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라이브 방송에 입장하는 시청자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증가한다.
어느덧 언럭키는 25단계를 돌파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거친 숨결이 터져 나온다.
몸 여기저기에 상처 입혀진 상태.
치명상만 포션으로 얼추 회복한 터라 영 꼴이 말이 아니다.
통증도 느껴진다.
진짜 이세계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월드 사가이기에, 현실과 1대 1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통이 있었다.
피에 절여진 언럭키의 모습은 처절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와…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솔직히 운빨로 꿀빠는 스트리머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게 되네.>
채팅창을 본 언럭키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뭔 운빨로 꿀 빱니까. 제가 언제 그랬다고요.”
<양심 있으세요?>
<길게 안보고 전당 2단계에서도 운빨 지려서 손쉽게 돌파했지 않았음 ㅡ.ㅡ>
뜨끔했다.
미로가 등장해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했던 그곳에서는 확실히 행운 능력의 버프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억울한 점도 많았다.
‘내가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해서 플레이하는데.’
감옥 같은 고시원에 처박혀 하루하루 스파르타처럼 구른다.
게임 속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건, 현실이 더 지옥 같기 때문이다.
보육원 출신에 험난한 사회생활을 겪고 배신도 당해보고, 고시원에서 좌절까지 겪어봤다.
간신히 자신의 빚은 다 갚긴 했지만, 아직도 상황이 다 풀린 건 아니다.
‘솔직히 멘탈 튼튼한 걸로는 그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
검신의 전당을 29단계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도 그런 멘탈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이었다.
“후. 제가 솔직히 운이 좋은 편인 건 맞긴 한데, 그만큼 현실에서 운이 별로 없습니다.”
<구라치지 마세요ㅋㅋㅋㅋㅋ.>
<님이 레전더리 템 먹는 걸 한두 번 본 줄 앎?>
“아니 진짜 억울하네…. 말해 줄 수도 없고. 제가 왜 닉네임을 언럭키라고 지었겠습니까. 더럽게 운이 없어서 그렇게 지은 거구먼.”
세상에서 가장 운 없는 사나이.
그게 나 아닐까 싶었었다.
<그거 우리 기만하려고 한 거 아니었음?>
<럭키라고 이름 지었어야 했는데. 솔직히 닉네임 볼 때마다 빡침. 모든 행운은 자기가 다 가져가면서.>
“하하….”
언럭키가 어색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단편적인 면만 보는 시청자들에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 얘긴 넣어둡시다. 그나저나 이제 26단계이군요.”
방금 전 25단계를 통과했다.
남은 체력 회복 포션은 겨우 5병.
진짜 치명적인 상처에 뿌리기 위해 아껴두느라 지금 상처투성이였다.
“미션금 감사합니다. 달달하게 먹겠습니다.”
언럭키가 카메라를 보며 빙긋 웃더니 미션금을 수령했다.
25단계의 수령금도 액수가 상당히 컸다.
일단 건물주입니다가 걸어놓았던 매 단계 1500만 원의 금액. 거기에 25단계는 못 깨겠지 싶어 추가로 미션금을 건 자들이 꽤 존재했다.
도합 3천만 원도 넘는 액수가 후원금으로 들어왔다.
<안돼 ㅠㅠㅠㅠㅠ>
<안전 자산인 줄 알았건만….>
<한 번도 중도 포기 안 하고 25단계까지 클리어하는 게 말이 되나?>
<다른 랭커들 중 이렇게 한 사람 하나도 없지?>
<있긴 있음. 미션금 걸리고 스피드런 한 랭커들이 극소수 있긴 함.>
<오. 그쪽 기록은 몇 단곈데?>
<26단계. 지금은 하이 랭커 된 사람임.>
<헐. 그럼 언럭키 잠재력이 하이 랭커급이라는건가?>
<그건 아직 모르지ㅋㅋㅋㅋㅋㅋ>
스트리머 중에서 스피드런을 한 사람도 소수지만 있었다.
그중 최고 기록은 26단계.
언럭키가 지금 실패해도 타이 기록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이 랭커가 전당을 통과할 때 세운 기록이라…. 그건 이제 잊어주셔도 됩니다. 제가 29단계까지 깨서 기록 세울 거니까요.”
언럭키가 자신 있게 말하고는, 26단계를 향해 성큼성큼 움직였다.
* * *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적으로 나타난 몬스터의 비명소리가 아니었다.
두히칸의 함성이었다.
“으아아아!”
“끄아아아!”
“흐아아아!”
전투 의지를 불태우기도 하고 고통에 겨운 신음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11단계에서 두히칸을 완벽하게 굴복시켜 소환수로 받아들여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소모품이 너무 부족해서 여기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거야.’
“두히칸!”
“크윽 제길!”
“빨리 와! 급해!”
“가고 있다!”
두히칸은 든든한 동료였다.
머리 두 개 달린 사자 형태의 몬스터가 불꽃을 쏘아대자, 두히칸이 몸을 활짝 펼쳐 앞을 막아섰다.
바위로 이루어진 피부는 그 자체로 훌륭한 방패였다.
두히칸이 앞을 지켜주는 덕분에 언럭키는 안전하게 전진할 수 있었다.
일단 거리를 좁히면 그때부턴 오러 섞인 검을 마구 휘둘렀다.
원래는 혼자서 깨야 하는 검신의 전당이다.
두히칸 같은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 체감 난이도는 많이 내려간다.
결국 언럭키는 어찌어찌 29단계까지 도달했다.
가진 포션을 전부 다 썼지만, 결국엔 29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도전자여.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그 능력. 대단하다.
29단계에서 등장한 건 풀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하고 롱소드를 든 기사였다.
지금껏 거대 괴수만 등장하다가 인간 형태의 몬스터가 등장한 건 처음이다.
그러나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고대의 소드마스터]
-레벨 : 180.
놈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이었다.
소드마스터.
전당의 최종 보스였다.
-오라!
놈이 롱소드를 들어 올렸다.
언럭키도 마주 검을 뽑아 들었다.
소드 마스터에게선 푸른 오러가, 언럭키에게선 붉은 오러가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둘의 신형이 순식간에 가까워지더니 충돌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합이 부딪쳤다.
오러로 만들어진 불똥이 튀어 주변을 박살 냈다.
‘검술이…굉장하네.’
언럭키는 싸우면서도 감탄했다.
검왕의 직업 보정으로 지금 그는 느려진 시간 속에서,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는 투로를 그려나갔다.
한데 상대 역시 절대 밀리지 않고 맞붙었다.
명색이 소드마스터여서 그런가. 오히려 미세하게나마 순수 검술 실력은 저쪽이 우위에 있었다.
크게 오러를 뿌리며 물러난 언럭키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어쩐다….’
소수이지만 29단계를 깬 검사 랭커들도 있었다.
언럭키처럼 스피드런은 아니고, 도전과 실패를 반복했다.
고대의 소드마스터는 그 이름처럼, 검술로 싸웠다간 절대 못 이긴다.
각자 가진 스킬들로 찍어눌러야 했다.
레전더리 스킬 용암 용격. 검에서 용암으로 만들어진 용을 불러내 이기거나.
레전더리 스킬 만 자루의 검. 분실술마냥 만 개의 검을 소환해 때려 박는다.
효율이 안 좋긴 하지만, 그런 대형 스킬들을 포션을 미친 듯이 빨려 날려서 잡는다.
그게 유일한 공략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나는 쓸 수 없는 방법이고.’
그딴 스킬은 사려면 몇억은 필요하다.
먹고 죽을 돈도 없다.
안 그래도 염화 오러를 구매하면서 추가로 몇억의 빚이 생겼는데.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아쉬웠다.
미션금은 29단계에서 가장 많이 걸려있다.
때려 죽어도 29단계는 성공해야 한다.
“두히칸.”
“…이번엔 그렇게 불러도 소용없다. 내가 도움이 되기 어렵다.”
“으음.”
비관적인 두히칸의 말에 언럭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역시 동의했기 때문이다.
오러를 사용하는 고대의 소드마스터 앞에서, 두히칸의 방어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칼질 몇 번에 그대로 조각조각 베어질 터이다.
-도전자여. 계속 도전하라.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놈이 롱소드를 든 채 훌쩍 달려왔다.
언럭키가 인상을 찡그리더니 마주 싸웠다.
또다시 순식간에 수십합이 지나갔다.
-쾅!
“크윽….”
언럭키가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놈이 날린 오러가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가 줄줄 났지만 마실 포션이 없었다.
한 방에 다리가 잘리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언럭키는 결단을 내렸다.
“두히칸. 안 되겠다. 너도 참여해.”
“…알겠다. 시선 끄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두히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부러 덩치를 부풀리며 달려들었다.
투구 사이로 보스몹의 눈빛이 번쩍였다.
롱소드가 휙 움직이더니 두터운 바위 같은 피부가 쩍쩍 갈라진다.
“크으윽…!”
예상대로 두히칸은 순식간에 치명상을 입었다.
저런 타입과는 상성이 너무 안 좋았다.
“두히칸. 계속 가!”
“뭐?”
“너 어차피 여기서 죽는다고 진짜 죽는 거 아니잖아!”
“……!”
두히칸이 입술을 깨물더니 와락 달려들었다.
몸이 잘리는 걸 감수하고, 목숨을 포기한 채 들러붙은 것이다.
보스몹조차 살짝 당황했다.
그 순간 언럭키의 검이 휘둘러졌다. 붉은 오러가 번쩍였다.
두히칸과 함께, 보스몹까지 베어버렸다.
-서걱!
-화르륵!
잘린 단면 사이로 불꽃이 피어오른다.
보스몹의 오른팔을 잘라버린 대가로, 두히칸 역시 몸이 양분되었다.
놈이 바닥을 뒹굴었다.
“크헉….”
“후. 고생했다.”
언럭키가 놈을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두히칸은 언럭키를 슬쩍 쳐다보더니 말했다.
“다음엔…보지 말자….”
“뭐?”
그게 무슨 뜻이냐고 더 따져 묻기도 전에, 놈이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안 돼 두히칸 ㅠㅠㅠㅠㅠㅠ>
<우리 히칸이…이렇게 가는구나….>
<언럭키님 인성 무엇…?>
<악덕 사장 밑에서 고생 많았다…저승에서는 고생하지 말렴….>
언럭키는 어이가 없었다.
“얘 본체는 멀쩡히 잘 있거든요. 전당의 소환체만 사라지는 겁니다.”
어차피 29층을 클리어하면 사라질 놈이다.
그걸 조금 먼저 보낸 것뿐이었다.
그거 가지고 인성 어쩌구 하는 말을 듣다니.
<나 왜 언럭키가 솔플하는 지 알 것 같음. 파티원은 다 죽어버리니까 어쩔 수 없이 솔플하게되는 거지.>
<합리적 의심인 거 ㅇㅈ합니다.>
<히칸아~~~~. 우리가 대신 미안해ㅠㅠㅠㅠ>
“아 진짜. 그런 거 아닙니다. 사람을 무슨 살인마나 사회 부적응자로 만드시네.”
언럭키가 해명했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채팅창은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더니 어느새 언럭키를 인성 쓰레기로 몰아갔다.
한숨을 쉰 그가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전투는 거의 끝나 있었다.
채팅창을 볼 여유가 있을 정도로, 이미 전세는 기울었다.
-…….
자신만만하던 소드마스터는 조금 전부터 말이 없었다.
두히칸이 만들어낸 기회 덕분에 오른팔이 날아갔다.
소드마스터고 뭐고 간에, 언럭키를 상대로 한 팔만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언럭키가 히죽 웃으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오만하더니. 왜 입 다물었냐?”
<두히칸 희생으로 이긴 건데. 그 기회 잡았다고 입 터는 거 보소.>
<세계관 최강자다 진짜….>
“아…. 무슨 말을 못하겠네요….”
<낄낄ㅋㅋㅋㅋㅋ.>
<언럭키님 은근 타격감이 좋네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반응도 신선한지라 시청자들은 좋아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언럭키는 마무리나 하자는 듯 훌쩍 뛰었다.
염화 오러가 사방을 점하고 휘둘러진다.
놈은 남아있는 왼팔로 어색하게 검술을 펼쳐 막았으나, 채 30초도 버티지 못했다.
전신 풀 플레이트 메일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그 직후, 언럭키의 눈앞으로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완벽한 전투였습니다.]
[검신의 전당 29단계를 완벽한 성적으로 통과하셨습니다.]
[검신의 전당을 한 번도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해 성공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업적을 획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