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안 됩니다, 총령 각하!”
“빨리! 시간이 없다!”
“크흑….”
이아손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다 내가 부족한 탓이다. 내가 저 놈들의 정보를 알아오지 못해서 총령 각하께서….’
정찰을 제대로 못 한 자신의 책임을 언럭키가 대신 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원망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다가오는 데스나이트들을 오연하게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이아손. 여기서 우리가 머뭇거리면 언럭키의 희생을 망쳐버리는 꼴만 되오.”
“…….”
에토의 말에 이아손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에토가 언럭키 쪽을 바라봤다.
“…당신의 그 희생정신. 절대 잊지 않겠소. 그대는 존경할만한 위인이요.”
고개를 한 번 숙인 후, 그들이 내성을 향해 다시 날아갔다.
‘드디어 갔군.’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언럭키가 슬쩍 웃었다.
침입을 들킨 이상 영주를 잡는 건 시간 싸움이다.
내성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흑마법사에게 시간을 많이 주었다가는 무슨 기상천외한 수법을 쓸지 모른다.
혹은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갈 수도 있겠지.
반드시 빨리 가서 발을 묶고 있어야 한다.
원래라면 언럭키도 같이 가야겠지만…
“나 시간 없다. 그러니까 빨리 죽어서 스킬북 내놔.”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검을 찔러가며 말했다.
붉은빛의 염화 오러와 새카만 놈들의 오러가 허공중에서 부딪친다.
-쾅!
-쩌엉!
오러 조각이 떨어져나가며 주변 지형지물을 파괴했다.
데스나이트 스킬북은 아무리 급해도 무조건 챙겨 들고 가야 할 물건이다.
‘처음 한 놈 잡고 얻은 게 데스나이트 ‘미쉘’ 소환북이었으니, 아마도 데스나이트 고유 개체마다 각각 이름이 있다는 것 같은데.’
지금 앞에 보이는 데스나이트가 6기였다.
정말 운이 좋다면 모두 다 스킬북을 드랍할 테고, 나중에 네크로 엠페러를 플레이 할 때 총 7기의 데스나이트를 데리고 다니게 될 수도 있다.
잠깐 상상만 했는데도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진정한 불사의 군단!
쉭 하고 날아드는 검을 피한 뒤 데스 나이트 한 놈의 가슴팍에 검을 찔러넣었다.
오러에 검왕으로서의 치명타 능력.
게다가 이건 단순히 공격력만 높은 검이 아니라 신의 축복이 들어간 성검이다.
데스 나이트 같은 놈들에겐 데미지가 더욱 증폭된다는 뜻이다.
환히 보이는 투로를 따라가며 데스 나이트들을 몰아쳤다.
6대1의 전투였지만 압도하는 건 언럭키였다.
스펙으로도 우월했으며, 검술 실력은 단연코 훨씬 뛰어났으니.
-파각!
결국 한 명씩 투구가 쪼개지며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다만 그때마다 언럭키는 희비가 갈렸다.
“또! 이번에도 또!?”
잔뜩 기대했지만 데스나이트는 골드 약간 떨어뜨린 것 말고 아무것도 뱉지 않은 것이다.
6마리의 데스나이트를 전부 잡아서 얻은 건 딱 하나였다.
“하….”
언럭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데스나이트 7기를 부리는 꿈을 꾸었는데….”
물론 7마리를 사냥해서 레전더리 템 2개를 드랍한 거니 어마어마하게 확률이 좋은 건 맞았다.
평소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씁쓸하게 아쉬운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침입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네놈은 재판까지 갈 것도 없이 즉결 처형이다!”
그때 소란을 듣고 병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언럭키의 주변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데스나이트의 잔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흐, 흑마법사! 이 사악한 놈! 영주님을 노리고 왔구나!”
“이거 너희 영주가 만든 놈들이야.”
“닥쳐라! 영주 모함까지 하다니. 그 간교한 혀부터 잘라줘야겠구나!”
“…….”
분노한 병사들이 칼을 뽑고 달려들었다.
마찬가지로 드랍률이 안 좋아서(?) 빡친 언럭키 역시 검을 마주 치켜들었다.
“오냐. 너희들도 싹 다 저 놈들이랑 같은 데로 보내주마.”
도시에서 영주의 병력과 싸웠다간 감옥행이지만, 영주를 암살하러 온 지금 뭐가 중요할까.
언럭키는 한바탕 날뛰며 이아손과 에토가 떠난 방향으로 나아갔다.
* * *
“…….”
호야를 타고 날아가는 이아손과 에토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친다.
먼저 입을 연 건 이아손이었다.
“총…”
“그만. 믿으시오. 당신의 총령이 여기서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
“…그건 아니지.”
“그러면 그가 데스나이트들을 다 처치하고 돌아올 것이라 믿고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면 그만이오.”
“…그래. 맞아. 그게 맞소.”
이아손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저 멀리서 오러끼리 부딪치는 폭음이 터지고 있었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내성 외곽 쪽이다! 빨리 가라!
소란을 듣고 기사와 병사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덕분에 호야가 나아가는 길은 별다른 문제 없이 뻥뻥 뚫렸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반드시 영주놈을 잡아야 하오. 정말 만약에 언럭키가 사로잡히기라도 한다면 영주를 이용해서 협상이라도 해야 하니.”
“좋은 생각이오.”
다행히 미리 했던 정찰은 쓸모가 있었다.
처음의 데스 나이트를 빼면 알지 못하는 경계는 없었다.
오히려 언럭키가 시선을 끌어주어 빈틈이 커졌기에, 수월하게 영주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영주!”
커다란 연회장 같은 곳으로 들어간 에토가 소리쳤다.
연회장 한쪽 벽면에 커다란 옥좌가 있었는데, 거기에 로브를 뒤집어쓴 중년인이 앉아있었다.
“여기에 나 말고 살아있는 누군가가 오는 건 정말 오랜만인데…. 용케 데스나이트를 뚫고 왔구나.”
“크윽….”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언럭키가 떠올랐는지 이아손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침입자가 있다는 게 놀랍긴 하지만 오히려 좋다. 다시 제물을 구해와야 할 판이었는데 시간을 아꼈구나.”
영주는 껄껄 웃었다.
넓은 연회장엔 옥좌만 특이한 게 아니었다.
천장에 매달려있는 화려한 샹들리에. 그 아래에는 거대한 제단 같은 게 있었다.
마법진이 그려진 제단이었는데 여기저기 핏물이 튀어있고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정확히 듣지 않았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알만했다.
[그어어어어-!]
제단에서 괴성과 함께 검은 안개가 터져 나왔다.
안개를 뚫고 커다란 뼈로 된 손아귀가 튀어나왔다.
덩치만 족히 5m가 넘어가는 뼈로 이루어진, 머리 세 개 달린 괴물이 등장했다.
“하하핫. 너희들을 처치하면 이 케르베로스가 완성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겠구나.”
해골 케로베로스.
흑마법사 영주가 이곳에서 자신만의 실험실을 만들어놓고 연구하는 것이었다.
‘주교급…. 확실히 다르다.’
에토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서 근처의 주교를 처치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데.
옳은 판단이다.
영주 자리까지 갖고 있었기에 도시에 끼치는 힘, 본인의 무력, 계급 등. 모든 것에 있어서 에토를 압도했다.
본단에서 더 높이 올라서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자였다.
‘물론 그것도 저놈을 처치해야 길이 보이겠지만….’
에토가 검을 뽑아 들었다.
언럭키에 비해 부족하다지만 그 역시 재능 넘치는 검사였다.
오직 검술 실력만으로 외부인 출신인데 분타주까지 역임했던 인재.
에토가 달려듦과 동시에 이아손이 어둠 속으로 스르륵 녹아들었다.
은신한 채 뒤에서 지원할 생각이었다.
-쾅!
에토의 검에서 새카만 오러가 피어올라 해골 케르베로스의 발톱과 부딪쳤다.
진한 오러를 보고 영주는 의아해했다.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느낌이 풍기는데…
‘기분 탓인가?’
에토와 뒤에서 지원하는 이아손의 합공이 케르베로스를 몰아쳤다.
그러나 공격은 그리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서히 밀렸다.
“큭….”
단단하고 HP도 많았으며 강했다.
커다란 덩치에 걸맞은 위용이었다.
고작 둘이서 잡을만한 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에토는 정신없이 밀리는 와중에 옛날 생각이 났다.
언럭키와 처음 만났을 때.
성왕 시절의 놈과 적으로 만났는데, 그때 그놈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때려도 강력한 방어력과 막대한 신성력으로 회복하던 바퀴벌레 같던 놈!
하지만 지금은 보고 싶은 놈이었다.
“컥….”
해골 케르베로스의 발톱에 얻어맞은 에토가 땅을 뒹굴었다.
‘위험했다.’
은신을 풀고 뛰쳐나온 이아손이 어그로를 끌어주지 않았다면 이어진 공격에 끝장났을 수도 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그의 눈에 자신들이 들어오는 입구 쪽에서 걸어오는 언럭키가 보였다.
‘…헛것이 보이나?’
벌써 올 리가 없는데, 너무 바라고 있기에 환각이 보이나 싶었다.
그러나 환각이 아니었다.
붉은 오러가 흘러나오는 언럭키가 양 손으로 검을 쥔 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백색의 검에서 강대한 마력과 신성력이 넘실거리더니, 머리 위에 족히 수십미터는 넘어갈 만큼 커다랗고 반투명한 검이 생겨났다.
“합!”
-콰직!
언럭키가 내리찍는 모션을 취하자 반투명한 검이 그대로 해골 케르베로스에게 틀어박혔다.
정수리에서부터 몸통까지 완벽하게 관통되는 검.
그 강력하던 놈이 꼼작 못하고 부르르 떨기만 했다.
* * *
데스나이트를 처리하고 지겹게 달라붙는 기사와 병사들을 떨쳐낸 언럭키는 뒤늦게 내성으로 왔다.
방향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는지 계속 폭음이 들렸던 것이다.
[던전 ‘흑마법사의 기이한 실험장’에 입장하겠습니까?]
입구 앞에서 메시지가 들렸을 때 언럭키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러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뒤져봐도 던전을 못 찾았지.’
흑마법사의 기이한 실험장. 여기가 신탁 퀘스트에서 찾던 마지막 던전이었다.
이걸 찾겠답시고 도시 에르네드르 그렇게 쏘다녔건만.
설마 영주성. 그것도 내성 깊은 곳에 있을 줄이야.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못 찾는다는 뜻 아닌가.
거지같은 퀘스트라며 신을 한 번 욕해준 뒤,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보스 몬스터 : 해골 케르베로스.]
[레벨 : 213.]
[보스 몬스터 : 에르네드의 영주. 주교 만트락]
[레벨 : 215.]
가장 먼저 보인 건 적 둘과 그들의 머리 위에 떠있는 정보였다.
오직 보스 몬스터로만 이루어진 던전인 듯하다.
‘쉽지 않아 보이는데.’
에토와 이아손이 연신 밀리는 모습이 보인다.
저기에 참전해서 함께 싸우는 건 하책이다.
뒤의 옥좌에 앉아있는 영주가 끼어들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일단 저 해골부터 먼저 빠르게 처치해야 승산이 높겠어.’
그 즉시 언럭키는 검을 치켜들었다.
정의와 검의 신 유스티아의 성검.
레전더리 최상급 검답게 성검은 단순히 공격력만 높지 않았다.
안에 패시브와 액티브 스킬이 각각 하나씩 내장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자연 마나 회복력과 체력 회복력을 높여주는 패시브 스킬과 공격력만 활용해도 어지간한 적은 다 처치했었다.
‘처음으로 액티브 스킬을 써보게 됐군’
검신의 분노. 마나의 50%를 사용해 신의 검을 내리꽂는 스킬.
여기까지 오느라 마나를 꽤 썼기에, 50%면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러나 그 위력이 어떤지 알고 있었기에, 언럭키는 즉시 칼을 치켜들었다.
천장이 부서지며 유스티아의 검이 소환되고, 케르베로스의 머리가 작살났다.
꼬치구이처럼 꿰뚫린 채 바들거리는 녀석에게 빠르게 접근해 오러로 슥삭 잘라버렸다.
그나마 멀쩡하던 머리 2개를 베어내자 놈의 뼈가 부서지듯 사라졌다.
-띠링!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업!]
[레벨업!]
“이, 이럴 수가…. 내…내가 10년동안 만들어오던 소환수가….”
영주 만트락이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라 잃은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행운빨로 레벨업
지은이 : 글포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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