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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20화 (21/225)

20화 사람이 바뀌었으니까요

20화 사람이 바뀌었으니까요

“외총관님이 여길 어떻게 오셨지?”

금월상은 의문을 표했다. 어차피 그렇게 계획되어 있었다. 내가 처리할 것이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 못 처리할 때를 대비하여 시간을 맞춰 오라고 한 거다.

근데 약속한대로였다면 진작 왔어야 했다. 큰 상관은 없었지만 말이다. 금월상이 말했다.

“눈이 따라가지를 못하는 구나.”

“그러게요.”

내가 곽진도가 얼마나 강한 무인인 줄 몰랐던 것처럼, 목단화도 얼마나 강한지 몰랐다. 그저 천주성의 당주라는 걸로 알고 있었지.

나는 그냥 무공의 경지나 무인의 강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근데 이제는 어느 정도 무공을 배웠다고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그들은 검과 검끼리 부딪치는데 폭발음이 나고, 충격파가 섬돌을 밀어낼 정도의 경지라는 걸 말이다.

“형님, 저희는 뒤로 피해야겠군요.”

“굳이 안 말해도 알 것 같구나.”

우리는 바로 무릎을 살짝 굽힌 다음 뒤로 튕겼다. 곽진도와 목단화가 싸우는 데 돌 같은 것들이 너무 많이 튀어서 앞을 보면서 뒤로 물러나야 했다.

콰콰콰쾅!

단단해보였던 땅이 갈라지고, 근처에 있는 나무는 둥치부터 부러졌다. 그들의 공방은 멈추지 않되 내게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가끔 튀어나오는 섬광과 흐릿한 잔상이 전부였다. 내 예민한 상단전도 어느 정도까지는 따라갔지만 중간부터는 감각이 꼬이기 시작할 정도였다.

“저게 진짜 고수들의 싸움이구나.”

금월상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뒤에 있는 금화청과 금수린도 역시 입을 벌리고 봤다.

소리와 장면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소리를 듣기 전에 그들은 이미 다음, 다다음 합을 견주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바람들이 하얗게 밀려서 터지고 뿌려지고, 폭음(爆音)이 이어진다.

그 소리와 바람에도 내공이 남아있었다. 당연하지만 남의 내공을 계속 쐬면 좋을 리 없었다. 금수린과 금화청의 얼굴이 먼저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내공이 미약하니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이었다.

난 곧바로 등령당 마루 판자를 뜯어서 방위진(防圍陣)을 만들었다.

“넌 정말 재주가 많구나. 진법이 이렇게 쉽게 쓰는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금월상이 새삼스러운 말을 했다. 쉬운 건 아니었다. 특히 지금까지 고수들의 싸움으로 대기의 기가 요동치고 있을 때는 말이다.

만약 이런 바람막이 같은 방위진이 아닌 다른 진을 썼다면 절대 이렇게 빨리 구성해내지 못했을 거다.

“월상 오라버니. 지금 이거 목환이가 한 건가요?”

뒤에서 힘 빠진 금수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에 얼마나 상태가 안 좋아졌는지 내가 마룻바닥 뜯는 것도 못 본 모양이었다.

“응. 지금은 좀 괜찮더냐.”

“확실히 나아졌어요. 아까는 귀가 계속 윙윙거리고 구역질이 났었는데···”

금수린은 자기 가슴께에 손을 얹고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뒤에 있는 금화청도 눈빛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허나 그들을 봐주는 것도 잠시였다. 난 지금 곽진도와 목단화의 싸움을 봐야했다.

곽진도는 많은 무공을 펼치고 있었지만, 그 안에 남해십이검의 초식도 간간히 섞고 있었다. 진짜로 싸울 때는 어떻게 운용하는지, 나랑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야 했다.

“형님.”

“응?”

난 금월상을 쳐다보지 않고 물었다. 아마 금월상도 무공에 대한 열망이 있으니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을 터였다.

“저 정도면 강호에서 어느 정도라고 할 만합니까?”

“···글쎄, 나도 저 정도 고수들의 싸움은 처음 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콰콰쾅!

곽진도와 목단화가 서로 크게 부딪치고 한 번 멀리 떨어졌다. 그들이 근접하게 싸웠던 흙은 아래로 두 장은 파여 있는 듯했다.

“외총관이 오기조원(五气朝元)에 도달한 무인인 건 안다.”

금월상이 나를 강렬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추가적인 질문을 해야 했다.

“오기조원은 강호에서 어느 정도라고 할 만합니까?”

금월상은 내가 질문을 하자마자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쳤다. 동작이 커서 곁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음, 음. 그래. 네가 강호에 대해 약간 무지했었지. 내 잘못이구나. 내 잘못이야.”

“제가 잘 모르네요.”

“아니다. 아무튼 오기조원 안에서도 경지가 나뉘지만, 보통 오기조원에 들어섰다는 것만 해도 한 성(城)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라고 할 수 있지.”

“그렇군요.”

한 성에서 열 손가락이라. 그렇다면 굉장한 고수였다. 내 스승님이 그렇게나 대단한 사람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간다.

그리고 그런 곽진도와 맞서 싸우는 목단화라는 사람의 무위도.

심지어 그들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강해졌다.

폭음이 커지고 등령당이 진동했다. 중문 안에서 무언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잠깐!”

곽진도가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곽진도와 목단화가 서로 칼을 거두면서 다시 멀리 떨어졌다.

“여기가 위패(位牌)를 모시는 곳이라는 걸 잠깐 까먹었군.”

곽진도가 말했다. 목단화는 슬며시 웃었다. 그러면서 먼저 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찔러 넣었다.

“그냥 그만하시지요. 선배님.”

“난 너 같은 후배를 둔 적이 없구나.”

“남해의 무인들 중 삼객(三客)의 그림자를 좇지 않은 자가 있겠습니까.”

사실 처음에 곽진도가 들어올 때 소리를 친 것을 빼면 그들의 첫 번째 대화였다.

곽진도는 목단화를 경계하듯이 바라봤다.

“내 제자를 죽이려는 놈을 눈을 뜨고 돌려보내라는 말이냐?”

“죽이려면 진작 죽였겠죠. 선배님이 저한테 칼을 대기 전에 말입니다.”

목단화가 말했다. 저 말은 사실이었다. 난 알고 있었다. 목단화가 우리 중 누구 하나 죽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니, 못하리라는 것을.

단순히 여기 왜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지만 목숨의 위협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금월상은 그걸 몰랐으니 목단화가 진짜 나를 죽이려는 걸로 알았을 거고, 그래서 달려든 거다.

어쨌든 그게 바로 천주성이라는 집단이었다. 성주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광신적인 집단.

특히 당주급이 되면 개인적인 행동은 아예 금지되어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목단화가 여기 온 건 성주의 지시였다는 말도 된다. 그건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나는 진법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곽진도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굳이 막지는 않았다. 그 역시 목단화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어린 소협이 역시 명석하군.”

“명석한 게 아니라 그냥 애늙은이야.”

곽진도는 볼멘소리를 덧붙였지만 난 무시했다. 옛날에 저런 중얼거림을 한 번 받아준 적이 있었는데 피곤해진 적이 있었다.

“아무튼 오늘 고명하신 선배님도 뵙고, 재미있는 소협까지 보니 기분이 좋군요.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목단화는 그렇게 뒤로 빠르게 날아갔다. 곽진도가 쫓아가려고 했지만 내가 소매를 잡았다.

“괜찮습니다. 천주성이 당장 저한테 손을 댈 일은 없을 겁니다.”

“무슨 근거로?”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럴 겁니다.”

“또 점쟁이 노릇을 하는 거냐?”

곽진도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근거는 없었다. 천주성이라는 조직이 지금 널리 알려진 때가 아니라, 천주성의 결벽이 얼마만큼 병증에 가까운지 모른다.

그들은 이청명이 흑도 방파를 썼다는 걸 모욕적으로 생각할 거고, 제거하려고 할 것이었다. 내 목표와 같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단기적으로는 천주성과 나는 같이 갈 관계였다.

“네.”

“하아.”

내 간단한 대답에 곽진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꺼낼 수 있는 대답 중에는 가장 최선이었다.

곧 우리 주변에 형제들이 슬금슬금 모였다. 다들 목숨의 위협을 받은 만큼 기가 빨려 눈이 죽어있었다.

“···끝난 겁니까?”

먼저 쉰 목소리로 얘기를 꺼낸 건 금화청이었다.

“그런 것 같다.”

“기일에 참 좋은 꼴을 보여드렸군요.”

“네가 보여준 건 아니지 않느냐.”

금화청은 상처를 입은 등령당 건물을 돌아보았다. 온갖 파편에 박힌 건물은 보수가 필요해보였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금화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금월상과 금수린 역시 어둡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들을 놔두고 조용히 계단을 올라가 중문을 열었다.

역시 건물이 흔들린 영향으로 신주단지와 위패, 그림과 글이 없이 비단만 바른 병풍 등등 많은 물건들이 엎어져 난장판이었다.

내가 그것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뒤에서 누군가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하아.”

뒤를 돌아보니 금화청이었다. 금화청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반대쪽으로 가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금월상과 금수린은 곽진도의 감독에 따라 밖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나도 금화청에게 딱히 할 말이 없었고 우리들은 서로 정리만 했다. 깨져버린 제기(祭器)는 버리고, 엎어진 소병(素屛)을 세우고, 신주단지에 다시 위패를 올려놓고··· 어질러진 곳이 많아서 퍽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다 마치고 어머니의 위패가 있는 중앙에서 우리는 마주쳤다. 금화청과 나는 똑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의식은 못 갖춰도, 간단하게 절 한 번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먼저 하시죠.”

원래 한 사람씩 절을 하고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니. 나는 한 발 빠져줬다. 금화청은 그제야 날 유심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피곤한 표정이었다.

“너.”

금화청은 입을 열었다.

“뭐냐. 왜 이렇게 바뀌었냐.”

“그걸 지금 물어보십니까?”

“사람이 바뀐 걸 물어보는 게 아냐. 네가 바뀌던 말든 난 관심도 없어.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냐는 거다.”

“사람이 바뀌었으니까요.”

난 곧이곧대로 진실을 말해줬다. 하지만 금화청은 납득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오늘 어머니의 위패를 지킨 건 맞지만, 여전히 난 네가 용서가 안 되는구나.”

금화청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절을 했다. 절을 하는 자세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난 금화청이 물러나자 간단하게 절을 한 번 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금화청과 눈을 마주치고는 간단하게 목례를 하고 스쳐지나갔다.

금화청은 내가 무슨 반항이라도 할 줄 알았는지 움찔했다. 아까 천수유곡진에서 내 무공을 본 이후로 전처럼 경시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난 금화청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사소한 일에 집착하기에는 앞길이 구만리였다.

나는 먼저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에는 치울 게 너무 많았다. 파인 땅, 부러진 나무도 나무지만 죽어버린 성가장의 무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곧 금화청도 따라 내려와 최대한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다.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고, 부러진 나무로 태우고, 흙과 땅을 고르는 데는 장장 한 시진 반이 걸렸다.

물론 보수는 필요하지만, 일단 당장 처리할 건 다 한 셈이었다.

그제야 금월상과 금수린도 중문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예를 드리고 나왔다.

마당은 대충 정리해서 그런지 울퉁불퉁한 바닥에 혈향까지 짙게 남아있었다. 흙은 언제 고르게 되고 혈향은 언제쯤 빠지려나.

저 멀리 이름 모를 뒷산 산마루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늘 하루, 엄청 길었다.”

금수린이 멍하니 노을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러고 또 산 내려가고 남창까지 가야 된다니.”

그녀는 소름 돋는다는 듯 부르르 떨었고, 금월상과 금화청도 지쳐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오늘 여기서 쉬고 내일 출발하죠.”

“···진심이냐?”

금월상이 되물었다.

“이런 습격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본가로 돌아가서 뭐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 고발을 하든, 뭘 하든···”

“괜찮습니다.”

내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곽진도조차 말이다. 금월상의 말이 맞게 느껴진 듯하다. 하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 싸움은 이미 끝났으니까.

그리고 나도 쉬면 좋다. 지금 나는 곽진도에게 받을 게 있으니까.

열망을 담은 눈빛으로 곽진도를 바라보자, 곽진도가 흠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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