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소통(겸 수금) 방송을 끝내고 언럭키는 제대로 월드 사가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금하면서 노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성장이 뒤쳐지면 오히려 손해야.’
하루도 안 되어 휙휙 변하는 게 월드 사가다.
지금 어느 정도 이룩했다고 안주하여 돈을 추구하다보면, 어느 순간 몰락한다.
‘일단 성검의 진화부터 시켜야하는데….’
레전더리 최상급. 성검의 효과는 지금도 훌륭했다.
오러 두르고 휘두르면 어지간한 보스몹도 슥삭 썰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탁 퀘스트를 완료하면 여기서 한 번 더 진화시킬 수 있다니.
눈이 벌게져서 하고 있었지만, 이놈의 퀘스트는 완전히 노가다였다.
한 달이 넘도록 했는데도 아직도 마지막 던전 하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아….”
무슨 좋은 방법 없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군.”
“!?”
언럭키의 눈앞에 스르륵 사람 한 명이 나타났다.
“에토?”
몬시뇰 에토.
리바 델 레이의 스파이인 그였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널 보러 왔다.”
공중 요새에서 만났던 그는 언럭키의 추천으로 특임대에 들어갔었다.
고위직에 올라 리바 델 레이의 분타를 건설한다는 이중 첩자 짓을 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에 이아손과 호야가 나를 찾아왔었다. 나를 도와주라며 네가 보냈다지?”
“아, 맞아.”
검신의 전당을 오를 때, 그 둘은 함께하지 못해서 그냥 놀리고 있기 뭐해 에토를 도와주라며 보냈다.
이아손도 그러고 호야 역시 마냥 귀엽기만 하지는 않으니 충분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공했나보네? 장군까지 달고.”
에토의 어깨에는 주황색의 별 하나가 반짝였다.
장성 진급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쉽지 않았지. 너를 제외하면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고 하는데…무슨 수를 써도 네 기록을 넘기는 힘들더군.”
언럭키는 최단기간, 최연소 소장까지 진급을 하고 도시를 떠났었다.
특임대로서 홀로 말도 안 되는 임무들을 연달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에토 역시 어디 가서 실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언럭키의 기록은 큰 벽처럼 느껴졌다.
굳이 넘을 필요는 없긴 하지만, 남자의 오기로라도 한 번 넘고 싶었는데…
‘결국 실패했지.’
괴물 같은 인간이었다.
호야와 이아손의 도움에도 그의 기록 근처까지도 못 갔으니 말이다.
동시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긴. 그러니까 나를 쓰러트렸겠지!
“그래서 여긴 왜 온 거야? 그럼 지금 장성 업무와 분타 건설로 정신없이 바쁠 때 아닌가?”
“바쁠 때가 맞다. 하지만 꼭 전해줘야 할 중요한 정보가 있어서 직접 온 거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리바 델 레이에 관한 비밀이겠군.”
언럭키가 살짝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이어서 나올 에토의 말에 집중했다.
“이 도시 에르네드에 네가 꼭 처치해줬으면 하는 주교가 있다.”
“주교?”
몬시뇰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게 주교다.
아직까지 언럭키도 주교급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이중 스파이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좀 더 본단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에르네드의 주교가 이 근처 지역을 크게 장악하고 있어서. 그 놈이 없어져야 내가 좀 더 뻗어나갈 수 있어.”
에토는 아직까지 본단에서 그리 높은 위치가 아니었다.
열심히 임무를 성공하고 일을 해서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본단의 핵심 정보에 가까이 다가가고 놈들을 일망타진 할 수 있을 터.
“나도 리바 델 레이와 적대하는 입장해서 도와줄 수는 있지. 그래서 주교가 어디 있는데?”
“이 곳 영주성에 있다.”
“……?”
“에르네드의 영주가 리바 델 레이의 주교다.”
언럭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음. 미안하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군. 힘내길 바란다.”
“기다려!”
떠나려는 언럭키의 어깨를 에토가 붙잡았다.
“기다리긴 뭘 기다려. 이거 놔. 도시에서 영주랑 싸우라니…미친 거 아냐?”
아무리 언럭키가 강해졌다고 해도 도시의 주인과 싸우라는 건 자살 행위다.
영주의 밑에 존재하는 기사들.
예전엔 절대 반항하지 못하는 절대 무적의 대상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도 오러를 쓸 수 있었기에 이길 자신이 있긴 했다.
‘몇 명 정도면 무리 없이 이길 만하겠지만…’
하지만 영주의 기사가 몇 명 수준일리가 있겠는가.
수십의 기사. 거기에 수백의 병사들까지 포함되어 있으면 언럭키 혼자서는 뭘 해보기 어렵다.
‘리바 델 레이를 털면 쏠쏠한 보상이 약속되어있긴 하지만 굳이 내 일도 아닌걸 할 필요는 없지.’
“얼마 전 본단에서 경고가 내려왔다. 이 주변 도시들에 있는 리바 델 레이 연구 시설들이 파괴되고 있다고. 조심하라는 공문이었는데…네가 한 거지?”
“맞아.”
언럭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에토는 언럭키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공문에 대해 듣자마자 추측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연구 시설들을 파괴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르네드에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겠고.”
“그것도 맞다.”
이번에도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탁 퀘스트에 보면 처리해야할 던전이 있는 도시의 위치는 나와 있었다.
마지막 도시는 이곳 에르네드에 있었다고 나왔는데, 그래서 얼마 전부터 이 잡듯이 도시 곳곳을 탐색하고 있었다.
뒤져볼만한 곳은 얼추 뒤져봤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안 나왔지만…
‘좀 더 자세히 찾아봐야지. 행운의 무지개 능력이 터지길 바라면서.’
“거기에 도움을 주려는 거면 나 혼자서도 잘 하고 있으니 괜찮아.”
“헛고생 하는 것 같으니 말해주는 거다. 이 곳의 연구 시설은 영주성에 심처에 있다. 연구를 담당하는 게 영주야.”
“…….”
언럭키의 입이 꾹 다물렸다.
할 말이 없어졌다.
“이래도 나보고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할 건가?”
“…하아.”
이 놈의 퀘스트는 하여간에 도움이 안 된다.
이제는 도시의 영주랑 싸우라고 하다니.
“좀 더 자세히 말해줄래?”
* * *
운이 없는 건지 그만큼 좋은 보상을 주려고 퀘스트가 어려운건지 모르겠지만.
언럭키는 금방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냈다.
어떻게 하면 영주를 처치할 수 있을지 계획을 수립했다.
뒤늦게 찾아온 이아손과 호야까지 합류해 머리를 맞댔다.
“뀨르! 뀨르!”
“그래. 맛있니?”
“뀨르르!”
고기조각을 물고 바닥에서 뒹굴거리는 호야와 세 사람은 낮 시간을 통째로 써서 얼추 계획을 만들어냈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겠군.”
“실행일은?”
“기다릴 필요가 뭐가 있나. 오늘 밤에 하지.”
“좋다.”
먼저 움직인 건 이아손이었다.
은신의 달인인 그가 영주성에 잠입해 내부 지형을 지도로 만들어 가져왔다.
다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영주가 머무른다는 내성의 심처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흑마법 결계가 워낙 강하게 둘러져있어 들키지 않고 침입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잘했어. 그 정도면 충분해.”
“감사합니다 총령 각하!”
고개를 숙이는 이아손을 보며 언럭키는 살짝 아쉬웠다.
주교인 에르네드의 영주는 흑마법사라고 한다.
만약 잠입할 수 있었다면 방어력이 약할 테니 암살 시도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럴 때는 직업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이 참 아쉽군.’
사신 시절의 자신이라면 어쩌면 흑마법 결계를 뚫고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슥삭 처리하고 돌아올 수 있었겠지.
그러나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어차피 이아손에게 거기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쉬울 리가 있겠나.
밤이 되었고 언럭키와 에토, 이아손이 움직였다.
이아손은 꼼꼼하게 지도에 경계 병력들의 위치와 교대 시간, 순찰자들의 루트 같은걸 알아놓았다.
그걸 토대로 호야를 타고 움직였다.
“크헝….”
“미안 호야. 많이 무겁지? 조금만 참아.”
세 명이나 되는 사람을 태우다보니 호야가 조금 짜증을 부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달빛도 거의 없군.’
구름 사이로 초승달이 언뜻 드러나는 어두컴컴한 날.
암습을 벌이기 딱 좋다.
이아손의 루트대로 하늘을 넘어가니 외성은 손쉽게 통과했다.
그 후 순찰 병력들이 비는 시간을 이용해 내성까지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이거 일이 잘 풀리는군. 손쉽게 끝내고 갈 수도 있겠어.”
에토가 히죽 웃으면서 속삭였다.
그럴수록 언럭키는 불안해졌다.
‘이렇게 깔끔하게 잘풀린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자신에게 있어서 불행은 항상 따라오는 법.
요즘 너무 운 좋은 상황만 있었다.
마음 속 한 구석에 언젠가 뭐가 와도 크게 오겠구나 하는 불안감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에토가 웃을 때도 더욱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쾅!
“!”
갑작스러운 기습을 막을 수 있었던 건 그래서였다.
어둠 속에서 새카만 오러가 날아오자 언럭키가 번개처럼 발검해 붉은 오러로 맞상대한 것이다.
“고, 공격!? 아니 근데 반응속도가…?”
에토가 경악했다.
자신은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 어둠 속 일격을 받아치다니.
언럭키가 없었다면 꼼짝없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과연. 장성까지 올라가면서 한 번도 언럭키의 기록을 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새카만 오러가 날아온 곳에 있는 건 눈두덩이에서 붉은 귀화를 피어올리는 놈이었다.
음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이 쪽을 바라보는 죽음의 기사.
“…데스나이트.”
언럭키가 인상을 찌푸렸다.
불안하다 싶더만, 저런 놈이 대기하고 있을 줄이야.
주교급은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싶었다.
언럭키가 호야에게서 훌쩍 뛰어내렸다.
바람을 가르며 그가 검을 치켜들었다.
검신을 타고 붉은 오러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데스나이트 역시 하늘에서 떨어지는 언럭키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언럭키의 눈빛이 번뜩였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고 주변 지형지물이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데스나이트의 검격이 날아올 방향도, 어떻게 대응해야할지에 대한 길도 보인다.
-스칵!
둘의 신체가 스쳐지나갔다.
바닥에 착지한 언럭키가 한 바퀴 데굴 굴렀다.
데스나이트의 투구가 반으로 쩍 갈려졌고 불꽃이 피어올랐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적정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후.”
치명타에 오러까지. 단단하고 생명력이 높다고 해도 이 정도면 한 방감이다.
다만 발이 묶였다.
무시하고 계속 갔으면 계속 오러를 날려댔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상황이 굉장히 위험해졌다.
그때 언럭키의 눈에 소멸된 데스나이트가 뱉어낸 아이템이 보였다.
그건 정말 예상치 못하게도 남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스킬북 : 데스나이트 미쉘 소환서]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데스나이트 ‘미쉘’을 소환할 수 있는 소환서이다. 생전의 상급 기사 ‘미쉘’의 영혼이 담겨있다
-아이템 사용 제한 : 유니크 등급 이상의 네크로맨서 계열의 직업군. 혹은 레벨 250 이상의 네크로맨서.
“!!”
데스나이트 소환서.
높은 확률로 조금 전에 죽였던 데스나이트 놈을 소환하는 스킬이다.
데스나이트라면 네크로맨서의 꽃이라고 할 수도 있는 스킬인데, 이렇게 나오다니.
이건 못 참지.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그때 소란을 듣고 몰려온 다른 데스나이트들이 여러구 달려왔다.
‘혹시 저 놈들도 각자 하나씩 다 스킬북을…?’
언럭키는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이아손, 에토. 여긴 내가 막고 있겠다!”
“네?? 초, 총령 각하!?”
“먼저 들어가라. 이 놈들 다 처치하고 쫓아갈 테니.”
에토와 이아손은 언럭키의 외침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자신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행운빨로 레벨업
지은이 : 글포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71-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