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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8화 (9/225)

8화 개판이네요

8화 개판이네요

잠깐 말을 잃은 곽진도는 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으, 음. 근데 방금 네가 뿜어낸 내공은 대체 무엇이더냐?”

“그걸 물으십니까?”

내 말에 곽진도의 얼굴이 붉어졌다. 남의 무공에 대해 묻는 건 상식적인 금기니까.

아직은 이 무공을 밝힐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밝혀봤자 모르겠지만.

“근데 아까 네가 뿜어낸 내공은 굉장히 깊었다. 나한테 굳이 안 배워도 될 것 같은데.”

“어디서 주워 온 심법입니다. 완전한지도 모르겠고요. 아무리 내공이 많아도 쓸 줄 모르면 바보가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근데 무공을 가르쳐달라는 말을 이렇게 쉽게 꺼내는 놈은 처음 봐서 그렇다.”

곽진도는 목을 뒤로 돌렸다. 그가 목을 뒤로 쭉 뺄 때가 되어서야, 난 곽진도가 목이 있는 걸 알았다. 평소에는 어깨와 합쳐져 있어서 어디까지가 목이고, 어디까지가 어깨인지 몰랐으니까.

“그나저나 이 비 좀 그만 내리면 안 되겠냐? 당장이라도 내공을 발산해서 깨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사람이 올 테니까 참고 있는 건데.”

“배려 감사합니다.”

난 슬쩍 웃고 지지하던 왼쪽 발을 오른쪽으로 살짝 틀었다. 진흙이 비벼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어느 샌가 옥묘각 건물로 와있었다.

“진법은 인정할만한 수준이군. 공들인 티도 많이 나고.”

“귀한 손님이니까요.”

“이 정도 진법을 쓸 정도면 얼마나 공부해야 되는지 감도 안 오는군. 그러면 지금껏 머저리처럼 굴었던 건 다 연기였단 말이지.”

곽진도는 스스로 결론을 지었다. 아까 놀라던 표정은 이제 많이 침착해져있었다.

“그래, 무공을 알려달라고?”

“네.”

“아니다. 그전에 물어볼 게 있다.”

“물어보시죠.”

곽진도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나를 노려보았다.

“너, 내가 누군지 아느냐?”

“저희 외총관님이죠.”

“아니. 내가 어떤 내력을 가지고 있는지, 강호에서는 어떻게 불리는지, 얼마만큼의 경지를 이룩했는지, 그런 걸 물어보는 거다.”

이건 예상 못한 질문이었다. 그 뜻은 준비가 안 되어있다는 거였다.

“아니오.”

허나 나는 모른다고 시간을 끌지 않았다. 지하에 갇혀있으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최대한 빨리 대답해야 몸이 덜 피곤했다.

“당당하기도 하군. 그럼 나의 뭘 믿고 무공을 가르쳐달라는 거지? 네가 머저리처럼 굴 때 나한테 무슨 언질을 준적도 없고.”

“외총관님의 무공 수위는 모릅니다. 제가 믿는 건 외총관님이 가지고 있는 세가에 대한 충심입니다.”

“그런 걸 네가 어떻게 아냐는 말이다. 방구석에 틀어만 박혀서 먼지랑 친구하던 놈이.”

계속 내 과거를 언급하면 곤란하니 최대한 주제를 돌려야 했다. 내가 아는 미래는 대개 세가가 완전히 기울고, 지하에서 들은 말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미래와 지금의 시간은 동떨어진 상태였다. 미래의 얘기를 꺼내는 건 아직 조심스러웠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일 수도 있으니까.

“저에 대하여 인식이 바뀌시지 않았습니까? 그거로는 충분하지 못하십니까?”

“물론 놀랐다. 네가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부터, 진법에 이렇게 능통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곽진도는 마지막에 강세를 주고 말을 이었다.

“무공을 가르친다는 건 일절 다른 얘기다. 네가 진법의 기재인 건 알겠다만, 무공의 오성도 그만큼 따라오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 아니, 오히려 진법 머리가 발달한 사람들은 무공을 거의 못하더군. 진법은 계산이고 무공은 감각이니까. 아예 다른 영역이야.”

“그렇군요.”

“그리고 네 손바닥을 보면 딱 알겠다. 검이라고는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부드러운 손이지. 무공을 배우고 싶었으면 이미 그 피부가 골백번은 찢어졌어야 했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말은 잘하는구나.”

곽진도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다른 질문. 내가 세가에 충심이 있다는 건 무슨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냐?”

그래. 이런 것 정도는 내가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결과론적이지만, 난 곽진도가 우리 편인 증거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외총관님과 큰형님의 진기가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뭐?”

곽진도가 한 눈을 찡그렸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외총관님의 진기는 좀 더 유하고, 큰형님이 익힌 이궁천뢰심법의 진기는 패도적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기의 흐름?”

격한 곽진도의 반응을 보면서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은 예사롭지 않은 재능이라는 걸. 난 여기서 더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금월상 형님의 이궁천뢰검법은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누에에게서 실을 뽑듯 상단전을 천천히 풀어나간다. 실들은 곧 여러 겹으로 내 주먹에 맺혔다.

보름동안 연습했던 검법이 손을 통해서 나왔다.

손이 종횡무진 움직이며 바람소리를 냈다. 얕게 나는 파공성이 먹구름에서 작은 번개가 치는듯했다. 난 순식간에 네 초식을 선보였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외총관님의 무공은 약간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 있는 곽진도를 보며 나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비슷한 초식이었지만 분명히 달랐다. 공기의 흐름대로 내려치니 파공성이 나지 않았다.

아까는 사냥을 목적으로 바로 꽂혀 들어가는 투창과 같았으면, 지금은 포획을 목적으로 감싸는 투망의 형태였다.

이건 정말 순전히 내가 예상한 거였다. 곽진도가 흘려내는 기와 금월상의 기의 흐름의 차이에서 추론한 걸 체현한 거였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런 느낌일 것 같았습니다. 틀릴 수도 있지만요.”

내 시연이 끝났다. 곽진도는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그리고 날 바라봤는데 눈에서 혼이 빠져나간 듯 힘이 없었다.

“아직도 진법의 안이냐?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거냐?”

“아뇨. 다시 보여드릴까요?”

“그럼 이게 사실이란 말이냐?”

곽진도는 어느 샌가 힘이 돌아와서 발로 바닥을 쾅쾅 찧었다. 난 곽진도가 왜 이러는지 몰랐다.

“지금 네가 남해십이검의 해운무봉(海雲武峰)과 홍곡유수(鴻鵠流水)를 썼다는 걸 나보고 어떻게 이해하라는 거냐?”

나는 그의 분노를 최대한 잠재우려고 조금 시간을 늦춰서 답했다.

“그게 뭡니까?”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그 말이 분노를 더욱 불러일으키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밤을 새면서 대화를 했다. 사실 대화가 아닌 말싸움에 가까웠다.

곽진도는 말을 해도 해도 풀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곧 해가 떴기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그렇게나 기나긴 우리의 대화에 큰 의미는 없었다. 곽진도는 어떻게 본인의 무공을 알았냐고 닦달했고, 나는 몰랐다고 했다.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대화를 한 세 시진은 한 것 같았다.

“···그래, 알겠다. 장로 회의가 끝나면 다시 찾아오마.”

곽진도는 그 말을 남기고 뒤를 돌았다. 커다란 어깨가 축 쳐지니 산봉우리처럼 보였다. 허나 난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었다.

“아, 외총관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또 뭐?”

“장로 회의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 말에 지쳐있던 곽진도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

금정원의 회의실은 일자형 책상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 책상들 끝 가운데 상석인 자리가 있었지만 비워져 있었다. 가주의 자리기 때문이었다.

가주의 자리만 비워져있는 건 아니었다. 불참을 한 장로들의 자리도 눈에 띄었다. 사실상 이게 황금세가 회의의 평균이었다.

금정원 장로들의 출석률은 채 삼 할도 되지 않았다.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불출석 사유서만큼은 구구절절했다. 그렇게 모인 건 외총관 곽진도를 포함해서 네 명이었다.

“그럼 이번 징계안 장로회의 시작하겠습니다.”

내총관이 말했다. 거대한 회의실에 사람이 없다보니 말이 울렸다.

잠시 동안의 적막이 돌았다. 장로 징계는 처음 있는 안건이라 어떻게 발언해야할지 다들 감이 안 잡힌 듯했다.

“근데 이 장로. 막내 공자가 그렇게 많이 바뀐 이유가 뭐라 생각하시오?”

뜬금없이 말을 꺼낸 건 금정원의 장로 중 한 명, 여상우였다.

다른 장로들의 귀가 쫑긋했다. 징계안을 떠나서 막내 공자의 변화는 흥미로운 얘기였다.

“그야 내가 어떻게 알겠소. 광증이라도 도진 모양이지.”

“하긴 이런 세가에서 태어나 살면 광증이 걸릴 수밖에 없겠지.”

“동정하는 거요?”

이청명이 여상우에게 물었다. 여상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동정은 무슨.”

그들은 이미 강호에서 구를 대로 구른 사람들이었다. 강호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직계가족들이 기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감시당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는 거다.

그건 장로들이 느끼기에 자연의 섭리, 약육강식 같은 것이었다.

그 뒤에 발언을 한 건 이청명 장로였다.

“혹시 제가 징계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장로님이 계십니까?”

이청명 장로는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약삭빠른 선수(先手)였다. 금정원 안에서의 장로들이 하는 건 세력들의 대리전이었다.

모두가 어부지리를 노리는 상황에, 이청명 장로와 척을 지겠다고 대표적으로 말하기는 부담스러우며 세력이 없더라도 굳이 장로 하나와 얼굴 붉히는 건 불편한 일이었다.

물론 그걸 다 뛰어넘어서 적대할 사람이 있다면 다른 얘기였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오.”

손을 든 건 곽진도였다. 외총관은 장로 대우였기에 참가가 가능한 것이었다.

이청명 장로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외총관이 굳이 섬서에서 나와 강서까지 왔다는 건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럼 한 사람이군요. 출석자는 네 명이니 찬성은 하나, 반대는 셋이군요. 이 징계안을 가지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청명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총관을 은근하게 바라봤다. 내총관은 바로 눈을 아래로 내렸다.

“···그럼 징계안은 간략하게 부결로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내총관의 말에 금정원의 장로들은 무관심했다.

늘 안건은 이렇게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외부에 있는 장로격인 지부장들과 내부 장로들이 참여를 안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장난하나? 그러면 왜 서찰을 보낸 건가. 적어도 절차는 지켜야지!”

물론 그렇게만 일방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곽진도가 막아선 것이다.

“괜한 시간 지연이오. 외총관. 굳이 멀리서부터 와가지고 이렇게 물을 흐릴 필요가 있소?”

이청명이 비웃었다. 다른 장로들과 내총관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절차를 지켜 진행한다고 해도 부결로 처리될 건 뻔한 일이었다.

“난 규칙을 지키자고 말하는 거요.”

“그럼 빨리 합시다. 외총관이 납득해야지.”

이청명은 비웃고 진행을 종용했다.

결국 회의는 진행됐다. 그러나 이청명의 말처럼 빨리 진행되지는 않았다.

곽진도가 사사건건 절차를 짚고, 질문을 하며 회의를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곽진도는 원래라면 반 시진이면 끝날 회의를 기어코 한 시진까지 늘리고 말았다.

허나 그의 분전도 거기까지였다. 이제는 더 이상 꼬투리를 잡을 게 없어졌고, 투표만이 남은 것이다.

“그럼 각자 기표(記票)를···”

내총관은 마지막 절차인 투표 용지를 나눠주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가 문도 두드리지 않고 회의장 문을 벌컥 열었다.

들어온 사람은 옆구리에 죽간을 끼고 온 금목환이었다.

“···막내 공자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내총관은 무례한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 당황스러워했다. 금목환은 오만한 눈빛으로 앉아있는 사람들과 내총관을 바라봤다. 반대로 장로들은 금목환을 흥미있게 바라봤다.

황금세가의 직계가 장로 회의에 나타난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징계안 회의를 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내총관은 한껏 경계하는 목소리로 답했다.

“개판이네요. 이런 중대한 회의에 장로들 출석률이 왜 이렇습니까?”

금목환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중앙으로 갔다. 거기 비어있는 단 한 자리. 금목환은 그곳에 자기 자리인 양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내총관은 오랫동안 회의를 주관했으면서도 최소 참석자 수도 모르십니까?”

금목환은 내총관을 노려보았다. 그 질책의 말은 냉엄하면서도 날카로웠다.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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