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블랙 와이번은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고속 사격을 사용했지만 사냥 속도는 드라마틱하게 빨리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놈들이 한 마리씩 따로 따로 다니기 때문이었다.
“좀 여러 마리 뭉쳐서 다니면 쉽게 쉽게 갈 것을….”
한 마리 잡으면 또 다른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한참을 돌산을 타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 한 마리를 발견한 순간, 언럭키의 팔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피피핑!
고속 사격에 유도샷이 결합되니 블랙 와이번 한 마리가 그대로 화살에 벌집이 되어 격추되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그러나 언럭키의 표정은 도무지 펴질 줄 몰랐다.
‘너무 느려.’
아무리 궁수라고 해도 사정거리는 있는 법.
돌산의 지형이 까다로워서 적을 발견하고 거기까지 다가가는 것도 꽤 힘들었다.
발견도 힘든데 가는 것도 힘들고…
‘이러면 헬로임님이랑 같이 다닐 때가 오히려 더 좋았었을 것 같은데?’
한 마리 한 마리의 경험치는 많을지라도, 시간으로 비교해보면 오히려 그 쪽이 낫다.
점점 불만이 차오를 때, 언럭키의 눈에 다른 블랙 와이번보다 날개가 1.5배쯤은 더 큰 놈을 발견했다.
“캬아아아!”
[엘리트 몬스터 : 자이언트 블랙 와이번]
-레벨 : 143.
엘리트 몬스터.
워낙 높이 날아다니고 있기에 엄지 손가락보다도 작아 보인다.
언럭키는 곧장 활시위를 당겼다.
-끼리리릭!
이번엔 유도샷이 아니다.
화살촉 끝에 붉은 기운이 몰려들었다.
매드 스나이핑.
브라흐마스트라에 내장되어 있는 저격 스킬을 발동 시켰다.
언럭키의 시선이 하늘 너머를 향한다.
‘이번엔 여기서 끝이 아니지.’
그가 쇼핑으로 산 스킬북은 2개였다.
하나는 고속 사격으로, 일반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스킬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호크 아이’였다.
[스킬북 : 호크 아이]
-스킬 등급 : 레어.
-마나를 소모해 시력을 상승시키고 원근감을 높인다. 아무리 멀리 있는 적이라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다.
활은 저격총과는 다르다.
고배율 스코프같은 게 없이, 그냥 눈으로 적을 판별해야 한다.
활의 성능이 아무리 좋더라도 맞추지 못하면 말짱 꽝인 것이다.
‘전에는 운이 좋았지.’
이전에 와이버니안의 영역에서 엘리트 몬스터를 한 방에 처리했던 건 꽤나 운이 좋은 편이었다.
유도샷과 매드 스나이핑 둘 다 내장 스킬이라서 그런지, 하나를 쓸 때는 다른 하나가 발동되지 않는다.
매드 스나이핑 단독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저격의 특성상 멀리 있는 적을 맞추는데 빗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멀리 있는 미세한 크기의 적을 그냥 맞추는 건 솔직히 운이 많이 필요하다.
호크 아이 스킬은 이를테면 저격수들의 필수 스킬인 셈!
-기이이잉!
활촉에 붉은 기운이 모여들었다.
언럭키는 유유자적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이언트 블랙 와이번의 머리를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시위를 놓았다.
-쐐애액!
하늘을 가르고 날아가는 붉은 궤적.
-뻐어엉!
폭음과 함께 자이언트 블랙 와이번의 머리통이 그대로 삭제되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상당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과연 엘리트 몬스터답게 꽤 많은 경험치가 들어왔다.
그러나 언럭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놈이 아니군.”
맥켈 대장이 내린 지시는 엘리트 몬스터 중에서도 영웅으로 진화할 특정 개체를 잡으라는 것.
퀘스트 성공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은걸 보면 이 놈은 그냥 엘리트 몬스터인 모양이다.
‘진짜 쉽지 않겠어.’
가뜩이나 블랙 와이번은 집적률이 낮은 몬스터인데, 엘리트 몬스터는 그 중에서도 더 보기 힘들다.
간신히 하나 잡았는데 퀘스트 수행과는 동떨어져 있는 놈이라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언럭키는 잠시 가만히 서서 고민했다.
이대로 무작정 다니다가는 시간 낭비할 가능성이 높다.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총령 각하.”
“뀨르!”
그때 이아손과 언럭키가 다가왔다.
도시 내에 함께 들어올 수 없었던 그들은 언럭키가 도시에 있을 때면 밖에서 대기했다.
소위 이상의 계급을 얻어 지휘관이 되면 자신의 부대에 넣어서 도시로 데려올 수 있겠지만, 그 전까지는 조심해야 한다.
“…가만.”
“?”
이아손을 보던 언럭키는 순간 좋은 생각이 났다.
그런 언럭키의 눈빛을 보자 이아손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유명한 속담이다.
언럭키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니까…저보고 블랙 와이번들을 몰아오라는 겁니까? 저번처럼 스스로를 미끼 삼아서요?”
“그렇지. 잘 이해했네.”
“…….”
사냥터의 면적 당 몬스터의 집적률이 낮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다.
몬스터가 적다면, 놈들을 모아오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다행히 언럭키는 그 어려운 임무를 대신 수행해줄 좋은 동료가 있었다.
“어렵겠나?”
“…….”
이아손은 머뭇거렸다.
당연히 어렵기야 하겠지만 어찌 그걸 쉽게 입 밖으로 말할 수 있을까.
“확실히 어려운 부탁이긴 하지. 하지만 이아손 네가 원하는 건 어쌔신 로드가 되는 것 아니었나? 날 따라온 이유도 그래서였고.”
“맞습니다.”
이아손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 압도적인 위력을 보였던 언럭키를 따라다니다 보면 어쌔신으로서의 자신의 실력도 일취월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따라온걸 후회하지 않았다.
“이것도 그 일환이다. 어쌔신이 되어 어려운 임무는 기피하고 쉬운 임무만 할 수는 없는 법. 하물며 로드가 된 자는 어떤 임무든 완벽하게 할 줄 알아야지. 안 그렇나?”
“…맞습니다.”
이아손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총령 각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개안을 하는 것 같군요.”
자신이 너무 어리광을 피웠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깟 고난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하는 것인데.
두바르를 떠난 이후로 너무 편하게 지냈던 모양이다.
‘총령 각하께서 나에게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군.’
이아손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각오를 다졌다.
“이 일대의 모든 블랙 와이번을 제가 한 번 모아와 보겠습니다.”
“역시. 내가 가장 신뢰하는 부하답군.”
“…총령 각하…!”
큰 의미를 담지 않고 한 언럭키의 말에 이아손은 깊은 감격을 받았다.
그가 훌쩍 움직였다.
‘휴. 잘 통했군.’
의지에 불타는 이아손을 보며 언럭키는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이제 사냥이 좀 쉬워질 것 같다.
***
-띠링!
[NEW!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서 라이브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목 : 특임대 첫 번째 작전 - 블랙 와이번 사냥]
어느 정도 사냥이 익숙해지자 언럭키는 바로 라이브 방송을 틀었다.
‘그냥 사냥하는 것보다 이 과정을 방송하는 게 훨씬 낫지.’
일단 들어올 후원금만 생각해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물론 이래놓고 라이브 방송에서 바보처럼 죽거나 멍청한 모습을 보인다면 있던 시청자들도 실망해서 떠날 수도 있다.
언럭키의 방송 컨셉은 편안하고 재밌는 방송이 아니라, 압도적인 직업과 사냥 실력, 피지컬 등이었으니까 말이다.
항상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언럭키는 자신 있었다.
<특임대가 뭐임?>
<부대 이름 같은데 공중 요새에 그런게 있었나?>
제목을 본 시청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임대의 존재는 보통 유저들은 잘 몰랐다.
도시 내에서 그리 알려지지 않았고 영입도 1대1로 접근해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특임대 대장의 눈에 들 만한 인재여야 했다.
한 번의 사냥으로 1계급 특진 정도는 턱턱 할 만큼.
언럭키는 굳이 대답하지 않은 채 걸어가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있는 곳은 블랙 와이번들의 영역입니다. 처음 와봤는데 지형이 그리 좋지 않더군요. 돌아다니기가 상당히 불편합니다.”
아쉽게도 뒤에서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1인칭 액션캠 형태로 진행되었다.
화면의 대부분은 전방을 찍고 있었고, 오른쪽 하단에는 작게 언럭키의 얼굴과 상반신이 나왔다.
<ㅇㅇ. 거기 되게 별로임. 돌산이라 마음 놓고 뛰어다닐 수가 없음.>
<궁수한테는 그리 좋은 사냥터는 아닌데.>
오히려 마법사들이 선호하는 장소였다.
강력한 단일 개체가 다니는 사냥터였기에, 한 마리 발견할 때마다 큰 거 한 방을 캐스팅하면 되니까 말이다.
반면에 짤짤이 평타를 위주로 싸워야 하는 궁수에게는 그리 좋지 않았고.
<근데 어떻게 혼자 왔음?>
<어? 그러게? 어제 중사였는데 오늘 상사 단 것도 굉장한 일이긴 한데…상사면 아직 지휘권 없어서 혼자서 못 돌아다니지 않나?>
<상사 아니라 소위라도 마찬가지임. 블랙 와이번 영역 같은 곳은 최소 중위 이상은 되어야 위에서 사냥터 배정 해줄 걸.>
시청자들의 의문 섞인 채팅을 본 언럭키가 대답을 해주었다.
“라이브 제목에도 적어놨듯이, 이 곳에 온건 특임대로서 첫 작전 때문입니다. 제가 혼자서 여기 올 수 있었던 것도 특임대여서 가능했던 일이고요.”
<와. 특임대란 곳이 혜택 좋나보네. 사냥터를 그냥 막 배정해 주고.>
<나도 지금 공중 요새인데 특임대 들어가고 싶음. 들어가는 방법이 뭐임?>
<그걸 말해 주겠냐? 영업 비밀인데 ㅋㅋㅋㅋㅋ.>
“딱히 비밀은 아닙니다. 도시에 도착한 첫 날에 사냥터를 나갔는데 운 좋게 돌아와서 정산을 해보니 1계급 특진을 했더군요. 그 직후에 포 스타가 찾아와서 영입해갔습니다.”
언럭키가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어제 먹었던 식사 메뉴를 얘기하듯 담담한 어조였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냐?>
<하루만에 1계급 특진을 해? 그것도 중사에서 상사로?>
<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면 도시로 들어왔는데 왜 이등병이 아니고 하사부터 시작한 거임?>
온갖 의문 섞인 채팅들이 이어졌지만 언럭키는 더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적당한 신비주의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더욱 끌게 만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끼리릭!
언럭키가 하늘을 바라보며 활시위를 당겼다.
저 멀리 블랙 와이번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질주하고 있었다.
카메라로 그 광경을 같이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기겁했다.
<자, 잠깐만. 저 숫자 뭐야?>
<블랙 와이번이 저렇게 떼로 몰려다닌다고? 완전히 재앙인데??>
북쪽 블랙 와이번의 땅은 어려운 사냥터 중 하나였다.
한 마리씩 날아다니는데도 그런 평가를 받았는데, 십여 마리가 한방에 들이닥쳐 오면 최악의 난이도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때 언럭키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피피피핑!
활시위를 놓고 다시 재장전을 해서 쏜다.
이 단순한 동작이 잔상을 일으킬 만큼 빠르게 반복되며 수십 발의 화살이 허공으로 넓게 퍼졌다.
막 쏴도 이렇게 많은 화살을 쏘기는 어려울 텐데, 언럭키의 화살은 전부 블랙 와이번들의 치명적인 부위에만 꽂혔다.
-퍼퍼퍼퍼퍼퍼퍽!!
어디에 정신이 팔린 건지 땅 한쪽을 바라보며 달려오던 블랙 와이번들은 그대로 벌집이 되었다.
아무런 반항도 못해보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블랙 와이번들.
-띠링!
[레벨업!]
몸에서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언럭키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십몇 마리도 너무 적네요. 한 20마리는 한 번에 처치해 줘야 기분 좀 좋을 것 같은데….”
<…….>
<…….>
<…….>
채팅창이 순간 정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