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보스몹을 만난다면 일단 공격부터 해라.
월벤에 떠도는 말이다.
언럭키도 옳다고 생각했다.
바보도 아니고 보스몹의 멘트를 하나하나 들어주고 있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몬시뇰 그리토스가 나타났을 때 냅다 칼을 찔렀다.
‘근데 이렇게 잘 먹힐 줄이야.’
보스몹의 HP가 거의 3분의1 가량 쓸려나갔다.
아무리 염화 오러를 둘렀다지만, 치명타도 터졌다지만 그래도 평타 한 방에 이런 데미지라니.
‘던전도 쉽고 보스몹도 쉬운…뭐 그런 건가?’
사실 그건 아니다.
원래라면 그리토스는 빙혈의 심장에서 뿜어지는 냉기를 다루어야 했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냉기의 권능 앞에서 쩔쩔매야 정상이지만, 반대되는 속성인 염화 오러로 빙혈의 심장을 너무 빨리 부숴버렸다.
‘이렇게 쉬운 던전이 신탁 퀘스트라니. 쯧. 경험치나 보상도 별거 없겠네.’
어쩌면 레전더리 재료 아이템 정도가 던전의 보상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기대감이 팍 식었다.
‘그냥 빨리 죽이자.’
언럭키는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붉은 오러가 넘실거리는 칼날이 공간을 점하고 쏘아진다.
검왕의 패시브 특성들은 이런 1대1 근접 전투에서 최고의 성능을 보인다.
일단 붙어 싸우면 어지간해서는 다 이기는 것이다.
반면에 그리토스가 부릴 수 있는 권능은 대부분 못 쓰는 상태.
HP가 푹푹 깎여 사라진다.
물론 썩어도 준치라고 그리토스는 냉기의 권능을 사용해 반격도 했다.
“벨라님! 이쪽으로!”
그때마다 언럭키는 잽싸게 벨라의 뒤로 튀었다.
움직이는 바리케이트처럼 써먹으며 버텨낸 것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
그리토스 입장에서는 열이 확 받았다.
두들겨 맞으며 기껏 하는 반격도 잽싸게 피해버리니.
그러나 늙은 노인인 그가 갑옷도 입지 않아 빠른 스피드를 보유한 언럭키를 쫓아갈 수는 없었다.
공격에 실패하고 생긴 빈틈으로 오러가 다시금 짓쳐들어왔다.
“크허억… 주교가 멀지 않았는데…!”
결국 그리토스는 내내 억울한 눈빛만 보이다가 쓰러졌다.
-띠링!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뭐야. 경험치가 많이 들어오네?’
언럭키는 살짝 당황했다.
너무 약해서 그냥 던전을 공략하는 것에 의의를 두려고 했는데, 레벨업을 3번이나 했다.
아무리 최초 공략 보상으로 경험치가 1.5배가 되었다고 해도 너무 많았다.
사실 엄청 강한 놈이었던 건가?
그러면 보상도 다시 기대해봐도 되나?
언럭키가 눈이 반짝거리며 보스몹이 죽어 사라진 자리를 쳐다봤다.
그러나 거기는 보스몹답게 꽤 많은 양의 골드만 드랍되어있었다.
눈 씻고 봐도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 쓰레기같은 던전이 맞았네.”
신탁 퀘스트로 들어온 던전이 이따위라니.
리바 델 레이의 악신이나 검신이나 둘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생각이 잠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 *
던전 공략을 마무리한 뒤에 언럭키는 벨라를 도와 수정 고원에서 골렘들을 계속 사냥했다.
골렘들을 잡고 얼음 수정 500개 모아주기.
어차피 레벨도 올려야하니 열심히 돌아다녔다.
중간에 이상한 광경을 보기도 했다.
우연찮게 다시금 공략한 던전 쪽으로 갔는데, 왠 유저 몇 명이 괴성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으악! 던전…던전 어디갔어!
-냉기 저항 포션이랑 내성 올려주는 아이템 비싸게 사 들고 왔는데…!
-끄으윽. 난 저번에 죽으면서 유니크 아이템도 떨어트렸단 말이다….
‘던전 바깥의 함정을 발동시킨게 저놈들이었나?’
멀찍이서 그들을 쳐다본 언럭키는 괜히 시비 걸릴까 싶어 물러났다.
보스몹밖에 없던 던전이라 그런지, 언럭키가 공략 성공하자 던전은 사라져버렸다.
저들을 헛발질을 하게 된 것이다.
사냥터는 넓으니 마주치지 않도록 동선을 짜서 재료들을 모아갔다.
“벨라님!”
“네.”
언럭키와 벨라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잘맞았다.
탱커와 검사의 조합은 원래도 좋긴 한데, 두 사람은 특히나 감각적으로 통하는게 좋았다.
‘말안듣는 애들이나 깡패들 눈치보는 것보다는 훨씬 쉽네.’
보육원에 있을 때 땡깡부리는 애들이나 성 팀장 밑의 덩어리들을 상대하다보니 늘어난건 눈치뿐이었다.
말수가 적은 벨라이지만 의외로 좋고 싫음이 명확했다.
표정이나 눈빛으로 확 드러나는 것이다.
그걸 파악하는건 그리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렇게 재료 500개를 며칠도 안되어 다 모았다.
* * *
벨라. 김화영은 어느 순간부터 방에 틀어박혀있지 않고 천천히 밖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치료 목적으로 월드 사가를 시작했고 차도가 있었는데, 언럭키를 만난 이후에 그 효과가 훨씬 더 커졌다.
가장 좋아한건 가족들이었다.
“화영아 입맛에 좀 맞니?”
“…네.”
“어머. 그럼 조금 더 줄까?”
“…조금만요.”
갈비찜을 오물오물 먹는 김화영을 보며 어머니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가족들에게도 거의 입을 열지 않던 그녀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꼬박꼬박 대답도 잘하고 입이 짧았는데 먹기도 잘 먹는 것이다.
식사 후에는 오빠인 김동엽과 월드 사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언럭키님이 재료 모으는걸 도와주셨다고? 심지어 던전 공략하고 레전더리 재료 아이템도 그냥 주시고?”
“…응.”
“이야….”
김동엽은 1티어 길드인 크라비 길드를 이끄는 수장이다.
월드 사가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언럭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랭커가 아님에도 이미 랭커 이상으로 취급받는 유저.
앞으로 하이 랭커가 될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는 사람 아니던가.
게다가 동생을 많이 도와주는 은인이었다.
‘아무리 호의라고는 해도 그런 걸 그냥 받으면 안 되는데.’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마냥 퍼주기만 하는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다만 동생이 아직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아서 보답은 생각 못 한 모양이다.
‘내가 갚아줘야겠군.’
지난번에는 길드에서 보유한 레전더리 스킬북을 줬었다.
목록을 보냈고 그중에 네크로맨서 전용 스킬북인 베놈 소환을 끼워넣었었지.
이번에는 뭘로 보답을 해야할까…
‘레전더리 재료면 그 값도 상당할테니…고민이군.’
다만 김화영이 말하지 않은게 있었다.
언럭키에게 받은 재료를 가공해서 검을 만들어 주겠다는 거였는데, 굳이 주절주절 말하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거기까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 * *
언럭키는 라이브 방송의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얼마 전에 깨달았다.
검신의 전당을 클리어 할 때.
아무리 스트레이트로 클리어했다지만 후원금과 미션금을 다 합쳐 2억 정도 되는 돈을 한 방에 벌었다.
그 쾌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띠링!
[NEW!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서 라이브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목 : 오늘은 수다나 떨어요]
그래서 일단 라이브를 켰다.
딱히 할만한 컨텐츠는 없고, 입이나 좀 털고 돈 팍팍 벌어보자는 마인드!
<오. 오늘은 그냥 대화만 하는건가요?> <언럭키님 방송에서 이런건 또 처음이네ㅋㅋㅋㅋㅋ.>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매일 해주세요!>
“하하. 저도 여러분들과 이야기하는게 정말 기쁩니다. 다만 할 일이 좀 있어서…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이런 수다 컨텐츠도 해보겠습니다.”
자본주의 미소를 깔고 카메라 쪽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그때부터 적당히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우연찮게 던전을 발견했는데요, 던전 바깥의 함정을 어떤 분들이 발동시켜줬는지 편하게 공략했습니다. 심지어 최초 발견 던전이었는데 공략 성공하니까 사라지더군요. 별로 어렵지 않은 던전이라 또 깨고 싶었는데 아쉬웠습니다.”
<아 ㅅㅂ. 그 던전 공략한게 당신이었어?> <미친…. 욕나오게 하네. 그 때 얼음 함정 뒤집어쓰고 유니크 아이템도 떨궜는데…하…. 그 후에 없는 돈 다 털어서 냉기 저항 아이템 두르고 갔다고….> <엌ㅋㅋㅋㅋㅋㅋㅋ. 위에 놈들 개웃기네 진짜ㅋㅋㅋㅋㅋㅋ.>
언럭키는 흠칫했다.
‘어…그 사람들이 내 시청자였어?’
사라진 던전 앞에서 씩씩거리던 유저들이 자신의 시청자였을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저 채팅은 못 본 척 넘겼다.
다만 좀 아쉽긴 했다.
‘던전 함정 밟고 죽었는데 유니크 아이템을 드랍했다니…아깝다…좀만 더 일찍 갔으면 발견했을 건데.’
드랍템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타이밍만 잘 맞았으면 그들이 떨어트린 드랍템도 주웠을 텐데.
허공중으로 유니크 아이템이 사라졌다니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언럭키는 이런저런 말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는 이런 라이브 하지 말아야지.’
시청자들이 좋아는 하는데 후원이 터지질 않았던 것이다.
1000원에서 5000원 사이의 자잘한 후원이 몇 번 있었지만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언럭키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다고 속물적이게 후원 좀 해달라고 말하는 건 지금까지의 ‘스트리머 언럭키’ 컨셉과 너무 동떨어진다.
괜스레 속으로 후원 언제쯤 터지나 바라다가, 다음부터 이런 수다 방송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간에 레벨 하나 더 올리고 성장에 힘쓰는 게 훨씬 더 이로우리라.
그때였다.
[건물주입니다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오늘 라이브도 재밌네요. 화이팅입니다 ㅎㅎ.>
“!”
가뭄의 단비같은 100만 원의 후원!
언럭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건물주입니다님. 오늘도 제 방송에 와주셨군요. 재밌어하신다니 다행입니다. 하핫.”
이전처럼 크진 않았지만 이게 어디인가.
이 정도면 시간 대비 본전은 쳤다.
‘후원도 받았으니 조금만 더 이야기하다가 방송을 종료해야겠군.’
바로 꺼버리면 너무 없어 보이니 적당한 선을 지키는게 중요하다.
[크라비 님이 20,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라이브 방송 재밌네요. 지난번의 보답까지 같이하고 갑니다~>
“!!!?”
언럭키는 순간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눈을 크게 떴다.
0의 갯수를 잘못 셌나 싶었다.
2천만원이라니!
<와 미쳤다. 저거 뭐냐?>
<한 방에 2천만원 후원을 해??> <잠깐만. 근데 닉네임이 크라비이면…크라비온 길드장 아냐?> <어!!? 맞네? 언럭키님이 크라비온 길드장이랑도 아는 사이였어?> <심지어 보답이라니. 무슨 관계임??>
채팅창이 한순간 폭발했다.
문제는 언럭키도 대답해 줄 수 없다는 점이다.
‘뭔 보답? 내가 뭘 했어??’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그런 건 생각이 안 나는데?
기껏해야 연관을 지을 수 있는 건 얼마 전 그의 동생인 벨라의 재료를 수급하러 같이 다녀줬다는 건데…
‘겨우 그 정도로 2천만 원이나 준다고?’
그 순간 언럭키는 경건한 마음을 가졌다.
형님이 참 마음이 넓으신 분이시구나!
“이런 큰 금액의 후원을 바라지는 않았지만…정말 감사합니다!”
언럭키는 냅다 허리를 숙였다.
<크라비 : 보답이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감사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라이브 화이팅이에요!>
거액의 후원금을 기습적으로 날린 뒤 크라비는 바람처럼 떠나갔다.
그가 갔어도 언럭키를 포함한 채팅창은 활활 타올랐다.
진정한 큰 손이니, 1티어 길드장은 돈 쓰는 금액부터 다르다니 등.
반쯤 축제 분위기였다.
다만,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었다.
[건물주입니다 님이 25,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저 사람. 겨우 2천 후원하고 멋있는 척은 다 하고 가네요. 참 나.>
“!!”
언럭키는 도대체 리액션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행운빨로 레벨업
지은이 : 글포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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