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혹시 어제 꿈자리가 좋았나?”
아침에 일어난 백현은 새로 온 메일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룡 미디어에서 온 메일이었는데, 요지는 간단했다.
“광고비를 늘려주고, 광고로 발생하는 매출 일정 비율을 떼 주는 계약서를 새로 작성하자고?”
함께 첨부된 계약서에 자세한 사항이 적혀 있었는데, 자세히 읽었음에도 이해가 안 갔다.
“이거 사기 아냐?”
그런 말이 절로 나왔다.
회사 입장에서 좋은 건 별로 없고 거의 다 자기 쪽에서만 이득인 것이다.
그러나 메일 말미에 붙어있는 말에 백현은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원하신다면 언럭키님께 빅드래곤 길드로 향하는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혹시나 저희 길드에 들어오신다면 대룡 그룹 차원에서의 강력한 지원이 있을 것이며…(중략)…또한 저희 빅드래곤 길드는 최근 계속된 성장으로 이제 2티어 길드로 취급받고 있으며…(중략)…]
구구절절하게 늘어진 말은 요약해보면 간단했다.
우리 길드 이제 신생 길드 아니다.
좋아졌으니까 들어와라. 잘해주겠다.
물론 백현은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재계약은 감사하지만 아직 어디 다른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어쨌거나 기분은 좋았다.
백현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감옥 같은 고시원의 다 낡아빠진 천장이 보인다.
어찌나 오래되고 보수도 안했는지 보드가 살짝 내려앉아 있었다.
피식 웃은 백현이 일어서서 접속기로 향했다.
‘순풍이 부네. 이 상태라면 여길 빠져나가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어.’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언럭키는 거의 하루~이틀에 임무 하나씩 클리어해 나갔다.
“들었어? 이번에 언럭키 대령님이 또 작전 성공하고 복귀하셨대.”
“뭐? 그거 어제 밤에 출발한 거 아니었나?”
“12시간도 안 걸리셨다던데?”
“미쳤군.”
특임대원들 사이에서는 합리적인 의심들이 이어졌다.
“확실해. 군 연구소에서 와이번의 인자를 끼워 넣어 만든 몬스터일거야.”
“대령님께 그게 무슨 실례되는 말이야.”
“아니, 그렇잖아. 나랑 같은 사람인데 저런 식으로 작전들을 빠르게 성공한다는 게 말이 돼?”
특임대의 이레귤러, 괴물, 몬스터, 마왕 등.
온갖 별칭이 언럭키를 따라다녔다.
정작 언럭키는 특임대원들이 자신을 뭐라 부르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신경 쓸 곳은 거기 말고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라이브 방송이 있었다.
-빠밤!
[건물주입니다님이 5,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팡파르 소리에 언럭키는 자동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오늘도 오셨습니까 건물주님! 오시자마자 500만원이나 후원해주시고…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무궁화 3개의 근엄한 대령이었지만, 거액을 후원해주는 큰 손 앞에서는 언제나 허리가 굽혀졌다.
시청자들은 그런 모습을 꽤나 재미있어했다.
<ㅋㅋㅋㅋㅋㅋ아. 대령의 인사를 받아볼 수 있다니. 나도 후원 좀 하고 싶게 만드네 씁>
<고작 몇 만원 충전할 거면 꿈 깨라. 건물주님처럼 몇백씩 팍팍 쏠 거 아니면 그냥 감사 인사로 끝일 테니까.>
“아닙니다. 제가 뭐 돈에 미친 것도 아니고. 시청자분들이 즐거워해주신다면 허리 숙여서 인사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죠.”
혹시 너무 돈만 바라는 것처럼 비춰질까 언럭키가 급하게 말했다.
당연히 돈은 좋지만 너무 돈돈거리면 이미지가 좋을 수가 없다.
은근히 바라지만 돈만 쫓지는 않는. 그런 이미지가 지금의 언럭키였다.
[건물주입니다 : 슬슬 공적 다 채운 거 아니에요?]
건물주입니다의 채팅에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적.
그건 간단하다.
“이대로 맥켈 대장에게 보고하러 가면, 장성 진급입니다.”
이등병 아니, 하사부터 시작해서 지금 이 순간까지 27일이 걸렸다.
처음 라이브 제목부터 지금까지 똑같았다.
별을 달 때까지 라이브를 할 것.
그 마지막 순간이 온 것이다.
‘이번 라이브로 얻은 게 진짜 많지. 일단 지금까지 얻은 후원금만 해도 수천 만원이 훌쩍 넘으니까.’
그중 절반 이상을 건물주입니다가 후원해주긴 했다.
실제로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저런 어마어마한 금액을 아무렇지 않게 턱턱 후원하다니.
그러나 그 이상 파고 들지는 않았다.
그는 ’스트리머 언럭키’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 찾아오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지금이 딱 좋다.
“왔군. 우리 특임대의 몬스터가.”
“…대장님도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군요.”
집무실에 들어가자 맥켈 대장이 한 말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농담을 했는데, 그만큼 지난 시간 동안 언럭키와 친해졌다는 뜻이다.
“진지하게 나도 군 연구소에 물어볼까 고민했네. 자네가 사실 비밀리에 개발한 몬스터가 아닌가 하고 말이야.”
맥켈 대장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렇게 말했다.
지난 한달 가까운 시간 동안 언럭키가 쌓아온 업적은 그만큼 괴물 같은 것이었다.
행운의 무지개 능력, 브라흐마스트라의 위력, 거기에 신궁 직업과의 시너지까지.
도시 공중 요새는 신궁 언럭키를 위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작전 보고 드리겠습니다. 더블윙 와이번 무리 처치 완료 했습니다. 당분간 그 쪽은 조용할겁니다.”
“고생했네. 자네가 다녀왔으니 일처리야 완벽했겠지.”
맥켈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서랍에서 견장 하나를 꺼냈다.
언럭키가 눈을 빛냈다.
그건 주황색으로 빛나는 번쩍이는 별 하나가 달려있는 견장이었다.
“미리 주겠네. 장성이 되면 장성용 군복도 따로 주어지니 나중에 거기에 달면 될 거야.”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자네가 한 작전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건데.”
맥켈 대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언럭키의 빠른 진급 속도로 그 역시 만만찮은 이득을 보았다.
부하의 공적은 곧, 그 부하를 데리고 있는 상급자의 공적이기도 하다.
최근 특임대는 그 어떤 타부대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
덕분에 차기 원수에 가까워진 게 맥켈 대장이었다.
“진급식은 내일일세. 늦지 말고 참여하게.”
“알겠습니다!”
* * *
다음날 진급식 때도 당연히 언럭키는 라이브 방송을 켰다.
그건 장관이었다.
NPC, 유저 할 것 없이 군 소속 수많은 병사와 간부가 모여 진급식을 장식했다.
새로운 별의 탄생은 그만큼 굉장한 일이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우리 언럭키가 별을 달다니.>
<와 제복 간지 나네. 진짜로 군 장성 된 것 같아.>
1인칭 액션캠으로 라이브 방송이 켜져 있었는데, 훤칠한 언럭키의 모습이 방송에 나갔다.
장성 전용 제복을 입었는데, 기품을 높여준다는 효과가 달려있는 레어 아이템이라 고급스러움과 멋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방어력도 0에 가까워서 간지 빼고는 쓸데없는 옷이긴 하지만….’
이럴 때 입기엔 참 좋다.
머리가 벗겨진 별 다섯 개의 ’원수’가 직접 언럭키의 계급장을 교체해주었다.
“언럭키 준장.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네! 도시를 위하 견마지로를 다 하겠습니다!”
언럭키가 각 잡고 경례했다.
<크. 드디어 그 업적 얻겠네.>
<전에 누구였지? 장군 되면서 얻는 업적 공개한 거. 옵션이 말도 안되서 한 때 원거리 유저들은 전부 다 장군 되기 도전했다가 싹 다 실패했잖아 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너무 어려움. ㅋㅋㅋㅋ. 지금 랭커들 중에서도 여기 지나쳐오면서 장군 못 단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솔직히 한 달도 안 되서 장군 됐다는 게 말도 안 되긴 해.>
<특임대가 군공을 2배로 쳐준다고 하잖아. 그 덕분도 큰 듯.>
시청자들의 채팅이 이어졌다.
도시의 장군 업적은 워낙 유명해서 이미 뭔지 알고 있었다.
극소수의 랭커들이 먼저 이 곳에서 장군을 찍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띠링!
[믿을 수 없는 성과!]
[업적이 주어집니다.]
[’도시의 장군(레전더리)’ 업적을 획득합니다.]
꽤나 오랜만에 얻는 업적 메시지.
미리 알고 있음에도 언럭키는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말도 안 되는 효과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업적 : 도시의 장군]
-업적 등급 : 레전더리.
-특별한 능력으로 군인들의 도시 ’공중 요새’에서 장성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능력과 권력 모두를 쟁취한 그대에게 특별한 능력이 깃듭니다.
-모든 능력치 +5% 상승.
-처치한 몬스터로부터 획득하는 경험치 +5% 상승.
‘모든 능력치 5% 상승에 앞으로 얻는 모든 경험치도 5% 상승…. 그야말로 유저에게 필요한 모든 옵션이 다 붙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단순히 수치 상승이 아니라 퍼센트로 올라가는 옵션이다.
앞으로 더 성장할수록 이 옵션은 더더욱 빛을 발할 터.
언럭키가 치아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었다.
* * *
진급식 이후, 언럭키는 맥켈 대장과 독대했다.
“다시 한 번 진급 축하하네. 오랜만에 장군이 새롭게 탄생해서 도시 전체적으로도 큰 흥복이야.”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대장님께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 이 사람 참, 아부는.”
그리 말하면서도 맥켈 대장은 기분 좋은지 껄껄 웃었다.
“장군이 되었지만 특임대 소속이라 임무는 비슷할 걸세. 당연히 난이도는 훨씬 어렵겠지만.”
“바라던 바입니다.”
“그래. 전에 얘기했던 대로 아직도 대인 임무보다 대물 임무를 더 선호하나?”
요인 암살이나 도시를 위한 특수 작전을 펼치는 게 대인 임무다.
그런 것도 나쁘진 않지만 사냥으로 얻는 경험치가 없다시피 해서 아쉽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어지간하면 몬스터 사냥 쪽의 작전을 내려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이제 무슨 직업을 바꾸건 간에 5% 경험치 보너스가 붙어있으니, 더더욱 대물 임무를 수행해야지.’
“예. 제 마음은 이전과 항상 그대로입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이번에 자네가 갈 곳은 서쪽일세. 서쪽의 칼날 고원에 있는 와이번 유적을 살펴주게. 가끔씩 이상한 진동이 흘러나온다는 말이 들려와서 전에 중위 한 명을 보냈었는데 실종되었어. 자네가 가서 한 번 조사해주게.”
-띠링!
[사이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사이드 퀘스트 : 도시 서쪽 칼날 고원의 와이번 유적지 정찰.]
-퀘스트 등급 : X.
-퀘스트 설명 : 폐허일게 분명한 와이번 유적지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된다는 보고가 있다. 전에 보냈던 특임대원의 실종으로 무언가 수상쩍은 일이 있다고 판단된다. 가서 상황을 확인하자.
-퀘스트 보상 : 적정량의 경험치, 특임대의 작전 수행 중 얻는 공헌도 2배.
“서쪽의 와이번 유적지.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언럭키가 곧장 움직였다.
* * *
장성도 찍었겠다, 언럭키의 목표는 이제 도시의 한계 레벨인 150을 찍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쉴 시간이 없었다. 전보다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도시를 빠져나가 서쪽의 칼날 고원으로 한참을 움직였다.
그러던 언럭키의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
“…….”
로브를 뒤집어썼는데 눈에 보일 정도로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자였다.
언럭키는 살짝 긴장했다.
저 기운이 뭔지 알고 있었다.
“리바 델 레이에서 왔나.”
악신의 기운을 풀풀 풍겨대는 놈이 찾아왔다.
‘볼튼 전 중장을 처치해서 보복하기 위해 온 건가?’
암살자일 확률이 높다.
언럭키가 손을 뒤로 뻗어 가볍게 활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