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특임대.
특수 임무 부대의 줄임말이며, 이들은 따로 움직이며 일반 병사들이 못하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곳의 수장은 별 4개의 포 스타 장군이었다.
그런 그가 직접 보자고 하다니.
언럭키는 하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하사는 그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
“긴장을 안 하시는군요?”
“뭐. 처음 있는 일은 아니어서.”
영주 NPC도 몇 번이나 만나본 언럭키였다.
당장 직전에 왔던 천공의탑에서는 영주급이었던 추기경이 그를 폐하 폐하 하며 받들어 모시지 않았던가.
영주도 아닌고 고작(?) 4성 장군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었다.
“역시…. 은은하게 풍겨오는 위엄과 기품을 느끼고 예상은 했습니다. 여기엔 새로 오셔서 아직 중사이시지만 필시 대단하신 분이실 거라고요.”
하사는 반짝이는 눈으로 언럭키를 쳐다보다가 앞을 가리켰다.
“도착했습니다. 이 건물이 특임대 본부입니다. 맨 위층으로 올라가시면 대장님께서 계실 겁니다.”
“고맙다.”
“저야말로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안내해 준 하사는 경례를 하고 떠나갔다.
언럭키는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부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조용했다.
경계를 서는 부사관들이 몇 명 있었는데 언럭키는 그중 상사 계급 부사관에게 안내를 받아 위로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상사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계급 상 그가 더 높은데도 의아할 정도로 예의 있는 모습이었다.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보인 건 제복을 입고 어깨에 별 4개가 빛나는 위엄 있는 중년의 남자였다.
언럭키는 부동자세를 취하며 각을 잡아 경례했다.
“충성!”
“…충성. 모험가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예의를 아는군?”
포 스타는 의외라는 듯 언럭키를 바라봤다.
모험가들이 많이 거쳐 가는 도시이다 보니 그는 모험가들의 특징을 잘 알았다.
계급제임에도 그들은 주민들을 완벽히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방금 전 언럭키의 경례는 그런 것 따위 전혀 없었다.
존경심이(연기일 지라도) 가득 들어있던 것이다.
“상급자에 대한 경례는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자네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만.”
“사람에 따라 다른가 봅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흠.”
장군은 언럭키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모험가임에도 그만한 기품을 풍길 수 있는 건가. 실로 훌륭하다.”
언럭키의 입가에 미세하게 미소가 걸렸다.
포 스타에게 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의아한 건, 다른 유저들은 얼마나 싸가지가 없었으면 장군이 저런 식으로 말하느냐였다.
언럭키 입장에서는 지금의 태도가 당연했다.
‘저만한 NPC와 인연을 맺는 건데 이까짓 경례 몇 번 하는 게 대수인가?’
게임 속 NPC랍시고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건, 그냥 월드 사가를 플레이하기 싫다는 뜻인데.
설마 그렇게 멍청한 놈들이 있지는 않겠지….
“어쨌거나 내 소개를 하지. 공중 요새의 특임대를 맡고 있는 맥켈 대장 이라고 한다.”
“중사 언럭키입니다.”
“내가 자네를 왜 불렀는지 알겠는가?”
“이번에 새운 군공 때문인 걸로 추측됩니다만.”
그것밖에 특정할 이유가 없다.
사냥 후 군공 정산 후에 바로 불렀으니 말이다.
“그렇지. 솔직히 깜짝 놀랐다네. 자네가 도시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군공을 세워오다니.”
“…제가 도시에 들어온 게 대장님에게까지 보고가 되었습니까?”
“당연하지. 무려 신탁을 받은 자 아닌가. 원수 각하께서 직접 신경 쓰라고 말하셨을 정도니 아마 장성급은 자네를 다 알고 있을 거야.”
“…….”
이건 좋은 거라고 봐야하나?
살짝 애매하다.
권위 높은 NPC들의 관심을 받는 건 양날의 검이다.
지금까지는 좋은 쪽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만약 그들이 적대하기라도 한다면 굉장히 골치 아파질 터.
“신탁을 받은 인물은 확실히 다르긴 다른가보군. 그 짧은 시간에 군공을 그리 세우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단순히 운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부탁을 하나 하고 싶은데.”
맥켈 대장은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양 손을 깍지 꼈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언럭키는 그의 눈빛에서 비춰지는 간절함을 읽었다.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자네가 우리 특임대에 들어와 줬으면 좋겠어.”
“…그게 끝입니까?”
“그래. 특임대는 말 그대로 도시를 위해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이지. 위험하고 희생적인 임무들. 그래서 자네 같은 뛰어난 능력을 지닌 군인들이 특임대에 소속되어 있어야 해.”
거기까지 말한 맥켈 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 뒤로 이어진 말은 구구절절했다.
특임대는 항상 더 많은 인재를 필요로 하지만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에 지원율이 낮았다.
기껏 찾은 인재도 편안하게 계급을 올리고 싶어 했지 특임대에 오고 싶어 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도 우리 특임대는 장점은 있네. 보통의 다른 군인들보다 진급 속도가 2배 가까이는 빨라. 그만큼 어려운 임무이기 때문에 군공이 빨리 쌓이거든. 나만 봐도 내 동기들 중에는 이제 막 준장이 된 놈들도 있어.”
살아남기만 하면 빠르게 진급할 수 있는 부대!
맥켈 대장은 꽤나 필사적이었다.
언럭키는 부대의 인원이 너무나 부족한 상황에서 발견한 초특급 인재였다.
당연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 자네에게 간곡히 부탁하지. 부디 특임대에…”
“들어가겠습니다!”
“…음?”
“전부터 맥켈 대장님의 명성과 특임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제게 와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치 외워서 뱉는 듯한 언럭키의 말에 맥켈 대장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언럭키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위험한 곳이면 당연히 강하고 보기 힘든 몬스터가 많을 테고. 인력난이라고 했으니 출동 같은 건 맨날 하라고 할 거고…거기다 진급까지 빠르다고?’
이건 제발 시켜달라고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맥켈 대장의 주목을 끌 수 없었는지 다른 유저들 중에 특임대에 들어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었다.
숨겨진 보직에는 숨겨진 꿀통이 들어있는 법!
‘어차피 별 달려고 했는데…이런 기회가 생기면 오히려 잘됐어.’
“하하. 시원시원해서 좋군. 잘 부탁하네.”
“예. 저 역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 모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매일 아침 6시.
(주)머니앤캐시의 사옥(이라 쓰고 감옥이라 읽는) 고시원 공용 주방에서 회의가 벌어졌다.
백현과 박세훈, 이용승 세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이 시간대의 공용 주방은 이들의 아지트이다.
(주)머니앤캐시의 관리자이자 반건달들은 다들 자고 있다.
여기 갇혀있는 비슷한 입장의 빚쟁이들도 아침은 거의 다 거르는 편이다.
작업장에 들어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잠자려고 하지, 꼬박 꼬박 아침을 먹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어느새 그들만의 시간이 되었다.
“요즘은 반찬이 잘 나오네요.”
이용승은 삶은 계란과 닭가슴살을 가져다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거의 밥과 김치만 있었는데, 그나마 최근엔 고기 종류가 추가되었다.
그래봤자 퍽퍽한 닭가슴살이지만, 이용승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잘 나오긴 뭘. 먹다가 목 막혀 죽겠구만.”
“맛이야 그냥 먹는 거죠.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잖아요.”
성 팀장이 간간히 닭가슴살을 챙겨주었다지만 닭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아침이 너무 풍요로워졌네요.”
“참 나. 이게 풍요면 어디 호텔 조식 같은데 가면 뭐라 할지 궁금해. 안 그래 백현 씨?”
“…….”
박세훈이 동의해달라는 듯 백현을 돌아봤지만 그는 열심히 닭가슴살을 씹어 넘기고 있었다.
그 역시 월드 사가를 위해 체력을 키우고 있는 바.
운동은 밤마다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렇게 영양까지 챙길 수 있게 되니 마음에 들었다.
“저도 뭐. 나쁘진 않아요.”
“으음…. 어느새 백현 씨도 용승 씨한테 물들었어….”
박세훈은 한숨을 푹 쉬었다.
시답잖은 말들이 그들 사이의 대화에 주를 이루었다.
아마 이 대화를 어디선가 몰래 숨어서 듣고 있더라도 별 신경 쓰지 않고 돌아가겠지.
전문적으로 도청 같은걸 한다면 아무 쓸모없겠지만 박세훈은 항상 이 정도 보안은 유지했다.
그러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중요한 안건도 튀어나왔다.
“백현 씨. 아무래도 지난달에 비해 이번 달 수익은 꽤 떨어질 것 같아.”
“역시 그런가요.”
어쩔 수 없었다.
여러 가지 큰 사건들이 동시에 겹치며 최종 정산된 금액은 1억을 약간 넘겼다.
그걸 성 팀장에게 한 방에 투척하며 대등한 거래를 한 건 그들 팀이 이제껏 해온 일 중 가장 큰 업적이었다.
“지난달이 특별한 거였으니 이번 달도 똑같길 바라는 건 욕심이죠.”
“알지. 알아. 근데 난 욕심 좀 부리고 싶어서 그래.”
1억까지는 못 벌더라도 그 근처까지는 가보자.
그게 박세훈의 주장이었다.
돈에는 강력한 마력이 있어서 한 번 큰돈을 벌어본 사람은 또 비슷한 금액을 벌 수 있다.
증권사에서 오래 일해 온 박세훈이 가진 개인적 신념이기도 했다.
“흠. 아니면 내가 이번 달부터 들어오는 정산금으로 투자 좀 해볼까?”
“어떤 거요? 좀 안정적인 대형 주식 같은 거라면…”
“해외 선물이나 코인 같은 거. 요즘 그 쪽 차트들을 다시 보고 있는데 내가 보는 눈이 다시 좀 생긴 것 같거든. 어때. 믿고 맡겨볼…”
“…….”
“…하하…. 농담이었어.”
백현은 물론이고 이용승마저 가늘게 뜬 눈으로 빤히 쳐다보자 박세훈은 급하게 말을 돌렸다.
“세훈 씨. 그러다가 돈 다 날리고 여기 들어오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예요?”
“진짜 농담이라니까. 저스트 조크. 분위기 좀 풀어보려고 그랬지.”
백현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농담인거 알고는 있는데 들을 때마다 간 떨리네요.”
박세훈이 농담이라고 한 말이 정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저런 식의 농담은 여러 번 했지만, 박세훈은 그 후로 단 한 번도 그 쪽 관련 일에 손대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돈이 급해도 선을 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하게 코인을 언급해오는 다른 빚쟁이들에게는 절대 하지 말라고 뜯어말린 적도 있었다.
“크흠. 이런 농담은 앞으로 좀 자제할게 그럼.”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쨌거나 그의 말처럼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박세훈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해주는 덕분에 감옥 같은 이곳에서 그나마 웃을 수가 있었다.
“그나저나 백현 씨는 요즘 월드 사가에서 어때?”
“안 그래도 최근 근황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백현은 박세훈과 이용승을 보며 어제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신궁 직업을 갖고 와이번의 공중 요새에 들어온 일.
생각보다 직업이 좋아서 하사에서 시작했는데도 몇 시간만에 1계급 특진을 하고, 특임대 대장이 부른 것 까지.
“앞으로 특임대 소속으로 움직이다보면 계급 올리는 건 금방 할 것 같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이용승이 입을 연 건 그때였다.
“별까지 달 거라고요?”
“네. 장군이 되면 꽤 좋은 업적을 주거든요. 어차피 레벨업 할 거, 그것까지 같이 얻으면 좋죠.”
“그럼 그걸 라이브 방송으로 하면 어때요?”
“네?”
“지금부터 레벨업해서 계급 올리고 하는 모든 과정을 라이브로 스트리밍 하는 거죠. 그럼 후원금도 엄청 터지고 할 것 같은데….”
“!”
“!!”
중얼거리는 이용승의 말에 백현과 박세훈의 눈이 번쩍 떠졌다.
“맞네…. 우리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런 컨텐츠면 시청자가 안 몰릴 수가 없겠는데…?”
“그러게요.”
두 사람이 감탄해서 이용승을 쳐다봤다.
이용승은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제가 편집자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언럭키의 팬이잖아요. 그런 일상들을 라이브로 소통하면 훨씬 좋을 것 같아서요.”
“맞는 말이야. 좋아. 그럼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논의해보자고!”
박세훈이 박수를 짝 치는걸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금세 기가 죽어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 메리다를 바라보는 하녀장 마틸다 프레스턴.
메리다는 비록 평민이기는 했지만, 어지간한 귀족 영애 못지않은 단정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상전이 필요로 하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맞히는 기민한 눈치까지 보유한 영민한 아이였기에.
새로운 수석교수의 거처로 히아신스관이 지정되며 그곳의 관리를 일임받은 마틸다 프레스턴이 이전 일터에서 손수 차출해온 인재였다.
하지만 다소 말이 많은 것이 흠으로 지적되곤 했었는데, 지금도 상전인 수석교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불나불 입 밖으로 꺼내어 지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아카데미의 하녀 중에 이만한 아이는 좀처럼 찾기 힘드니까’
그녀는 교양있는 귀족부인답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혀를 끌끌차며 어깨를 내리누르는 중압감에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무려 5년 만에 부임하신 수석교수님이야. 게다가 9년 동안 비어있던 이 히아신스관의 새로운 주인이시기도 하고. 이 자체로도 이미 보통 신분이 아니라는 뜻이니,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
9년 전.
한때 제국 오너 서열 3위까지 오른바 있었던 초강자이자. 무수한 전공(戰功)을 세운 뒤, 말년에 후학 양성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까지도 무려 오너 서열 20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제국의 영웅 ‘알베르토 샌더슨’ 후작.
그가 오너 학부의 학과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무려 9년 만에 탄생한 히아신스관의 주인이었다.
알베르토 샌더슨 후작은 끝내 마스터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최상급의 극에 이른 엑스퍼트이자 제국 최강자인 발렌타인 후작 이상의 기간트 조종술을 보유했었다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황립 아카데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제국 남부에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던 데다, 80에 가깝도록 결혼을 하지 않아 후사조차 없었기에 영지를 다스리는 데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기간트 오너 학부의 학부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의 그는 황립 아카데미 내부에서 생활하기를 희망했고.
그리하여 주어진 숙소가 바로 어지간한 황자나 황녀의 별궁 못지않다는 황립 아카데미의 별관 중 하나인 히아신스관이었다.
‘히아신스관’은 아카데미의 수많은 별관 중 유일하게 숙소로 사용되는 곳이었기에 그 규모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더해 3대 황제가 드워프 국왕에게 부탁해 지었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유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당연히 이런 대단한 곳을 아무에게나 내줄리 만무했기에, 지난 수백 년간 히아신스관의 주인은 고작 일곱에 불과했고.
그들 하나하나는 제국 역사서에 그 활약상이 페이지 단위로 넘어갈 정도로 걸출한 영웅들이었다.
게다가 이번 히아신스관의 주인은 무려 5년 만에 부임한 ‘수석교수’이기까지 했으니(전대 주인인 알베르토 샌더슨의 경우는 수석교수가 아니었다), 황립 아카데미의 관심이 이곳으로 집중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방학이기에 다행이지, 만약 학기 중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휴...’
그녀는 오늘도 모습을 비추지 않는 히아신스관의 주인을 생각하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3
황립 아카데미에 입부할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가지뿐이다.
첫 번째, 이펜타르크 제국 백작 가문 이상의 후계자일 경우 무시험으로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재능이 떨어지는 이들이 입학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맹점이 존재했지만, 백작 이상의 작위에 오르는 것은 제국에 지대한 공을 세우지 않고서는 불가능했기에 그 공로를 인정한 처사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입학 이후의 차별 대우 같은 것은 일절 기대할 수 없는 황립 아카데미였기에, 대부분 귀족 가문의 후계자들은 입학 이전부터 혹독한 수련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혹여 덜떨어진 모습이라도 선보이게 된다면 그것은 곧바로 가문의 수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간혹 조기 교육으로도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둔재의 경우, 아예 후계자 자리를 박탈당하거나 처음부터 다른 아카데미로 진로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황립 아카데미 이외의 아카데미를 선택하는 것 역시 가문의 수치로 여겨지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간혹 후계자에 대한 사랑이 지독한 대귀족의 경우 이런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다.
두 번째 방법은 까다롭기로 이름 높은 황립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통과해 레드드레곤(이펜타르크 제국의 수호룡)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다는 것이다.
황립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은 평민에게도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졌지만. 엄청난 응시료는 둘째치더라도. 귀족에 비해 훨씬 더 높게 책정되는 커트라인으로 인해, 시험에 통과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합격만 한다면, 재학기간 동안은 그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았기에(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대부분의 평민 합격자는 성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는 했다.
게다가 황립 아카데미를 졸업한 평민 중 대부분이 최소 준남작 이상의 귀족 작위를 획득하며 인생 역전에 성공했기에. 재능있는 자식을 둔 평민 부모 중에는, 엄청난 빚을 지고서라도 몇 번이고 시험에 응시케 하다 가족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곤 했다.
매년 시험을 치르는 응시생 중 합격률은 고작 5%가량.
그러니까 1만 명이 시험에 응시할 경우, 대략 500여 명만이 황립 아카데미 재학생의 상징인 ‘레드드래곤 배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별다른 사건이 없다면 대개 아카데미의 두 번째 방학 기간인 8월에 시험을 치르게 되고, 10월에 합격자를 공표하며, 12월과 13월에 걸친 세 번째 방학 기간이 끝나는 1월에 입학해 4년간 아카데미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불과 며칠 전에 끝난 입학시험에는 총 38643명이 응시했고.
모든 학부를 통틀어 1884명의 합격자가 배출되었다.
그 말인즉... 잘나가는 공후백작가의 차남이건 삼남이건 혹은 10남이건, 아니면 영지 내에서 천재 소리를 지겹게 듣던 부유한 상인의 자식이건 간에 거의 대부분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배움의 기회를 거머쥐게 되는 황립 아카데미인 만큼, 그곳의 ‘교수’들은 대부분 엄청난 자존감과 특권의식을 지닌 이들이었는데.
그건 정교수뿐만 아니라, 부교수나 하다못해 조교수마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교수진 중에서도 최고 인기 학부인 기간트 오너 학부의 교수들은 더더욱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히아신스관의 입구를 서성거리는 오너 학부의 정교수 ‘브루노 힐’과 부교수 ‘타본 레바인’의 얼굴에서는 그런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떠, 떨립니다, 힐 교수님.”
“젠장, 하필 앤서니 그자식이 휴가라...”
그들은 개강 3일 전인 오늘까지 어떠한 강의 지침조차 없이.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 소문의 ‘수석교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이를테면 직속 부하직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