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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31화 (32/225)

31화 참으로 시기적절하네

31화 참으로 시기적절하네

산시청람(山市晴嵐). 거침없이 꺾이는 산세의 형산에게 둘러싸인 산촌의 풍경이 자연스레 협기(俠氣)를 자극했다. 이 절경은 상담(湘潭)과 형산 북쪽의 소산(昭山) 부근이었다.

“형님.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였죠?”

옹소후는 그 높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분노가 치미는 걸 느꼈다. 아래를 바라보니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아이는 끔찍하지만 자신의 동생이었다.

옹문규(翁文珪). 금년 지학의 나이로 올라선 핏덩이였다.

저 혐오스러운 낯짝을 볼 때마다, 직접 피가 안 섞였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몰랐다.

옹문규는 옹소후의 의붓동생이고, 옹진수의 양자였다. 원래 속가제자 출신이었지만, 무공에 대한 오성이 너무 뛰어나 양자로 들인 것이다.

무림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상승의 무공을 전수해줄 때는, 어떻게라도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했고 양자로 들이는 건 개중 가장 간편한 수단이었다.

“말했잖느냐. 황금세가로 간다고.”

“아하, 그렇군요. 남창은 한 번 구경해보고 싶었죠.”

옹문규는 그렇게 말하고 삼대제자들 품으로 쏙 들어갔다. 옹소후가 옹문규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히 의붓동생이어서가 아니었다.

속가제자라 그런가, 옹문규에게는 명문정파에는 어울리지 않는 천박함이 있었다. 또한 어디 객잔만 가면 피를 포함한 시비가 걸렸다. 옹소후는 그런 천박함이 너무나 싫었다.

아버지는 저런 천박한 놈이 뭐가 좋다고 양자로 들여왔는지. 강호가 무공이 전부기는 하지만, 사람이 품위가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일단 오늘은 하산했고 밤도 깊었으니 상담에서 묵어야겠군. 지금 우리는 놀러 나온 게 아니다. 황금세가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다니도록. 문규. 너도 마찬가지다.”

“네, 알겠습니다!”

옹소후와 옹문규를 포함한 삼대제자 다섯 명은 형산에서 내려와 산 입구 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움직일 수도 있었지만, 천천히 움직이려고 했다.

굳이 조급해 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 세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옹소후는 삼대제자들과 옹문규에게 각자 방 배정을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혼자서 정리할 게 많았다.

본인이 아는 건 금목환이 이청명의 목을 잘랐고, 천주성이 갑자기 빠졌고, 그 사이에 곽진도의 세력이 갑자기 물밀듯이 들어왔다는 거다.

“대체 이 무슨 조화인지.”

옹소후 역시 황금세가 직계에 대해서 알고, 직접 본 적도 많다.

금월상을 제외하면 다 겁쟁이였고, 금목환은 그 중 제일가는 겁쟁이에 버러지였다.

그런데 금목환이 지금 핵심이라는 의견이 있다라. 물론 금목환이 이청명의 목을 자른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직 금목환이 변화의 중심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었다.

“제 삼 세력의 개입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곽진도가 천주성하고 물밑 거래를 했다거나···아니야. 천주성이 그럴 집단은 아니지. 어쨌든 세가 내에 천주성의 특징을 정확히 알고 이용한 지낭은 있겠고···”

붓의 손잡이 부분으로 머리를 규칙적으로 친다. 황금세가의 일을 맡게 된 후로는 매일 이랬다. 들어온 정보를 분석하고 보고하고, 확인하고 배제하고. 이것만 해도 밤이 그렇게 짧게 느껴질 수 없었다.

한참 자료를 분석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객잔 일층 쪽이 시끄러워졌다. 옹소후는 한숨을 쉬었다. 누가 연관되어 있는지는 뻔했다.

옹소후는 짜증을 느끼며 바깥으로 나갔다. 복도로 나가자마자 어떤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객잔을 메우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일층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칼을 든 옹문규와 팔이 잘린 남자가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형산 근처에서 붉은 무복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나?”

칼을 들고 옹문규는 남자의 앞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그때 객잔주인이 옹문규 앞에서 빠르게 부복했다.

“···아이고, 공자님. 이 친구가 눈매가 그래서 그렇지 착한 아이입니다. 오해를 하신 겁니다. 이 친구가 요녕에 오래 있다가 호남에 오니 대 형산파의 무복을 못 알아본 것 같습니다.”

부복한 객잔주인을 바라보는 옹문규의 눈은 경멸을 담고 있었다. 옹소후는 한숨을 쉬고 불렀다.

“문규야.”

“네.”

옹문규가 뒤를 바라보자, 객잔주인과 남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옹소후를 바라봤다. 옹소후는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불쾌해졌다.

“조용히 좀 처리 하거라. 네 형님이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

그 말에 객잔주인과 남자의 눈에 빠르게 절망이 채워졌다.

“네.”

대답을 한 옹문규는 형산의 구향검법을 이용해 객잔 주인과 북방에서 온 남자를 순식간에 도륙 냈다.

혈자리를 알고 있어 깔끔하게 죽일 수 있음에도 저렇게 사지를 찢어놓을 건 또 뭐란 말인가. 마음에 드는 게 하나 없었지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장문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하해와 같은 도량과 품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런 건 강호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심지어 여기는 형산파의 구역이었고, 그 누구도 이 죽음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강호는 원래 약한 게 죄였다. 저기 싸늘한 시체로 남은 사람들도 약했기 때문에 죽은 거였다.

혹여 이 이야기가 형산파까지 흘러들어간다고 할지언정, 장로들은 벌써부터 사람을 베는데 주저함이 없다며 옹문규를 칭찬할 터였다.

물론 그런 장로들도 옹문규의 쓸데없이 흉악한 잔인함은 싫어하겠지만, 옹문규는 나름 똑똑하게 그걸 숨기고 있었다.

“제대로 처리해라. 내일 아침 먹을 때 냄새가 남지 않게 말이야.

옹소후는 그렇게 지시하고 방을 향해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 옹소후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기이하게도 절단이 난 시체들의 눈이 하나같이 옹소후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황금세가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옹소후는 붉은 무복을 홱 돌리며 방으로 돌아갔다.

*

기다란 죽봉(竹棒)을 든 금목환은 금월상의 발치 앞을 탁탁 두들겼다.

“방금 두 번째 초식을 쓸 때 발을 한 치 앞으로 더 뻗었어야 돼요. 그래야 검극에 섬섬극극(閃閃亟亟)이라는 초식에 걸맞는 속도가 생기죠.”

솔직히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했다. 한참 어린 동생이 무공을 손을 봐주겠다고 하니까.

허나, 정말 놀랄 정도로 금목환은 엄청난 통찰력을 가진 무공 스승이었다. 마치 반로환동한 고수가 무공을 봐주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들,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적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금월상은 금목환에게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목환아. 대체 네 경지는 어디냐?”

“글쎄요. 말하기는 좀 애매합니다.”

금목환은 말을 이어 붙였다.

“제가 형님보다 더 강해서 가르쳐드리는 게 아닙니다. 제 눈이 좋으니 도와드리는 것뿐입니다.”

금목환은 그렇게 말했지만, 금월상은 어째 믿기지가 않았다. 그냥 형인 본인의 자신감을 살려주려고 하는 배려로 느껴졌다.

그런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서, 금목환과 함께 하는 수련은 혼자 하는 수련보다 몇 배의 효율을 내고 있었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이제 진짜 중요한 걸 해보죠.”

“중요한 것.”

금월상이 읊조렸다. 금목환이 말하는 건 바로 내공 운용이었다.

금월상이 금목환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초식이 아닌 내공에 있었다.

금목환은 정말 자신의 기맥을 해부해서 들여다보고라도 있는 듯, 본인이 운기조식할 때 어떤 기맥에서 걸리는지,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지 줄줄이 말해댔다.

초식의 지도야 응당 무공지도로서 흔한 것이지만, 내공의 지도는 일정 이상의 고수만 가능한 경지였다. 자신이 천고의 기재라고 자랑할 법도 하거늘 금목환은 본인의 경지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없었다.

“오늘도 시도를 해보죠.”

금목환이 말했다. 그가 말하는 건 금월상의 몸 안에 있는 독각화망의 내단 문제였다.

금월상은 본인이 독각화망의 내단을 전부 흡수하지 못한 것도 몰랐다. 확실히 내공의 양은 올랐고 그걸로 이류의 경지로 올라섰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운기조식을 할 때 기해에서 걸리는 부분이 없으셨다고요?

- 응, 없었던 것 같은데···

- 기해에서 나온 내공의 양만큼 하완으로 전달이 안 되지 않던가요?

- ···그건 어떻게 알았느냐?

- 근데 왜 걸리는 부분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금목환은 금월상에게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담담하게 물어볼 뿐이었다.

그런데도 얼마나 죄책감이 들던지. 금목환 앞에서는 정말 뭘 속일 수가 없었다.

곧 금월상은 금목환의 말대로 기해 아래쪽에 앙금처럼 남은 기의 뭉치를 확인했다.

금목환은 그것이 본인이 다 소화하지 못한 독각화망의 내단이라고 했다.

그것을 확인한 다음부터는, 금월상은 금목환이 말하는 대로 내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기해에서 다른 세맥으로 내공을 발출하는 게 아닌 기해에서 계속 내공을 순환시키는 것이었다.

그 방법으로 며칠 전부터 계속 자신의 진기로 독각화망의 내단을 깨부수려고 했지만, 반발하는 독각화망의 내단 때문에 아랫배에 콕콕 찌르는 통증만 일어났다. 그래도 금월상은 멈출 수 없었다.

“오늘은 잘 됐으면 좋겠구나.”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시지요. 시간은 많습니다.”

“그래, 한 번 해보마.”

금월상은 이제 금목환이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았는지 묻는 걸 포기했다. 뭘 숨기고 있든 자신의 동생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지금 금목환은 자신의 수련을 도외시하면서도 도와주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금목환은 지도에 재능이 있었고, 금월상은 본인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변해갔다.

전에 느꼈던 부끄러움, 민망함이라는 감정은 확실히 올라가는 무공 실력에 서서히 옅어졌다.

“천천히 기해에서 내공을 끌어올리세요.”

여느 때처럼 금목환이 나지막하게 말을 한다.

금목환은 말을 할 때는 평소와 다르게 내공을 섞어 말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말하면 운기조식에 어떤 영향도 끼쳐지지 않았다. 정말 별의 별 재주가 있는 동생이었다.

“기해는 기의 바다입니다. 바다 밑에 있는 암석은 언젠가는 깎여나갑니다. 초조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형님의 것입니다.”

금목환의 목소리가 점점 금월상의 정신을 깊은 심해로 잡아끌었다.

“겁내거나 두려워하실 게 없습니다···.”

계속 되는 나지막한 말에 금월상은 곧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

“내단의 조각이 깨져 나왔군요.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흡수하셔야 합니다.”

금월상은 아예 무아지경인데도 내가 읊조리는 말은 따라오고 있었다.

며칠에 걸쳐 공격을 당한 독각화망의 내단은 이미 많은 부분 약해져 있었고, 공격할 때마다 벽이 떨어져 나갔다.

끈질기게 버텼던 독각화망의 내단도 이제 금월상의 몸에 흡수될 시간이 머지않았다.

난 기회를 봤다. 금월상의 몸이 버틸 수 있을 때, 독각화망의 내단이 가장 방심할 때.

그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때를 조용히 기다렸다. 금월상은 내 지도가 없어도 알아서 잘 운용하고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난 내가 원하던 때를 포착했다.

“기해에 있는 모든 내공을 하완으로 올린 다음, 덮치듯이 기해로 쏟아 부으세요.”

금월상의 기들이 바로 일사불란하게 하완으로 올라간다. 재정비를 끝낸 금월상의 기는 폭포처럼 독각화망의 내단을 향해 쏟아졌다.

쿵!

무거운 물건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됐다.’

금월상의 기해에서 기의 파장이 크게 일었다. 독각화망의 내단이 깨진 것이다.

뭉쳐있을 때야 깨기 힘들지, 깨진 이후부터는 흡수하기 쉬웠다. 조금의 반항은 있겠지만 그 정도는 금월상 혼자 감당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금월상은 내공을 갈무리하려고 소주천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내가 도울 게 없었다.

아무리 태을헌원신공을 담은 말이 운기조식에 영향을 안 준다고 해도, 주천을 하고 있을 때는 조심해야 했다.

난 조용히 연공부를 빠져나왔다. 연공부 바깥에는 명재희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명재희의 눈빛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답지 않게 또렷하게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나도 그녀가 보는 곳을 따라 하늘을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보였고, 그것은 곧 빠르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거의 절정고수의 쾌검에 비견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아마 저게 나한테 부딪치려고 하면, 난 피할 수 없을 거였다.

그러나 난 피하지 않았다. 명재희의 눈은 정확히 그 검은 물체를 따라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건 매였다. 검은 털과 예기(銳氣)를 띤 멋진 부리를 가지고 있는 매.

그것에 다리에는 작게 접혀진 서찰이 묶여있었다. 명재희는 팔꿈치와 주먹을 수평으로 하여 매가 앉을 횃대를 만들었다.

매는 곧 명재희의 팔위에 앉았고, 명재희는 다리에 있는 끈을 풀어 서찰을 받았다. 매는 명재희의 팔에 잠깐 머리를 부비는 듯하더니 다시 홱 날아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갔다.

“빠른 친구네.”

난 그제야 입을 열었다. 명재희가 서찰을 피면서 말했다.

“철취신응(鐵嘴神鷹)이야. 쟤 웬만한 고수보다 강해.”

“그런 것 같더라.”

아니나 다를까 영물이었다. 철취신응이라는 영물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더 궁금한 건 서찰의 내용이었다.

“뭐라고 써져있어?”

“네가 직접 봐라.”

명재희는 그렇게 말하고 종이를 내 앞에 펼쳐줬다.

- 옹소후(翁素珝) 외(外) 육인(六人), 남창(南昌) 입(入).

난 그 내용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시기적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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