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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38화 (39/225)

38화 듣던 대로

38화 듣던 대로

청무대 부대장 성유범은 지시를 들을 때 살짝 갸웃했다.

곧 별채 뒤뜰에 진법에서 나올 사람이 있으니 진법 끝에 서 있다가 작전소로 데려오라는 지시였다.

갑자기 대주가 뭔 바람이 불었는지 진법가들을 별채로 데려갈 때부터 이상하다 했지만, 누구를 시험하려고 한 것일까.

성유범이 바깥을 대충 보니 청무대의 대원들을 뽑을 때 상황 대처능력을 볼 때 쓰는 진이 별채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여기 남창에서 대주 마음에 든 무인이라도 발견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주 가끔 그렇게 청무대에 들어온 몇몇 무인들이 있었으니까.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치는데, 성유범을 갸웃하게 만드는 건 고작 사람 인도에 자신을 불렀다는 점이었다. 무슨 명문가의 자식이라도 되는 건가. 여전히 무림맹은 구파일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는 하니까.

“근데 오늘 방문자는 없는데.”

성유범은 자신이 들고 온 죽간을 펼쳐서 오늘의 일정을 봤다.

보통 명가 사람들이 출입하면 무조건 방문 일정을 사전에 알려야 했다. 그리고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게, 여기는 지금 작전구역이었다. 작전구역에서 방문자를 어찌 받는다는 말인가.

성유범은 혼란스러운 머리를 잡고 흔들었지만, 애초에 성유범에게 이건 풀 수 없는 문제였다.

그가 놓치고 있는 사실이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무림맹주가 잠행을 하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즉, 무림맹주가 여기 있다는 걸 모른다.

둘째, 천지약이 자신만 만날 거라고 생각해서, 굳이 휘하 대원들에게 전파를 안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맹주를 수행하느라 부대주를 보낸 것이고. 이건 천지약의 작은 실수였다.

성유범은 곧 생각을 깔끔히 포기했다. 어차피 자신의 임무는 작전소로 데려다주기만 하면 끝이기 때문에. 강호에서는 아는 데까지만 알면 충분했다.

“의자는 뭐야.”

이제 생각을 비운 성유범은 진법 안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전에 뒤뜰 주변을 둘러봤다. 누군가 앉았던 것만 같은 의자, 옆에는 발자국이 있었다.

의자에 손을 대보니 아직 따뜻했다. 간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이었다.

대장이 앉아있었던 걸까. 성유범은 갸웃했다. 천지약은 어디서건 잘 앉아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어나서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그래도 가끔 앉아있을 수도 있다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곧 진법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출입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들어온 사람은 없을 테니 나오는 사람이겠지.

성유범은 씩 웃었다. 대주 마음에 들었다면 이미 그는 청무대의 일원이다. 막내가 생기면 어떻게 골려줄지 벌써부터 신났다.

그러나 그 별채 안에서 나온 건 정말 예상치도 못한 사람들이었다.

“누구···?”

성유범은 그렇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 웬 지학도 안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예쁘고 잘생겨서 보는 재미는 있었다.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다시 진법 안을 살펴봤다. 외부에 흐르는 기로 보았을 때 여전히 진법은 잘 작동하는 것 같았다.

진법 안은 기감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펼쳐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확인을 해봐야 했다.

“혹시 진법을 통과해서 온 거야?”

“네.”

“너희 둘이?”

“네.”

확실히, 정황으로 보면 이 아이들이 진법에서 나온 건 명백했다. 그럼에도 성유범은 믿기가 힘들었다.

저 진법이 사람을 죽이는 진법은 아니라고 해도, 계속 돌고 돌면 나오는데 여섯 시진은 걸렸을 진법이다.

저 나이 대 애들이 여섯 시진을 진법 안에서 있는 건 불가능했다. 진법 안은 기가 자연과 다르게 조작되어 있어, 몸이 느끼는 피로도가 남다르다. 적어도 절정 정도는 되어야 여섯 시진을 걷고 나와도 저렇게 말끔할까.

성유범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저 진법 통과하는데 얼마나 걸린 거냐?”

그 말에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를 돌아보면서 모호한 목소리를 냈다.

“반 시진 정도 됐나?”

“딱 그 정도.”

반면 남자아이는 확실하게 끊어서 말했다.

성유범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미친 소리였다. 여섯 시진을 걸어서 나오는 것보다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보다 못해 성유범이 한 마디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려무나. 어지간히 날랜 신법과 진법의 기를 느낄 수 있는 고수가 아니면 저 진법을 반 시진 안에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걸린 걸 어떡하라고요. 아니,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말도 안 하고 진법 벗어나서 짜증나기만 하는데.”

예쁘게만 보였던 여자아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성유범은 깜짝 놀랐다. 자신은 검을 차고 있는 무사인데 무섭지도 않은지.

성유범의 생각이 뭐건 간에, 여자아이는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는 듯 말이 빨라졌다.

“같은 무림맹 사람끼리 진법이나 짜고 앉아있고. 기분 나쁘게 대놓고 시험을 하시네요. 지금 상황이 얼마나 빨리 돌아가는데 이딴 짓거리를 할 시간이 있어요?”

사천당문의 암기마냥 후두둑 쏟아져 나오는 여자아이의 말에 성유범은 손바닥을 들어서 진정시켰다. 지나칠 수 없는 문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잠깐. 너희가 무림맹 사람이라고?”

“정확히 말하면 저만요. 얘는 황금세가 사람이고.”

성유범은 다시 급속도로 혼란에 빠졌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어쨌든 같은 무림맹 소속이라면 나이를 떠나서 경어를 써야 했다.

“소속하고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비연각 소속 명재희요.”

명재희는 그러면서 자신의 품에서 목패를 꺼냈다. 분명 무림맹 비연각 소속을 증빙하는 패였다.

성유범은 눈을 감았다. 비연각주 여상우는 자신 밑의 사람을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라, 비연각 소속 사람들을 건드리면 득달같이 찾아가서 지랄하는 사람이었다.

곧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한숨을 참음 성유범은 옆을 향해 물었다.

“소협은 누구요?”

“황금세가 막내 금목환입니다.”

“···나는 무림맹 청무대 부대장 성유범이오.”

“오늘 아침에 청무대장님께 간다고 보고 드렸는데 못 받으셨나보군요.”

금목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패를 꺼냈다. 저건 무림맹에서도 손꼽히는 빈객(賓客)들에게만 주는 패였다.

“하아.”

간신히 참은 게 무색하게도 한숨이 바로 나와 버렸다.

금목환이 누구인가. 현재 작전의 최우선 보호대상이 아닌가.

아직 작전 중은 아니라서 못 알아봤다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들이 오는 거라면 대장이 언질을 해줬어야 맞았다.

‘젠장.’

성유범은 속으로 욕을 한 번 뱉고 얼굴을 찌그러뜨려 억지웃음을 지었다. 이런 사람들이니까 대장이 자신을 보낸 거였다.

그래, 어차피 자신이 맡은 일은 이들을 작전소로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건 대장 탓으로 좀 돌리면 그만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약간은 가벼워졌다.

“아니, 잠깐만.”

순식간에 성유범의 허리가 쭉 펴졌다. 잠깐 잊고 있었던 게 떠오른 것이다.

“그러면 저 진법을 반 시진만에 뛰쳐나온 것도 진짜라는 말이오?”

그 말에 순식간에 명재희의 눈이 도끼처럼 변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요?”

“···아니,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한테도, 자신한테도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다만 말이 안 될 뿐. 청무대 대원들은 이 진법을 통과하는 데 대개 두 시진이 걸리고, 자신도 한 시진이 걸리는 진법이었다.

청무대 사람들이 치를 떠는 그 진법. 끝까지 도달했다 하더라도 한 번이라도 길을 잘못 들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그 진법.

물론 신법도 어렵지만, 그건 청무대에 들어올 정도의 무인이라면 간단하게 해낼 수 있는 정도다. 그보다 중요한 건 옳은 길을 찾아낼 수 있는 절정 수준의 기감이 필요했다.

보통 절정이 약관과 이립 사이에 드는 경지라고 치면···

‘천재인가.’

성유범은 그렇게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유범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그는 당연히 무림맹 비연각의 일원인 명재희가 끌고 나왔을 거라 생각했다. 실상은 정반대였지만 말이다.

그런 오해를 한 채로, 성유범과 금목환, 명재희는 작전소에 도착했다.

*

작전소라는 이름의 건물이 보인다. 누가 봐도 현판을 덧칠한 게 티가 났다. 그래도 무림맹인데 너무 일을 대충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가 건물로 들어 갈 때 쯤, 명재희가 내 쪽으로 머리를 살짝 기울였다.

“나 그럼 밖에 있는다?”

“어, 그렇게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를 찾아온다고 서한을 보낸 건 황금세가의 금목환이지 명재희가 아니었다.

명재희는 지금 명목상으로는 내 시종이었으니까. 아까를 생각해보면 명재희는 역시 까칠한 애가 맞는데, 나한테는 고분고분했다. 내가 원보를 최근에 너무 많이 챙겨주기는 했다.

“앗,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때 먼저 작전소로 들어갔던 성유범이 안에서 우리를 불렀다.

“대장님이 명 소저도 같이 들어오라고 하시오.”

명재희는 그 말에 미소를 띄었다.

“앉아있는 것도 좋지.”

“그래도 졸지는 마.”

우리는 성유범을 따라 작전소 방으로 들어갔다. 방 중앙에는 푸른 무복에다가 가슴팍에 청(淸)자를 수놓은 입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물론 성유범도 푸른 무복에 청자를 수놓았지만, 글자의 색이 달랐다. 성유범은 노란색, 중앙의 남자는 빨간색이었다.

“반갑소. 청무대장 천지약이오.”

“황금세가의 금목환이라고 합니다.”

“비연각 소속 명재희입니다.”

천지약은 앉아서 우리를 맞았다. 하긴 강호의 선배이니 당연한 도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부대장 성유범이 앉고, 우리도 따라서 나란히 앉았다.

곧 허리가 굽은 노복이 와서 우리에게 차를 따랐다. 난 노복을 슬쩍 봤다.

으레 노인들이 그렇듯 인생사에 통달한 듯한 무덤덤한 얼굴에다가 느렸다. 난 그를 보고 찻잔에 손을 댔다. 찻잔이 아주 뜨거웠다.

찻물은 한 방울씩 나오는 듯 느리게도 쏟아졌지만, 노복은 아무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천지약이 말했다.

“일단 온다고 했으니 오라고는 했다만, 아주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지.”

“별로 어처구니없는 내용은 아닙니다만. 저희 세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병권을 잡겠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곽진도 선배님께서 보내셔도 반려할 내용을 어린 아이가 보내니 반려하는 게 응당 맞지 않나. 어린 아이한테 병권을 넘기는 지휘관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심지어 병사들은 우리 쪽이 더 많은데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적어도 병사들을 움직일 때 내가 움직이는 게 더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

그래서 그걸 어떻게든 설득하러 왔지만, 생각보다 더 좋은 걸 가져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전력을 증강시켜주시면 어떻습니까?”

“···뭐?”

내 말에 천지약이 눈살을 확 찌푸렸다. 옆에 있는 성유범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참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공자, 자네는 모르겠지만 무림맹은 나름 최선의 병력을 보낸 거라네. 총지휘관인 나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말이야. 그리고 이렇게 아군의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는 걸 봐서라도 지휘권은 못 넘겨주겠군.”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런 높은 분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없다보니까요.”

“높은 분?”

천지약의 물음과 함께, 찻잔에 쫄쫄 채워지고 있던 물소리가 딱 끝이 났다.

“여기 있는 맹주님만 인가해주신다면, 저희가 좀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노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순간 천지약의 눈이 크게 떠졌고, 성유범과 명재희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돌변했다.

“···허허.”

그리고 지금까지 무표정이던 노복이 웃었다.

“듣던 대로, 영특한 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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