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헛, 넵! 안녕하십니까, 언럭키님. 대룡 미디어 대표이자 빅드래곤 길드장인 정신찬이라고 합니다.”
정신찬은 빠르게 제정신을 차리고 백현의 인사에 답했다.
그는 단순히 혈통으로 대표직을 얻은 게 아니고, 팀장에서부터 시작해 능력을 증명해 대표를 달았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재빨리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아메리카노 주문해놓았습니다만 혹시 따로 원하시는게 있으신가요?”
“그거면 괜찮습니다.”
백현이 맞은편에 앉았다.
정신찬, 이혜미, 이세린은 그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정신찬은 빠르게 표정 관리를 했지만 나머지 둘은 아니었다.
‘미쳤다. 언럭키님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 생기셨잖아.’
‘게임 속 모습이…현실이랑 거의 비슷했다고??’
아무래도 이성이다 보니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깔끔하게 수트를 입고 머리까지 정리한 그의 모습은 탈 일반인급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한 번쯤 돌아볼 만한 외모!
“…….”
“…….”
세 사람이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가 공통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왜 저 얼굴을 지금까지 안 까고 방송한 건데!’
금수저, 높은 지능 수치 등. 유전적으로 물려받고 태어나는 것에는 외모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리 가상 현실 게임이라고 해도, 그걸 플레이하는 사람 자체가 예쁘고 잘생겼다면 그 인기는 미친 듯이 치솟는다.
가상의 캐릭터도 멋있는데 실제로 그걸 플레이하는 주인의 외모도 뛰어나다?
랭커가 아니라 초보자여도 한 번에 확 뛸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러한 방송 시장에서 외모는 중요했다.
‘왜 그러시지? 역시 오늘 스타일링까지 하고 온 건 좀 오바였나.’
한편, 백현은 부담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세 사람 때문에 연신 어색했다.
어쩌면 실수한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시대에 이런 가벼운 미팅에 정장을 입고 오는 것도 이상하긴 하고.
캐주얼 정장이라 일상적으로 입어도 괜찮긴 했지만…
‘아냐. 처음 얼굴 보는 거기도 하고, 새 출발 하자는 의미도 있으니까.’
진동벨이 울리고 정신찬이 직접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박리다매 하는 카페에서는 2,000원이면 먹을 수 있었지만, 백현은 꽤 오랫동안 구경도 못 했다.
한 모금 가볍게 마셔보았다.
입안을 타고 넘어가는 씁쓰레함.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커피가 잘 안 받아진다.
그럼에도 기뻐서 싱글벙글 미소가 나왔다.
나와서 이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니!
‘그림이다.’
‘사진 찍어서 보관하고 싶다….’
맞은편에 앉은 이혜미와 이세린은 커피를 마시며 웃는 백현을 보고 절로 감탄했다.
미팅 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커피에 정신 팔려있던 백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제가 실례했군요. 커피는 꽤 오랜만에 마시는 거라서요.”
“하하. 괜찮습니다. 카페인 조절하고 계시나 봐요?”
“뭐… 비슷하긴 하네요.”
강제로 하는 조절이었지만.
“어쨌거나 저희도 언럭키님… 아니, 백현님을 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계약서에 적혀있는 본명은 백현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제 소개는 아까 했고, 이쪽은 제 밑의 직원인 이혜미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혜미가 귀 뒤로 머리를 넘기며 인사했다.
정신찬은 어이가 없었다.
부하 직원이기에 같이 미팅을 다닌 적이 몇 번인데, 그녀가 저런 행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업무적인 딱딱한 태도만 유지했는데…
그때 이세린이 정신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어서 자기도 소개하라는 뜻이었다.
“이쪽은 이세린 씨입니다. 백현님도 한 번 보신적 있으실 거예요. 얼마 전에 의뢰했던 던전을 함께 가셨죠?”
“아세린님…?”
“맞아요!”
이세린이 끼어들어 인사했다.
평소 냉막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살짝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단발을 찰랑거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두 번째로 뵙네요. 그때 이후로 언럭키님 완전 팬이 돼서 제가 얼마나 뵙고 싶었는지 몰라요.”
“하하… 감사합니다.”
백현은 어색해서 볼을 긁적였다.
가상 현실이나 미튜브에서의 인기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현실에서 누가 팬이라고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감옥에 갇혀있었으니 당연한 말이긴 했지만.
‘아세린님은 외형 변화를 거의 하지 않으셨구나.’
쌍검을 쓰던 실력 있는 검사라서 아세린은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야 행운의 무지개 스킬이 있었기에 던전을 리드할 수 있었던 것이지, 아세린 역시 실력으로는 어디 한 군데 모자란 곳이 없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저희가 첫 미팅을 하게 되는군요.”
“예. 감개가 무량하네요.”
백현은 정말로 그러했다.
평생 온라인상으로만 연락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와서 직접 볼 줄이야.
“제가 오늘 보자고 한 이유는…”
“잠시만요. 말씀 끊어서 죄송하지만, 혹시 저희가 먼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까지 키워줘서 고맙다고 말하려 한 건데 뭘 먼저 말한다는 건가?
정신찬이 말을 이었다.
“사실 저희도 백현님이 보자고 말씀하신 이유는 얼추 짐작하고 있습니다.”
계약한 스트리머가 회사와 따로 미팅까지 잡아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찬은 99.9% 확신했다.
‘회사의 처우에 불만이 있는 거지.’
-제 급이 이 수준이 아닌데요. 좀 더 대우해줬으면 좋겠고 계약금도 더 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만나서 딜을 거는 스트리머가 많았던 것이다.
대룡 미디어가 업계 최고라고 하지만 그건 최고의 스트리머들과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콧대 높은 그들은 스스로의 몸값을 잘 알고 어떻게 그 대우를 잘 받을지도 알았다.
재벌 3세가 아니라 재벌 할애비라도 이런 분야에서는 맞춰줘야 한다.
그게 영업이다.
‘다만 계약금이나 비율 조정 같은 부분은 아닐 거야.’
그랬으면 새로 보낸 재계약서에 싸인을 하지도 않았겠지.
그러면 뭐가 불만일까?
‘대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스트리머 언럭키는 아직까지 1티어라고 보기엔 애매했다.
최고의 유망주라는 말에는 누구나 동의했지만 하이 랭커들과 비교하면 글쎄.
아직은 그들에 비해 많이 모자란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래 잠재력은 절대 밀리지 않는다.
‘백현님은 그 가치를 정확히 알아보고 계신 거고.’
그래서 오는 길에 떠올라 급하게 준비한 게 있었다.
진정한 영업의 프로라면 상대가 원하는 걸 말하기 전에 먼저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법!
정신찬은 프로 중의 프로였다.
“혜미씨. 그거 꺼내세요.”
“네, 대표님.”
이혜미가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저희가 준비해온 여러 가지 것들입니다. 백현님은 개인적으로 고용하고 계신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미튜브 편집팀도 수준급의 실력자들이더군요. 아닙니까?”
“어…그렇긴 합니다.”
백현은 얼떨결에 동의했다.
수준급의 실력자는 맞다.
다만 편집팀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다. 이용승 혼자서 하는 것 아닌가.
가끔 컵라면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그가 밤새서 처리하는 일거리였다.
“역시. 솔직히 누군지만 알면 저희 회사로 데려오고 싶은 인재들이더군요. 언럭키님의 영상들을 몇 번이나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몇 번 고개를 주억거린 정신찬이 말했다.
“그 편집 팀 전원 연봉 5,000만 원까지는 저희가 지원해드리겠습니다.”
“!”
최고 대우를 받는 스트리머는 단순히 본인만 챙겨주지 않는다.
스트리머를 받쳐주는 편집, 기획, 재무 관리 팀 등.
서포트 전체를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것이다.
다만 백현은 이미 좋은 사람을 데리고 있는 것 같으니, 자금만 지원해 주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번에 월드 사가의 새로운 캡슐이 나옵니다. 싱크로율과 동기화가 좀 더 잘 조정된 제품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최대 10대까지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대당 수가 천만 원을 호가하는 캡슐의 지원까지.
백현은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아니….’
그냥 감사 인사좀 하러 나왔는데 너무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 쏟아진다.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실례지만 지금 월드 사가 플레이를 어디서 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일단…집…이죠.”
거길 집이라고 해도 되는지 애매하다.
그 문제도 중요하다.
감옥에 있는 캡슐은 (주)머니앤캐시의 것이라 들고나올 수가 없었다.
원래는 이용승과 함께 새로 사무실을 얻고 거기에 캡슐도 설치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빚을 갚고도 꽤 현금을 준비해서 나왔다 싶었지만, 막상 나와보니 돈 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역시 그렇군요. 사실 언럭키님 정도 되시는 분들이라면 슬슬 자택이 아니라 따로 사무실을 구하시기도 합니다. 일과 삶의 분리를 하시는 거죠.”
정신찬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괜찮으시다면 ‘스트리머 언럭키 팀’을 위한 사무실도 저희가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사무실 제공, 캡슐 제공, 밑의 직원들 인건비 제공.
이게 대룡 미디어가 언럭키에게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들이었다.
‘사실 이보다 더 하고 싶긴 했지만…그건 할아버지께서 허락 안해줄테지.’
대표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하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룹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업계였기에 자잘한 사항도 회장인 할아버지께 보고를 해야한다.
마음 같아선 계약금 수십억쯤 안겨주고 데리고 있고 싶었지만, 높은 확률로 기각될 것이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새로운 먹거리. 새로운 시장. 월드 사가는 이미 15억 명이 넘는 유저들이 플레이하고 있었다.
여기서 자리를 잡기 위해 대룡 그룹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기업의 사활을 걸고 박박 긁어모아 쏟아붓는 것이다.
그렇기에 안타깝게만, 언럭키에게 당장 큰 계약금을 줄 수가 없었다.
그가 정말로 하이 랭커가 되어 자신을 증명했다면 모를까, 미래 가능성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이게 한계인 것이다.
“백현님. 지금은 이 정도밖에 해드릴 수 없지만, 다음번에는 반드시 훨씬 더 좋은 조건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하하….”
정신찬의 말에 백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여기서 더 좋은 조건이라니.
뭘 얼마나 더 좋게 해준다는 말인가?
“그…감사합니다.”
백현은 원래 목적인 감사 인사를 하긴 했다.
* * *
백현과 이용승이 떠나간 (주)머니앤캐시의 건물.
“하. 참. 겨우 두 명 비었다고 적막한 거 봐라.”
공용 주방에 앉은 채 박세훈은 피식 웃었다.
건물 안에 사람은 물론 많이 있었다.
머니앤캐시에 빚을 지고 갚지 못한 빚쟁이들.
그들은 노예처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가끔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나오더라도 표정은 절망하고 있다.
그런 자들이 웃으면서 떠들거나 할 리가 없었다.
칙칙한 절망과 적막이 건물 전체를 휘감는다.
박세훈은 꽤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다.
이 절망감은 본인도 자주 느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까먹었다.
백현과 이용승.
그 둘과 함께 하다보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에너지가 충만해졌다.
다만 둘이 나가니 과거의 잊고 있던 기분이 되살아났다.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다.
“건물을 살 거면 좀 풍수지리상으로 괜찮은 데를 사야지. 이거 맨날 우울함만 느껴지는 거 보면 터가 안 좋은 거 같은데.”
킥킥 웃던 박세훈이 복도 쪽을 쳐다봤다.
“어떻게 생각해, 성 팀장?”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차가운 인상의 성 팀장이 다가오고 있었다.
행운빨로 레벨업
지은이 : 글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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