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상사 알렉스는 함께하게 된 신임 소위와 첫 사냥에 나선 순간, 그동안 가지고 있던 불안을 모두 날려버렸다.
‘엄청나군. 맥켈 대장님께서 이 분을 특채하시기 위해 그렇게 안달 내셨다고 하시더니…과연….’
어디 그뿐인가.
아무리 특임대가 군공을 2배로 정산 받는다고 하지만 한 번의 임무에 특진을 한 번씩 했다.
하사에서 소위까지 역대 최단기간 기록을 찍어가며 올라온 것이다.
‘게다가 지금 하는걸 보아하니 그 다음 직급도 전부 다 기록 찍으면서 올라갈 것 같고….’
알렉스가 할 일은 버프가 끝나지 않도록 시간에 맞춰 계속해서 버프를 걸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
그때 알렉스의 시선에 뒤쪽에서 몰래 날아오던 와이번들의 모습이 보였다.
언럭키는 전방의 와이번들을 학살하느라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은데, 날아오는 속도가 어마무시했다.
‘이런…!’
알렉스가 급하게 손을 뻗었다.
이게 와이번들의 무서움이었다.
괜히 요새를 만들고 모여 살며, 특임대를 조직해 놈들의 동태를 꾸준히 감시하는 게 아니었다.
강력한데 영리하기까지 한 괴물들.
일반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다행히 지금은 미리 캐스팅 해 놓은 마법이 있어서 즉발로 공격이 가능했다.
-화르르륵!
거대한 화염이 비가 되어 쏟아 내렸다.
와이번 몇 마리가 불길에 휩싸여 고통스러워했다.
번개처럼 날아온 화살이 그런 와이번들의 숨통을 끊었다.
언럭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내가 나서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니 전…도와드리려고….”
쳐다보는 언럭키를 보며 알렉스가 당황했다.
“무슨 말인지는 안다. 하지만 필요 없는 도움이었다.”
못 얻은 경험치에 아쉬워 혀를 찼다.
-피피피핑!
다시금 언럭키의 화살이 전방을 뒤덮었다.
알렉스는 그때부터 정말로 지켜만 봤다.
그러다가 한 번, 아까와 같은 기습이 또다시 날아왔다.
은밀한 저공 비행.
언럭키의 시선은 여전히 전방으로 향해 있었다.
‘이건 진짜 위험한 것 같은데?’
알렉스는 언제든 마법을 뿌릴 수 있도록 캐스팅 준비를 마쳤다.
언럭키가 도와달라고 하면 곧장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언럭키도 뒤에서 날아오는 와이번들의 접근을 눈치 챘다.
“캬아아악!”
아무리 봐도 몇 마리는 접근을 허용할 것 같다.
그 순간.
“신궁의 하수인.”
언럭키가 중얼거리자 활에서 조그마한 빛덩이들이 튀어나오더니, 그의 앞에 여러 동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브라흐마스트라에 내장된 마지막 스킬.
신궁의 하수인.
이건 궁수의 가장 큰 약점인 근접 기습을 막기 위한 스킬로서, 궁사를 지켜주는 소환수를 부르는 스킬이었다.
지금껏 사용할 일이 없었기에 실전에서는 처음 써본다.
독수리, 매, 곰, 호랑이.
네 종류의 동물이 소환되었는데, 하나같이 2m가 넘는 커다란 크기였다.
“크허허헝!”
“끼오오오!”
독수리와 매는 날개를 펼치며 와이번들을 향해 날아갔고 곰과 호랑이는 힘차게 달리다 점프해 놈들을 들이박았다.
빠르게 기습하기 위해 날아오던 와이번들이 동물들과 얽히며 진형이 흐트러졌다.
“캬아아아!”
“크아아아!”
난잡한 전투가 벌어졌다.
기습의 이점은 전부 사라졌고, 오히려 놈들은 빈틈을 드러냈다.
언럭키 앞에서 그런 빈틈을 드러낸 순간, 끝났다고 봐야한다.
-피피피핑!
화살 세례가 감히 기습을 시도한 와이번들에게 쏟아졌다.
하나씩 벌집이 되어가며 쓰러져가는 와이번들.
“정말…내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잖아.”
알렉스가 허탈하게 중얼거리며 캐스팅을 위해 모으고 있던 마력을 없앴다.
기가 차다는 듯 웃고 있는 알렉스의 옆으로 검은 인형이 스르륵 나타났다.
“너도 총령 각하의 대단함을 깨달았는가.”
“!”
알렉스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동그래졌다.
“아, 암살자…!?”
특임대의 작전 특성상 몬스터만 상대하는 것도 아니다.
요인 암살 같은 일에도 투입되는데, 상대는 마치 그런 암살자 같은 복장이었다.
‘누구지? 특임대를 싫어하는 고위 권력자의 졸개인가!?’
“쓸데없는 의심을 하고 있군. 나는 진작 먼저부터 총령 각하를 모시고 있는 자다.”
이아손은 알렉스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말했다.
“총령 각하라면….”
“지금 네 눈앞에서 활을 쏘고 계시지 않나.”
“?”
알렉스는 할 말을 잃었다.
언럭키가 도시 바깥에서 들어왔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은은하게 느껴지는 기품에서 그가 필시 대단한 신분이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령이라니.
정확히는 몰라도 훨씬 더 고위직 같아 보이지 않나.
‘게다가 이만한 어쌔신을 사사로이 데리고 다니고 있고….’
알렉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상관에 대한 경외심이 한층 더 생겨났다.
“날…찾아온 이유가 뭐지?”
“딱히 별 이유는 없다. 그저 네가 이번 작전에서 총령 각하의 부하가 되었다는 걸 들었기에 얼굴이나 볼 겸 온 거지. 어찌 보면 내 후배라고 봐야하니까.”
“후, 후배?”
“그럼 후배지. 내가 총령 각하를 얼마나 오랫동안 모셨는지 아나?”
빤히 쳐다보는 이아손의 눈빛에서는 반쯤 살기까지 느껴졌다.
마법사인 알렉스가 정면에서 받아넘기기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난 특임대 소속이고 이 녀석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건 무서워서 할 수가 없었다.
“그, 그렇군. 알겠다. 이제부터 선배라고 부르겠다.”
“좋다. 후배. 내가 가만히 지켜보니 넌 총령 각하의 전투를 그냥 지켜만 보고 있더군.”
“총령…아니, 내게는 소위님이다. 소위님께서 그냥 지켜만 보라고 하셨다. 일부러 놀고 있던 게 아니야.”
“알고 있다. 전투는 대부분 혼자서 하시는걸 좋아시는 분이니까. 하지만 나중엔 네게도 명령을 내리실 거다.”
“바라는 바다.”
알렉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역시 특임대 대원이다. 이렇게 가만히 따라만 다니는 건 성미에 차지 않았다.
“글쎄. 그 명령이란 건 네 생각과 조금 다를 거다. 내가 한 건 몬스터의 시선을 끌어 최대한 많은 놈들을 데려오거나, 강력한 몬스터의 주의를 돌리는 것 등이었지.”
“…….”
알렉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법사인 그에게는 맞지 않는 임무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다.
자신의 장기인 공격 마법은 언럭키에게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공격력은 이미 차고 넘치지 않나.
그 때 이아손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나도 총령 각하의 오래된 부하인 바. 네가 각하에게 힘든 명령을 받게 되었을 때 도와주겠다.”
“…저, 정말 고맙다.”
알렉스가 진심에서 나오는 감사를 표했다.
척 듣기에도 어려운 내용들이었는데 저렇게 서슴없이 도와준다고 하다니.
처음에 그를 보고 수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어느 분야나 선배가 있어야 한다더니. 당신 같은 선배가 있어서 정말 감사한다.”
“뭘 그 정도 가지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 후배.”
이아손이 슬쩍 웃었다.
‘됐군.’
이제 언럭키가 몰이 명령을 내릴 때 기꺼이 자신과 함께 미끼가 될 동지가 생겼다.
그동안 심장 떨리는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졌던가.
이젠 둘이서 하니 좀 괜찮으리라.
***
[현재까지 사냥한 와이번 성체 : 3640/10000]
그 날의 사냥은 3600마리 가량의 와이번들을 처치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도시로 복귀했다.
언럭키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좀 더 할 수 있었는데.’
이 정도도 충분히 많은 사냥이었지만 부족했다.
평소처럼 모든 에너지를 썼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복귀한 이유는 간단했다.
‘화살이 부족하다니…. 궁수 직업에 이런 단점이 있을 줄이야.’
화살 부족.
더 이상 활을 쏠 수가 없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화살은 보통 인벤토리 한 칸에 수백 발씩 겹쳐서 저장이 됐는데, 그런 화살 묶음을 여러 개 가지고 다녔다.
보통의 궁수는 화살 부족을 겪을 일이 없다.
하루 종일 사냥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고, 파티 단위의 사냥이기에 화살을 그렇게 많이 쓰지도 않는다.
며칠에 한 번 보급을 해도 남을 정도이다.
그러나 언럭키의 사냥은 아예 그 결이 달랐다.
솔로 플레이. 게다가 수십 발의 화살을 몇 초 만에 적에게 때려 박는데, 전투는 빠르지만 그만큼 소모품의 소비 역시 어마어마했다.
그렇기에 도시로 다시 와서 화살을 보충해야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이거 뭐 어떻게 해결 방법이 없나?’
이아손도 유저였다면 인벤토리에 화살 좀 넣어달라고 했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참 아쉽다.
도시에 도착해서 보급부대로 가고 있던 참이었다.
하사 한 명이 언럭키에게 다가오더니 부동자세를 취하며 경례 했다.
“충성! 언럭키 소위님!”
“음. 무슨 일이지? 혹시 맥켈 대장님께서 보내셨나?”
가볍게 경례를 받아주며 그렇게 물었는데, 그러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아직 임무를 끝내지 못했는데 그가 또 새로운 임무를 줄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건 아닙니다. 별 일은 아니고…이등병 한 명이 꼭 소위님을 뵙고 싶다고 간청을 해서 말입니다. 친분도 있다고 말하고 하도 간곡히 부탁하길래…실례를 무릅쓰고 온 겁니다.”
“이등병?”
교류하는 유저가 없다시피 한 언럭키였기에 알고 있는 이등병이 있을 리가 없다.
“데리고 오도록.”
그렇지만 언럭키는 그를 보고자 했다.
‘팬인가 본데.’
이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겼다.
특히 이번 도시에서는 계속 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여기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었으니 같은 도시에 있는 팬들이라면 한 번 만나고 싶기도 하리라.
이렇게 만나서 사인도 해주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는 팬서비스라도 하면, 그게 또 어떤 훈훈한 미담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아니면 세훈 씨에게 부탁해서 강제로 미담을 만들어 내도 되고.’
커뮤니티에 슬쩍 미담을 뿌려대는 식으로 해달라고 하면 잘 할 사람이다.
그러나 하사가 데려온 사람은 전혀 예상 밖의 사람이었다.
“헤탄님?”
“으허헛.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군. 아니지. 여기서는 소위님이라고 불러야 되나?”
“아, 아니…. 여기는 어째서….”
천공의 탑에서 헤어졌던 헤탄이 눈 앞에 있었다.
웃기지도 않게 그의 가슴팍에는 이등병 계급장이 있었다.
“나도 부유섬은 처음 와서 이등병이라네. 껄껄. 이등병 계급은 수십 년만에 다시 달아보는군.”
“아, 헤탄님은 병사 출신이라고 하셨죠. 감회가 새로우시겠어요.”
“새롭기는. 나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는구만. 나 때는 어땠는지 아나? 부대 악습이 장난 아니었어. 선임들은 이등병만 보면 어떻게든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이고….”
헤탄은 한동안 나 때의 군대가 어땠는 지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언럭키는 열심히 들어주었지만 말이 끝날 기미가 안보여서 슬쩍 말을 꺼냈다.
“하하…. 그것 참 힘드셨겠군요. 그나저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호르헤른 가문에서 새로운 임무를 맡으신 겁니까?”
“아, 그것 말이지. 하마터면 딴소리 하느라 깜빡 할 뻔했군.”
그러면서 헤탄은 등에 맨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받게.”
“이건…?”
“전에 임무를 완수하고 자네에게 어울릴만한 물건을 못 찾았다고 했잖아. 이번에 호르헤른님께서 굉장한걸 입수하셔서, 내가 직접 가지고 찾아온 걸세.”
“…….”
언럭키는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건 꽤 큼지막하게 생긴 화살통이었다.
“!”
‘와….’
언럭키가 멍하니 그걸 바라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빨주노초파남보.
-파앗!
그 마지막 단계인 보라색.
그것도 아주 진한 보랏빛이 표면에서 번쩍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