 나온 무인의 출발 시간을 듣고 도착시간을 예상한 뒤, 그것에 맞춰 작전을 짠다? 말 같지도 않은 얘기 그만하시오. 내 제자가 훌륭한 건 익히 알고 있으니까.”

사실 곽진도도 처음에 세가로 들어올 때, 금목환이 예상한 시간에 들어왔지만 그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여상우는 그저 웃었다. 솔직히 자신이 내뱉고도 말도 안 되는 말이긴 했다. 허나 사실인 걸 어떡하란 말인가. 금목환은 자신 있게 해가 하늘 정중앙에 떠 있는 미시정(未時正)에 맞춰 온다고 했다.

여상우는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의 정점을 찍은 태양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

옹소후는 이미 황금세가를 벗어나 근처의 숲 속에 숨어있었다.

옹소후는 황금세가의 무인으로 분한 자들의 정체를 알아챈 유일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무림맹에서 본 청무대가 쓰는 무공이었다. 어떤 경로로 무림맹이 왔는지는 모르나 왔다는 거다.

등용극과 주산파 무사들은 저들이 무림맹 사람인지 모르는 듯했다. 하긴 황금세가 무사들의 복장을 입고 있었으니까.

당장 옹소후는 주산파가 습격하면 형산의 사람들에게도 호응을 해놓으라고 얘기를 해놓았는데, 그 호응도 없다.

‘그러라지.’

그 안에서 호응을 하고 주산파가 이긴다면 그것대로 좋았고, 주산파가 져서 죽는다면 그것대로 좋았다.

사실 형산의 간자들 역시 형산파가 오는 걸로 알고 있었다. 옹소후는 형산의 간자들까지 속인 것이다.

어차피 그들이 살아봤자, 옹문규의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 형산파로 소환을 당할 것이다. 거기서 분명히 지휘가 잘못됐네, 현장이 잘못됐네 다툴 게 분명했다.

그럴 바에는 현장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에게 몰아주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옹소후가 생각한 최선의 상황은 형산의 사람들은 죽고, 주산파가 이기는 것이었으나 그것까지는 힘들어보였다.

이제 자신이 형산으로 가서, 아버지에게 황금세가의 곽진도가 옹문규를 죽이고, 그것에 분기탱천한 본인이 주산파로 차도살인지계를 시행하여 서로의 전력을 소모시켰다는 보고를 하면 됐다.

옹소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게 바로 만천과해(瞞天過海)로구나.”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건넌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해냈다. 주산파를 속여 넘기고, 후탈이 있을 사람들을 제거하고, 자신은 공을 세우고 화를 피한다.

옹소후는 마지막으로 본인의 할 일을 알았다.

“후.”

발검을 했다. 이것으로 자신의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야 했다. 엉망진창인 상태로 가야 더 신빙성 있고 절절할 것이 아닌가.

제일 확실한 건 여기서 상처를 내고 가는 것이었다. 피가 난 채로 남창에서 형산까지 달려서 본인의 상처 입은 모습을 증언할 사람이 많으면 좋았다.

“···하.”

그때 갑자기 옹소후는 칼을 쥔 손을 멈췄다. 옷은 쉽게 찢었으나 몸에 상처를 내는 건 쉽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본인은 무인이었다. 급소가 아니면서 피가 많이 나는 곳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손은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제야 옹소후는 일류까지 올라오면서 한 번도 칼에 상처를 입은 적도 없고, 뼈가 부러져본 적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장문인의 아들로 태어나 귀한 영약을 먹고, 알아서 조심하는 무사들 때문에 다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쓰라리고 작열통이 심하다지.’

기억 속에 있는 통증에 대한 이론. 인정하기 싫었지만,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검을 짧게 들고, 머리를 숙여 본인의 몸을 바라보았다.

칼은 허벅지에도 가고, 팔뚝에도 가고, 배 쪽에도 닿았지만 어느 한 쪽도 벨 수 없었다.

그렇게 옹소후는 칼을 들고 일 각을 고민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 본인 몸에는 상처 하나 내지 못하는구나.”

그때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기감을 펼치고 있었는데도 언제 온 지도 몰랐다.

옹소후가 숨을 중간에 끊고 뒤를 돌아볼 때 앞에 섬광이 번쩍했다.

“아아악!”

순식간에 왼쪽 눈가가 뜨거워지고 뜨거운 피가 울컥 땅에 뿌려졌다. 뒤늦게 그 섬광이 검격이라는 걸 눈치 채고 허겁지겁 기수식을 펼쳤다.

깊게 베인 왼쪽 눈 대신, 오른쪽 눈으로 자신을 습격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흐흐.”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옹소후는 웃었다. 지금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한 장본인, 금목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옹소후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차이 나게 작은 금목환을 내려다보았다.

“네 목이라도 베어가면 내 목은 살 수 있겠구나. 와줘서 고맙다.”

금목환은 반대로 올려다보며 느릿하게 웃었다.

“나야말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