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검은 만병지왕이라 불린다.
어떤 상황에서건 중간은 하는 무기. 그게 바로 검이다.
그러나 다른 말로 하면 어정쩡한 무기라고 불릴 수도 있다.
거리가 벌어지면 창에 안되고, 가까워지면 단검이나 무투가 나을 때도 있다.
더 먼 거리에서는 활이 훨씬 낫다.
그럼에도 검사의 숫자가 많은 이유는 간단했다.
숙련되면,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
그리고 마스터하면, 언제나 전장을 지배한다.
소드 마스터.
-슈각!
-화르르륵!
언럭키의 모습은 소드 마스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붉은 오러를 줄기줄기 내뿜는 그의 검은, 가로막는 몬스터가 어떤 놈이건 전부 두 동강을 냈다.
<간지 작살 ㄷㄷㄷㄷㄷ.>
<오러 스킬 언제 산 거임? 저거 매물 구하기 어려울 텐데.>
<심지어 그냥 오러도 아니고 색깔 입힌 특수 오러임. 몇 억은 그냥 넘어갈 텐데.>
‘눈썰미 좋네요. 4억이랍니다.’
채팅창을 힐끗 본 언럭키가 속으로 씁쓸한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자신이 4억짜리 스킬북을 살 줄이야.
그러나 그만큼 만족감은 있었다.
원래도 ’검왕’ 직업 덕에 검으로 하는 모든 행동에 보정이 붙었다.
노멀 검을 들고 있어도 어지간한 놈들은 손쉽게 처리한 것이다.
물론 보스몹 같은 놈들은 그게 안 되어서 열심히 드잡이질해야 했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서걱!
언럭키의 검이 커다란 거미의 다리를 베고 지나갔다.
초록색 피가 튀자 뒤로 훌쩍 물러나 피했다.
“키에에엑!”
자이언트 타란튤라가 고통을 못 참고 발광했다.
주변으로 끈적거리는 초록색 핏물이 튄다.
인상을 찡그린 언럭키가 옆에 있는 두히칸을 툭툭 쳤다.
“가서 마무리해.”
“…? 왜 내가 해야 하는가?”
두히칸의 의문은 타당했다.
“보아하니 네 오러에서는 염화의 기운이 느껴지던데. 그거라면 나보다 손쉽게 놈을 처리할 수 있다.”
“이거 무조건 발동하는 거 아니야. 피 튀면 옷 더러워지잖아.”
“나도 더러워지는데?”
“어쭈. 반항하는 거냐 지금?”
“…….”
언럭키가 검을 까딱였다.
여전히 솟아있는 오러가 광선검처럼 잔상을 남겼다.
두히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기까지 오면서 저 괴물 같은 오러의 위력이 어떤지는 체험했다.
11단계에서 소환되었을 때, 바로 항복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하겠다.”
“그래. 넌 옷도 없으니까 그냥 몸만 닦으면 되는 거 아니야.”
피부가 바위로 이루어진 두히칸은 대충 물만 끼얹어도 녹색 피쯤은 다 닦아질 터.
“…저게 내 피부에 닿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차라리
“헛소리하지 말고 갔다와.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알았다.”
두히칸이 침울한 기색으로 나아갔다.
곧 그 감정은 분노로 바뀌었다.
“죽어라!”
강철도 부수는 두히칸의 주먹이 뻗어졌다.
8개의 다리 중 4개가 이미 잘린 자이언트 타란튤라는 반항다운 반항도 못 했다.
-퍽! 퍽! 뻐억!
사방으로 튀는 녹색 피를 보며 언럭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두히칸한테 마무리를 시키길 잘했군.’
-띠링!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잠시 후 자이언트 타란튤라가 빛무리로 변하며 경험치가 들어왔다.
이곳 검신의 전당에서는 두히칸이 사냥해도 경험치가 온전히 자신에게로 왔다.
두히칸이 소환수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그러면 무조건 뽕 뽑아야지.’
만약 경험치를 나눠 갖는 거였다면 더러움을 감수하고 자신이 마무리 지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엌ㅋㅋㅋㅋㅋ. 두히칸 취급 왜 이렇게 불쌍해.>
<쟤도 한 때는 보스몹이었는데ㅋㅋㅋㅋㅋ. 무슨 고생이냐 저게.>
<옷 더러워진다고 부하 보내는 거 실화? 언럭키 인성 ㄷㄷㄷ.>
채팅창은 재밌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이러나저러나 두히칸 덕에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스피드런이 재밌어졌다.
물론 언럭키는 착각하지 않았다.
“캬아아아악!”
또다른 자이언트 타란튤라가 등장하자 언럭키가 앞으로 나섰다.
어느새 그의 검에서는 붉은 오러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시청자들은 두히칸이 아니라 그의 활약을 보고 싶어 한다.
그걸 배신할 생각은 없었다.
조금 전에는 실수로 다리를 잘라서 피가 비산했기에 빠졌지만, 이제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서걱!
한 방에 머리를 베어냈다.
피가 튀긴 했으나 그것까지 감안해 거리를 계산했다.
귀신같은 치고 빠지기.
언럭키가 지나간 자리로 죽은 놈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하….’
그걸 보며 두히칸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반항 안 하고 말 듣기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 * *
염화 오러와 두히칸의 조합.
그 덕에 언럭키는 파죽지세로 검신의 전당을 돌파해나갔다.
원래도 오버 스펙이었던 언럭키였다.
그런 그가 유니크 검에 염화 오러까지 얻은 순간, 일정 단계 이하에서는 더 이상 위기감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완벽한 전투였습니다.]
[검신의 전당 20단계를 완벽한 성적으로 통과하셨습니다.]
그 결과, 채 하루도 안 되어 20단계를 클리어해냈다.
“후우.”
언럭키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카메라를 보며 그가 히죽 웃었다.
“하핫. 미션 성공했습니다. 한 번도 안 나가고 스트레이트로 20단계까지 성공. 다들 보셨죠?”
<…하. 이걸 성공하네.>
<아 미친. 나 10만 원이나 미션금에 걸었는데 이걸;;>
<준랭커로 분류되서 20단계까지 올 줄 알긴 알았는데…무슨 괴물이길래 이걸 스트레이트로 와버림?>
시청자들은 분명 다 지켜봤는데도 믿기 힘들어했다.
검신의 전당 10단계는 실력 좀 된다는 유저면 올라갈 수 있다.
20단계는 준랭커로 분류되는 자들이 도달한다.
2티어 이상의 길드에 들어간 자들. 조금만 더 레벨을 높이고 실력을 끌어올리면 랭커가 될만한 자들이다.
언럭키는 레벨 때문에 분류는 준 랭커였지만, 이제 하위권 랭커들 보다 강하다는 평을 종종 듣는다.
그렇기에 당연히 20단계를 갈 거라 생각했지만, 설마 정비 시간조차 하나도 안 가질 줄이야.
“자자. 미션금 수령하겠습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언럭키가 수령 버튼을 눌렀다.
큰 손 건물주입니다를 포함하여 수백 명의 시청자들이 십시일반 모았다.
그 금액은 약 4,800만 원가량.
“이건 잘 쓰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언럭키가 싱글벙글 웃었다.
허나 그 이면엔 약간의 그림자가 있었다.
‘이만한 미션으로도 5천만 원 정도…. 4억을 언제 갚냐.’
염화 오러는 너무나 만족스러운 스킬이긴 했지만, 또다시 빚쟁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을 짓눌렀다.
그때였다.
[건물주입니다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미션 한 번 더 받나요?
“미션이라면 어떤 거요?”
<지금 20단계이신데, 여기서 그만두실 건 아니시죠?>
“당연하죠.”
<그러면 1단계 올라갈 때마다 1,500만 원씩 미션금 걸겠음. 당연히 이전처럼 밖으로 나가서 정비하는 것 없이 스트레이트로 간다는 전제 하에.>
“!”
건물주입니다의 제안에 언럭키는 진심으로 놀랐다.
‘단계당 1,500만 원? 미친 거 아냐?’
만약 29단계까지 간다고 하면 총 9번.
1억 3,500만 원이다.
방송 한 번에 개인이 이만한 금액을 태운다고?
믿기지 않았지만 건물주입니다는 더 이상 채팅만 하지 않았다.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건물주입니다 님이 미션을 생성했습니다.]
[21단계 클리어 시 1500만원 수령.]
[건물주입니다 님이 미션을 생성했습니다.]
[22단계 클리어 시 1500만원 수령.]
…
무려 9개나 되는 미션들.
언럭키가 표정을 굳혔다.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 건물주 형님!”
지금까지는 이렇게 깍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 다르다.
돈 많으면 형이고 어른인 법!
시청자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미션금 클라스 지렸다.>
<돈이 얼마나 썩어 넘쳐야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임?>
<우리도 형님으로 모실게요. 큰 손 형님!>
돈 많은 큰 손 한 명의 존재로 방송의 분위기가 바뀐다.
이런 큰 미션이 걸리면 스트리머는 목숨 걸고 수행할 거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도 더 재밌어지기 마련이다.
<나도 참을 수 없지. 비록 만원이지만 미션금 추가로 넣는다.>
<ㅋㅋㅋ이번에야말로 안전자산이다. 29단계에 50만 원 걸었다.>
<아 그건 심하네. 줄 생각 없는 듯.>
시청자들도 재밌다며 지갑을 열었다.
건물주입니다만큼은 아니지만, 꽤 큰 금액들이 미션금에 추가된다.
압권은 29단계였다.
29단계 클리어 금액은 벌써 3천만 원을 돌파했다.
아무래도 가장 어려운 단계인지 보니 못할 거로 생각하며 미션금을 쉽게 걸 수 있었다.
‘이 정도면 29단계 클리어로만 했을 때 5천만 원도 금방 넘겠는걸.’
언럭키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죽어도 깬다. 29단계.’
* * *
검신의 전당은 29단계까지 존재한다.
그중 꼭대기라고 할 수 있는 29단계까지 클리어 한 사람은 지금껏 극소수만 존재했다.
하나같이 이름을 들어본 검사 클래스의 랭커들.
그것도 그냥 랭커가 아니라 최소 상위권. 혹은 1,000위 안쪽의 하이 랭커들이었다.
그런 그들조차 29단계를 클리어할 때는 몇 번이고 실패와 재도전을 반복했다.
언럭키에게 재도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드시 첫 트라이로 클리어해야만 단계당 수천만 원의 미션금을 수령할 수 있다.
랭커들도 힘들어할 만한 난이도였지만, 두히칸의 도움과 염화 오러의 능력으로 언럭키는 차근차근 단계를 올라나갔다.
<또, 또 첫트에 성공했어??>
<와…. 말이 안 나온다 진짜.>
21단계에 이어 22단계까지 통과하자 채팅창엔 경악의 반응들이 이어졌다.
입이 떡 벌어지는 전투를 계속 펼쳐가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거 나중에 하이라트만 편집해서 뽑아다가 올려도 미튜브 대박 나겠는데?>
<이미 대박임. 지금 29단계까지 달리는 거 월벤에 소문남.>
<아. 어쩐지 시청자 숫자가 계속 늘어나더라니.>
누가 알렸는지는 몰라도, 언럭키의 라이브 방송은 실시간 시청자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났다.
처음엔 웬 미친놈이가 해서 왔다가 경악과 감탄이 이어지는데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게는 로버트, 정신찬도 있었다.
빅드래곤 길드의 업무를 잠시 미뤄두고 라이브를 챙겨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호의로 판매한 염화 오러를 얼마나 잘 쓰는가 확인하고 싶어서였는데…
“완전히 미쳤군.”
정신찬이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어 넘겼다.
“아무리 레전더리 스킬이라고 해도… 활용도가 너무할 정도네. 이걸 이렇게까지 써먹다니.”
원래도 검왕 언럭키의 전투 능력은 대단했는데, 염화 오러는 거기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호의로 판매한 것이지만 로버트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럭키님을 너무 얕본 모양이야.’
준랭커, 한창 성장하는 신예. 그렇게 판단했지만 않았다.
그는 지금 당장 2티어로 분류되는 자신의 길드에 와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킬북을 판매하면서 그에게 빚을 달아두었는데, 로버트는 그걸 쓸 날이 금방 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검신의 전당을 지나면…우리 쪽 임시 길드원으로 분쟁 같은데에 끼워 넣어도 되겠고…아니면 미공략된 던전을 도와달라고 해도 되겠고….’
써먹을 곳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정신찬은 어떻게 써야 언럭키를 잘 썼다는 말을 들을지 열심히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