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백현은 오랜만에 월드 사가 거래 사이트에 들어왔다.
‘오러’ 스킬을 사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요즘 버는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거래소를 둘러보곤 기겁했다.
“아니 시세가 왜 이래?”
기본 오러 스킬북은 유니크 등급이다.
레벨 제한 150 이상.
그러나 검사 직업군의 유저라면 누구나 다 찾기 때문에 등급 대비 시세가 엄청나게 높았다.
1.5~2억 사이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마저도 매물 자체가 없네.”
매물이 없었다.
거래 로그를 보면 마지막 거래일이 무려 45일 전이라고 나왔다.
이유는 얼추 짐작이 갔다.
‘검기 스킬이라면 일반 유저 뿐만 아니고 돈 있는 부자나 길드에서도 원하니까. 이런 거래소에 나오기 전에 아예 물량을 쓸어가는 거야.’
백현 같은 일반 소비자가 구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울 터.
구매 요청 게시판에 들어가니 가관이었다.
[오러 스킬 구매합니다. 최대 시세로 매입합니다.]
[기본 오러 아니고 유니크 등급 이상으로 옵션 들어간 것도 구매합니다. 레전더리도 환영 ^^]
[2억에 오러 스킬 2개 급구…]
.
.
오러 스킬을 구매하겠다는 요청 글이 수백 개가 넘는다.
구매 완료가 떠 있지 않은걸. 보면 이들은 아직도 구매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간신히 매물 한두 개 올라온다고 해도 그가 구하기는 힘들다.
하루 종일 월드 사가에 접속해있다가 짬 내서 잠깐 거래소를 확인하는 그에게, 타이밍 맞춰 판매 글이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쓰읍. 곤란한데….”
그때였다.
-띠링!
[대룡 미디어에서 정산 메일이 도착하였습니다.]
메일함에서 알림이 왔다.
매월 주기적으로 오는 광고 정산 메일이었다.
영상 조회수에 따라 광고 금액이 조금씩 달랐는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대룡 미디어….’
평소에는 그냥 넘겼을 그 이름에 꽂혔다.
대룡 미디어.
빅드래곤 길드.
회장 손자이자 길드장. 로버트…
‘…연락이나 한 번 해볼까.’
조금 염치없긴 하지만, 이 상황에서 도움을 구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 * *
빅드래곤 길드는 매일 같이 정신없이 바빴다.
길드장 로버트. 현실의 정신찬은 수완이 있는 사람이었다.
현실에서는 대룡 그룹 회장의 막냇손자이면서, 대룡 미디어의 한 축을 담당했다.
대룡 미디어 팀장이라는 직함으로 잘 나가는 미튜버나 유명 랭커들에게 접촉하기 쉬웠는데, 그렇게 영업해 데리고 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회장 손자라서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서 그런 건지, 본인 자체가 뛰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남들을 이끌고 나가는 리더 역할에 딱이었다.
그런 그에게 감화되어 길드에 들어온 자도 많았고, 어느새 2티어라고 분류되기까지 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규 길드가 이렇게까지 성장한 건 쉽게 보기 힘든 일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룹 차원에서도 그를 전력으로 밀어주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차세대 먹거리는 월드 사가라는 걸 누구나 알았다.
거기서 자리를 잡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판인데, 로버트라는 선장이 훌륭했으니 온 힘을 다했다.
본인의 능력과 기업의 지원이 더해지자, 빅드래곤 길드는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연신 상한가를 치며 성장해나갔다.
“언럭키한테서 이런 식으로 뭘 먼저 요청받는 건 처음 있는 일인데….”
바쁜 시간 속에서도 정신찬은 잠시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어지간한 업무 서류는 10초도 안 되어 검토 완료하고 사인하는 그였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언럭키.
루키 시절부터 그가 봐왔던 유저이자, 언젠가 거목이 될 거라고 예상했던 남자.
하나 틀린 점이 있긴 했다.
“그냥 거목이 아니라, 나무로 따지면 세계수가 될만한 남자이지.”
원래는 대장장이 벨라를 영입하려고 힘쓰다가 우연찮게 만났던 사내였다.
그때도 재능을 알아보고 이런저런 편의를 봐줬었다.
대룡 미디어를 통해 광고 계약을 넣은 것도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요즘, 그 생각이 좀 달라졌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우리 대룡 미디어가 역으로 언럭키의 덕을 보게 될 거야.’
지금도 무시무시한 기세로 성장하는 언럭키였는데 나중이 되면 어떻게 될까.
그의 라이브 영상은 바쁜 틈에도 짬 내서 간간이 본다.
매번 성장세가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조만간 랭커가 되는 것은 확실시되고.
‘하이 랭커도 꿈이 아니다.’
순위 1000위 안쪽.
10억이 넘어가는 플레이어 중에서 상위 0.0001%안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위가 될지도.
그렇기에, 언럭키에게서 온 메일은 중요했다.
[오러 계열의 스킬을 갖고 계신다면 구매하고 싶습니다. 거래소에는 매물 자체가 보기 힘들더군요. 당연히 시세보다 더 쳐 드리겠습니다.]
여러 인사말과 미사여구로 꾸며진 문장들을 간단하게 바꿔보면 이 뜻이었다.
-톡톡.
정신찬이 책상을 두들겼다.
오러 스킬.
왜 자신에게 얘기를 꺼냈는지 알만 하다.
쉽게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니까.
모든 검사 유저들이 필수적으로 갖고 싶어 하는 건데, 물량은 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우리 길드에는 갖고 있는게 좀 있을 테지만….’
정신찬은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다짜고짜 스킬북을 대가로 길드에 들어와 달라는 건 안 된다.
그랬다가는 지금과 같은 관계도 유지할 수 없다.
고민하던 정신찬은 답장을 보냈다.
* * *
“오. 왔다.”
답신 메일이 오자 백현은 기다렸다는 듯 확인했다.
“하루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금방 왔네.”
빅드래곤 길드가 최근 잘 나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당연히 길드장인 로버트는 바쁠 것이기에 메일 확인도 느리겠지.
최소 하루. 어쩌면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답장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운이 좋군.”
시청자들과의 라이브 미션이 걸려있는 지금, 스펙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운 좋게 정신찬이 쉬고 있었던 모양이다.
빙긋 웃은 백현은 메일을 꼼꼼하게 읽었다.
답장은 꽤 길었다.
한참을 보던 그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고시원의 우중충한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매물은 있고. 팔 생각도 있다….”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가격은 시세대로 쳐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다만.
[오러 스킬은 매물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정도로 극도로 희귀하죠. 이건 빚으로 달아두겠습니다. 나중에 빅드래곤 길드에서 의뢰 하나 부탁드리면 해결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미래를 기약하는 빚을 쌓았다.
고민했지만 이 정도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혹시나 길드에 들어와 달라는 얘기가 있었으면 바로 거절했겠지만, 이건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이어진 말이 혹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일반 오러 스킬이 아니고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레전더리 등급의 오러 스킬을 판매하겠습니다. 쉽게 구하기 어려운 물건인지라 언럭키님도 만족하실겁니다.]
‘레전더리 등급의 오러라니.’
일반 오러로도 만족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건 못 참지.’
* * *
[완벽한 전투였습니다.]
[검신의 전당 13단계를 완벽한 성적으로 통과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
언럭키가 검을 수납했다.
몸에서 빛이 한 차례 뿜어졌다.
방금 전의 전투는 굉장히 힘들었다.
12단계부터는 보스라고 불릴만한 몬스터들이 부하몹들과 함께 등장했다.
솔직히 말하면 엄청나게 어렵지는 않다.
혼자도 아니고, 두히칸과 함께면 승리는 100% 확신한다.
‘문제는 상처 하나 없이 이겨야 한다는 거지.’
20단계까지 전당 밖으로 나가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성공하면 수천만 원의 미션금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해볼 만한 적을 상대할 때도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약간의 상처는 포션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중상을 입는다면 사제가 없기에 곤란하다.
게다가 언럭키는 원래부터 포션 종류를 많이 들고 다니는 타입이 아니었다.
경매장에서 구매해 우편으로 받는다고 해도,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우편 횟수에는 제한이 있다.
막 쓰다간 진짜 어려운 20단계 근처쯤에서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절대 안 되지. 가뜩이나 이번에 지출이 어마무시한데.’
빅드래곤 길드를 통해 오러 스킬을 구매했다.
우편으로 받았는데, 가격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솔직히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거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
“…침착하자. 이게 다 투자고 스펙업이야. 침착…침착….”
언럭키가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스킬북 : 염화 오러]
-스킬 등급 : 레전더리.
-염화(炎火) 속성을 띈 오러를 생성한다. 일반 오러보다 위력이 10% 더 강하며, 피격당한 적은 일정 확률로 화염 피해를 입는다.
염화 오러.
설명은 짧았지만, 짧고 굵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일반 오러만 해도 공격력과 절삭력, 치명타 위력을 엄청나게 높여준다.
기사 NPC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는 이유였다.
염화 오러는 그렇게 사용하는 일반 오러보다 10%나 더 강한 위력이었다.
스킬북을 사용하자 빛이 되어 사라졌다.
언럭키는 붉어지는 눈시울을 애써 진정시켰다.
“내… 4억….”
4억.
그가 이 스킬북 하나에 태운 돈이었다.
심지어 과거 극소수로 매물이 나왔을 때의 시세대로 빅드래곤 길드에서 팔아줘서 다행이지, 진짜로 거래소에 올라왔으면 아마 경매를 통해 10억까지 올라갔을 수도 있다.
“간신히 빚 다 갚았는데 다시 빚쟁이 신세네….”
현금 4억이 지금 언럭키의 수중에 있을 리가 없다.
다행히 빅드래곤 길드에서는 천천히 갚으라며 느긋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런 게 대기업의 여유인가 싶었다.
(주)머니앤캐시와 다르게 이자 같은 것도 없었고, 천천히 원금만 갚아주란다.
어쨌거나, 그렇게 큰 지출로 얻은 스킬이었다.
“이 검이랑 궁합이 좋겠어.”
그가 전쟁 영웅의 글라디우스를 슬슬 쓰다듬었다.
13단계를 별 상처 없이 클리어할 수 있었던 건, 두히칸 외에 이 검 덕분이기도 했다.
첫 진입 할 때 제공받았던 노멀 검에서 유니크 등급의 검으로 변하니 살 것 같았다.
거기에 오러까지 생겼으니, 어서 빨리 휘둘러보고 싶었다.
그렇게 언럭키는 14단계에 진입했다.
[14단계 : 보스 사냥의 단계2]
[검사는 강력한 개체 앞에서도 용기가 있게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강력한 적이 랜덤으로 소환됩니다.]
메시지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커다란 실루엣이 보였다.
-쿵! 쿵! 쿵!
거대한 발걸음을 구르며 다가오는 건 아이언 골렘이었다.
강철에 준할 정도로 몸이 단단한 몬스터.
심지어 보스 몬스터이니 그 방어력과 체력은 일반 몹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아무리 다운그레이드된 열화판이라고 해도, 이전이었으면 꽤나 오래 전투를 지속했어야 할 터.
“내가 먼저 시선을 끌겠다.”
두히칸이 한 걸음 나서려고 했지만 언럭키가 그를 붙잡았다.
“아니. 이번에는 내가 할게.”
“?”
탱커에 가까운 두히칸이 먼저 어그로를 끄는 건 상식이다.
먼저 나서겠다는 언럭키의 말에 의문이 들었지만 두히칸은 순순히 물러났다.
다가오는 아이언골렘을 보며 언럭키가 검을 뽑았다.
이글거리는 붉은 오러가 쭉 솟아오른다.
아이언골렘이 커다란 주먹을 뻗어올 때, 언럭키 역시 검을 마주 휘둘렀다.
-서걱!
아이언골렘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매끄럽게 잘린 단면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