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흠. 어디로 가볼까요.”
언럭키가 괜스레 앞을 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어떤 길을 갔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올지 보여지고 있었다.
당연히 바보가 아니라면 보라색을 선택해야지.
“첫 길은 여기로 가겠습니다.”
한쪽 미로로 언럭키가 발걸음을 떼었다.
-저벅 저벅.
한동안 걷는 소리만 났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훌륭한 직감입니다. 좋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오 시작이 좋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말도 있잖아. 지금만 운이 좋았던 거임.>
<ㅇㅇ. 이제 앞으로 개고생할 거임.>
채팅창은 언럭키를 비웃는 말들이 많았다.
당연했다.
앞으로 미로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언젠가는 이 좋은 운빨이 끝나는 시점도 찾아올 것이다.
<아 빨리 그때 가서 미션 금액 보고 애원하는 언럭키 보고 싶네ㅋㅋㅋㅋㅋㅋ.>
<상상만 했는데 벌써 침 고임ㅋㅋㅋㅋ.>
스트리머가 잘 해쳐나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라이브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이 고통받는다면 행복을 느끼는 게 시청자들이다.
특히나 언럭키는 지금껏 너무 승승장구를 쉽게 해왔다.
한 번쯤은 고생하는 모습을 봐도 재밌지 않을까?
그런 의견들이 꽤 많았다.
-저벅 저벅.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첫 번째 갈림길, 두 번째 갈림길, 세 번째 갈림길…
<????>
<뭐야.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
<전당이 고장났나?>
몇 개나 되는 갈림길을 돌파했는데, 언럭키가 한 건 그저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시청자들이 황당해했다.
월드 사가의 직업군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검사가 점유율이 가장 많은 편이었다.
가장 무난하면서 종류도 많기에 직업 뽑기에서 제일 많이 걸린다.
그렇기에 검신의 전당은 굉장히 유명한 도시였고, 이곳의 단계들이 어떤 어려움을 가졌는지 잘 알려져 있었다.
<뭐지? 뭐지?? 내가 아는 검신의 전당 2단계는 극한의 빡침이 올라와야 하는 곳인데?>
<저렇게 평화로운 얼굴로 갈만한 곳 절대 아님….>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뭐야?>
언럭키도 채팅창의 분위기를 읽었다.
‘슬슬 함정 하나쯤 걸려줄까.’
편하게 가건 힘들게 가건 미션 달성하고 미션금을 수령하는 건 똑같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시청자들이 얼마나 재미없어하겠는가.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다.
목적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오직 시청자들의 재미.
그들이 또 다음 라이브 때 찾아오고,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영상을 제작할 것.
그렇게 한다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 언럭키는 또다시 나타난 갈림길에서, 일부러 함정이 있는 길로 들어갔다.
물론 딱 봐도 불길하게 생긴 붉은빛이 휘날리는 곳으로는 가지 않았다.
빨주노초파남보. 보라색 빛이 나오는 길은 아주 안전했고, 빨간색은 아마 어려운 함정들로 도배가 되어 있을 터.
‘20층까지 스트레이트로 가야 하는데. 나도 몸 좀 사려야지. 적당히…하나 줄인 남색으로 가자.’
언럭키가 이번에는 남색 빛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갔다.
이전과 비슷하게 아무것도 없는 통로가 이어진다.
그러다가 통로 중간에 덫 하나가 보였다.
위장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걸리지 않을만한 덫이었다.
“어이쿠. 위험해라. 이런 곳에 덫이 있네.”
언럭키가 폴짝 뛰어 덫을 뛰어넘었다.
과장되게 팔을 들어 땀을 닦았다.
“휴우. 큰일 날 뻔.”
<…….>
<…….>
<…….>
채팅창이 순간 침묵으로 물들었다.
* * *
[완벽한 직감이었습니다.]
[검신의 전당 2단계를 완벽한 성적으로 통과하셨습니다.]
언럭키는 아무런 부상 없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2단계를 통과했다.
빛이 터져 나오며 우후죽순 솟아올랐던 벽들이 사라진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
‘오.’
경험치 칸이 꽤 많이 차오르며 그대로 레벨이 하나 올랐다.
검신의 전당은 이런 식으로 단계를 돌파할 때마다 경험치를 얻는다.
다만 고작 2단계인데도 이렇게 경험치를 많이 받은 건….
‘내가 완벽한 성적으로 통과했기 때문이겠지.’
어떤 식으로 통과하냐에 따라 획득하는 경험치도 달라진다.
[도전자는 밖으로 나가 휴식과 회복을 취할 수 있습니다.]
휴식하겠냐는 메시지가 나왔지만 언럭키는 무시했다.
한 번이라도 도전으로 미루고 밖으로 나간다면 시청자들과의 미션은 실패다.
중상을 입었어도 무조건 나아가야 했다.
[검신의 전당 3단계에 도전합니다.]
[3단계 : 사냥의 단계]
[근접 검사는 전투의 달인입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사냥하십시오. 수준 이하의 전투 실력을 보인다면 해당 단계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새롭게 생성된 문을 통과해 3단계에 들어갔다.
<장난해? 혹시 히든 스탯 중에 행운이란 게 있는 건 아니지?>
<당연히 2단계를 통과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지나가는 건 선 넘었지.>
<최소한 부상 정도는 입을 줄 알았는데.>
아까부터 채팅창에 올라오는 말들은 거의 다 비슷했다.
잠깐 침묵에 빠졌던 이후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날뛰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 여기서부터는 쉬울 텐데. 2단계가 힘내줬어야 하는데….>
<사냥의 단계부터는 언럭키가 죽기 힘들지 사실상….>
사냥의 단계.
여기는 이름처럼 심플한 곳이었다.
꾸준히 생성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싸워서 이기면 그만이다.
간단하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했다.
대부분의 유저는 지금껏 파티 플레이로 월드 사가를 진행해왔지만, 여기는 혼자서 깨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든든하게 옆과 뒤를 받쳐주는 동료가 없었다.
혼자서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심적 압박감이 달랐다.
손발이 꼬이기 쉬웠다.
물론, 언럭키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다.
그는 원래부터 솔플이 익숙했다.
항상 혼자서 해결해왔고, 그건 이 순간부터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덜그럭 덜그럭.
새하얀 공간에서 나타난 건 스켈레톤들이었다.
언럭키는 픽 웃었다.
“허접하게 생겼네.”
자신이 네크로 엠페러 시절에 소환했던 검은 뼈들과 비교하면, 저놈들은 툭 치면 부서지게 생겼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숫자가 많긴 했지만, 위협적인 느낌은 하나도 안 들었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뼈로 만들어진 스켈레톤들이 다가온다.
언럭키 역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땅을 박차고 놈들에게 뛰어 들어갔다.
쾅!
콰직!
검사라고 칼만 잘 쓰는 건 아니다.
수준급의 검사는 검을 손의 연장선처럼 다루고, 당연히 제 몸인 팔과 다리는 더 잘 다룬다.
해골들 사이를 파고들어 간 언럭키가 놈들 사이를 휩쓸고 다녔다.
베고 피한 다음, 차서 거리를 벌리고 찌른다.
한 가지 동작으로 둘 이상의 이득을 보며 그 사람 다음 수를 노리는 연계 동작으로 이어졌다.
해골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뼈로 된 칼을 휘두르고, 부서지면서도 이빨로 깨물려고 노력했다.
언데드의 장점. 고통이 없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완전히 박살나기 전까지는 끈질기게 달려든다.
언럭키는 그런 놈들의 공격을 하나하나 보고 피했다.
검왕만의 특성 중 하나.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공격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인다.
그 사이로 어떤 코스를 나아가야 무사히 적들을 처치하며 나아갈 수 있는지가 보였다.
언럭키가 하는 건 보이는 그대로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한 줄기 선을 따라 움직인 그가 나아갔을 때, 해골들이 산산이 부서진 채 풀썩풀썩 쓰러졌다.
“후우.”
휘둘렀던 검을 자연스럽게 검집에 꽂았다.
피가 튀는 놈들이 아니라서 검신은 깨끗했다.
<와…예술이네.>
<검왕 시절은 쪼렙 시절 때였었지? 그때는 업로드된 영상 다시 보기로만 봤었는데, 장난 아니다.>
<어떻게 움직임이 저러냐. 멍때리고 봤다 진짜.>
아까까지만 해도 운빨이 어쩌고 하던 시청자들은 싹 사라졌다.
강력한 스킬이 아니라 눈이 호강하는 검술과 움직임.
초창기 시절 언럭키의 구독자를 빠르게 늘렸던 그 솜씨가 다시 재현되었다.
“취이익!”
“크흥!”
스켈레톤들 다음엔 푸른 피부를 지닌 ‘블루 오크’들이 나타났다.
근육질의 블루 오크 다섯 마리가 언럭키를 노려보며 각자 손에 든 도끼나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스켈레톤보다 확실히 강하다.
내구성이 떨어지는 스켈레톤과 달리, 놈들의 근육은 칼날도 막힐 정도로 단단했다.
거기에 힘과 체력 역시 비교 불가능.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위험도는 오히려 더욱 커졌다.
서걱!
번개처럼 휘둘러진 언럭키의 검이 가장 앞에 있던 블루 오크의 목을 쳤다.
데구루룰 굴러가는 목.
치명타 판정이 뜨며 HP가 단숨에 0으로 되어버렸다.
한 마리를 먼저 없앤 뒤, 언럭키가 사납게 날뛰었다.
몇 번 칼이 번쩍인다 싶더니 블루 오크들이 죽어 나자빠졌다.
<…이게 이렇게 쉽게 처치할만한 놈들인가?>
<아니…나도 여기 지나가 봤었는데 너무 다른데…?>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들.
그러나 언럭키 입장에서는 오히려 스켈레톤보다 쉬웠다.
놈들의 방어력이야 검왕의 특성으로 무시하고 한 칼에 처리할 수 있었다.
생명체이다 보니 목이나 심장을 공격하면 단칼에 죽일 수 있었으니, 끈질긴 스켈레톤보다 간단했던 것이다.
‘아니. 게네들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니까 거기서 거기인가.’
[완벽한 사냥이었습니다.]
[검신의 전당 3단계를 완벽한 성적으로 통과하셨습니다.]
블루 오크까지 처치하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놈들의 사체가 사라지면 문이 등장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문이었다.
“아직까지는 초반이라 쉽군요. 이젠 좀 어려워질 것 같긴 한데…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와. 막말 쩌네.>
<3단계가 어렵지 않은 건 맞는데, 그렇게 아무런 부상도 없이 통과할만한 곳은 절대 아님.>
<순식간에 대부분의 유저들을 겜 못하는 쓰레기로 만들어버림ㅋㅋㅋㅋㅋㅋ.>
언럭키가 문을 열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역시 검사가 제일 재밌는 것 같긴 한데.’
환상적인 움직임으로 피하고 베는 그 간단함이 검왕의 매력이었다.
사냥에 재미를 느끼며 나아간 언럭키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검신의 전당 4단계에 도전합니다.]
[4단계 : 사냥의 단계2]
[근접 검사는 전투의 달인입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사냥하십시오. 수준 이하의 전투 실력을 보인다면 해당 단계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지원군이 추가됩니다.]
사냥의 단계2.
바로 직전의 단계와 다른 점은 딱 하나였다.
“취이이익!”
도끼와 몽둥이를 치켜든 블루 오크 7마리가 언럭키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 뒤편에,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긴 10마리의 궁수 블루 오크들이 이쪽을 조준하고 있었다.
“…이거 다른 유저들도 깰 수 있나요?”
언럭키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4단계를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포위하고 있다니.
파티 플레이에 익숙한 유저에게 이 상황은 너무나 불리했다.
<보통 4단계는 한 번에 못 깸.>
<개같이 구르거나, 아예 공격 패턴 외워서 깨거나 해야 하지.>
<아니면 소모품은 많이 챙겨온 다음, 포션빨로 버티면서 깨거나.>
“흠. 그렇군요.”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신호였는지, 블루 오크 궁수들이 시위를 놓았다.
파파팍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들이 일제히 날아온다.
“…….”
언럭키의 눈이 번뜩였다.
푸른빛이 타오르는 듯하더니 성큼 걸음을 옮겼다.
화살은 그가 피할 범위까지 예상해서 날아왔지만 상관없었다.
수백 발도 아니고 고작 십여 발.
큰 동작 없이 고개를 살짝 틀고 몸을 비틀며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피해냈다.
팅!
그 와중에 옆으로 지나가는 화살 한 방에 칼날을 갖다 댔다.
튕겨 나간 화살이 도끼를 든 블루 오크의 심장에 박혔다.
푹!
“취익…!?”
블루 오크들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언럭키 역시 황당했다.
“이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