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세가 절대무신-30화 (31/225)

30화 조금은 실망스러운 성취입니다

30화 조금은 실망스러운 성취입니다

우리의 식탁에는 여전히 중원의 진미들이 놓여 있었다. 난 독이 없는 걸 확인하는 순간 먹어댔는데, 다른 형제들은 깨작거렸다.

전에 음식에서 독이 나온 것 때문에 그런 모양이었다.

물론 그건 나와는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형제들이 남기는 만큼 나는 젓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요즘 훈련을 계속 하고 있으니 몸에서 음식을 끝없이 갈구하고 있었다.

“···잘 먹네.”

내가 메기의 꼬리를 들어 살을 발라먹고 있을 때, 금수린이 멍하니 말했다.

“난 식욕이 없어서. 이만.”

“나도.”

“···큼, 나도 먼저 들어가 보마.”

금수린이 먼저 일어나자, 금화청과 금월상이 눈치를 보며 같이 일어났다.

우리의 규칙은 나름 자유로워졌다. 옛날에는 식사를 끝내면 다 기다려야 했는데, 자유롭게 식사하고 나갈 수 있게 된 거다. 또 안 나오려면 안 나올 수도 있었다. 다들 습관이 되어 빠진 적 없이 나오고 있지만 말이다.

금화청은 이럴 거면 그냥 규칙을 없애자고 말했지만 난 반대했다.

이 규칙은 번거롭지만 만든 이유만큼은 확실했으니까 말이다.

생각보다 가족끼리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 만약 우리가 대전 외 다른 공간에 모이면 의심을 살 거니까.

난 손수건을 꺼내 입을 닦았다. 남은 음식들이 아쉽기는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잠깐 드릴 말씀이 있으니 앉아주시죠.”

내 말을 듣자마자 금화청의 표정이 불안해졌다.

금화청이 보기에 내 입은 위기를 불러오는 구멍으로 보일 테니까. 하지만 순서가 잘못됐다. 난 위기를 먼저 알고, 알려주는 뿔피리의 역할을 하는 거였다.

금월상과 금수린은 그래도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뭔데?”

“궁금하구나.”

금수린이 먼저 앉았고, 금월상도 따라 앉았다. 금화청도 눈치를 보다가 의자를 한껏 당겨서 앉았다. 다리는 바깥쪽으로 꼬기까지 했다.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다는 신호였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오늘 할 얘기가 좀 깁니다.”

“···뭔데?”

“현재 우리 세가의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형제들의 표정이 비슷해졌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듯했다.

난 바로 말했다. 이청명의 건부터 말이다. 지금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렇게까지 돌아가야 했다.

이청명은 천주성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고, 천주성은 퇴각했으며, 지금 남은 세력은 수많은 군소문파를 제외하면 형산파와 주산파로 나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간략하게 설명했다.

물론 내가 회귀를 했다든가, 무림맹과 동맹을 맺었다거나, 명재희가 간자들을 물리쳐줬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뺐다.

최대한 정리해서 말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는 데 딱 일 각이 걸렸다.

형제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구나.”

다 듣고 난 이후, 금월상이 먼저 탄식했다.

“···너는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금수린은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쩌자고.”

가장 의미 있는 반응은 금화청에게서 나왔다. 어쨌든 전생에서 가주 역할을 쟁취한 건 금화청이다. 이 위축된 핏줄에서 그나마 나온 진취적인 기질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는 배경 설명일 뿐이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형산파의 대공자라는 사람이 곧 올 겁니다.”

내 말에 세 명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당연했다. 현재 황금세가에 가장 많이 위협되는 곳이 형산파라고 이미 설명해놨으니까 말이다.

“갑자기 온다고? 왜?”

“걔들은 우리가 안다는 걸 모르는 거야?”

금월상과 금수린이 외쳤지만, 금화청이 책상을 탁 쳤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일단 온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야?”

금화청이 처음으로 내 눈을 봤다. 난 금화청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저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이고, 우리가 어떤 식으로 대처할 건지 알려드릴 겁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는지, 형제들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집중은 했다. 어쩌다보니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금화청도 집중을 하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치단결(一致團結)이었다.

*

금월상은 살짝 긴장했다. 금목환의 이야기가 끝나고, 금월상이 연공부로 같이 가자고 권한 것이다. 금목환이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장남으로서 뭐라도 보여줘야 될 것만 같았다.

유일하게 자신 있는 무공. 금월상은 그걸 보여줄 작정이었다. 금목환은 군말 없이 연공부로 따라왔다.

금월상은 긴장을 없애고자 질문을 했다.

“그런데 정말 네가 말한 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냐?”

“걔들이 딱히 할 게 없거든요.”

“···네가 그렇다면야.”

단호한 금목환의 말에 금월상이 수긍했다.

금목환이 바뀐 지는 채 몇 달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막내가 익숙했다. 예전 그렇게 말없이 도망만 다니던 막내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바뀐 이후로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하지만서도, 여전히 금월상에게 금목환은 궁금한 게 많았다.

“근데 형산이 오는 건 어떻게 알았느냐?”

“제 나름 정보통이 생겼습니다.”

금목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금월상이 외부와의 정보를 뚫기 위해서 몇 년 동안 고생한 걸, 막내는 몇 달 안에 모든 걸 이루어내고 또 본인이 못한 것까지 하고 있었다.

살짝 부끄러워졌다. 일곱은 어린 막내한테 밀리고 있는 장남이라니. 솔직히 이제 금목환한테는 장남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금목환한테 더 어린 모습을 보여줬다. 이청명의 목을 가지고 놀았다고 신나하지 않나···.

곧 금월상과 금목환은 연공부에 도착했다. 연공부에는 금목환의 바뀐 시녀가 미리 도착해있었다.

“···야아···니, 공자님. 오셨어요?”

예쁘지만 괜히 날카롭게 생긴 것 같은 시종은 금목환에게 손을 올리려다 황급히 내렸다. 방금 반말을 하려고 한 것 같기도 했다.

허나 금목환은 그런 건 자잘한 거라 생각하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형님.”

금월상은 문을 열어준 금목환을 지나 들어왔다. 건물 내부는 꽤 넓었다. 사람을 상대로 초식을 시험할 수 있는 나무 인형 방도 있었고, 빈 공터도 있었으며, 운기조식을 위한 방으로 추정되는 두꺼운 문이 닫힌 곳도 있었다.

그렇게 구경을 하면서 들어가던 금월상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훈련을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흙이 파져있고, 검흔이 촘촘하게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황금세가의 모든 사람들이 알지만, 연공부를 쓰는 건 금목환뿐이었다. 그러나 이용한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고작해야 외총관이 왔을 때부터 이용한 것이 아닌가.

근데 이토록 수많은 흔적은 대체 뭐로 설명해야 하는가. 안쪽을 안내하려고 앞에 선 금목환의 작은 등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힘없이 흘러내렸던 무복의 각이 잡혀있었다. 내부에 근육이 잡혀있다는 뜻이었다. 그에 따라 몸집도 커져있었다.

금월상은 이토록 노력하고 있는 금목환을 보면서 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그런가요.”

여전히 외모와 정반대로 귀염성은 없는 대답이었다. 이렇게나 열심히 하면 티를 좀 내도 되고, 칭찬을 갈구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 나도 무공 훈련만큼은 열심히 했으니까.’

금월상은 그렇게 생각했다. 금목환은 자신에게 할 일을 알려주면서, 자신의 무공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름 자신은 있었다. 금목환이 준 독각화망의 내단을 흡수한 이후, 검기는 훨씬 더 짙은 색을 낼 수 있었다.

“이궁천뢰검법이죠?”

“맞다.”

금월상은 기수식을 잡았다. 검을 중단세로 세웠다. 연공부는 아무리 기를 폭발시켜도 밖으로 새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단전에서부터 내공을 끌어올린다. 온 몸에 힘이 깃드는 게 느껴졌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금월상의 몸 바깥으로 푸른 진기가 흘러나왔다. 기를 유형화해 발출시키는 현기(顯氣)의 경지였다. 현기는 삼류와 이류를 나누는 기점이었다.

금월상 나이에 이류무사 정도면 명문 문파의 삼대제자 정도는 되는 성취였다. 그 역시 엄청난 재능이었다. 명문 문파 무인들은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중원에서 그러모아, 온갖 투자를 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금월상은 무가에서처럼 체계적인 교육과 무공을 위한 몸을 만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학해서 이류의 경지까지 오른 거다.

물론 그 사실은 금월상도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성취가 또래보다 뛰어나다는 걸. 이 경지에 오르면서 이궁천뢰심법, 검법에 대한 깨달음도 육 성까지 올랐다.

금월상은 냉막한 막내의 놀란 표정을 기대를 하며 금목환을 힐끔 봤지만, 실망스럽게도 금목환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흐읍.”

금월상은 더 힘을 내어 기의 색깔을 더 짙게 했다. 검에도 푸른 기가 송골송골 맺히더니 곧 검을 전부 감쌌다.

그 이후 이궁천뢰검법의 초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구름 속에서 번개가 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첫 번째 초식이 발현됐다.

마음껏 기를 쏟아내서 그런 것인가, 금월상은 지금보다 빠르고 패도적으로 검을 휘두른 적이 없었다. 이궁천뢰검법의 초식을 모두 끝내고 나갔을 때, 금월상은 진한 만족감을 느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상을 보여준 것이다.

“끝났다.”

금월상은 금목환을 봤다. 적어도 본인이 기대하는 반응은 아니었다. 어느새 앉아서 구경하고 있던 금목환은 턱에다 손까지 괴고 있었다.

금목환은 오랜 침묵을 깨고 한 마디를 꺼냈다.

“조금은 실망스러운 성취십니다.”

그 말에, 금월상은 심장이 덜컹했다.

*

금월상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열패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눈을 마주칠 때마다 내리 까는 걸 보면 부끄러움인 것 같았다.

금월상의 검술은 분명 전에 봤던 것보다는 패도적이고 강건했다. 대신 섬세함은 오히려 한참 떨어졌다.

‘힘이 너무 들어갔네.’

나는 바로 진단했다. 내가 무공을 어떻게 쓰는 것과는 별개로 무공을 보는 눈은 있었다.

지금 금월상은 그저 진기의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려 했다. 그러니 화려하기만 하고 검로는 무뎌진 것이다.

근데 그렇게 해도 우리 호위무사 정도는 가볍게 꺾을 수 있는 실력이고, 또래보다 뛰어난 것도 맞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안 됐다. 금월상은 이것보다 더 빨리 커줘야 했다. 그는 형산파를 상대할 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무기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런 부끄러움은, 참 적절할 때 온 거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움은 본인의 부족함을 본인이 느끼는 거고, 그건 곧 커다란 성장의 발판이 될 거니까. 난 그 부끄러움을 오히려 더 극대화시킬 작정이었다.

곧 금월상이 검무를 끝내고 내게 물었다. 난 최대한 냉정하게 답했다.

“조금은 실망스러운 성취입니다.”

금월상의 표정은 바로 급변했다. 민망함, 아쉬움, 미안함 등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겹친 표정이었다.

물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으면 재기를 할 수 없을 수도 있었다.

허나 내게는 자신 있는 도박이었다. 난 이미 금월상의 심마를 해결할 실마리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금월상의 기해에 똬리를 틀고 있는 독각화망 영단의 기가 그 열쇠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