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언럭키가 붉은색 빛을 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는 (주)머니앤캐시의 돈귀신들이 집에 쳐들어온 날이었다.
친구 성재가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치기도 한 날.
그날의 하늘이 시뻘겠는데, 눈앞의 길에서는 그때와 비슷한 붉은색이 넘실거렸다.
“여기는 가면 안 되겠군.”
“하, 하지만 이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여기만 지나가면 볼튼의 은신처까지는 바로 지척입니다.”
메리 소위가 말했다.
그러나 언럭키는 단호했다.
행운의 무지개 능력을 무시해서 좋을 게 없었다.
“조금 아니, 많이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로 간다. 거긴 너무 불길해.”
“타당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감이다.”
“감….”
언럭키의 말에 메리 소위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런 거라면 믿고 따를 수밖에 없겠군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언럭키의 감이라면 일종의 신기라고 봐야했으니까 말이다.
언럭키는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래. 내가 특임대에서 이렇게 빠른 진급을 해온 것도 이 감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대위님.”
언럭키가 그렇게 얘기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메리 소위는 마음 편히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다른 길로 가면 상당히 돌아서 가게 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다. 완벽하게 임무를 성공하는 게 중요하지 빠르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둘은 붉게 빛나는 길을 피해서 움직였다.
* * *
“습격 준비는 잘 되고 있나?”
“물론입니다 중장님.”
“이 사람이. 내가 퇴역한지가 언제인데.”
볼튼 전 중장은 부하의 말에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는 자신이 중장이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부하도 그걸 알기에 일부러 그를 중장이라고 불렀다.
“얼마 안 돼서 분명 암살자들이 올 거야. 맥켈 대장 그놈이 감히 날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니까.”
볼튼은 다시 생각해도 열이 받는지 씨근덕거렸다.
맥켈 대장은 자신보다 군번이 느린 후임이었다.
현역 때는 제대로 쳐다도 보지 못하던 녀석이 그딴 명령을 내리다니.
열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반대로 좋은 기회였다.
“반드시 그 특임대 암살자 놈을 사로잡아야 돼. 그 놈을 잡으면 역으로 맥켈 대장은 몰아갈 수 있다.”
요컨대 명분 싸움이다.
특임대의 존재에 불만을 가진 고위직은 다수 있다.
이번 사건으로 맥켈 대장이 사실은 쿠데타를 노리고 있다고 몰아간 다음 군권을 비롯한 권력을 획득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중장에서 어쩔 수 없이 퇴직했던 과거는 잊고, 내가 최고 권력자가 될 수가 있다.’
별 다섯 개. 원수 자리에 오르는 것도 꿈은 아닌 것이다.
볼튼 전 중장이 부하를 계속 채근하는 것도 그만큼 이번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특임대의 스파이가 이 은신처로 향하는 지리 정보를 빼갔다고 하는데, 거기에 함정을 잔뜩 깔아놨습니다. 설사 특임 대장이 직접 온다고 하더라도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함정입니다.”
“으하핫. 그래 아주 좋군.”
볼튼은 껄껄 웃었다.
이제 사냥감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
그러나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함정이 발동되었다는 소식은 없었다.
볼튼 전 중장이 부하를 빤히 바라봤다.
“그…아직 여기까지 당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요.”
“후. 그래. 내가 너무 마음이 급했군.”
그 순간.
-핑!
화살 한 방이 날아오더니 얘기하던 볼튼의 미간을 꿰뚫었다.
“으헉!?”
부하가 기겁해서 땅에 몸을 숨겼다.
“주, 주, 중장님!!”
애타게 불러봤지만 땅에 쓰러진 볼튼 중장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 * *
언럭키와 메리 소위는 광산 내부를 빙빙 돌아 한참 늦게 볼튼의 은신처로 도착했다.
“진입할까요?”
“잠깐만.”
메리 소위의 질문에 언럭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은신처의 문 틈 사이로 아주 미세한 틈이 있었다.
화살 하나 정도는 들어갈 정도였는데, 그 각도로 누군가가 보였다.
정확한 신상 파악은 안 되고 그저 뒤통수만 보였다.
‘내가 쏜다면 먼저 한 명 잡고 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괜히 잡몹 하나 잡았다가 경각심만 주는 거 아닐까?
차라리 기습적으로 문을 박차고 들어가 싸우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이리저리 고민하던 언럭키는 결국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끼리릭
“대위님?”
“한 명 정도는 처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직후에 진입한다.”
“알겠습니다!”
메리 소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검 두 자루를 꺼내든 그녀가 문가에 다가가 섰다.
언럭키의 화살이 발사됨과 동시에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어쌔신 계열인 그녀의 목표는 일단 볼튼 전 중장을 찾아 암살하는 것.
언럭키는 그녀를 엄호해 내부에 있을 다른 놈들을 처리하는 역역할이었다.
-핑!
-쾅!
언럭키의 화살이 쏘아지고 메리 소위가 문을 박차고 진입한건 거의 동시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발견했다.
“어…?”
머리에 화살이 박힌 채 쓰러져있는 볼튼 전 중장.
그 주위에 있는 부하들이 당황한 채 허둥지둥 하는 모습이 보였다.
“뭐하나. 가만히 멍 때리고.”
“아, 죄, 죄송합니다!”
뒤늦게 따라온 언럭키의 말에 메리 소위는 일단 움직여 다른 부하들을 처리해갔다.
“항복하라! 특임대다! 너희는 우리들에게 포위되었다!”
사실은 두 명 밖에 없지만 일단 그렇게 말하고 봤다.
-피피피핑!
그 말을 하는 사이에 언럭키의 화살이 쉴 새 없이 쏘아졌다.
수장이 죽은 볼튼의 부하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빠르게 한 명씩 죽어나갔다.
“하,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무기 버리고 손 들어!”
“네, 넵!”
결국 굴비 두릅 엮듯 줄줄이 포승줄을 차는 신세가 되었다.
메리 소위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언럭키를 바라봤다.
‘소문이…훨씬 과소평가 되었어.’
위험한 작전이었건만 언럭키와 함께하니 제대로 된 전투 하나 없이 손쉽게 완수했다.
그의 눈에 언럭키는 철두철미한 완벽한 군인 그 자체였다.
언럭키는 담담한 표정으로 메리 소위가 뒷정리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위님께서는 이 모든 걸 다 예측하셨던 건가.’
굉장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설마 처음 잡은 그 놈이 볼튼 전 중장이었다니…. 운이 좋네.’
언럭키 역시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굳이 티 낼 필요는 없었기에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 후 메리 소위는 내부를 뒤졌다.
볼튼 중장의 쿠데타 모의 혐의와 함께한 주동자들의 목록.
지금까지 해먹은 비리들과 연관된 장성급들의 명단.
“대, 대위님.”
“무슨 일이지?”
“아, 악신의 표식입니다.”
당황한 메리 소위의 손에는 악신. 리바 델 레이를 상징하는 증표가 들어있었다.
거기서는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 그건 내가 회수하지. 맥켈 대장님께는 따로 보고하겠다.”
“…알겠습니다.”
* * *
언럭키와 메리 소위는 작전을 완수하고 복귀했다.
볼튼 전 중장이 죽은 순간부터 그가 이끄는 단체는 와해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찾아가고 전투를 한 것보다 항복한 놈들을 관리하고 내부 문건들을 확보하는 일이 훨씬 더 오래 걸렸다.
다행히 뒤늦게 볼튼 중장이 보낸 추가 병력이 도착해 뒤처리를 맡길 수가 있었다.
“굉장하군!”
다시 본 맥켈 대장은 경례를 받기 전부터 그리 말했다.
“충성. 대위 언럭키. 작전 완수하고 복귀했습니다.”
“그래. 미리 보고 받아서 알고 있었어. 수고했네. 솔직히 자네가 이번 작전을 이렇게 완벽하게 해낼 줄은 몰랐어.”
어느 시대나 천재라고 불리는 루키는 있는 법이다.
특히 다양한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특임대에는 그런 천재가 많았는데, 언럭키처럼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몬스터 처치뿐만 아니라 요인 암살까지도 이렇게 쉽게 해낼 줄이야.
‘최연소 장성이 탄생하겠어.’
맥켈 대장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언럭키가 자신의 밑에 부하로 있을 시절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에 볼튼 전 중장의 은신처에서 확보한 문건들입니다. 원래 이것보다 더 많고 비자금도 있는데 일단 중요한 것들만 가져왔습니다.”
“음.”
맥켈 대장은 언럭키가 준 것을 보고 침음성을 흘렸다.
위험한 내용들이 많았다. 이걸 그대로 공개했다간 도시에 지각변동이 발생할 것이다.
그만큼 귀중했다.
게다가 하나가 더 있었다.
“그 미친놈이 설마 악신의 앞잡이였을 줄이야.”
리바 델 레이는 맥켈 대장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악신을 모시는 사교.
그들의 잔인함과 위험성에 대한 정보는 도시들 사이에 은밀하게 퍼져 있었는데, 맥켈 대장 정도 되면 이름 정도는 알았다.
언럭키가 건네준 문건들을 살피는 그의 손이 살짝 떨렸다.
“쿠데타를 넘어서 도시 전체를 악신의 교단에 넘기려고 했다니….”
쿠데타는 막말로 윗대가리만 바뀌지 도시는 멀쩡히 굴러갈 것이다.
하지만 악신의 휘하에 들어가면 도시에 사는 시민들 전체가 위험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맥켈 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이 작전 성공으로 자네의 소령 진급은 확정이야.”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자네가 한 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는 건데. 일단 축하하네. 최연소 소령이면서 최단기 소령 진급 기록을 찍겠군. 그리고 이건 특진 정도로 끝날게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래. 내가 원수 각하께 말씀 드리겠네. 아마 훈장도 하나 같이 받을 수 있을 거야.”
위대한 작전을 성공시키면 받는 게 훈장이다.
훈장의 효과는 아직 알려진 게 없었지만 맥켈 대장이 저렇게 말하는걸 보면 기대해볼만 했다.
“진급식과 훈장 수여식은 함께 진행될 걸세. 준비가 되면 자네를 부르지.”
“알겠습니다.”
* * *
보고를 끝내고 특임대를 나왔다.
그러나 쉴 시간은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 헤탄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자네!”
“헤탄님?”
“혹시 지금 바쁜가?”
그는 상당히 다급한 어조였다.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는 바빴는데 지금은 여유롭습니다.”
“그것 참 다행이군. 잠깐 이리 와보게.”
헤탄은 그를 끌고 으슥한 곳으로 갔다.
주변에 누가 듣는 사람이 없나 확인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 내가 엄청난 정보를 발견했네. 이 도시에 있는 리바 델 레이의 협력자가 누군지 알아냈거든!”
“…그렇습니까?”
“음? 자네 표정이 왜 그런가?”
“아, 아닙니다.”
“어쨌거나. 그는 볼튼 전 중장이라는 자일세. 곧 쿠데타를 벌여 도시 전체를 악신의 교단에 넘기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더군!”
“…….”
헤탄은 심각하게 말했지만 언럭키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너무 뒷북인데.’
이제 막 작전이 끝났고 특임대의 일은 비밀스럽게 진행되기에 아직까지 헤탄은 모르고 있었다.
언럭키는 혹시나 싶어 헤탄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자네에게 부탁할게 있어.”
“짐작은 가는데,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혹시 그 자를 막아줄 수 있겠나? 듣기로는 그 놈에게 악신의 증표가 있다고 하더군. 그걸로 도시의 에너지를 갈취하려고 한다는데 꼭 회수를 부탁하고 싶어.”
-띠링!
[사이드 퀘스가 발동…]
…
메시지가 나타나는 와중에 언럭키는 인벤토리에서 볼튼의 은신처에서 얻은 걸 꺼냈다.
“혹시 이겁니까?”
“아, 아니!?”
헤탄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띠링!
[사이드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