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204화 (204/218)

#204화

어릿광대의 놀이터.

이 던전이 어려운 이유는 종잡을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바뀌는 미로의 지형.

한 번 걸리면 된통 당하는 함정.

거기에 튀어나오는 몬스터의 무력도 무력인데, 언제 자폭할지 모른다는 점까지.

지옥 같은 난이도였다.

사람이라도 좀 많으면 괜찮으려만, 입장 인원 제한은 겨우 5명에 불과했다.

아세린도 처음에는 자신 있게 던전에 들어왔다.

그녀는 빅드래곤 길드의 유망주이자, 하위권 랭커들 중에서는 가장 두각 받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언럭키는 아직 랭커도 아니면서 올려치기 당하고 있었지만, 아세린 역시 알음알음 알려져 있던 것이다.

“어떻게…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으세요?”

검을 휘두르는 언럭키를 보며 아세린이 물었다.

“뭘요? 그냥 칼 휘두른 건데요?”

“제가 여쭤본 건 그게 아니라…”

그때 언럭키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콰앙!

아무 전조도 없이 그가 상대하던 ‘조종받는 강화 고블린’이 폭발했다.

범위 밖으로 물러나있던 언럭키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그거요! 어떻게 폭발을 예측하신 거죠?”

아세린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5인 제한 던전.

함정 해체용 도적을 제외하면 4명이서 클리어해야 한다.

처음엔 싹 다 딜러로 넣었다가 된통 당했다.

예측하지 못하는 폭발에 몇 번 싸우지도 못하고 딜러들이 전멸한 것이다.

그 후부터는 탱커와 힐러를 꼈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탱커 한 명으로는 계속된 폭발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두 명으로 늘리자니 딜러가 한 명밖에 안 된다.

딜이 부족해서 던전을 계속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어떻게 혼자….’

아세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처음에 언럭키가 혼자서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던가.

유명인이라 그런지 너무 오만하다고.

길드장이 사람을 잘 못 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편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었다.

무슨 능력인지는 모르지만 5명이서도 실패하던걸 언럭키는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뭐…그냥 감입니다.”

언럭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서걱!

-푹!

가볍게 휘두르는 검에 고블린들이 비틀거린다.

별거 없는 일격처럼 보이지만 전부 다 치명타에 꽂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언럭키가 발을 빼면.

-쾅!

-콰앙!

몬스터들이 폭발했다.

언럭키가 피식 웃었다.

‘이 던전. 진짜 너무 좋은데?’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폭발.

만약 당하는 입장이었다면 언럭키도 짜증이 엄청 났을 것이다.

성왕 시절이면 모를까, 지금은 방어력이 종잇장에 가깝다.

몇 번 휘말리면 바로 죽었겠지.

하지만 휘말릴 일이 없었다.

언럭키의 눈에는 놈들이 폭발 직전에 아주 불길한 붉은빛을 뿜어내는게 보였다.

그 타이밍에 맞춰 발을 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서걱!

또다시 한 번 더 베어주고, 붉게 변한 순간 휙 지나쳤다.

-쾅!

폭발.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경험치가 들어왔다.

언럭키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었다.

굳이 죽을 때까지 공격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폭해 죽어준다.

그러면서 경험치는 경험치대로 들어온다.

뭐 하는 것도 없이 자동 사냥 켜놓은 기분이다.

어느새 몬스터들이 다 폭발하며 사라졌다.

‘여길 내가 최초 발견으로 들어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보너스 경험치까지 먹으며 진짜 미친 듯이 돌아다녔을 텐데.

아쉬워하며 언럭키가 뒤를 돌아봤다.

“계속 가실까요?”

“…네.”

아세린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기분으로 그를 쳐다봤다.

* * *

리바 델 레이는 악신의 추종자들이며, 언젠가 악신의 힘으로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단순히 믿는 것뿐만 아니라 시도도 계속해서 했다.

분타를 계속해서 늘려갔으며, 이 던전도 그 일환 중 하나였다.

어릿광대의 놀이터.

여기는 코드네임 ‘어릿광대’로 분류된 몬시뇰. 크라운이 담당하는 실험실이었다.

“양산…양산만 더 하면 되건만…. 쯧.”

하얀 민무늬 가면을 쓴 크라운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찼다.

“위력은 나무랄 데가 없는데 생산이 마음대로 안 되니….”

그가 하고 있는 실험은 자폭하는 몬스터의 생산이었다.

널리고 널린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의 하위급 몬스터.

그런 놈들을 데려다가 강화 개조 시술을 하고, 자폭 기능까지 넣는다.

전투 능력도 쓸 만하지만 가장 대단한 점은 폭발이다.

딜레이 없이, 사전 동작 없이 이루어지는 폭발.

한창 싸우다가 상대를 골로 보내버린다.

값싼 몬스터들이라 아까울 것도 없고, 위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그런데 빌어먹게도 양산이 안 된단 말이지.”

민무늬 가면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탐탁지 않게 빛난다.

이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전부 다 크라운의 조종을 받고 있었다.

그의 능력. ‘인형화’ 로 조종하고 있었는데, 그런 놈들만 자폭이 가능했다.

“후우. 시간과 예산이 더 필요해….”

크라운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때 그의 손가락이 움찔 하고 떨렸다.

자신과 연결된 실 하나가 파르르 흔들리더니 흘러내린 것이다.

“또 침입자인가.”

대수롭지 않게 실을 정리한 크라운이 히죽 웃었다.

침입자는 반가웠다.

찾아와서 죽어주는 덕분에 실험체들의 미세한 조정 같은걸 해볼 수가 있었다.

“어떤 멍청이들인지 몰라도 주기적으로 찾아와주는군. 이거 인사라도 해 줘야 되나. 크하핫.”

크라운이 열손가락을 까딱였다.

손가락에 이어져있던 수십 개의 실이 찰랑거린다.

-쿠르르릉!

던전 전체가 광대의 손에 놀아나는 서커스장이다.

격벽이 움직이고 함정이 바뀌고 새로 생기는 등, 안에 들어온 자들을 환영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실험실에 잠자고 있는 몬스터들까지 침입자들을 반겨주기 위해 떠났다.

* * *

언럭키는 아세린과 던전을 나아갔다.

혼자 오려다가 괜히 말 많아질까 싶어 데려온 게 그녀였다.

그래서 별 생각 없었는데, 아세린은 생각보다 굉장히 강했다.

-스거걱!

-쾅!

두 자루의 검을 귀신처럼 휘두르는 그녀의 전투 스타일은 굉장히 화려했다.

바닥만 밟지 않았다. 벽, 천장, 땅. 온갖 곳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민첩한 몸놀림과 더불어 장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러는 폭풍같았다.

-쾅!

-콰앙!

몬스터들이 쉴 새 없이 폭발했지만 잽싼 다람쥐처럼 아세린은 자리를 벗어나 있었다.

워낙 전투 스피드가 빨랐기에 기습적인 폭발에도 어지간하면 당해주지 않았다.

보라색 단발머리가 휘날리는 그녀의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멋있어 보였다.

‘허 참. 신기하게도 싸우네.’

사방팔방 움직이는 저 스타일은 언럭키도 흉내 낼 수 없는 전투법이었다.

-쿠르르릉!

그러다 큰 소리와 함께 벽이 흔들리더니 지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30분에 한 번씩 이런 식으로 지형이 움직였다.

“읏. 언럭키님….”

“예. 여기서부터는 제가 하겠습니다.”

아세린이 곤란한 표정으로 물러나고 언럭키가 한 걸음 나섰다.

새롭게 바뀐 지형은 좁은 복도 형태였다.

조금 전처럼 넓었다면 아세린이 여기저기 밟고 뛰어다니며 싸울 수 있었지만, 이런 곳은 운신이 제한된다.

어지간해서는 폭발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뜻.

앞으로 나선 언럭키가 가볍게 툭툭 검을 찔러 넣었다.

아세린과는 전혀 다른 전투 스타일이었다.

굳이 죽일 생각 없다는 듯 상처만 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였는데, 언럭키가 피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 때마다 폭발했다.

-쾅!

-콰앙!

언제 폭발할지 알기에 피한 것뿐이지만 아세린이 보기엔 달랐다.

‘직업 특성으로 예측한 건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스킬?’

뭐가 됐든 하나는 인정했다.

‘아름답다….’

남자에게도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쓸 수 있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 계속되는 폭발.

그 사이에서 한 자루 검을 들고 움직이는 언럭키는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춤이 끝나면 남아있는 적들은 없었다.

“다시 갈까요?”

한 차례 달려들었던 몬스터를 다 처치한 뒤, 언럭키가 말했다.

아세린은 멍하니 구경하다가 대답을 한 박자 늦게 했다.

“아…알겠습니다.”

괜스레 창피해 아세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오늘 내에 보스몹까지 공략하고 싶네요.”

다만 언럭키의 시선은 정면을 향해 고정되어 있어 그런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크르르르!”

“캬아아아!”

한 무리의 몬스터들이 또 등장했다.

“이거 미로랑 함정은 필요가 없군요. 알아서 가만히 있어도 몬스터가 달려와 주니.”

“그러게요. 제가 몇 번이나 들어왔을 땐 이런 적이 없었는데…이상하네요.”

“좋은 거죠 뭐. 귀찮게 여기저기 찾으러 다닐 필요 없고.”

도시 빌루스에 도착했을 때 언럭키의 레벨은 180이었다.

반면에 고맙게 자폭해주는 이 몬스터들의 레벨은 200대.

무려 20이 넘게 차이 나다보니 경험치가 어마무시하게 들어왔다.

벌써 몇 번이나 레벨업을 한 것이다.

‘부디 보스몹도 좀 편하게 잡으면 좋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언럭키가 다시금 검을 치켜들었다.

* * *

민무늬 가면 속.

크라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어떤 놈들이지? 교단에서 계급 높은 성기사라도 온 건가?”

침입자의 숫자는 둘이었다.

정확히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그건 알 수 있었다.

처리하는데 얼마 안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박살났다.

자폭하는 몬스터의 위력은 개발자인 본인이 가장 잘 알았다.

한두 마리여도 까다로운데 그런 놈들이 끊임없이 달려든다면 절로 좌절감이 들겠지.

침입자들이 죽기 직전까지 좌절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실험실에 있던 실험체들을 싹 다 보낸 건데…

“…그 놈들이 전멸하다니.”

무식한 갑옷을 두르고 계속 체력을 회복하는 성기사가 아니라면 어떻게 버텼단 말인가.

교단에서 온 놈들이 확실하다.

그 즉시 크라운은 도망칠 준비를 시작했다.

“교단의 그 지저분한 신을 믿는 놈들과 괜히 싸울 필요 없지.”

악신의 권능을 다루는 자신에게 신성 주문을 사용하는 놈들은 상극이다.

크라운은 급하게 연구 자료만 챙기고는 연구실을 나갔다.

마지막으로 실을 조종해 던전 전체의 격벽 구조를 바꿨다.

-쿠르르릉!

여기저기 움직이는 격벽을 뒤로한 채, 그가 뛰기 시작했다.

성기사들은 아마 이 안에서 해맬 것이다.

크라운은 그 틈에 던전을 벗어나 모습을 감출 생각이었다.

-타타탁!

열심히 복도를 달려갈 때,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뒷목이 쭈뼛거리는 느낌이 들어 휘휘 주변을 돌아봤다.

그 순간, 벽이 쩍 하고 갈라졌다.

-콰앙!

무너진 벽에서 튀어나온 건 붉은 오러를 휘두르는 남자였다.

조각난 벽돌에서는 불꽃이 타닥타닥 피어올랐다.

언럭키와 아세린이 등장한 것이다.

“어, 어떻게!?”

크라운이 눈을 부릅떴다.

격벽을 한 번 더 조작했기에 절대 자신을 찾지 못할 텐데…

그리고 의문을 표하는 건 아세린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조금 전, 언럭키는 미로와 함정을 돌파해나가다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뭐가 있나 싶어 바라보는데, 갑자기 벽에다 오러를 사용하는 것 아닌가.

이런 던전은 자칫 잘못해 벽이 무너질 수 있었다.

그렇게 생매장되면 무조건 사망이라 굉장히 위험하다.

한데 언럭키는 실행했고, 거기서 나타난 게 민무늬 가면의 보스몹이었다.

“음….”

그러나 언럭키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통수만 긁적였다.

딱히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벽 너머에서 파란빛이 나오는 것 같아서 냅다 부순 건데요….’

이렇게 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