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이아손은 큰 도움이 되었다.
블랙 와이번의 영역인 돌산은 걸어서 움직이기 참 불편한 곳이었는데, 그가 몰이를 해 준 덕분에 멀리 안 나가도 되었던 것이다.
-피피핑!
날아오는 대여섯 마리의 블랙 와이번들을 향해 활을 쏘았다.
고속 연사에는 이제 익숙해져서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적을 공격했다.
행위와는 반대로 결과는 처참했다.
대형 몬스터인 와이번이 아무런 반항도 못해본 것이다.
<전에 네크로맨서 때가 더 좋은 직업이라고 했었던 놈들 다 튀어나와.>
<한번만 더 궁수 앞에서 네크로맨서의 니은 자만 꺼내면 맞을 줄 알아라.>
<그깟 뼈다귀 부대보다 궁수가 훨씬 쎔.>
징벌 포격을 사용하는 언럭키의 영상에서 언제 한 번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네크로맨서 vs 궁수.
언럭키가 최근에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던 그 두 직업 중 무엇이 더 좋은가에 대한 토론이었다.
그리고 지금 모습을 보니, 궁수 쪽 의견이 득세했다.
<웃기지 마셈. 솔직히 저런 식으로 한 방에 몰려오는 와이번이면 해골 부대 쓸 필요도 없음. 포격 한 방이면 싹 쓸어버릴 수 있는데.>
<그건 그렇지. 아니면 해골 궁수로 어그로만 끈 다음에 바닥으로 올 때 반격해도 어렵지 않게 이길 걸?>
<응 궁수면 그렇게 요란하게 할 필요 없이 싹 다 처치할 수 있어~>
<언럭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둘 다 직접 해보셨으니 느끼는 게 있을 거 같은데>
불똥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언럭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두 직업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요.”
-끼리릭!
언럭키가 다시금 화살을 시위에 걸며 대답했다.
이번엔 고속 사격이 아니고, 정밀한 일격이었다.
이아손이 대어를 낚아왔다.
저 쪽에서 잔뜩 화난 눈동자로 날아오는 ‘자이언트 블랙 와이번’이 보인 것이다.
어떻게 유인을 한 건지 놈은 언럭키가 노리고 있음에도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엘리트 보스몹의 색적 능력을 생각해보면, 이아손의 몰이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봐야 했다.
-키이이잉!
화살촉 끝에 붉은 기운이 몰려든다.
‘호크 아이’로 자이언트 블랙 와이번의 심장 부근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초를 셌다.
신체 리듬과 호흡의 박자, 과녁 속 놈의 모습이 완전히 일치되는 그 한 순간.
‘지금.’
가볍게 긴장을 풀며 시위를 놓았다.
-쐐애애액!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붉은 빛줄기.
자이언트 블랙 와이번은 그제야 눈치 챘지만 이미 늦었다.
-퍼어억!
아예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리며 화살은 녀석의 가슴어림을 관통해버린 것이다.
<와!!! 엘리트 몬스터마저 한 방에?>
<나 저 놈 알아. 자이언트 블랙 와이번이잖아. 세상에. 저 놈한테 잘못 걸리면 파티 단위로 찾아온 유저들도 걍 전멸하는데….>
<미쳤다 미쳤어!!>
어디서도 쉽게 보기 힘든 퍼포먼스였다.
-빠밤!
[건물주입니다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근데 특임대에 들어가셔서 여기 왔다고 하셨는데, 작전이 뭐임?>
그 때 팡파르 소리와 함께 후원이 터졌다.
언럭키의 몸이 흠칫거렸다.
‘그때 그 큰 손이잖아?’
처음 등장해서 시원하게 100만원을 후원해주신 분.
그가 오늘도 등장했다.
<ㄷㄷㄷ 큰 손 형님 오늘도 떴다!!>
<지금껏 고작 후원 2번 했는데 그 2번이 200만원인 사람?>
언럭키는 살짝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여기 어디 있을 블랙 와이번 엘리트 몬스터를 찾아 죽이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엘리트 몬스터에서 보스 몬스터로 진화할 것 같은 놈을 찾으라는 거예요.”
어차피 라이브 도중에 시청자들에게 알려줄 내용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후원을 받고 대답을 해주면 더 좋았다.
왜냐하면.
-빠밤!
[건물주입니다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질문과 대답 둘 다에 후원금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
문제는 그 금액이 또 100만원이라는 후원일 줄 몰랐기에 언럭키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별거 아닌 질문에 대답 좀 해 줬다고 도합 200만원의 수익이 나다니.
“건물주님. 다른 질문 더 없으신가요? 얼마든지 더 물어보셔도 됩니다. 제가 아는 선에서는 자세히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엌ㅋㅋㅋㅋㅋ 언럭키님 태도 보소.>
<물어보면 팬티 색깔이라도 알려줄 것 같음ㅋㅋㅋㅋㅋ.>
팬티 색깔?
그거야 알려주는 게 어려울 것도 없다.
‘일단 지금은 검정색인데…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
‘임무가 쉽지 않네.’
사냥은 그리 어렵지만 임무에서 찾아야 하는 블랙 와이번은 나올 기미가 안보였다.
경험치는 빠르게 쌓여가고 있었다만, 이 시간이 아쉬웠다.
공중 요새에서 머물 수 있는 레벨 제한은 150.
레벨을 올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러면서 군공도 잘 쌓아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낭비되는 건 곤란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아손을 더 쪼을 수도 없고.’
이아손은 이미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열심히 블랙 와이번들을 몰이해오고 있었다.
틈틈이 엘리트 몬스터도 껴있을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영웅으로 분류되는 놈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더 소란을 피웠다가 둘러싸이기라도 하면 그것도 곤란하고.’
돌산은 지형 자체가 이족보행에 적합하지 않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와이번들이 몰려온다면 아무리 언럭키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이 작전이 특임대의 작전인지 알 법한 난이도였다.
그리고 라이브로 이 모든 장면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공감했다.
<작전 난이도가 너무 어려운거 아님?>
<이 어려운 사냥터에서 딱 한 놈만 콕 발견해서 처치하라니.>
<최소한 시간을 엄청 들여야 할 것 같은데.>
이대로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면 라이브 방송에도 좋지 않다.
시청자들이 지루함을 느끼고 떠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라이브라도 끄고 혼자서 좀 돌아다녀 봐야 되나.’
그렇게 고민할 때였다.
-파앗!
“!”
언럭키의 시선이 한 쪽으로 팍 움직였다.
오랜만에 행운의 무지개 능력이 발동된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파란색 빛이 돌산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산 중에서도 가장 높고 험준한 곳이었다.
“음. 일단 좀 움직여 보겠습니다. 높은 곳에서 보면 뭐라도 보일 것 같으니, 저기 보이는 돌산으로 가보죠.”
언럭키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며 이동했다.
***
행운의 무지개 능력은 지금의 언럭키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이번에도 그 효용을 실감했다.
‘역시 중요할 때마다 한 건씩 해 주는군.’
높은 민첩 수치로도 돌산을 올라가는 건 쉽지 않았다.
뭘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은 절대 가지 않았겠지.
그 대신 꼭대기에 올라가니 목표로 했던 놈을 찾을 수 있었다.
[보스 몬스터 : 블랙 와이번 영웅 - 젠키릭스]
돌산의 꼭대기를 영역 삼아 존재하던, 다른 블랙 와이번보다 족히 2배는 커다란 괴수가 있었다.
이 정도 크기면 얼핏 보면 와이번이 아니라 드래곤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와 운빨 대박이다. 그냥 지형 정찰하러 올라간 곳에서 보스몹을 만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언럭키도 동의하는 바였다.
‘역시 운빨 축복 겜이야.’
아마 남들에게 일어난 일이었다면 배가 엄청 아팠겠지.
본인 일이니까 웃을 수가 있었다.
<근데 잠깐만. 보스몹 만나는 게 축복인가? 지금 언럭키님 혼자잖아. 심지어 궁수고.>
<궁수가 혼자서 보스몹 만나면…보통은 지옥인데. 무조건 죽는다고 봐야지.>
<보스몹이 아니라 일반몹이라도 마찬가지임. 언럭키한테는 아니겠지만.>
<근데 저만한 보스몹은…솔직히 언럭키라도 위험하지 않나?>
채팅창에 걱정이 달렸다.
언럭키 역시 살짝 긴장했다.
지금부터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처치했던 잡몹들(엘리트 몬스터도 있긴 했지만)과 다르게 보스몹은 확실히 무언가 다르긴 할 것이다.
“크르르르…. 크릉!”
그때 보스 몬스터가 눈을 떠 언럭키를 바라봤다.
번뜩이는 눈에는 침입자에 대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언럭키는 번개처럼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키이이잉!
붉은 빛 기운이 몰려들더니 그대로 놈을 향해 쏘아졌다.
겨냥이 굉장히 짧았음에도 정확하게 미간의 치명적인 부위를 노렸다.
그러나 놈은 홱 하고 고개를 틀어 피해, 대신 몸통에 맞았다.
“캬아아아!”
고통스러워하는 비명과 함께 놈이 뒤로 물러났다.
큼직한 덩치에 알맞게 성큼성큼 움직이더니, 그대로 하늘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판단력이 좋네요. 곧바로 위로 올라가는 거 보니.”
언럭키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설마 그걸 피할 줄이야.
치명타로 들어갔으면 잘하면 기절 같은 상태 이상이 떴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침착하게 2타, 3타를 쏘아 보내며 요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은폐해서 첫 공격을 맞추고 들어갔어야 했나.’
그러나 돌산의 정상은 확 트인 구조라 그런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
“캬아아악!”
그때 하늘 위로 날아올랐던 블랙 와이번 보스가 크게 날갯짓을 했다.
다른 와이번보다 2배는 더 큰 날개이다 보니 강력한 풍압이 발사됐는데, 언럭키는 눈을 부릅뜨며 뒤로 뛰었다.
“이런 미친!”
-콰가가각!
날갯짓에서 발사된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고 칼날이 되어 날아왔던 것!
데굴데굴 구르는 언럭키의 주변으로 칼날에 부서진 바위와 돌이 튀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좀 궁수처럼 싸우시는군요 ^^.>
<아 이거지 ㅋㅋㅋㅋㅋ. 맨날 편하게 사냥하다가 고통 받는 언럭키 보니까 이것도 재밌네.>
<그래. 월드 사가는 원래 이런 게임이었어. 우리들처럼 고통 좀 받아라!>
시청자들은 열심히 구르며 도망치는 언럭키를 보며 재밌어했다.
블랙 와이번 보스는 계속해서 하늘 위에서 바람의 칼날을 날려댔다.
“아니 저 자식은 스킬 쿨타임이라는 것도 없나요?”
언럭키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ㅋㅋㅋㅋ알바 아닌데용? 우리는 재밌는데용?>
<내 일이었으면 욕했지만 지금은 좋다ㅋㅋㅋ>
<아 오랜만에 빵 터지게 웃고 있음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을 보면 울컥 할 것 같아 언럭키는 애써 보스몹에 정신을 집중했다.
‘일단 매드 스나이핑은 못쓰겠군.’
그건 저격의 일종이라 가만히 서서 기를 모을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그랬다가는 벌집이 되기 딱 좋다.
-피피핑!
언럭키는 굴러다니는 와중에도 틈을 잡아 화살을 쐈다.
신궁 직업의 ‘궁술 마스터리’ 와 ‘고속 사격’ 의 합작으로, 거의 총 쏘듯 활을 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잘 조준하고 쐈음에도 화살은 블랙 와이번에게 닿지 않았다.
놈은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정확하게 바람의 칼날을 쏴 맞춘 것이다.
허공에서 부서지는 화살을 보며 언럭키가 인상을 썼다.
‘정면 공격도 안 되고….’
굉장히 까다로운 적이다.
계속해서 요리조리 뛰고 구르는 와중에도 언럭키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언럭키가 다시금 화살 여러 발을 발사했다.
그러나 조준을 잘못했는지 이번 화살들은 제각각 이상한 방향으로 쏘아졌다.
<응? 지금 명중률 뭐임?>
<언럭키님 실수하셨나? 너무 막 쐈는데?>
<공격을 했는데 보스몹이 쳐다도 안보네ㅋㅋㅋㅋ.>
너무 다른 곳으로 쏘아진 화살이었기에 블랙 와이번 보스도 눈길하나 안줬다.
그 순간, 서로 이상한 곳으로 날아갔던 화살들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팅! 팅!
-태앵!
화살촉끼리 부딪친 다음, 허공에서 궤적을 틀었다.
바뀐 방향은 블랙 와이번 보스의 날개 피막.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차마 놈은 요격할 생각도 못했다.
화살은 그대로 녀석의 날개 피막을 찢어냈다.
-콰지직!
“캬아아아아악…!”
놈이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추락했다.
-쿵!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를 보며 언럭키가 슬쩍 웃었다.
“오케이. 이제부터 페이즈 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