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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37화 (38/225)

37화 네가 쓰는 걸 보고 좀 배웠어

37화 네가 쓰는 걸 보고 좀 배웠어

우리는 장원의 별채로 안내됐다. 장원의 본채와는 꽤 동떨어진 건물이었다. 나를 안내하던 무인은 별채 건물 안쪽으로 두 손을 받들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난 명재희와 함께 별채로 들어갔다.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열어놨던 별채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뒤쪽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나자 명재희가 내게 달려들었다.

“미친, 깜짝이야!”

그녀는 내 어깨를 잡은 건 생각도 안 하는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건물은 이상했다.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복도가 넓고 천장이 높았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진법이라···”

진법으로 누구를 가두기만 해봤지, 직접 이렇게 걸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꽤 장난스러운 악의가 보이는 진법이었다.

“이, 이게 뭐야? 진법 아니야?”

“맞아.”

“들어오래놓고 진법이라니 이 무슨 경우야?”

“나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있나 봐. 혹시 너 내가 옥묘각에 진법 설치한 거 보고했어?”

나는 명재희에게 물었다. 그녀는 내가 옥묘각 사랑방 땅바닥 밑에 진법을 써놓은 걸 안다.

“그랬을걸?”

“아, 그래.”

난 바로 생각했다. 아마 비연각은 나에 관련해서 꽤 많은 조사를 했을 거다. 당장 우리 가문 묘지인 등령당도 찾아가보지 않았을까. 일정한 길이의 나무토막들은 진법이 쓰여졌다는 대표적인 증거다.

그렇다면 무림맹은 내가 진법을 쓸 수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을 터다.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시험하는 건 좀 웃기기는 했다.

“내 잘못인가?”

“네 업보지.”

명재희의 물음에 난 확실하게 대답해줬다. 명재희는 여전히 내 팔을 붙잡으며 덜덜 떨고 있었다.

“넌 사람도 죽이고 다니면서 이런 게 무서워?”

“솔직히 바로 뒤에서 문 세게 닫는 건 반칙이야.”

명재희는 조금 냉정을 되찾았는지 주변을 둘러보면서 신경질을 냈다.

“근데 우리는 동맹인데 이딴 신경전을 할 필요가 있나? 신경전도 아니지, 이건 대놓고 꺼지라는 의미인데.”

“그 조직안에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너도 당장 말했잖아. 무인들이 상계 사람들이라고 경시한다고.”

“그건 그렇네.”

그렇게는 말했지만, 이 진법은 잘 짜여져 있기는 하지만 악의나 서늘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 대한 기선제압일지, 내 능력이 궁금한 건지 지금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기감을 펼쳐봤다. 진법으로 인해 기감이 어지럽혀져 있었지만, 당장 주변에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아마 진법 끝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흠.”

나는 그제야 앞에 있는 진법을 자세히 바라봤다. 어디 쪽이 생문이고 어디 쪽이 사문인지. 내 눈에는 훤하게 보였다.

당장 지금 진법에서 다른 장치들을 작동시키지 않게 하려면, 왼쪽 복도에 있는 족자를 잡고, 그 반동을 이용해 반대편 벽 쪽으로 몸을 날리는 거다. 그 벽은 허상이라 다른 공간이 나올 터다.

“큰일났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잡아야 할 족자가 너무 멀었다. 한 번에 도약하는 게 아니라면 정밀한 신법으로 나가야 한다. 한 걸음을 뗀 순간, 생문이 어디인지 파악해야 하니까 말이다.

“왜?”

명재희가 겁먹은 목소리를 했다.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옆에 있는 그녀는 나보다 키가 약간 작아서, 내 코쯤에 머리가 왔다.

내가 계속 그녀를 보고 있자니 명재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혹시 너 나 좋아해?”

“아니.”

난 단칼에 대답했다.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오해를 한 것 같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명재희는 다시 주변을 뚫어지게 봤다. 그녀 역시 진법에 대한 견식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이 진법은 꽤나 정밀하게 짜여 있어 꿰뚫기 힘들 터였다.

만약 명재희가 내 눈을 가지고 있다면 진작 뚫었을 텐데 말이다.

그때 난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다. 늘 아쉬워하던 그것을 메우면서도, 이 진법을 탈출할 수 있는 해결책이 말이다. 지금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다.

나는 명재희에게 손가락으로 몇 군데를 가리켰다.

“네가 보법을 써서 저기, 저기, 저기를 밟고 족자를 잡아. 그 다음 몸의 반동을 이용해 최대한 반대쪽 벽으로 멀리 뛰어.”

“···너 내가 무슨 함정 확인용 신발이야?”

“절대.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무림맹 사람들이 만든 진법이야. 살기 같은 건 없잖아.”

내 말에 명재희도 꺼림직해 하며 동의했다. 원래 이런 환상진을 악의적으로 만들 때는 온갖 이매망량들을 집어넣는다. 아니면 과거에 안 좋았던 기억들이라거나. 그렇게라도 정신을 흔들려고 하는 거다. 그런데 이 집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우. 그럼 간다.”

명재희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내가 말하는 방향으로 정확히 달렸다. 사뿐사뿐 걷는 발의 움직임이 거의 신기에 가까웠다.

명재희는 순식간에 족자를 잡고 두 발을 앞으로 모아 차며 반대쪽 벽으로 뛰었다. 곧 그녀의 신형은 사라졌다.

“···저렇게 쓰는 보법이구나.”

명재희의 신법을 대놓고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난 그녀의 신법을 기감으로만 얼추 익혀서 완벽하게 알기는 어려웠다. 분명 좋은 신법이라 더 익혔으면 했다. 옹문규를 잡을 때도 쓴 신법이지만, 그건 그 신법의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원래 정파의 무인들은 이런 보법은 배우지 않는다. 정정당당하게 앞으로 나오는, 웅혼하게 나오는 보법을 썼다. 정면의 압박, 무공에 대한 힘이 실리려면 당연히 그게 맞았다. 결국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신의 무공이 약한 나는 변수를 노릴 수밖에 없었고, 그게 명재희의 신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마당에 좋은 기회가 생긴 거다.

명재희라는 숙달된 조교가 있으면 내가 따라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돌렸던 몸의 기감, 발의 움직임을 천천히 되뇌어 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과감히 움직인다.

순간 난 주변의 공기가 느려지는 것 같기도 했고, 사물이 잘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허나 즐길 수 없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난 땅을 박차고 족자에 두 손으로 매달렸다. 지금 내 신법이 향상되고 있었다.

*

명재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뚫린 벽에는 금목환이 골똘히 생각하는 게 보였다. 자신의 신법으로는 진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걸까. 그렇게 따지면 저렇게 가만히 있는 게 최고의 선택이긴 하다.

아니, 그러면 여기로 자신을 보낼 이유도 없었겠지. 곧 금목환이 발끝을 동북부로 틀고 움직였다. 동북방, 귀문(鬼門)을 통과한 것이다. 순간 명재희의 눈이 커졌다.

지금 금목환이 무슨 신법을 펼치려는지 보였기 때문이다. 그건 착각하려야 착각할 수도 없었다. 은영조의 독문신법. 많이 보기도 했거니와 가장 많이 쓰기도 하는 신법. 그걸 지금 금목환이 펼치려 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그 이후에 일어났다.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금목환이 완벽히 은영조의 신법으로 자신과 같은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심지어 앞에 몇 걸음은 자연스러워 노련하기까지 했다.

“···너.”

지금까지 명재희의 나른했던 음성과 다른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야?”

명재희는 지금까지 옥묘각에 들어온 이후의 모습 중에서 가장 당황해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네가 방축귀매신법(放逐鬼魅身法)을 써? 비연각에서 훔쳤다기엔 말이 안 되는데. 그건 구전비급인데···”

한참을 혼란스러워하며 중얼거리던 명재희는 손뼉을 쳤다.

“너 설마 원래 은영조 사람이었어?”

“아니.”

금목환은 바로 대답했다. 명재희의 머리가 말도 안 되게 꼬이기 직전, 금목환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쓰는 걸 보고 좀 배웠어.”

“그게 말이 돼?”

명재희는 빽 소리를 질렀다. 금목환은 한 쪽 귀를 살짝 막으며 말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잖아. 그리고 네가 보기에 좀 부족한 면도 많지? 네가 쓰는 것만 띄엄띄엄 익혀서.”

명재희는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금목환을 바라봤다. 부족한 면을 말해달라니, 대놓고 무공을 알려달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일평생 방축귀매신법을 쓴 명재희 앞에서는 허술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숙련도 있는 신법이었다.

명재희는 최대한 당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거 비전 신법이야. 네가 어떻게 배웠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유출되는 건 우리로서는 곤란해. 비연각이나 무림맹이 알면 네 단전을 폐쇄할 수도 있어.”

“그건 내가 처리할게.”

단전 폐쇄라는 말에는 금목환이라도 당황할 줄 알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아무리 상계 사람이라도 강호에서 독문무공이 얼마나 큰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알 텐데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는 건지.

“어떻게?”

“무림맹주라도 만나서 말해보지, 뭐.”

“바로 목이 잘리는 건 아닐까? 겸사겸사 나도 말이야.”

“너는 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금목환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작은 비단주머니를 꺼내서 명재희에게 건넸다. 얼떨떨하게 명재희는 그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명재희는 금목환을 경계하면서도 그 주머니를 열어봤다.

“꺅!”

명재희는 무슨 벌레라도 본 것 마냥 소녀 같은 비명을 내었다. 명재희는 곧 그걸 벌려서 금목환한테 보여줬다.

“이, 이, 이게 다 뭐야?”

“무공값. 어떻게 보면 너한테 배운 거니까.”

그녀는 덜덜 떨면서도 주머니 안에 원보들을 세어봤다. 원보 열 개. 큰 돈이기는 하지만 이제 그 정도는 돈도 아니게 될 터다.

“···어, 음.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그래도 좀 당황스러운데.”

“입 다물어달라고 주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따로 무림맹이나 비연각한테 제값 치를 테니까.”

금목환은 그렇게 말했다. 명재희는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휘젓기에는 그녀에게 너무 많은 돈이 쥐어졌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잘못은 없었다. 무공을 쓰는데 남이 따라 쓸 수 있는 천재라는 걸 어떻게 생각한다는 말인가.

명재희는 가만히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첫 발걸음은 괜찮았지만 그 이후부터 엉성하기는 했지.”

“그 다음은?”

“두 번째 발걸음은 이렇게 하고.”

어쩌다 보니 명재희가 금목환의 신법을 알려주게 됐다. 진지해진 금목환의 눈은 명재희의 신법을 그렇게 흡수하고 있었다.

*

종리운은 가만히 앉아있다가 옆에 있는 천지약에게 물었다.

“청무대장. 원래 이 진법이 나오는 데 며칠 걸린다고 했지?”

“신입 청무대원 평균 두 시진입니다.”

“그래?”

하긴 그걸 금목환에게 대기는 좀 무리가 있었다. 청무대 사람들은 진법에 대한 조예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금목환은 조예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청무대 사람들은 강건한 몸이 있다. 그 진법은 당연히 살상용이 아니고, 미로식으로 되어 있다. 한 번이라도 길을 잘못 들어서면 방위가 뒤죽박죽으로 섞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조건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금목환이 자신이 기대하는 인재가 맞다면 말이다. 물론 너무 못 나오면 밖에서 진법을 깨뜨릴 생각도 했다.

“대충 한 시진 지나면 진법을 깨는 게 맞겠군.”

“그렇죠. 그냥 바깥을 걷는 것과 진법을 걷는 건 차이가 나니까요.”

“아닌가, 그냥 반 시진으로 할까. 애들인데.”

맹주는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볼을 짚었다 뗐다를 반복했다. 진지할 때 나오는 맹주의 습관이었다. 천지약은 조용히 있었다.

맹주는 집중하고 있을 때 건드리는 걸 제일 싫어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천지약이 기억하기에, 맹주의 마지막 집중은 저번에 무당파 장문인하고 크게 갈등이 있었을 때였다.

무당파는 그때 무림맹의 존폐를 논하느니, 할 때였는데 말이다. 설마 지금 저 진법 안에 들어가 있는 애들이 그것과 비슷한 수준의 고민이라는 걸까.

천지약은 정원 뒤뜰에서 별채를 바라봤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의 경지로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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