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에르네드의 영주이자 리바 델 레이의 주교.
만트락은 부서지는 해골 케르베로스를 보며 좌절감을 느꼈다.
시간을 갈아 넣어 만든, 이제는 반쯤 자식처럼 느껴지는 소환수.
어쩌면 자신을 대주교로 만들어 줄지 모르는 그런 놈이었다.
그 꿈이 지금 박살났다.
왠 듣도 보도 못한 침입자에게 말했다.
영주가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놈! 죽여버리겠다!”
화가 나서 좁아진 시야에 들어오는 건 오직 언럭키의 모습뿐이었다.
만트락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바닥에서 해골 소환수들이 몸을 일으켰다.
검, 창, 도끼 등. 뼈로 된 각종 무기를 치켜든 해골들이 언럭키를 향해 달려든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아…어그로 제대로 끌렸네.”
언럭키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보스몹 처치하고 레벨업 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 덕분에 놈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다행히 레벨업을 하면서 체력이랑 마나가 다 회복되어서 망정이지.’
검신의 분노를 쓰면서 보유 마나가 다 털렸기에 큰일 날 뻔했다.
-콰직!
가장 먼저 달려온 해골 병사 한 기를 반으로 갈라버린 다음, 언럭키가 해골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저주받을 지어다! 흉측해질 지어다!”
만트락 주교는 해골만 믿고 기다리지 않았다.
뒤에서 온갖 저주 마법과 공격 마법들을 퍼부었다.
언럭키는 해골들을 상대하면서 날아오는 마법도 요격해야했다.
까다로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저주였다.
그나마 검왕의 특성으로 정신력 보정이 있기에 저항할 수 있었지만, 서서히 누적된다.
-콰직!
-쾅!
그럼에도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해골로 이루어진 군대를 홀로 격파하는 모습은 신성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성검에서 은은한 신성력까지 흘러나왔다.
“크윽…. 어느 잡신의 종복이기에 나를 이토록 방해한단 말이냐…커헉!?”
짜증나서 중얼거리던 만트락이 고통스런 숨결을 토해냈다.
어느새 이아손이 뒤에서 단검 한 방을 기습적으로 찌르고 물러난 것이다.
비틀거리는 놈에게 에토 역시 훌쩍 뛰어 달려들었다.
-콰지직!
“크하아악!”
언럭키에게 모든 병력을 집중시켰기에 본인에 대한 방비가 부족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실수는 안했겠지만 지금은 언럭키에게 눈이 돌아간 상황.
훤히 드러난 빈틈을 내버려두면 공중 요새의 장군이란 직위가 아깝다.
이아손 역시 어쌔신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고 있었다.
‘잘 해주네.’
그 둘을 보며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파티플레이를 하나보다.
역할을 분담해서 하니 확실히 수월하긴 하다.
물론 근접 딜러를 해야 하는 자신이 탱커를 하고 있으니 참 위태위태하고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이제 좀 여유가 생기겠군.’
최소한 저주나 공격 마법 같은 건 덜 날아올 것이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이아손과 에토를 견제…
“죽어라! 놈!”
“?? 아니 왜 자꾸 나한테만 이래!?”
그러나 만트락 주교는 원한이 얼마나 사무쳐 있었는지 자기가 공격받고 다치는 건 상관도 하지 않았다.
곧 죽어도 언럭키는 데려가겠다는 듯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해골 케로베로스를 잃어버린 원한은 그만큼 컸다.
덕분에 에토와 이아손은 한결 편하게 공격할 수 있었지만 언럭키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생 중이었다.
* * *
-띠링!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업!]
[레벨업!]
“하아. 하아.”
언럭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상당히 힘든 전투였다.
‘두 번은 못하겠군. 역시 검왕으로 탱커는 안 맞아.’
주교 만트락은 언럭키만 쫓아다녔는데, 어그로를 제대로 끈 상황이라 나쁘지 않아 일부러 그 상태를 유지했다.
에토와 이아손이 아무 피해 없이 꾸준히 딜을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언럭키도 버틸 만했기에 그 상태로 레이드는 계속 진행되었고, 보스몹은 화만 내다가 쓰러졌다.
그래도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먼저 잡았던 해골 케르베로스를 포함하면 던전 하나에서 도합 4번의 레벨업을 한 것이니 말이다.
-띠링!
[5개의 던전 실험실을 모두 폐쇄하였습니다.]
[신탁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어느 도시에서건 정의와 검의 신 유스티아의 신전을 찾아가면 퀘스트 완료 보상이 지급됩니다.]
거기에 기다렸던 메시지가 나타나자 언럭키가 슬쩍 웃었다.
‘진짜 오래 걸린 퀘스트였다.’
고작 퀘스트 하나 가지고 두 달이나 되는 시간을 잡아먹다니.
“고생 많았다.”
에토가 다가왔다.
그는 한층 더 경외심 섞인 시선으로 언럭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뛰어난 검술 실력, 강력한 파괴력, 거기에 해골에게 둘러싸인 난전에서 살아남는 생존력까지.
그야말로 검사의 끝판왕 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참. 죽은 놈에게서 이런 게 나왔더군.”
에토가 건넨 건 아이템 두 개였다.
[알 수 없는 지도]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효과 : 알 수 없는 보물이 묻혀있는 지도이다. 자격을 갖춘 자 앞에서 지도는 그 자세한 목적지를 표시한다.
[해골 케로베로스의 두개골]
-아이템 등급 : 유니크 등급 재료 아이템.
-많이 손상된 언데드 소환수의 두개골이다. 제대로 된 장인의 수리를 받으면 원래 등급으로 회복하고, 강력한 네크로맨서의 손에 들어간다면 다시 부활 할 수 있을 것이다.
언럭키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유니크 아이템 두 개.
지도는 그렇다고 쳐도 두개골은 자신이 당장 써먹을 수 있을만한 아이템이다.
‘벨라님이 수리해주고 네크로 엠페러로 전직했을 때 내가 써먹으면 딱이겠는데…?’
지도 역시 범상치 않았다.
고작 낡은 종이쪼가리 하나가 유니크 아이템이라니.
자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갖춘다면 엄청난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
다만 문제가 있었다.
혼자 사냥한 게 아닌 만큼 분배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마지막 전투는 90% 이상의 딜을 넣고 쓰러뜨린 게 에토와 이아손이었다.
‘이아손은 내 부하니까 지분 내 거라고 우기면 되겠고…얘는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한다.’
“받아라”
“?”
언럭키가 고민하고 있을 때 에토가 두 아이템을 건넸다.
“둘 다 나 가지라는 거냐?”
“당연하지. 주교를 쓰러뜨리는 게 너 없었으면 가능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가장 힘든 역할을 한 것도 너였고. 애초에 주교 처치를 도와달라고 부탁한 게 나였으니 이런 것 정도는 널 줘야지.”
‘이 녀석. 참 좋은 놈이었구나!’
확실히 동료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인성이 된 친구다.
언럭키는 거절 한 번 하는 것 없이 챙겨서 인벤토리에 넣었다.
* * *
세 사람은 주교를 쓰러뜨리고 어떻게 하면 영주성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고심했다.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침입자로 인해 영주성은 난리가 났다.
땡땡땡 하며 종소리가 울리고 횃불이 켜졌다.
기사와 병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침입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이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안하고 있습니다.”
이아손이 은신한 채 바깥을 한 번 둘러본 뒤 말했다.
병력들은 열심히 수색했지만 내성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못 들어오는 거겠지. 영주가 흑마법사이고 안에서 실험까지 벌이고 있었는데. 아마 생전에 무슨 급박한 일이 있어도 절대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며 명령을 내려놨을 거야.”
에토의 말은 타당했다.
그는 그리 말한 뒤 다시 내성 내부를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살펴도 보고 뭘 한 번씩 건드려도 봤다.
옥좌를 만지던 도중에 덜컹 소리와 함께 옥좌가 옆으로 밀려났다.
“!?”
“비밀통로다. 역시. 주교쯤 되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이런 것 하나쯤은 만들어 놨겠지.”
에토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악신을 모시는 자답게 언제든 들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온 것이다.
“다행히 우리 분타에 있었던 것과 비슷해서 열 수 있었다.”
‘능력이 출중하군.’
에토는 생각보다 할 줄 아는 게 굉장히 많았다.
과연 이중스파이에 어울리는 인재였다.
덕분에 셋은 무사히 영주성을 빠져나왔다.
통로는 도시의 빈민가로 이어져 있었는데, 에토는 몇몇 장치를 두드리더니 통로를 무너트렸다.
“됐다. 이제 누구도 우리를 쫓아오지 못할 거다.”
“우리가 쓰러트린 영주가 굉장히 주도면밀한 녀석이었나 보군. 이런 것까지 구비해놓다니…. 만약 전투 도중에 도망쳤으면 곤란했겠어.”
언럭키의 말에 에토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해골 케로베로스를 한 방에 부숴먹었기에 주교가 눈 돌아가 덤벼든 것 아니었겠는가.
“…난 이만 공중 요새로 돌아가겠다. 이제 이 지역의 주교도 없어졌으니 나만 잘하면 주교로 승급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면 내 복수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겠지.”
“응원하겠다.”
“그래서 말인데 이아손과 호야를 조금 더 데리고 있어도 되겠나?”
그 둘은 에토와 상성이 잘 맞았다.
앞으로 분타를 세우고 도시에서 더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장 그 둘이 필요한 일은 없다.
에토를 도와주고 빚을 지워두면 나중에 은혜를 갚겠지.
그렇게 에토와 이아손, 호야는 먼저 워프 게이트를 타고 떠났다.
언럭키 역시 도시를 떠날 준비를 했다.
무사히 탈출했다지만 도시에 오래 있다가는 무슨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일단 유스티아의 신전이 있는 도시로 간다.’
신탁 퀘스트부터 완료할 생각이었다.
-우웅!
그때 워프 게이트가 작동되기 시작했다.
누군가 넘어온다는 뜻이었다.
언럭키는 머리카락을 흩트려 얼굴을 살짝 가리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새롭게 도시 에르네드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쏟아져왔다.
“여기가 에르네드구나.”
“빨리 사냥터부터 가자. 일단 자리부터 잡아야지.”
유저들은 각자 시끄럽게 떠들더니 빠르게 움직였다.
‘좀 미안하군. 앞으로 사냥이 쉽지는 않을 텐데.’
언럭키는 속으로 그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 난장판을 쳐놨으니 기사와 병사들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강화될 것이다.
유저들이 불편해지는 건 당연하겠지.
“저….”
그때 언럭키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들켰나 싶어 간담이 서늘해진 언럭키가 검손잡이를 가볍게 쥐며 돌아봤다.
“…벨라님?”
거기 있는 건 허리까지 오는 백발을 흩날리고 있는 벨라였다.
“…오랜만이에요.”
벨라가 역시 맞았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머리카락을 억지로 내려 눈가까지 가렸지만 코밑만 봐도 그녀는 알아볼 수 있었다.
“벨라님이 여길 어떻게…?”
도시 에르네드는 레벨 180~210 사이의 유저들이 머무는 공간이다.
언럭키도 갖은 고생을 한 뒤에야 얼마 전에 180을 넘을 수 있었다.
“대장장이 퀘스트 하다 보니…올 수 있었어요.”
“…혹시 지금 레벨이 어떻게 되십니까?”
“199요.”
“…….”
언럭키가 하늘을 쳐다봤다.
빌어먹을 월드 사가.
물론 그녀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과 레벨 차이가 5개 정도밖에 안나다니.
‘밸런스 패치가 시급하다, 시급해.’
“아, 참.”
언럭키가 속으로 한탄하고 있을 때 벨라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푸른빛을 내는 장검이었다.
“이건…?”
“저번에 말씀드렸던…선물이에요.”
“선물이요?”
“전에 던전에서 얻은 빙혈의 크리스탈로 만든 검이에요.”
과거 벨라의 재료 수집을 도와줄 때 들어갔던 던전에서 레전더리 재료 아이템을 얻었었다.
선물로 벨라에게 줬는데 그녀는 자신이 잘 만들어서 되돌려주겠다고 했다.
‘아니. 진짜로 준다고?’
아직 스펙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아이템에서는 언럭키만 볼 수 있는 보랏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다음에 만나 뵙게 되면 드리려고 했는데…오늘일 줄은 몰랐어요.”
벨라가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행운빨로 레벨업
지은이 : 글포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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