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다행히 이아손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위험할 때를 대비해 호야를 붙여준 게 빛을 발한 것이다.
전투 폼으로 변신한 뒤, 이아손을 데리고 달려서 와이번들에게서 벗어났다.
와이번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완전히 뿌리치지는 못했지만 시간을 끄는 것 정도면 충분했다.
-피피핑!
다시 마나를 회복한 언럭키의 화살이 날아와 와이번들을 격추시켰다.
다시 만난 언럭키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나?”
“총령 각하….”
“크흠.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 다음 부터는 이런 일 없을거야.”
그러면서 언럭키는 레드 와이번의 서식지 좀 더 깊은 곳을 가리켰다.
“이제 진짜 제대로 감 잡았어. 지금부터는 더 많이 끌고 와도 괜찮을 것 같다.”
“…….”
“왜. 불만 있어?”
“…없습니다.”
이아손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몸을 돌려 다시 레드 와이번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
브라흐마스트라에 내장된 스킬은 총 3개이다.
유도샷, 매드 스나이핑, 신궁의 하수인.
그중 여기서 쓰고 다닌 스킬은 유도샷 뿐이었다
매드 스나이핑도 한 번 써보긴 했는데, 저격의 일종이라 다수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는 알맞지 않았다.
조준부터 발사까지의 시간도 길고 위력도 너무 강했다.
유도샷으로도 원샷 원킬인데 굳이 저것까지 쓸 필요가 없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신궁의 하수인도 못써봤다.
‘위험한 일이 없으니까.’
궁사를 지키는 소환수를 불러내는 스킬인데, 지킴당할 필요가 없었는데 왜 쓰겠는가.
지금은 구경만 하지만 파티원들도 있고, 애초에 근처까지 살아서 다가온 몬스터도 없었다.
-띠링!
[레벨업!]
언럭키의 몸에서 빛이 번쩍였다.
지저 세계에서 쌓아놓은 경험치와 헤탄의 퀘스트를 완료했던 것 덕분에 경험치 바가 거의 다 차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레벨업이었다.
‘확실히 동레벨 몬스터에 비해 와이번들이 경험치를 많이 주긴 하는군.’
이곳을 선택하는 단 하나의 이유답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주변의 유저들이 박수를 쳐줬다.
어색한 기분이었다.
보통 언럭키는 혼자서 다니거나 NPC들과 파티를 한 적이 많아서 레벨업을 해도 이런 축하를 받은 적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저 혼자만 레벨업을 해서 조금 미안하네요.”
“에이. 아닙니다. 아마 돌아가서 정산해봐야 알겠지만 저희도 군공 많이 얻었을 거예요. 이거 경험치로 환산하면 아등바등 사냥한 것보다 더 나을 걸요?”
병사 유저 중 한 명은 놀면서 군공도 벌어간다는 것이 퍽이나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럼 레벨업도 하셨겠다, 이제 돌아가시나요?”
“네? 벌써요?”
“…아니에요?”
“그럼요. 사냥터 온지 이제 겨우 3시간 됐는데요.”
“음…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더 다녀보죠.”
소령 헬로임의 부대는 다시금 레드 와이번의 서식지 주변을 떠돌았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이아손과 호야가 열심히 몬스터를 몰아오고, 언럭키는 쉴새없이 화살을 날렸다.
-핑! 핑! 핑!
이런 방식의 사냥은 처음이라 그런지 도무지 질리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다른거 생각 안하고 순전히 재미있어서 게임을 하게되네.’
그렇게 4시간이 더 지나갔다.
“저…언럭키님.”
“네?”
“다른 유저분들이 조금 지치신 것 같아서요. 혹시 언제쯤 돌아가실 예정이십니까?”
헬로임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제서야 언럭키는 뒤를 돌아봤다.
병사 유저들의 얼굴에 피로감이 짙게 배어있었다.
‘아. 이런.’
월드 사가는 단순히 컴퓨터를 조작하는게 아니고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한다.
너무 뛰어난 기술력 덕에,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그건 장점만 있지는 않았다.
급속도로 피로감이 생기는 것이다.
유저는 군인이 아니다.
신체는 능력치와 아이템으로 강해져도, 계속된 외부의 자극을 정신이 버티지 못했다.
몇 시간 사냥을 하고 탐험을 했으면 그 뒤에는 도시로 돌아가서 쉬어줘야 한다.
1티어 길드 소속이자 월드 사가의 프로 지망생이라고 할 수 있는 헬로임은 그나마 괜찮아 보였지만, 일반 유저들은 많이 힘들어했다.
아무리 대부분의 사냥은 언럭키가 담당했다고 하지만, 위험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사냥터를 계속 돌아다니는건 정신이 피로하다.
언럭키야 초창기부터 혼자서 많이 다녔기에 적응이 많이 되었지만, 일반 유저에게 그런걸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슬슬 돌아갈까요 그럼?”
언럭키가 아쉬움을 애써 털어내며 말하자 헬로임이 그를 위로했다.
“예. 가서 빠르게 정비하고 다시 출발하시는게 오히려 좋을수도 있습니다. 이번 군공이라면 제가 더 좋은 사냥터를 배정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
도시로 가는 길은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병사 유저들은 피곤한 와중에도 열심히 떠들었다.
“언럭키님이 요근래 뜨는 이유를 알겠네. 사냥하는 기계인줄 알았어.”
“궁수가 저렇게 플레이할 수 있다는건 내 평생 처음 들었다.”
“심지어 원할 때마다 직업을 바꾼다던데…그 많은 직업이 다 저 정도면 엄청나네.”
유명인과 함께 했던 경험은 좋은 추억이 되는 법이다.
그들도 앞으로 언럭키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오늘의 일을 술자리에서 재밌게 풀 수는 있으리라.
게다가 단순히 썰만 얻어간 게 아니다.
실리도 챙겼다.
“이번에 군공 꽤 많이 들어오겠지?”
“그럼. 처음에 레드 와이번 대장부터 잡고 시작했고, 시간 당 몬스터 사냥 속도가 엄청났잖아.”
군공은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쌓이지 않는다.
군공을 많이 쌓는 법은 따로 있었다.
자신의 레벨 대비 더 강력한 몬스터를 잡거나, 일정한 시간 동안 사냥한 몬스터 숫자가 많은 등.
남들보다 더 특출난 능력을 보일수록 군공은 높아진다.
사냥의 대부분은 언럭키가 했지만 그들 역시 같은 부대로 묶여 있었다.
약간의 콩고물은 떨어질테고, 그 정도의 군공만으로도 기대가 들 만 했다.
“우리도 우리인데, 언럭키님이 어떨지가 정말 궁금하네.”
“그러게. 그만한 사냥을 혼자서 했으니 군공을 어마어마하게 쌓았을텐데.”
“설마 뭐 1계급 특진하거나 그러려나?”
“에이. 병사도 아니고 하사인데 그게 되겠어? 부사관부터는 계급 하나 올리려면 최소 며칠에서 일주일 이상 사냥터 뺑뺑이 돌아아 하는데.”
“역시 그렇지?”
병사들이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어느 병사 유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오랜만에 장군이 되는 유저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음….”
어느 병사 유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통 같으면 그런 어처구니 없는 농담 하지 말라고 타박을 주었을 것이다.
이 도시를 지나쳐간 원거리 계열 랭커들이 몇 명인가.
천공의 탑에서부터 와이번의 공중 요새로 이어지는 루트는 원거리 계열 유저들이 필수로 밟고 지나가는 곳이었다.
당연히 랭커도 많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며 계급을 높였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영관급을 지나 별을 달고 장군이 된 유저는 손에 꼽았다.
지금 날고 기는 랭커들도 이 시기에 결국 영관급에서 그친 자들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글쎄…. 마지막을 별 달았던 유저가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언럭키님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아.”
“만약 정말 그러면 업적도 얻겠다.”
공중 요새에서 장군이 된다는 건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다.
그랬으면 실리를 추가하는 랭커들이 굳이 별을 달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널리 공개되어있는 사실이기도 한데, 장군이 되었을 때 업적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것도 보통 업적이 아니라 굉장히 좋은 업적이었다.
“충성. 소령님 오셨습니까.”
도시로 복귀한 일행은 군공 정산을 담당해주는 NPC를 찾아갔다.
“그래. 레드 와이번의 서식지를 다녀왔다. 정산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담당하는 하사는 앞에 놓인 수정구를 몇 번 매만졌다.
그것만으로도 각 유저들의 군공을 판별할 수 있었다.
“헉!”
정산하던 하사는 곧이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소, 소령님.”
“음. 이번에 쌓아온 군공이 좀 많지?”
헬로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사의 반응은 얼추 예상했다.
소령까지 올라오면서 그가 군공 정산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겠는가.
언럭키가 사냥한걸 옆에서 지켜본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이번 군공을 세우신 1등 공신이 하사 언럭키라고 나오는데…맞습니까?”
“맞다.”
“이번 군공으로 1계급 특진 하셨습니다.”
“!?”
그렇게 말하며 담당 하사가 새롭게 중사 계급장을 가져와 언럭키의 계급장을 교체해주었다.
헬로임은 깜짝 놀랐다.
“이, 일계급 특진? 이등병도 아니고 하사가?”
군공을 쌓아 계급을 높이는 건 굉장히 어렵다.
쉬웠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지휘관을 달았겠지.
장군은 고사하고 소위 이상의 지휘관급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
잠자고 밥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사냥터를 들락날락 해야 간신히 계급 하나 올리고 그러는 건데…
“확실한가? 혹시 잘못 알거나 그런건 아니고?”
“아닙니다. 기록을 보면 첫 전투로 나오시는데 거기서 홀로 레드 와이번 대장을 잡으셨더군요. 그 후로도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를 단기간에 잡으셨고…. 군공을 조금만 더 채워오셨어도 2계급 특진도 가능했을 겁니다.”
“…….”
헬로임은 할 말을 잊었다.
게다가 떨어지는 떡고물도 상당했다.
소령인 헬로임은 아쉽게도 그대로였지만, 함께 따라다니기만 했던 병사 유저들 역시 일병으로 진급한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언럭키님.”
“저희는 한 것도 없는데 이런 보상을 그냥 받아도 될지….”
미안한 표정을 짓는 유저들에게 언럭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습니다. 시스템이 이런 건데요 뭐.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그래도…제가 언럭키님 영상 한 번씩 더 보겠습니다. 구독은 이미 해놓고 좋아요도 다 누를게요. 동생 시켜서 동생 걸로도 누르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
군공 정산을 마친 뒤 헬로임과 병사 유저들과는 일단 헤어졌다.
병사 유저들은 솔직히 다시 만날 일 없을 것 같고, 헬로임은 아마 또 함께하지 않을까 싶다.
‘듣자하니 그만한 지휘관급 유저를 찾기 힘들다고 하니까.’
좋은 사냥터를 가지고 있는 지휘관이었으니 밑에 있다 보면 계급을 빠르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별을 달아서 업적을 얻는 것도 확실히 해볼 만하겠어.’
아까 유저들이 했던 말은 언럭키도 들었다.
장군이 되고 얻는 업적은 공개된 업적 중에서도 성능이 최상위권일 정도로 엄청나게 좋았다.
어차피 레벨업을 하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군공이니 그걸 얻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저…언럭키 중사님이십니까?”
“?”
그 때 아까 군공을 정산해주었던 하사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죠? 아니, 무슨 일이지?”
NPC들에게 존댓말하던 습관이 남아있어서 말이 잘못 나왔다.
하사는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높으신 분께서 중사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이번 군공이 위쪽으로 보고가 올라갔는데, 그게 상당한 이슈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높으신 분이라면 어떤?”
하사는 슬쩍 좌우를 살피며 누가 엿듣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건넸다.
“특임대의 로튼하임 ‘대장’님 이십니다.”
“!”
‘대장이면…포 스타?’