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외총관
6화 외총관
슬슬 나도 눈치를 챘다. 상단전이라는 건 생각보다 더 쓸모있다는 것을 말이다.
활용성은 무궁무진했다.
감각의 확장. 기류(氣流)의 추적.
나는 눈을 감고 기감을 펼쳤다. 내가 있는 방 창문 아래, 벽에 붙어있는 사람이 느껴졌다. 이청명 장로가 붙인 게 분명한 그 사람은 굳이 쫓아낼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아직 나를 너무 얕보고 있었다. 잘 쳐줘도 그냥 반항심이 든 정도로 본다. 하긴 열두 살짜리 꼬마를 견제하기에는 그들도 적이 많았다.
그러니까 내가 조용히 운기조식을 해도 그저 시종들에 불과한 사람들은 기의 흐름도 눈치를 못 챈다는 거다.
“대충 이런 움직임이었나.”
내 손을 검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여본다.
난 지금 금월상이 보여줬던 검술을 따라 해보는 중이었다. 이궁천뢰심법과 검법이라고 했다.
섬전(閃電) 같은 속도는 묵직하면서도 칼끝에 다섯 가지 변화를 이뤄냈다. 마치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는 듯한 흐름과 형태였다.
처음 볼 때는 어떻게 저렇게 관절이 움직이고, 저런 폭발력을 내는 게 궁금했다. 해보니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금월상이 몸 안에서 흘렸던 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손짓을 하니 얼추 비슷한 형태가 나왔다. 부자연스러워보이는 관절의 꺾임은 어느 정도 내공으로 보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 무공에는 강맹함과 변화, 패도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게 어렵나?”
나는 계속 손짓을 했다. 따라하는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금월상은 내가 무공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놀라했었다.
“구결을 알면 좀 나아지려나.”
난 계속 형만 갖춰진 이궁천뢰검법을 계속 손짓으로 휘저었다.
보름동안.
옥묘각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내가 한 일은 운기조식과 검법 연습뿐이었다.
식사도 그냥 기철이한테 벽곡단이나 가져다달라고 했다. 사실상 연금 때와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식사 규칙도 계속해서 어기고 있지만, 장로들이나 시종들도 내게 쉽사리 말하지는 못했다. 난 외부에서 사람이 찾아와서 협박하거나 회유하려 하면, 오히려 미친 듯이 소리를 빽 지르고 쫓아냈다.
그러나 이런 자체 연금은 여기까지였다. 보름이 지났기 때문이다. 내 계산이 맞다면 오늘 귀한 손님이 와야했다.
곧 여느 때와 같이 기철이 문을 조용히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오늘도 식사 안 하십니까?”
“가야지.”
기철은 흠칫 놀랐다. 보름동안 밥을 안 먹다가 이제 가겠다는 게 이상해 보일 법했다.
“네.”
그래도 기철은 궁금함을 표하지는 않았다. 문득 기철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부터 머리를 조아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따귀를 때린 부가적인 효능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장원을 걸어 다니니 오랜만에 외출한 나를 사람들이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봤다.
“오, 막내 공자다. 안에서 뭐한 거지?”
“계속 쳐다보지 마. 요즘 미쳤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저러다 객사하지. 자기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그때 내 귓전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소리가 들렸다. 난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헉.”
“우리 본 거 아니야?”
“봤으면 어쩔 건데. 이렇게 먼데.”
그들이 얘기를 나누는 곳은 내 예상과 달리 멀었다. 세 명의 사람들이 각각 손가락 마디만큼의 크기로 보일 정도였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내가 멈춰서있자 기철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런 시종들까지 하나하나 드잡이 질하면 남아나는 시간이 없을 거다. 저런 건 큰일을 처리하면 자연스레 처리되는 작은 일이었다.
기철이의 뺨을 때린 것도, 처음에 내가 운신의 폭이 좁아 한 행동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유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갔다. 역시 시종들까지 신경 쓰지 않는 건 정답이었다.
대전으로 가는 도중, 온갖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시종들을 포함한 장로들, 표두들, 전장 사람들과 이외 전부. 심지어는 세가 사람도 아닌 외부 방문객도 나를 유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황금세가의 막내공자가 장로와 시비 붙었다는 게 벌써 이리 퍼진 거다. 고작 시종의 뺨을 때린 것과 장로를 찍어 누르려고 하는 건 파급이 천지차이였다.
문제는 이런 시선이 나만을 향한 건 아닐 거라는데 있었다. 내가 징계안을 냈다는 것에 대해, 형제들의 입김이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바깥사람들은 황금세가 직계가 장로를 고발했다라는 식으로 알고 있는 듯하니.
슬슬 대전 앞에 와있었다. 넓어진 기감으로 식당 안에 형제들이 모두 왔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다.
“기철아.”
“네?”
“오늘은 식당에 같이 들어오지 마라.”
기철이는 살짝 어물거렸다. 전속 시종들의 의무 중 하나는 식사 보필이었다. 음식에 따라 식기를 바꾸거나, 다기를 제공하거나 하는 식의 잡무가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원래라면 의무를 다하지 않고 내총관에게 혼나는 게 더 무서워 반박을 했겠지만, 기철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난 기철을 바깥에 두고 대전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니 세 명의 형제들은 깜짝 놀라고 각기 다른 반응을 보여줬다.
금월상은 인자한 표정을, 금화청은 일그러진 표정을, 금수린은 불만이 있는 듯 입을 삐쭉 꺾은 표정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짐짓 자연스럽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바로 금화청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좋은 아침?”
금화청이 나를 바라보고 으르렁거렸다.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걸로 모자라서, 보름동안 코빼기도 안 보여? 멍청한데다가 비겁하기까지 한 거냐?”
금수린은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나를 같이 째려봤다.
험악한 분위기에서도 식사는 나왔다. 식전으로 상어지느러미가 갈린 죽이 나왔다. 시종들은 조용히 앞으로 나와 은색 숟가락을 죽에 잠깐 담그고 뺐다.
나는 은색 숟가락을 가지고 있는 시종이 밖에 있었기에 그냥 먹었다. 상단전은 유용해서 독기(毒氣)도 구별할 수 있었다.
정원을 지나가다 본 풀, 꽃들에서 녹색 연기를 느낀 적이 있었다. 먹으면 인간에게 독이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근데 금화청에게는 내가 죽을 떠먹는 게 무시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이런 망나니 자식을 봤나!”
금화청은 곧장 식탁을 가로질러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기세를 피어 올리고 맞서 식탁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중간에 있는 금월상이 움직였다.
쿵!
금화청은 금월상에게 어떤 힘도 쓰지 못하고 엎어치기를 당해버렸다.
“억!”
당연하지만 여기서 가장 강한 사람은 금월상이었다. 금화청은 눈치만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무공을 익히거나, 무언가를 공부했을리가 없다. 전생에 가주로 발탁된 것도 무능하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그래도 네 살은 어린애한테 손찌검을 하려하다니. 네가 미친 거냐?”
금월상은 분노하며 금화청을 바라봤다. 금화청은 등부터 떨어져서 숨쉬기도 힘들어했기에 대답할 여력은 없었다.
나는 금월상과 눈을 은밀하게 마주치고 턱을 아래로 살짝 당겼다.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보름동안 고초가 좀 있으셨군요.”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예상한 결과였다. 내가 한 행동으로 가족들 모두에게 압박과 감시가 더 심해질 거라는 것은.
금월상은 내 전략을 알고 있어서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았겠지만, 금화청과 금수린은 힘들었을 게 분명했다.
금월상은 내게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해보였다. 난 그에 무관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게 힘들면 뭐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세상에는 형님보다 힘든 사람도 많습니다.”
내 말에 금월상은 기대에 배반당한 듯 눈을 감았고, 금화청과 금수린은 도끼눈으로 변했다.
금월상이 눈을 감은 사이, 금화청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내게 다시 달려들었다. 내 바로 앞에서 금화청의 얼굴과 주먹이 당겨지는 게 보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상단전을 열어놨기에 감각이 예민해서 미리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쾅!
나 대신 막아줄 사람이 있었기에.
“오랜만에 돌아오니 좋군. 이런 장면도 보고.”
금화청의 주먹을 뒤에서 낚아챈 건 키가 팔 척은 되어 보이는 거한이었다. 거한의 정체를 알아챈 세 명과 시종들은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못했지만, 나는 바로 그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외총관님.”
“호오.”
나를 흥미롭게 내려다보는 이 사람이 바로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내 편이었다.
사실 외총관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불편한 존재였다. 가뜩이나 아랫사람들에게도 괄시를 받고 있는데, 외총관은 객관적으로 우리보다 위였기 때문이다.
외총관이 직계보다 지위가 높다는 게 아니라, 외총관이 곧 우리의 대부여서 그렇다.
외총관은 가주와 오랫동안 사적인 친분을 교류하고 있었고, 또 아버지의 얼마 안 되는 완전한 신뢰를 받는 강호인이기도 했다.
허나 이들이 놀라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외총관은 현재 기준으로 근 몇 년간 본가에 돌아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금월상이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외총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외총관은 삐죽하게 뻗쳐있는 수염을 다듬으며 위아래로 우리를 훑었다.
“딱히 발전은 없어 보이는구나.”
“이런 집구석에서 무슨 발전을 하겠습니까.”
금화청이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곧장 금화청의 멱살이 잡혀 올라가더니 땅바닥에 머리부터 꽂혀졌다.
쿵.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마당에 펴졌다.
“그런 변명을 할 정도로 나약한 정신을 지니고 있으니 뭔들 하겠느냐?”
외총관이 벼락같이 금화청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 역시 과거에는 외총관이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지금 내 형제들은 외총관을 여전히 두려워할 것이다.
외총관의 이름은 곽진도(郭眞到). 나야 무공도 잘 모르고, 경지도 모르지만 다른 무인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어서 한 가닥은 하는 무인인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그를 부른 이유는 마지막까지 황금세가에서 제일 크게 저항했던 게 곽진도였기 때문이다. 다른 외부의 세력에서 우리를 방어하고 지켜줄 존재.
물론 문제는 있었다. 곧장 식당으로 이청명 장로를 비롯한 다른 장로들이 온 것이다. 이청명을 제외한 장로들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얼굴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외총관. 세가로 왔으면 금정원에 와서 복귀 보고를 해야 되는 걸 잊었소? 왜 여기서 난장판을 치고 있소?”
“아하. 잠시 까먹었었군.”
“이틀 뒤에 장로 회의니, 그때까지 조용히 계시오.”
“그러지, 그러지.”
곽진도는 능청을 부렸다.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는 붉은 주렴을 헤치면서 느릿하게 나갔다.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주렴이 입을 닫았을 때, 난 그 사이로 곽진도가 나를 지켜보는 걸 봤다. 그리고 곽진도는 내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이청명을 비롯한 장로들도 곽진도가 나가는 걸 확인하더니 바로 나갔다. 우리에겐 어떤 인사도 없었다.
금월상은 슬쩍 나에게 붙어 은밀하게 물었다.
“···외총관이 우리를 비호하실 사람이라고?”
“맞습니다.”
“몇 년 동안 못 뵈었던 분이라 생각도 못했군. 그런데 외총관님은 본가를 별로 안 좋아하실 거야. 심지어 아까 봤듯이 우리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 저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 편이라는 거냐?”
“외총관님이 장로들을 싫어하는 것과 우리들을 싫어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안타까움과 혐오의 차이죠.”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
나는 얼굴을 돌렸다. 그냥 알고 있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금월상이 믿건 말건 사실 상관도 없었다.
“식사나 마저 합시다.”
나는 박수를 한 번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금월상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날 미친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