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192화 (192/218)

#192화

언럭키가 살짝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노멀 검이라니. 튜토리얼 때 이후로 처음 쓰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게 규칙이라니 어쩌겠나.

검을 받아들여 패용한 채, 언럭키가 걸음을 옮겨 전당 안으로 들어갔다.

[검신의 전당 1단계에 도전합니다.]

새하얀 기둥을 넘어서자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1단계 : 숙련도의 단계]

[베기, 찌르기. 검술의 가장 기초적인 동작을 뛰어난 숙련도로 돌파하십시오.]

[수준 이하라고 판단되면 단계는 통과되지 않습니다.]

온통 하얗고 넓은 공간에는 허수아비들이 서 있었다.

이놈들을 상대로 공격을 해서, 기준을 통과하면 합격이다.

언럭키는 걸음을 옮겼다.

손은 가볍게 허리에 찬 검손잡이에 올려두었다.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허수아비 앞에 간 다음, 검을 뽑았다.

부드러운 동작에서부터 허공에 선이 하나 생겨났다.

-서걱!

이어진 납검 역시 흠잡을 데 없었다.

잠시 후 허수아비가 툭 하고 반으로 쪼개졌다.

[완벽한 베기였습니다.]

메시지가 나타났지만 언럭키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온갖 검술 능력치 보정으로 떡칠된 직업이 검왕이다.

게다가 올마스터는 직업 특성으로 패시브 숙련도는 모든 직업이 공유한다.

궁술을 계속해서 써서 숙련도를 올렸다고 해도, 다시 검을 잡으면 그 올라간 숙련도만큼 보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활을 처음 잡았던 언럭키가 아무리 직업 보정에 무기 보정까지 받았어도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펼쳤던 건,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허수아비 앞에 선 언럭키는 이번에 가볍게 검을 들었다.

땅과 수평을 이룬 채 검이 나아간다.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아 보였지만 일점에 그대로 꽂혔다.

-퍽!

[완벽한 찌르기였습니다.]

그다음에는 허수아비 스무 개가 우후죽순 솟아올랐다.

목표로 하라는 듯 베야 할 곳이나 찔러야 할 곳이 붉게 칠해져 있었다.

언럭키의 검이 유려하게 휘둘러졌다.

베고 찌르고. 단지 그 단순한 두 가지의 동작만으로 허수아비들이 픽픽 쓰러졌다.

자연스러운 발걸음과 분위기였지만 그 주변은 폭풍과도 같았다.

눈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속도로 허수아비가 베어지거나 터져나갔다.

그렇게 스무 번의 걸음을 옮긴 언럭키가, 가볍게 납검했다.

[완벽한 연계였습니다.]

[검신의 전당 1단계를 완벽한 성적으로 통과하셨습니다.]

허수아비들이 사라졌다.

새하얀 공간의 벽 한쪽에 지나갈 수 있도록 문 하나가 생겨났다.

[도전자는 밖으로 나가 휴식과 회복을 취할 수 있습니다.]

“휴식은 무슨. 몸도 아직 제대로 안 풀렸는데. 다음!”

[검신의 전당 2단계에 도전합니다.]

언럭키가 힘차게 다음 관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아침 시간.

평소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 날이었다.

먼저 공용 주방에 와있던 박세훈과 이용승은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아 왜 이렇게 안 와.”

“진정하세요.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에요.”

박세훈은 알람을 맞춰 일어나기도 전인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5분 만에 빠르게 씻고 공용 주방으로 와서, 그때부터 백현을 기다렸다.

이용승은 그보다 더 했다.

“용승씨는 언제부터 와있던 거야?”

“전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운동하면서 밤샜어요.”

“…미쳤군.”

한두 번 본 일도 아닌지라 박세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곧,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눈을 번뜩였다.

“왔다!”

어둠에 잠긴 복도 너머에서 등장한 사람은 백현이었다.

백현이 둘을 보며 빙긋 웃었다.

“일찍 오셨네요?”

“당연하지! 백현씨는 왜 이렇게 늦었어!”

“늦다니요. 별로 늦지도 않았구만.”

그들이 모이는 시간은 대충 6시 10분~20분 사이.

오늘은 그보다 좀 일찍 온 편이었다.

박세훈도 알고 있었지만, 괜스레 좋은 소리가 안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들이 이렇게 애가 탄 이유.

백현이 주머니에서 접혀있던 종이를 꺼내 팔락였다.

“제 채무계약서 원본이에요.”

“오…!”

“지금은 한 장이지만 곧 두 장 더 얻겠죠.”

“…….”

두 장 더 얻겠다는 백현의 말은, 앞으로 박세훈과 이용승의 빚까지 다 갚아주겠다는 뜻이었다.

그 속뜻을 알아챈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정말로 그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는데….”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밑바닥에서 만난 신의야 말로 그 사람의 인성을 볼 수 있고, 진정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법이다.

박세훈과 이용승은 백현이란 자의 됨됨이가 어떤지 확실히 깨달았다.

“여기까지 저 혼자 온 것도 아니고. 두 분이 도와주셔서 같이 온 거잖아요. 의리 없이 혼자 나갈 수야 있겠습니까.”

백현이 웃었다.

몇 달 만에 5억을 털어냈다.

남은 10억도 솔직히 그리 길게 걸릴 거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요즘이 인생에서 좀 되는 시기인 것 같지 않던가.

‘어쩌면 10억도 3개월 안에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 그건 좀 어렵나.

어쨌거나, 그런 백현의 태도는 두 사람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좋아. 내가 어떻게 하며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지 머리 열심히 굴려볼게. 또 내가 할 땐 확실히 하거든.”

“저도…편집 더 열심히 할게요. 하루에 잠은 2시간 미만으로 자겠습니다.”

“아니…그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이용승의 말에 백현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많이 안 자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무리하다가 병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이런 거지 같은 곳에서는 건강을 지키는데 최우선이었다.

이용승을 막기 위한 비장의 멘트가 있었다.

“제대로 안자면 근육 안 큰다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

이용승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 * *

-띠링!

[NEW!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서 라이브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목 : 검신의 전당. 켠 김에 끝까지. 스피드런.]

언럭키가 오랜만에 라이브를 켰다.

공중 요새에서 장군 찍는 컨텐츠를 한 이후로, 투스타가 될 때까지는 라이브를 따로 켜지 않았다.

그동안엔 라이브의 중요 부분들을 편집해서 미튜브에 올렸는데, 그게 또 반응이 엄청 좋았다.

라이브 반응이 좋았던 게 월벤에서 소문이 났는데, 라이브를 못 본 사람들이 다시 보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미 봤던 사람들도 한 번 더 보기 위해 왔다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고.’

그만큼 재밌는 컨텐츠였다.

그리고 이번 컨텐츠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이번에 켠 라이브는 박세훈의 제안이었다.

-29단계까지 깨서 성검 얻을 거면, 그것도 라이브로 쓰자.

-그게 재미가 있을까요?

-재미있게 만들어야지. 스피드런이라도 하는 거 어때?

스피드런.

가능한 한 빨리 끝내기 위해 속도를 내는걸 뜻한다.

‘어차피 해야 할 29단계. 스피드런으로 하면 자극도 되고 나쁘지 않지.’

그리고 이런 건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건물주입니다 : 검신의 전당에서 스피드런 하신다고요?]

바로 이렇게.

“안녕하세요 건물주입니다님. 예, 맞습니다.”

자신의 방송에서 요즘 자주 보였던 유명한 네임드가 물어오자 언럭키는 최대한 환한(자본주의적인) 미소를 지었다.

[건물주입니다 : 검신의 전당이면 저도 얼마 전에 있었던 곳인데, 전 10단계까지밖에 못 갔거든요.]

10단계?

‘그 정도면…그냥 일반인 유저 수준이네.’

길드에서 컨택이 들어올 정도의 실력자라면 15단계를 넘어가고, 준랭커로 분류될 자들이 20단계를 넘는다.

<ㅋㅋㅋㅋㅋ 건물주 형님. 건물은 있으신데 게임 실력은 별로이시구나ㅋㅋㅋㅋㅋ.>

<나 갑자기 저 형님한테 친근감 느껴진다 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즐거워했지만 언럭키는 웃음을 꾹 참았다.

[건물주입니다 : 음. 제가 지금까지 후원금을 보통 200~500 사이로 보냈죠?]

“예 맞습니다.”

건물주입니다는 언젠가부터 라이브 방송에 꽤 자주 등장했다.

돈이 넘쳐나는지 재밌다 싶으면 500만 원도 턱턱 보내고, 그저 그렇다 느끼면 200만 원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건물주입니다 : 그러면 이번에는 0 하나 더 붙일게요. 20단계까지 한반도 중간에 안 나가고 스트레이트로 가면 2,000만 원 후원하겠습니다.]

“!”

언럭키는 입을 틀어막았다.

<크아아. 형님 클라스 지리구요~>

<아까 친근감 느껴졌다는 거 취소. 천상계에 계시는 형님이셨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건물주입니다의 후원은 미션으로 등록되었다.

게다가 그 통 큰 후원은 다른 시청자들의 반응까지 이끌어내었다.

<저도 참여함.>

<ㅋㅋㅋㅋ 솔직히 이건 건물주 형님 쪽도 승산 있는 듯? 20단계까지 깰 수야 있겠지만 한 번도 안 나가고 어케 깸ㅋㅋㅋㅋㅋ.>

<나도 통이 크게 5만 원 건다! 절대 질 수가 없어 보임ㅋㅋㅋ.>

10만 원 이하의 소액이 줄줄이 미션 금액에 따라 들어온다.

십시일반 모인 금액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데 모인 금액은 순식간에 몇백만 원을 돌파했으니.

언럭키의 눈이 불타올랐다.

“하하. 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러분들이 모아주신 후원금은 제가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꿈이 너무 크신 것 같습니다 ^^>

<아 벌써부터 나중에 미션 실패해서 울고 있는 언럭키 모습 상상되네.>

* * *

[검신의 전당 2단계에 도전합니다.]

‘이제부터 20단계까지 스트레이트로 간다.’

언럭키는 오랜만에 정신력이 한 곳으로 집중됨을 느꼈다.

지금부터 실수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고요한 분위기로 나아가던 그의 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2단계 : 직감의 단계]

[근접해서 싸우는 검사에게 직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는 바. 직감이 부족한 자는 결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직감. 혹은 육감이라고 불리는 감각을 시험하는 단계였다.

새하얗고 텅 비어있던 공간이 크게 흔들렸다.

바닥에서 수많은 벽이 솟구쳐 천장까지 이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앞에는 미로가 형성되었다.

[오직 직감만으로 미로를 통과하십시오.]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함정 혹은 몬스터를 만날 것입니다.]

<솔직히 직감 시험이 젤 빡치는 구간인데. 수고하셈.>

<ㅋㅋㅋㅋㅋ 2단계부터 탈락 위기이고요~>

시청자들이 재밌다는 듯 채팅을 쳤다.

아무리 검술 실력이 좋아도 이런 곳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능력이었다.

단순히 단계만 보자면 그리 어렵지는 않다.

잘못된 길로 들어가 부상을 입어도, 포기하고 나갔다가 회복해서 다시 돌아와도 된다.

시험을 재시작해도 한 번 유저에게 맞춰 생성된 미로는 바뀌지 않는다.

차근차근 도전하면 누구나 다 끝까지 돌파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언럭키에게는 불가능한 말이었다.

잘못된 길로 들어가 스피드런에 실패하면, 수천만 원의 미션 금액이 그대로 날아간다.

‘그러면 속이 뒤틀리다 못해, 오늘 잠은 다 잤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언럭키는 슬쩍 웃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파앗!

그의 눈에만 보이는 무지개색의 알록달록한 빛들이, 어느 길로 갔을 때 편안하게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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