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198화 (198/218)

#198화

검신의 전당 21단계.

거기부터는 준랭커 이상으로 분류되는 실력자들이나 올라서는 곳이다.

그들조차 여러번 실패와 도전을 반복한다.

반면에 언럭키는 첫 트라이로 시도해야 하는 제약이 있었다.

성공만 하면 최소 수 천 만원에서, 어디까지 올라가느냐에 따라 억대의 금액이 걸린 미션.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 언럭키는 채팅창에서 신경을 완전히 떼었다.

“후우. 후우.”

한껏 달아올랐던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완벽한 전투였습니다.]

[검신의 전당 22단계를 완벽한 성적으로 통과하셨습니다.]

21단계와 22단계를 통과했다.

그가 어깨를 붕붕 돌렸다.

‘소모품이 너무 부족해.’

이럴 줄 알았으면 포션을 좀 많이 들고 다닐 걸 그랬다.

물론 이런 걸 상상이나 했겠나.

포션이란 언제든 도시에서 살 수 있는 물품이었다.

항상 넉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인벤토리 가득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예고 없이 스피드런을 하게 된 지금 상황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별수 없지. 더 조심하는 수밖에.’

숨을 고르던 언럭키가 성큼 움직였다.

“이제 23단계 들어가겠습니다.”

카메라를 보며 한마디 한 뒤, 생성된 문을 향해 들어갔다.

“포션이 부족해서요. 적당히 채웠으니 나머지는 일단 상황 봐서 더 쓰던가 하려고 합니다.”

29층까지 앞으로 위험한 일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는데, 조심해야지.

채팅창에 올라온 질문에 대답해준 뒤, 다시 신경을 껐다.

이제 집중할 때였다.

23단계는 이전에도 여러 번 거쳐왔던 단계들의 진화 버전이었다.

랜덤으로 보스 몬스터가 소환되는, 전투의 단계.

다운그레이드된 보스 몬스터이지만 어떤 놈이 소환되는지에 따라 전투의 난이도가 확확 바뀔 터였다.

“염병.”

곧이어 소환된 몬스터를 본 언럭키가 인상을 찡그렸다.

“크르르르….”

안개를 뚫고 소환된 놈은 검은 비늘로 뒤덮인 채 날개를 활짝 펼친 괴물.

[보스 몬스터 : 블랙 와이번 영웅 - 젠키릭스]

블랙 와이번 보스였다.

놈이 희번득 눈을 뜬 채 언럭키를 노려봤다.

“하, 하하…. 오랜만이네. 아니, 그리 오랜만은 아닌가?”

놈은 공중요새에서 특임대 소속으로 한창 군공을 싸울 때 한 번 처치한 적이 있었다.

신궁 시절에 그리 어렵지 않게 뚜드려 팬 놈이었지.

문제는…지금이 신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캬아아아!”

“이런…화 많이 났구나?”

웃는 얼굴로 말해 보지만 블랙 와이번 보스는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이 올라갔다.

언럭키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엌ㅋㅋㅋㅋㅋㅋ. 하필 걸려도 와이번 보스가 뜨냐.>

<이제 어떻게 상대할 거임?>

<비행 관련 스킬이라도 있으신가?>

근접 전사들이 공중요새로 오지 않는 이유.

뭘 해도 중간은 가는 게 검사이지만, 비행 몬스터를 상대로는 뭘 해보기 힘들다.

“아니 아무리 랜덤 소환이라고 해도 이건 선 넘는 거 아닙니까? 검사보고 하늘 나는 비행 보스몹을 어떻게 잡으라고….”

그냥 와이번이었으면 해볼 만했다.

검왕의 능력이라면 적이 공격하러 내려올 때 카운터 치는 게 가능했을 테니까.

그러나 젠키릭스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놈의 날개가 번들거리더니 그대로 크게 날갯짓했다.

유형화된 바람이 칼날이 되어 바닥으로 쏘아졌다.

-콰가가가각!

언럭키가 훌쩍 뛰어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피했다.

“젠장.”

바닥이 움푹 패이고 부서진 돌조각들이 튀어오른다.

그 과정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젠키릭스는 하늘 위에 떠서 계속해서 바람 칼날만 쏘아댔다.

-콰가가각!

“아오. 씨. 저 새끼는 스킬 쿨타임도 없나?”

언럭키의 입에서 자동으로 불평이 튀어나왔다.

하도 바닥을 굴러다녔더니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어쩔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

“두히칸!”

“…왜 부르나.”

언럭키가 뒤를 쳐다보자 구석에서 조심스럽게 박혀있던 두히칸이 이쪽을 쳐다봤다.

놈은 영리하게도 전투가 시작된 후 모든 어그로가 언럭키에게 끌렸을 때, 눈에 띄지 않게 슬쩍 피해 있었다.

그러나 그걸 놓칠 언럭키가 아니다.

“와서 저놈 좀 어떻게 해봐.”

“나보고 뭘 어쩌란 말이냐. 하늘 위에 있는데!”

두히칸은 용감한 전사였지만 용기와 만용을 구분 못 하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지금 앞으로 나가는 건 분명히 만용이리라.

단단한 몸뚱이를 바탕으로 정면에서 싸우는 건 그 누구도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언럭키 제외), 하늘을 날아다니는 놈은 상성이 안 좋다.

“일단 와서 내 앞이라도 지키고 있어. 정신없어 죽겠다.”

“…….”

“왜 대답이 없지? 안 오겠단 뜻이냐?”

“…지금 간다.”

언럭키가 슬쩍 노려보자 찔끔 한 두히칸이 다가왔다.

정말 싫다는 표정으로 언럭키 앞에 선 그가 몸을 활짝 펼쳤다.

젠키릭스가 쏘아 보내는 칼날 바람이 두히칸을 후려쳤다.

-콰콰콰쾅!

“크흡! 큽!”

두히칸은 괴로운 신음을 내면서도 꿋꿋이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전신이 바위로 이루어진 놈의 방어력은 대단하다.

어느 정도 버티고 있는 건 무리가 없다.

덕분에 언럭키는 시간을 벌었다.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이제 어떡한다….’

하늘에 떠서 공격만 하는 젠키릭스는 반칙적이다.

그러나 월드 사가가 어디 얼마나 공평한 게임이었던가.

게임의 시작부터 불공평으로 점철된 곳.

감수하고 해결책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고민하던 언럭키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두히칸을 툭툭 건드렸다.

“야.”

“크흡. 큽. 뭐 좋은 방법이라도 생각났나?”

“어. 나 좀 들어봐.”

“뭘 할 생각인가?”

“일단 시키는 대로 해봐.”

두히칸은 의아해하면서도 한 손으로 언럭키를 들었다.

하늘을 등진 채라 등에 칼날 바람이 쉴 새 없이 꽂힌다.

두히칸이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래는 못 버틴다. 뭘 하려는지는 몰라도 빨리 해야 한다.”

“됐어. 이제 날 저놈한테 던져.”

“뭐?”

“빨리!”

“제길…!”

두히칸은 인상을 쓰더니 몸을 휙 돌렸다.

한 팔을 뒤로 쭉 당겼는데, 그의 손 위에 언럭키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흐압!”

두히칸이 언럭키를 힘껏 집어던졌다.

힘 하나는 알아주는 두히칸이다.

투포환이 날아가듯 언럭키가 공중으로 쏘아진다.

당연히 그걸 두고 볼 젠키릭스가 아니다. 놈이 날갯짓하자 바람 칼날들이 정확히 언럭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순간 언럭키의 검이 뽑혀 나왔다.

염화 오러가 줄기줄기 흘러나오더니,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졌다.

-서걱! 서걱!

바람의 칼날들을 전부 베어내며 언럭키가 하늘 위로 계속해서 솟구쳤다.

깜짝 놀란 젠키릭스가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놓칠 언럭키가 아니다.

이런 기습적인 일격이 성공할 기회는 한 번뿐.

“흡!”

기합을 넣으며 오러를 뻗어냈다.

검신 위로 흐르던 오러가 쭉 길어지더니, 젠키릭스의 날갯죽지를 찢어놓았다.

-쫘악!

-화르르륵!

베어진 날개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운 좋게 화염 추가피해까지 발동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날 수 없다.

젠키릭스가 버둥거리다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마찬가지로 땅에 떨어진 언럭키가 히죽 웃었다.

“두히칸!”

소리쳤지만 두히칸은 이미 달려가고 있었다.

놈 역시 일방적으로 얻어만 맞고 있었던 터라 머리끝까지 분노했다.

“이놈! 죽어라! 죽어!”

두히칸은 원한을 풀겠다는 듯 쉴 새 없이 주먹을 날렸다.

블랙 와이번의 비늘은 단단했지만 두히칸의 주먹은 더 단단했다.

퍽퍽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동체가 흔들린다.

언럭키도 훌쩍 뛰어 놈에게 접근했다.

이글거리는 염화 오러가 쉴 새 없이 휘둘러진다.

-훙! 훙!

-서거걱!

젠키릭스 정도 되면 근접 전투력도 상당하다.

커다란 덩치와 날카로운 발톱 등, 날개만 찢어놓는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그러나 언럭키는 느릿하게 보이는 놈의 공격을 절묘하게 회피하며 칼날을 꽂아 넣었다.

검왕이란 직업에 오러까지 곁들어졌다.

근접 전투 특화 보스몹이라면 모를까, 와이번쯤이야 상황이 이렇게 되면 한 끼 밥일 뿐이다.

‘이번 단계는 처음에 걱정했던 거랑 다르게 꽤 수월하게 끝나겠어.’

속으로 웃으며 언럭키가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허…. 이걸 이렇게 해결해?>

<두히칸이 집어 던질 때만 해도 미친 거 아닌가 싶었는데…와….>

<저런 공략법을 상상한 것도 대단한데 직접 실천하는 배짱이 대박이다.>

<주의. 따라하지 마시오. 보통 사람은 던져지는 순간 갈려 죽을 거임.>

<ㅋㅋㅋㅋㅋ보통은 그 전에 그냥 피하다가 갈려 죽을 듯.>

* * *

검신의 전당 29단계까지 스트레이트로 가는 것.

방송 컨셉이 정해진 순간부터, 시청자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시청자 중 한 명이 월벤에 얘기하고 왔기 때문이다.

[속보! 언럭키 검신의 전당 29단계까지 도전중]

-지금 22단계 뚫고 23단계 하는 중임.

익명의 커뮤니티는 특징이 하나 있다.

일단 상대를 까내리고 보는 것이다.

-23단계 하고 있다고? 그거 뭐 어렵나?

-당연히 어렵지. 븅신인가.

-아니. 걔 준랭커로 분류된다며. 그 수준이면 누구나 다 그 단계까지는 가잖아. 그런 사람이 한 둘도 아니고. 최소 수만 명은 될 텐데.

얼핏 듣기에는 맞는 말이다.

보통 레벨 200이 넘어가는 1티어 길드 소속원들을 랭커로 분류한다.

10억이 넘는 인구이지만, 랭커의 숫자는 몇만 명도 훌쩍 넘어간다.

랭커에 근접한 준랭커는 그보다 더하다. 족히 10만도 넘어갈 것이다.

일반인 입장에서 랭커나 준랭커 하면 저 하늘의 별 같겠지만, 프로게이머로서 월드 사가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 먼 단어가 아니다.

[속보2. 22단계까지 하면서 한 번도 죽거나 중도 포기한 적 없음. 회복이나 물자 보급하러 전당 밖으로 나간 적도 없음. 켠 김에 왕까지를 실시간을 찍는중.]

그러나 처음 글을 썼던 사람이 새롭게 게시글을 올리자 언럭키를 무시하던 여론은 완전히 묻혔다.

-?? 지금 23단계인데 1단계부터 거기까지 한 번도 안 쉬고 간 거라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랭커들이 20단계 넘어가는 것도 반복 도전해서 성공한 경우가 많았는데….

처음에는 언럭키의 구독자들만으로 시작됐던 방송이었는데, 소문이 나면서 추가로 유입이 들어왔다.

고통받고 집중하는 언럭키의 모습은 그런 사람들을 확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와 뭐냐. 언럭키 이름은 몇 번 들어봤는데, 진짜 잘하네.>

<나도 미션금 건다. 29단계 가보즈아ㅏㅏㅏ>

미션금까지 추가된 건 덤이었다.

또한, 이 열기는 단순히 커뮤니티에서만 존재하지도 않았다.

“길드장님. 레이드 준비 완료됐습니다. 바로 출발 가능합니다.”

“잠깐. 잠깐만. 30분 정도만 뒤로 늦춰봐.”

“네? 무슨 큰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큰일은 아니고. 지금 좀 집중해서 봐야 할 게 있어서.”

자본력 하나는 최고 중 하나라고 손꼽히는 대형 길드. ‘애블솔루’ 길드에서는 레이드가 예정되어 있었다.

부족한 실력을 공격적인 자본금으로 메꿔 도전하게 된 레이드였다.

그런데 그 직전, 길드장이 갑자기 제동을 건 것이다.

“허 참. 진짜 잘하네.”

허공 어딘가를 보고 있던 길드장이 중얼거렸다.

언럭키의 라이브를 보고 있는 것이다.

23단계에서 젠키릭스를 완전히 끝장낸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동시에 욕심이 들었다.

‘이런 유망주가 우리 길드에 들어와야 하는데!’

심지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길드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길드장급이 직접 관심을 갖고 볼 정도로, 어느덧 언럭키의 체급이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